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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경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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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간경도감은 불경의 번역과 간행을 위해 조선 세조 때 설치된 관청이다. 중앙과 지방에 조직을 갖추고, 승려와 학자들이 참여하여 불경 간행, 불서 수집, 왕실 불사 등을 수행했다. 한문본과 한글 번역본을 간행했으며, 특히 한글 번역본은 불교 대중화와 조선 초기 국어 연구에 기여했다. 그러나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1471년 성종 때 폐지되었다.

2. 설치 배경 및 목적

간경도감은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을 주로 하였으며, 불서를 구입하거나 수집하고 왕실 불사와 법회를 관장하기도 하였다. 불경 발간은 한문본과 한글 번역본 두 종류였다. 한문본은 고려 때 조성된 《속장경》 판각이 주된 업무였으며,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다.[3]

수미, 신미 등 승려와 한계희, 노사신, 강희맹 등 학자들이 실무에 종사하였다.[1][2] 불교는 다시 활기를 띠어 사찰이 중흥되고 승려도 상당히 증가했다.[1] 간행된 책으로는 《능엄경언해》 10권, 《묘법연화경언해》 2권 등이 있다.[1]

한글(훈민정음)로 번역, 간행한 《법화경》, 《수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심경》, 《영가집》 등의 경전은 세조가 직접 번역하였고, 신미, 수미, 홍준 등 고승과 윤사로, 황수신, 김수온, 한계희, 성임 등 대신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2]

3. 주요 사업 및 활동

간경도감은 중앙에 본사를 두고 지방에는 안동부, 개성부, 상주부, 진주부, 전주부, 남원부 등에 분사를 두었다. 직제는 도제조, 제조, 사, 부사, 판관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관리는 약 20명, 총 종사자는 170여 명이었다. 30일 이상 이 일에 종사하면 도첩을 주어 승려가 될 수 있게 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3]

3. 1. 불경 번역 및 간행

간경도감은 승려와 학자를 초빙하여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을 주로 하였으며, 불서를 구입하거나 수집하고 왕실 불사와 법회를 관장하기도 하였다.[3] 불경 발간은 한문본 발간과 한글 번역본 발간의 두 종류로 나뉘었다. 한문본은 특히 고려 때 조성된 《속장경》을 판각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거의 대부분의 업무를 세조가 관장하였다.[3]

수미, 신미 등 승려와 한계희, 노사신, 강희맹 등 학자들이 실무에 종사하였다.[1][2] 그 결과 불교는 다시 활기를 띠어 사찰이 중흥되고 승려도 상당히 증가했다.[1] 간행된 책으로는 《능엄경언해》 10권, 《묘법연화경언해》 2권 등이 있다.[1]

간경도감을 통해 한글(훈민정음)로 번역하여 간행한 《법화경》, 《수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심경》, 《영가집》 등의 경전은 세조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당시 고승(高僧)이었던 신미, 수미, 홍준 등과 윤사로, 황수신, 김수온, 한계희, 성임 등의 대신들이 도왔다.[2]

경전 번역사업은 불교 보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의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3] 그러나 세종 때부터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불경 번역을 숭불행위라고 반대하자,[6] 1471년(성종 2년) 12월에 폐지되었다.[7]

4. 조직 및 인물

간경도감은 세조의 명으로 유명한 승려와 학자들을 초빙하여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을 주로 맡았다. 이들은 불서를 구입하거나 수집하고, 왕실 불사와 법회를 관장하기도 했다. 불경은 한문본과 한글 번역본 두 종류로 발간되었는데, 한문본은 고려 때 조성된 《속장경》 판각이 주된 업무였다. [3]

간경도감의 경전 번역 사업은 불교 보급에 크게 기여했으며, 한글 언해본은 불교학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국어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3] 그러나 세종 때부터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불경 번역을 숭불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1471년(성종 2) 12월에 간경도감은 폐지되었다.[7]

4. 1. 중앙 조직 및 지방 분사

간경도감은 중앙에 본사를 두고 안동, 개성, 상주, 진주, 전주, 남원 등 지방 여러 곳에 분사를 두었다. 직제는 도제조, 제조, 사, 부사, 판관 등을 두었는데, 관리는 약 20명이고 총 종사자는 170여 명에 이르렀다. 이 일에 30일 이상 종사하면 도첩을 주어 승려가 되게 하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3]

4. 2. 참여 인물

신미, 수미 등 승려와 한계희, 노사신, 강희맹 등 학자들이 실무에 종사하였다.[1][2] 경전 번역은 세조의 어역(御譯)으로 당시 고승(高僧)이었던 신미, 수미, 홍준 등과 대신(大臣) 윤사로, 황수신, 김수온, 한계희, 성임 등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2]

5. 성과 및 영향

간경도감은 불교 경전을 번역하고 간행하는 일을 주로 하였으며, 불서 구입, 수집, 왕실 불사 및 법회도 관장하였다. 불경 발간은 한문본과 한글 번역본 두 종류로 나뉘었는데, 한문본은 고려 《속장경》 판각이 주 업무였다. 세조는 간경도감의 거의 모든 업무를 직접 관장하였다.[3]

그러나 세종 때부터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유학자들이 불경 번역을 숭불 행위로 비판하면서, 1471년(성종 2년) 12월에 간경도감은 폐지되었다.[7]

5. 1. 불교 대중화 기여

신미, 수미 등 승려와 한계희, 노사신, 강희맹 등 학자들이 간경도감의 실무에 종사하였다.[1][2] 그 결과 불교는 다시 활기를 띠어 사찰이 중흥되고 승려도 상당히 증가했다.[1]

간경도감을 통해 한글(훈민정음)로 번역하여 간행한 《법화경》, 《수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심경》, 《영가집》 등의 경전은 세조의 번역으로, 당시 고승(高僧)이었던 신미, 수미, 홍준 등과 윤사로, 황수신, 김수온, 한계희, 성임 등 대신(大臣)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2]

경전 번역사업은 불교 보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의 우리말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3]

5. 2. 조선 초기 국어 연구 자료 제공

간경도감에서 한글(훈민정음)로 번역하여 간행한 《법화경》, 《수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심경》, 《영가집》 등의 경전은 세조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당시 신미, 수미, 홍준 등 유명한 승려들과 윤사로, 황수신, 김수온, 한계희, 성임 등 대신(大臣)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졌다.[2]

이러한 경전 번역 사업은 불교 보급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한글로 번역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3]

6. 폐지 및 이후

간경도감의 경전 번역 사업은 불교 보급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은 불교학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 우리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3] 그러나 세종 때부터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불경 번역을 숭불 행위라고 비판하였다.

6. 1. 성종 대의 폐지

세종 때부터 한글 사용에 반대하던 사대주의 유학자들이 불경 번역을 숭불 행위라고 반대하자,[6] 1471년(성종 2) 12월에 간경도감은 폐지되었다.[7]

참조

[1] 백과사전 한국사 > 근세사회의 발전 > 양반사회와 경제생활 > 양반관료의 문화 > 간경도감
[2] 백과사전 종교·철학 > 한국의 종교 > 한국의 불교 > 한국불교의 역사 > 조선시대의 불교 > 간경도감
[3] 네이버 지식백과 간경도감 [刊經都監] https://terms.naver.[...]
[4] 네이버 지식백과 간경도감 [刊經都監] https://terms.naver.[...]
[5] 백과사전 한국사 > 근세사회의 발전 > 조선의 성립과 발전 > 조선 왕조의 경제·사회적 구조 > 종교·신앙
[6] 서적 한국사 X파일 다림 2002
[7] 네이버 용어 사전 간경도감(刊經都監) https://terms.naver.[...] 201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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