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그래프먼
1. 개요
게리 그래프먼은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국의 피아니스트, 교육자, 작가이다. 3세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자벨 벵게로바에게 배웠으며, 유진 오먼디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문적인 데뷔를 했다.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루돌프 세르킨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사사받았다.
그는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국제적으로 활동했고,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부활시켰다. 1964년 레너드 번스타인, 1966년 조지 셀과 협연하여 음반을 녹음했으며, 1979년 영화 《맨해튼》 사운드트랙에서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주하여 널리 알려졌다. 1977년 오른손 부상으로 인해 왼손 연주를 시작했으며, 커티스 음악원 교수를 거쳐 원장, 총장직을 역임했다. 또한 왼손을 위한 작품들을 위촉하여 초연하기도 했다. 1980년 회고록 《정말 연습해야 하는데》를 출판했으며, 명예 박사 학위와 여러 상을 받았다.
-
미국의 클래식 음악가 -
데이비드 시프린
데이비드 시프린은 미국의 저명한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교육자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협연, 현대 작품 초연 기여, 바셋 클라리넷 제작, 링컨센터 실내악 협회 예술 감독 역임, 예일 음악대학 교수 활동, 그래미상 후보 지명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
미국의 클래식 음악가 -
윤기선
윤기선은 일제강점기부터 대한민국에 걸쳐 피아니스트, 대학교수로 활동했으며, 윤치호의 아들이자 윤보선의 재종간으로, 동경 예술대학 졸업 후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에서 사망했다. -
뉴욕 출신 -
재러드 쿠슈너
재러드 쿠슈너는 미국의 사업가, 투자자, 부동산 개발업자, 신문 발행인이자 도널드 트럼프의 사위이며 전 미국 대통령 수석 고문으로, 쿠슈너 컴퍼니즈 CEO로서 부동산 사업을 확장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양한 정책 분야에 관여했으며, 현재는 투자 회사 애피니티 파트너스를 설립하여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
뉴욕 출신 -
리처드 스나이더
-
미국의 피아노 연주자 -
반 클라이번
반 클라이번은 1958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국제 피아노 콩쿠르가 권위를 인정받고 대통령 자유 훈장, 러시아 우정 훈장, 그래미 평생 공로상 등을 수상한 미국의 피아니스트이다. -
미국의 피아노 연주자 -
라이언 테더
라이언 테더는 원리퍼블릭의 리드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겸 음반 프로듀서로서,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팀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프로듀서 경력을 쌓았으며, 레오나 루이스,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비욘세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곡을 작곡 및 프로듀싱하여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반사를 설립하고 TV 프로그램 제작에도 참여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2. 초기 생애 및 교육
그래프먼은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에게서 뉴욕에서 태어났다. 3세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7세에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 이자벨 벵게로바에게 배웠다. 1946년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하고,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전문 연주자로 데뷔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49년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말보로 음악 페스티벌에서 루돌프 제르킨에게 배우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에게 비공식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3. 연주 경력
1948년 레벤트리트 상을 수상하며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루돌프 제르킨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실력을 더욱 연마했다. 1979년 오른손 부상을 입은 후에는 왼손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이어갔다.
3.1. 초기 경력 (1940년대 ~ 1970년대)
1946년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한 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차석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했고, 이후 뉴욕 필하모닉에서 수석 피아노 연주자를 역임했다. 유진 이스토민, 아이작 스턴, 레너드 로즈와 같은 유대계 미국인 출신 음악가들이 순회 연주하는 트리오 콘서트에 협연자로 참여하여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다. 또한, 글렌 굴드 등과 함께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지에서 연주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다.
졸업 후,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국제적인 콘서트와 독주회를 가졌다. 이후 30년 동안 전 세계를 순회하며 솔로 및 오케스트라와 함께 광범위하게 연주하고 음반을 녹음했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3번을 부활시켰으며, 유진 오먼디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CBS에서 녹음했다. 그의 제자 중 일부는 이 곡들을 연주하기도 한다. 1964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녹음했다. 1966년에는 조지 셀이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녹음했는데, 이 음반은 2006년 소니 클래시컬의 "Great Performances" 시리즈의 일환으로 CD로 재발매되었다. 1970년대에 그래프먼은 과르네리 사중주단과 줄리아드 현악 사중주단과 함께 실내악 공연을 했다.
1979년 우디 앨런의 영화 맨해튼의 사운드트랙에서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를 뉴욕 필하모닉의 반주로 연주했는데, 이 연주는 그래프먼의 가장 잘 알려진 녹음 공연으로 꼽힌다. 이 버전은 지난 25년 동안 TV와 영화에서 수없이 많이 사용되었다.
3.2. 오른손 부상과 왼손 연주 (1979년 이후)
1977년, 그래프먼은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을 삐는 부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1979년경에는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것을 완전히 중단하게 되었다. 그의 손가락 부상은 국소성 근긴장 이상증이라는 신경 질환 때문이었는데, 이는 손가락의 기능 상실과 통제할 수 없는 굽힘을 유발한다. 피아니스트이자 그래프먼의 절친한 친구인 레온 플라이셔도 이 질환을 앓았다.
이후 그래프먼은 왼손 연주에 집중하게 되었다. 1985년, 그는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의 왼손을 위한 C♯단조 피아노 협주곡을 영국에서 초연했다. 1993년에는 네드 로렘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세계 초연했고, 2001년에는 데런 헤이건의 협주곡 《일곱 개의 마지막 말씀》(Seven Last Words)을 초연했다. 또한 미국의 작곡가 윌리엄 볼컴은 그래프먼과 레온 플라이셔를 위해 왼손을 위한 두 대의 피아노 협주곡인 《가이아(Gaea)》를 작곡했으며, 이 곡은 1996년 4월 볼티모어에서 초연되었다.
4. 교육 경력
1980년 커티스 음악원 교수로 임용되었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커티스 음악원 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커티스 음악원 총장을 역임했다. 매네스 음악 대학 피아노 교수로도 재직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 지도에도 참여했다. 주요 제자로는 랑랑, 유자 왕, 클레어 황치, 임윤찬, 힐러리 한(실내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