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필하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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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욕 필하모닉은 1842년 유렐리 코렐리 힐에 의해 창단된 미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이다. 초기에는 여러 지휘자들이 협동 조합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구스타프 말러,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레너드 번스타인 등 저명한 지휘자들이 상임 지휘자를 역임하며 명성을 쌓았다. 1962년 링컨 센터의 에이버리 피셔 홀(현 데이비드 게핀 홀)을 상주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26년부터는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 감독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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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 |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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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오케스트라 |
설립일 | 1842년 |
소재지 | 미국 뉴욕주 뉴욕 시 |
공연장 | 링컨 센터 내 데이비드 게핀 홀 |
웹사이트 | nyphil.org |
지휘자 | |
음악 감독 (지정, 2026년 효력 발생) | 구스타보 두다멜 |
악장 | 프랑크 후앙 |
명칭 | |
영어 명칭 | New York Philharmonic |
이전 명칭 | Philharmonic-Symphony Society of New York, Inc. (뉴욕 필하모닉-심포니 협회) |
역사 | |
창립 | 1842년 |
주요 시기 |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교향악단 중 하나 |
추가 정보 | |
관련 링크 | 클래식 음악 [[파일:Viola d'amore.png|35px|위키포털 클래식 음악]] |
2. 역사
뉴욕 필하모닉은 뉴욕에 있는 유일한 상설 콘서트 오케스트라이다. 2010년까지 통산 15,000회 이상의 공연을 했으며, 현재는 연간 약 180회의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1917년 첫 녹음부터 현재까지 2000작품 이상이 녹음되었다.[63]
뉴욕 필은 긴 역사 속에서 항상 최고의 연주 수준을 유지해 온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특히 관악기에 명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폭넓은 레퍼토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자랑한다. 자체 제작 CD "The Historical Broadcasts 1923 to 1987"에는 뉴욕 필의 특징을 "어떤 지휘자에게도 맞출 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은 유연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먼디와 스토코프스키와 필라델피아, 셀과 클리블랜드, 솔티와 시카고, 쿠세비츠키나 오자와 세이지 또는 뮌슈와 보스턴과 달리, 특정 지휘자와의 장기간의 연계는 뉴욕 필에는 없다.
1921년 워싱턴 국립 교향악단(현재의 워싱턴 국립 교향악단과는 별개)을, 1923년 뉴욕 시립 교향악단을 흡수했다. 1928년 3월 20일 최대 라이벌이었던 뉴욕 교향악단을 흡수,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되었다. 1930년 유럽 연주 여행은 당시 유럽 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시대 (1958-1969)에는 1961년 본거지를 링컨 센터 내 데이비드 게핀 홀(개장 당시 명칭은 필하모니 홀)로 옮겼다. 번스타인은 음악 감독 퇴임 후에도 계관 지휘자로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만년까지 협연과 녹음을 했다. 1969년 번스타인 사임 후 후임자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번스타인 이후 (1969-현재) 1962년 본거지를 카네기 홀에서 에이버리 피셔 홀(현 데이비드 게펜 홀)로 옮겼으나, 카네기 홀은 음향이 풍부한 명홀이었던 반면, 후자는 울림이 좋지 않았다.[64] 2004년 카네기 홀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스폰서와의 관계 때문에 불가능했다. 2008년 2월 26일[67] 북한 동평양대극장에서 미국-조선 관계가 좋지 않은 가운데 로린 마젤 지휘로 공연했다. 미국 오케스트라가 북한에서 연주한 것은 처음이다.
2. 1. 초창기 (1842-1909)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관현악 연주 단체가 몇 차례 결성되었으나,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1842년 바이올리니스트 유렐리 코렐리 힐이 주축이 되어 뉴욕 시에 필하모닉 협회를 설립하고 그 해 12월 7일에 아폴로 룸즈라는 소규모 공연장에서 첫 연주회를 가졌다. 힐은 1847년에 오하이오주로 이주할 때까지 상임 지휘자를 맡았으며, 후임으로는 테오도르 아이스펠트, 칼 버그만, 레오폴트 담로슈가 차례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단원들은 적은 임금 등으로 인한 불만으로 자주 교체되었으며,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한 부업 활동 등으로 인해 연주력이 답보 상태에 있었다.[8]
1877년 테오도르 토마스가 상임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악단의 분위기와 처우를 쇄신하기 시작했고, 이어 취임한 헝가리 출신의 안톤 자이들도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를 초연하는 등의 활동으로 악단의 연주력 향상과 레퍼토리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1909년에는 구스타프 말러가 상임 지휘자로 초빙되었고, 동시에 단원 증원과 운영권 재정비 등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1842년 빈 필하모닉과 같은 해에 "뉴욕 필하모닉 소사이어티"(Philharmonic Society of New York)가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7일 유렐리 코렐리 힐의 지휘 아래 첫 콘서트가 열렸다. 연주곡은 베토벤 교향곡 5번, 칼리보다의 서곡 등이었다.
1877년부터 1891년까지 필하모닉은 후에 시카고 교향악단의 창설자가 되는 테오도르 토마스를 상임 지휘자로 맞이했다. 토마스 재임 중인 1878년에 레오폴트 담로슈에 의해 뉴욕 필의 강력한 경쟁 상대가 되는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창설되었다. 그 7년 후 담로슈가 서거하자, 후임에는 그의 아들인 월터 담로슈가 뉴욕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가 되었다.
1891년 5월 5일 뉴욕 필의 예전 홈구장이었던 카네기 홀이 개관하였다. 1893년에는 안톤 자이들 지휘로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세계 초연을 진행했다.
1909년 뉴욕 필은 구스타프 말러를 상임 지휘자로 맞이하여 연주 수준 향상에 힘썼고, 악단원을 풀타임 단원으로 했다.
2. 2. 말러와 제1차 세계 대전 (1909-1921)
1909년, 필하모닉은 재정적 안정을 위해 메리 세니 셸던과 미니 언터마이어 등 뉴욕의 부유층 인사들이 보증인 위원회를 결성하고, 오케스트라 조직을 음악가 운영 협동 조합에서 기업 경영 구조로 변경했다. 보증인들은 구스타프 말러를 수석 지휘자로 영입하고 시즌을 18회 공연에서 54회 공연으로 확장했는데, 여기에는 뉴잉글랜드 투어도 포함되었다. 필하모닉은 말러가 오페라 책임 없이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교향곡 문헌을 더 깊이 탐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교향악단이었다. 그는 뉴욕에서 경력상 처음으로 여러 작품을 지휘했고, 청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말러의 지휘 하에 시즌이 확대되었고, 음악가들의 급여가 보장되었으며, 운영 범위가 넓어졌고, 20세기 오케스트라가 창설되었다.1911년, 말러가 예기치 않게 사망하자 필하모닉은 요세프 스트란스키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말러의 가치 있는 후계자로 여기지 않았던 스트란스키의 선택에 놀라움을 표했다.[18] 스트란스키는 1920년까지 오케스트라의 모든 콘서트를 지휘했으며,[19] 1917년에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최초의 녹음을 했다.
2. 3. 확장과 전성기 (1921-1943)
1921년 워싱턴 국립 교향악단(당시 내셔널 교향악단)을, 1923년 뉴욕 시립 교향악단을 흡수하면서 요제프 스트란스키와 빌럼 멩겔베르크 두 지휘자가 상임 지위를 나누는 쌍두 체제가 시작되었다. 1924년에는 작곡가 어니스트 셸링이 "청소년을 위한 콘서트"(Young People's Concert)를 시작했다.1925년부터 2년 동안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객원 지휘를 맡았다. 1927년부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멩겔베르크의 쌍두 체제에서 1928년 3월 20일 최대 라이벌이었던 뉴욕 교향악단을 흡수,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이 되었다. 합병 당시 오디션은 멩겔베르크가 담당했다. 토스카니니 시대에는 목관악기(특히 바순)에 독일식 시스템을 채택, 기동성이 향상되었고, 현악기에는 유대인 연주자가 많아 풍부한 표현의 연주를 들려주었다. 토스카니니의 훈련과 함께 정확한 앙상블이 높이 평가되었다.

1930년 유럽 연주 여행은 당시 유럽 음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30년대가 뉴욕 필의 최성기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유대계 연주자가 많아 "주욕 필"(Jew York Philharmonic)이라고 불리기도 했다(1933년 나치 독일 성립으로 인해 박해받은 유대계 연주자들이 독일에서 도망).
1936년 토스카니니 퇴임 후,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프리츠 부슈가 후임으로 거론되었으나 무산되었고, 존 바비롤리가 임명되었다. 바비롤리는 신선한 기풍을 불어넣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오케스트라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1937년에는 토스카니니를 중심으로 NBC 교향악단이 설립되었다. 1942년부터 1943년 창립 100주년 기념 시즌에는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자들이 출연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과 전후 (1943-1958)
1943년, 아르투르 로진스키가 음악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엄격한 훈련으로 뉴욕 필하모닉을 재건하려 했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자세와 현대곡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프로그램 구성으로 인해 단원 및 이사회와 불화를 겪었다.[21]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 권총을 넣고 오케스트라 연습에 임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로진스키는 1947년에 사임했다.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음악 감독을 두지 않았고, 브루노 발터가 음악 고문이라는 직책으로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었다. 1942년 12월에는 발터에게 음악 감독직이 제안되었지만, 당시 그의 나이(67세)를 이유로 거절했다.[21]
1949년부터 1950년에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가 뉴욕 필을 이끌었다. 1951년에 미트로풀로스가 음악감독이 되었다. 그는 리허설부터 모든 것을 암보로 하는 경이로운 기억력과 날카로운 해석, 집중력 있는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로진스키처럼 현대곡을 프로그램에 많이 포함시켜 단원과 보수적인 청중의 반감을 샀다. 전설적인 오보에 연주자 해럴드 곰버그는 미트로풀로스 반대 운동의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라는 구심력을 잃고 침체가 이어졌으며, 뉴욕 음악계와 대중매체에서는 필하모닉의 구세주를 기다리는 논조가 나타났다.
한편, 1940년대에 필하모닉은 컬럼비아 레코드와 함께 일련의 녹음을 제작했다. 많은 세션은 동부 58번가에 있는 리더크란츠 홀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이전에 독일 문화 및 음악 협회 소유였으며 컬럼비아 레코드의 녹음 스튜디오로 사용되었다.[22][23]
2. 5. 번스타인 시대 (1958-1969)
레너드 번스타인은 1957년에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와 함께 "수석 지휘자" 직함을 공유하다가, 1958년에 미국인 최초로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그는 콘서트 횟수를 늘리고 악단 고용 형태를 안정시켰으며, 음반 녹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번스타인 시대에 악단의 정식 명칭은 '뉴욕 필하모니 교향악단'에서 '뉴욕 필하모닉'으로 바뀌었다.번스타인의 화려한 지휘, 명쾌한 음악 해석, 그리고 풍부한 음악적 재능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빠르게 사로잡았다. 그의 스타성에 힘입어 음반과 TV 방송도 주목받으며 뉴욕 필의 황금시대가 시작되었다. 1958년부터 1973년까지 번스타인이 맡은 《영 피플스 콘서트》는 주제 및 악곡 선정, 구성, 대본 집필 모두 번스타인이 직접 맡았다. 1961년에는 본거지를 링컨 센터 내 데이비드 게핀 홀(개장 당시 명칭은 필하모닉 홀)로 옮겼다.[71]

번스타인은 음악 감독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관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연주회와 녹음을 계속했다. 1960년대에는 세계 최초로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전집을 완성했다. 이 외에도 베토벤, 슈만, 브람스, 차이콥스키,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집과 모차르트, 하이든, 멘델스존,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쇼스타코비치의 주요 교향곡을 녹음했으며, 관현악 작품과 협주곡도 바로크 고전에서 현대곡까지 방대한 수의 음반을 남겼다. 자신의 작품을 포함해 코플런드, 엘리엇 카터, 루카스 포스, 윌리엄 슈만 등 현대 미국 음악을 적극 연주했다. 아이브스 교향곡 2번을 세계 초연(1951년)한 것도 번스타인 지휘와 뉴욕 필이었다.
2. 6. 번스타인 이후 (1969-현재)
번스타인이 1969년 유럽 활동을 위해 음악 감독직을 사임한 뒤, 조지 셀이 브루노 발터처럼 음악 고문 직책을 잠시 맡았다.[64] 이후 피에르 불레즈가 상임 지휘자로 발탁되었다. 불레즈는 동시대 현대 음악이나 기존 작품들의 파격적인 해석으로 젊은 층과 진보적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보수적인 운영진과 단원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청중 동원 미흡 등의 이유로 1977년에 사임했다.불레즈의 후임으로는 주빈 메타가 기용되어 1991년까지 재임했으나, 악단의 연주력이 점차 하락세를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65] 메타는 지휘를 하는 동안 현대 음악에 대한 강한 헌신을 보여 52개의 작품을 초연했다. 1980년 필하모닉은 토스카니니의 유럽 순회 50주년을 기념하는 유럽 투어를 시작했다.
1991년부터는 쿠르트 마주어가 음악감독을 맡아, 악단에 풍부하고 유연한 향기를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악기 앙상블이 향상되었다.[66] 마주어는 악단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퇴임 시 악단 사상 첫 명예 음악 감독 칭호를 받았다. 그는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의 무료 현충일 콘서트 시리즈와 오케스트라의 첫 중국 본토 순회 연주를 포함한 연례 해외 순회 연주를 진행했다.
2002년 9월부터 2009년까지 로린 마젤이 음악 감독을 맡았다. 마젤은 이 오케스트라로서는 번스타인 이후 두 번째 미국인 지휘자였다. 마젤의 음악 감독 시대에는 깔끔하고 날씬한 앙상블을 유지하면서도 과거의 빛나는 음색을 되찾아, 평가는 다시 높아졌다. 특히 수석 트럼펫 주자 필립 스미스와 수석 트롬본 주자 조셉 알레시의 조합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명수들의 조합으로 평가받았다. 마젤은 첫 번째 정기 연주회 주간에 존 애덤스가 2001년 9월 11일 사망자들을 기리기 위해 의뢰한 ''영혼의 윤회''(On the Transmigration of Souls)의 세계 초연을 지휘했다.
2008년 2월 26일[67], 북한의 동평양대극장에서, 미국-조선 관계가 좋지 않은 가운데, 마젤의 지휘로 공연했다. 미국의 오케스트라가 북한에서 연주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2009년 가을, 앨런 길버트가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다.[68] 2018년 시즌부터는 야프 판 츠베덴이 음악 감독을 이어받았다(2024년 퇴임[69]).
2023년 2월, 2026~2027년 시즌부터, 구스타보 두다멜이 음악 감독 겸 예술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이 발표되었다.[70]
3. 2008년 평양 공연
2007년 12월에 발표된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은 큰 화제를 모았다.[7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동안 전통적인 우방국이거나 수교국의 악단들인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교향악단, 중국 국립 교향악단, 독일 청소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융에 도이체 필하모니) 등이 공연을 가진 바 있었으나, 적성국으로 여겨지고 있는 미국의 관현악단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뉴욕 필의 북한 방문을 허가했고, 국무성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공연 개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라이스는 이 공연이 북미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은 아니라는 유보적인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BBC 특파원은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 가장 탁월한 문화적 교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북한에서는 300여 명에 가까운 파견단의 입국을 허용하는 등 전례없는 행보를 보였다. 자린 메타 뉴욕필 사장은 "이번 일정은 사람들을 한데로 묶는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것" 이라고 밝혔다.[73]
뉴욕 필과 로린 마젤은 2008년 2월 25일에 베이징에서 아시아나 항공 특별기 편으로 평양에 도착하였고, 이튿날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과 공연장인 동평양대극장에서 각각 마스터클래스와 무대 리허설을 가진 뒤 오후 6시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와 미국 국가가 차례로 연주되면서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연주회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 1.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제3막 전주곡
- 2.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 3. 거슈윈: 교향시 '파리의 미국인'
- 앵콜 1. 비제: 모음곡 '아를의 여인' 제2번 중 파랑돌
- 앵콜 2. 번스타인: 오페레타 '캔디드' 서곡 (무지휘 연주)
- 앵콜 3. 최성환: 관현악 '아리랑'
이 공연은 조선중앙방송과 문화방송, 유로아츠 인터내셔널과 ARTE 프랑스 등의 방송사들에 의해 전 세계로 실황 중계되었으며,[74] DVD도 발매되어 있다.[75]
그러나 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연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공연 시작 전부터 미국 국내외의 보수적인 언론사들에서는 이 공연이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서 열리는 전시 효과만을 추구한 것이라며 사설 등을 통해 비판하기도 했다.[76] 북한 측에서는 이 공연을 위해 공연장인 동평양대극장의 무대 천정 위에 음향 반사판을 추가로 설치하는 등 음향 보수 공사를 단행했고, 대한민국과 미국 측 인사들의 관람석을 마련하는 등 협조적이고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 뉴욕 필은 이어 2월 27일에 모란봉극장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 단원들과 소규모 합동 실내악 연주와 공개 총연습을 실시했으며, 2월 28일에는 서울로 이동해 공연하였다.[77]
4. 주요 공연장
초기에는 브로드웨이의 극장을 전전하면서 공연하고 있었으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카네기 홀, 브루클린 음악 아카데미 등의 홀이 건립되자 해당 홀들에서 연주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1962년에는 링컨 센터의 에이버리 피셔 홀(현 데이비드 게핀 홀)이 완공되자 상주 악단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5. 역대 상임 지휘자
재임 기간 | 이름 |
---|---|
1842-1847 | 유렐리 코렐리 힐 |
1848-1865 | 테오도르 아이스펠트 |
1855-1876 | 칼 베르크만 |
1876-1877 | 레오폴트 담로슈 |
1877-1891 | 테오도르 토마스 |
1891-1898 | 안톤 자이들 |
1898-1902 | 에밀 파우어 |
1902-1903 | 발터 담로슈 |
1906-1909 | 바실리 사포노프 |
1909-1911 | 구스타프 말러 |
1911-1923 | 요제프 스트란스키 |
1922-1930 | 빌럼 멩엘베르흐 |
1928-1936 |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1936-1941 | 존 바비롤리 |
1943-1947 | 아르투르 로진스키 |
1947-1949 | 브루노 발터 (음악 고문) |
1949-1950 |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
1949-1958 |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
1958-1969 | 레너드 번스타인 |
1969-1970 | 조지 셀 (음악 고문) |
1971-1977 | 피에르 불레즈 |
1978-1991 | 주빈 메타 |
1991-2002 | 쿠르트 마주어 |
2002-2009 | 로린 마젤 |
2009-2017 | 앨런 길버트 |
2018-2024 | 얍 판 츠베덴 |
2026- | 구스타보 두다멜 (예정) |
6. 다양성
뉴욕 필하모닉은 전통적으로 특히 관악기에 명인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폭넓은 레퍼토리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자랑한다. 뉴욕 필의 자체 제작 CD "The Historical Broadcasts 1923 to 1987" 책자에는 뉴욕 필의 특징을 "어떤 지휘자에게도 맞출 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은 유연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1] 반면, 오먼디와 스토코프스키의 필라델피아, 셀의 클리블랜드, 솔티의 시카고, 쿠세비츠키나 오자와 세이지, 뮌슈의 보스턴과 같이, 다른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는 특정 지휘자와 장기간 연계되는 경우가 많지만, 뉴욕 필은 그렇지 않다.[1]
참조
[1]
잡지
Company Overview of Philharmonic-Symphony Society of New York, Inc.
http://investing.bus[...]
2013-05-06
[2]
웹사이트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The
http://www.discogs.c[...]
discog.com
2013-05-06
[3]
웹사이트
New York Philharmonic Orchestra (Symphony Orchestra)
http://www.bach-cant[...]
bach-cantatas.com
2013-05-06
[4]
웹사이트
New York Philharmonic-Symphony Orchestra
http://education.yah[...]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3-05-06
[5]
뉴스
Which U.S. Orchestras are Best?
http://www.time.com/[...]
1983-04-25
[6]
뉴스
Lincoln Center Concert Hall Renamed for David Geffen
https://www.wsj.com/[...]
2015-09-24
[7]
웹사이트
New York Philharmonic: A Distinguished History
http://nyphil.org/ab[...]
2007-04-09
[8]
문서
Original Constitution of Philharmonic Society of New York, April 1842, New York Philharmonic Archives
[9]
서적
Strong on Music: The New York Music Scene in the Days of George Templeton Strong, 1836–1875, Vol. 1
Oxford University Press
[10]
문서
Ritter (1883), p. 348
[11]
간행물
Dwight's Journal of Music, May 13, 1865
[12]
서적
Classical, American Popular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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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Opening Carnegie Hall: The Creation and First Performances of America's Premier Concert Stage
https://books.google[...]
McFarland
2016
[14]
뉴스
Philharmonic, Carnegie Hall Break Off Their Eng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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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발 〓 스베덴이 2023/2024 시즌에 뉴욕 필의 음악 감독을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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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발 〓 구스타보 두다멜이 2026년부터 뉴욕 필의 음악 감독・예술 감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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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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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 내한공연 지휘 살로넨 “40년 친구 지메르만과 협연”
내한 공연 뉴욕필 한국인 단원 손유빈 “살로넨의 지휘, 전율이 흐르는 경험”
한국 최초 뉴욕필 관악단원 손유빈 "스포츠카 같은 박력 느낄 것"
지휘자도 공개 오디션…클래식계 신선한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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