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신
1. 개요
노사신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세종대왕의 처조카이자 이중 사돈이며,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 반정에 참여했다. 세조 즉위 후 승정원 도승지를 거쳐 호조, 이조 판서를 역임했고, 성종 때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연산군 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무오사화에 연루되었으나 사림파를 구제하기도 했다. <삼국사절요>, <여지승람> 편찬에 참여하고,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했다.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15대조이며, 드라마 설중매, 한명회, 왕과 비, 왕과 나, 인수대비,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 등 여러 작품에서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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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대공신 -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언어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 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외교와 국방에 기여했으며, 《해동제국기》, 《동국정운》 등의 저술을 남기고 영의정을 지냈다. -
익대공신 -
심회
심회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아버지의 역모 사건으로 등용이 늦었으나 문종 때 등용되어 세조 시대에 영의정까지 올랐고, 남이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성종 시대에도 중용되었으나 갑자사화 때 폐비 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복권되었다. -
1498년 사망 -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는 145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도미니크 수도사이자 종교 개혁가로,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종교적 개혁을 시도했으나 교황과 대립하여 파문당하고 화형에 처해졌다. -
1498년 사망 -
샤를 8세
샤를 8세는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왕으로, 브르타뉴 여공작과의 결혼으로 브르타뉴를 프랑스에 통합하고 이탈리아 전쟁을 일으켰으나 큰 성과 없이 사망하여 발루아 왕가의 직계가 단절되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를 프랑스에 전파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
좌리공신 -
신숙주
신숙주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학자, 언어학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세조 즉위 후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외교와 국방에 기여했으며, 《해동제국기》, 《동국정운》 등의 저술을 남기고 영의정을 지냈다. -
좌리공신 -
윤사흔
윤사흔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정희왕후의 동생이자 왕족 및 사대부와 인척 관계를 맺었으며, 음보로 관직에 입문하여 계유정난과 성종 옹립에 공을 세워 공신에 책록되고 영돈녕부사에 이르렀으나 훈척으로서 병권 운영에 대한 비판을 받았고 우의정, 영경연사를 역임 후 사망하여 양평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노사신은 세종대왕의 처조카이자 이중 사돈이었다.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노물재이고 어머니는 정부인 청송 심씨로 세종의 장인 영의정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우의정 공숙공 노한이고, 할머니는 여흥 민씨인데 원경왕후의 여동생이자 태종의 장인 문하부 좌정승 여흥백 문도공 민제의 딸이다. 민제의 두 사위 태종과 노한이 모두 심온과 사돈지간이다.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수양대군의 편에 섰다. 세조 반정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여러 벼슬을 거쳐 승정원도승지를 지냈다. 1467년 건주위 토벌에 출정하여 공을 세워 그해 12월 군공 2등(軍功二等)에 녹훈되고 1자급 특진하였다. 호조판서로 있을 때 왕명으로 <경국대전> 중 <호전(戶典)>을 맡아 편찬하였다. 그리고 이조판서를 겸하기도 했다. 1498년 무오사화 때는 훈구파의 중신 중 한사람으로서 유자광 등과 함께 김종직을 규탄하는 데 동조했다. 성종 때,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연산군 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림파 전부를 몰아내는 것에는 반대하여 많은 선비를 구제하였다. <삼국사절요>, <여지승람>을 편찬하였으며, 서거정, 허종 등과 함께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2.1. 가계와 인척 관계
그는 세종대왕의 처조카이자 이중 사돈이었다. 아버지는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노물재이고 어머니는 정부인 청송 심씨로 세종의 장인 영의정 청천부원군 안효공 심온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우의정 공숙공 노한이고, 할머니는 여흥 민씨인데 원경왕후의 여동생이자 태종의 장인 문하부 좌정승 여흥백 문도공 민제의 딸이다. 민제의 두 사위 태종과 노한이 모두 심온과 사돈지간이다.
이모 소헌왕후의 남편인 세종대왕은 할머니 여흥 민씨의 언니의 아들이자 큰이모 원경왕후의 아들로 이모부이면서 이종사촌 숙부이기도 하다. 또한 심온의 아들 영의정 심회와 영중추원사 심준은 노사신의 외삼촌으로, 노사신의 진외증조부 민제의 셋째 아들 여원군 민무휼의 사위이기도 하다.
그의 가계는 할머니가 태종비 원경왕후의 여동생, 어머니가 세종비 소헌왕후의 여동생으로 2대에 걸쳐 왕실과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또한 노사신의 두 외삼촌은 할머니의 남동생 민무휼의 사위가 되는 기묘한 인척관계를 형성했다.
2.2. 관료 생활과 정치 활동
단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수양대군의 편에 섰다. 세조 반정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여러 벼슬을 거쳐 승정원도승지를 지냈다. 1467년 건주위 토벌에 출정하여 공을 세워 그해 12월 군공 2등(軍功二等)에 녹훈되고 1자급 특진하였다. 호조판서로 있을 때 왕명으로 <경국대전> 중 <호전(戶典)>을 맡아 편찬하였다. 그리고 이조판서를 겸하기도 했다. 1498년 무오사화 때는 훈구파의 중신 중 한사람으로서 유자광 등과 함께 김종직을 규탄하는 데 동조했다. 성종 때, 우참찬, 좌참찬, 우찬성,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연산군 때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사림파 전부를 몰아내는 것에는 반대하여 많은 선비를 구제하였다. <삼국사절요>, <여지승람>을 편찬하였으며, 서거정, 허종 등과 함께 <향약집성방>을 한글로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