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빈 이씨
1. 개요
경빈 이씨는 1541년 이첨정의 딸로 태어나 명종의 후궁, 선조의 숙의를 거쳐 1755년 빈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1556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입궁하여 1558년 명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인빈 김씨의 입궁에 영향을 주었다. 임진왜란 중 연안으로 피난하여 1595년 사망했으며, 영조에 의해 경빈으로 추증되었다. 현재 묘는 고양시 서삼릉 경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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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년 사망 -
토르콰토 타소
토르콰토 타소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서사시 《리날도》, 목가극 《아민타》, 대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 등의 작품을 남기며 유럽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95년 사망 -
기무라 시게코레
기무라 시게코레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무장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겨 공을 세웠으나 도요토미 히데쓰구 사건에 연루되어 자결한 기무라 사다시게의 아들이다. -
1541년 출생 -
엘 그레코
엘 그레코는 비잔틴 미술을 익히고 베네치아와 로마를 거쳐 스페인 톨레도에서 독창적인 화풍을 확립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며, 매너리즘의 영향을 받아 인물을 길게 늘이고 강렬한 색채와 빛으로 종교적 감성을 표현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등이 있다. -
1541년 출생 -
이광 (1541년)
이광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남도근왕군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섰으나 용인 전투에서 패배 후 파직되었으며,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고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현진건
현진건은 일제강점기의 사실주의 소설가로, 대표작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 언론 탄압을 받기도 했다. -
병사한 사람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2. 생애
1541년 이첨정의 딸로 태어나 1556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입궁하였다. 1558년 명종의 후궁이 되어 숙원에 봉해졌으며, 명종 승하 후 선조가 즉위하자 숙의로 진봉되었다.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는 그의 외종사촌 여동생이다.
임진왜란 중인 1595년에는 황해도 연안으로 피난하였으며, 같은 해 음력 6월 향년 55세(또는 54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 1755년 음력 6월 14일, 영조에 의해 정1품 빈(嬪)으로 추증되어 경빈(慶嬪)이라는 호를 받았다. 이는 당시 함께 추증된 사촌 동생 인빈 김씨와의 관계를 고려한 영조의 결정이었다. 영조는 직접 묘갈(墓碣)을 지었으며, 1760년부터는 식년(式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현재 묘는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경내에 있다.
경빈 이씨는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를 궁궐로 데려와 양육하고 인순왕후에게 소개함으로써, 훗날 인빈 김씨가 선조의 후궁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2.1. 가계와 입궁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후궁으로, 1541년(중종 36년) 전의 이씨 이첨정과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는 경빈 이씨의 외종사촌 여동생이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조모 나씨 손에서 자랐으며, 1556년(명종 11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궁궐에 들어갔다. 이씨의 입궁과 관련하여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아들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 근심하던 문정왕후의 꿈에 어떤 이가 나타나 "상주에 사는 이 아무개의 딸을 궁중에 들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왕후는 꿈에서 깨어 그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는데, 우연히 한 승려가 알려준 곳에서 이씨를 찾아 데려왔다는 것이다.
2.2. 후궁 시절
1558년(명종 13년) 명종의 후궁이 되었고, 명종 말년에 종4품 숙원에 봉해졌다.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한 후에는 여러 차례 진봉되어 종2품 숙의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약 30여 년간 별궁에서 지내면서 머리를 자르고 소식을 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황해도 연안으로 피난을 갔다. 1595년(선조 28년) 선조는 연안의 감사에게 당시 피난 중이던 숙의 이씨 등에게 음식물을 지급하라고 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마음고생으로 병이 심해져 결국 같은 해 음력 6월 정사일, 연안의 우사(寓舍, 임시 거처)에서 향년 55세(일부 기록에는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조는 이씨의 장례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관에서 지급하도록 명하였다.
한편, 이씨는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가 궁에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숙의였던 이씨는 김씨를 궁으로 데려와 양육했으며,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에게 김씨를 소개하여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다. 이후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김씨를 후궁으로 추천하여, 김씨는 1573년(선조 6년) 숙원에 책봉될 수 있었다.
2.3. 사후
1755년(영조 31년) 음력 6월 14일 영조에 의해 정1품 빈(嬪)으로 추증되었다. 당시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에게 시호가 내려지고 그 묘(墓)가 원(園)으로 격상되었는데, 영조는 인빈의 사촌 언니인 이씨 역시 함께 추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씨는 경빈(慶嬪)이라는 호를 받게 되었다. 이때 영조는 친히 묘갈(墓碣, 묘비에 새기는 글)을 지어 써주었으며, 1760년(영조 36년)부터는 경빈의 묘에 식년(式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현재 경빈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 경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