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안궁주
1. 개요
경안궁주는 고려 원종과 경창궁주의 장녀로, 1260년 궁주에 책봉되어 제안공 왕숙과 결혼했다. 왕숙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현을 낳았으며, 왕현은 허씨 부인과 혼인했다. 1277년 어머니와 오빠가 반역 혐의로 유배되었으며, 경안궁주 사후 왕숙은 충렬왕의 딸 정녕원비와 재혼하여 원나라에서 대군, 부원대군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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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녀 -
정녕원비
정녕원비는 고려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1274년 정녕궁주에 책봉되었고 종실 제안공 왕숙과 혼인한 인물이다. -
고려의 왕녀 -
명순원비
명순원비는 충렬왕과 정신부주의 딸로, 한양공 왕현과 혼인하여 계양후 왕광을 낳았으며, 1320년에 사망한 고려의 왕족이다. -
13세기 출생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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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출생 -
구스노키 마사시게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가마쿠라 막부 말기부터 겐무 신정기에 활약한 무장으로, 고다이고 천황을 지지하여 막부에 맞섰으나 아시카가 다카우지와의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그의 충절은 높이 평가받고 출신 배경과 생애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존재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1260년 음력 10월 27일, 경안궁주는 아버지 원종과 함께 조정의 신하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 경안궁주(慶安宮主)라는 작위를 받았다. 이후 제안백 왕숙과 결혼하였다. 당시 궁궐에서는 네 번의 책봉식과 두 번의 가례가 있었는데, 이를 위해 금과 은 1000여 냥과 쌀 3000석이 소비되었고, 옷감의 소비는 헤아릴 수 없었다.
경안궁주는 왕숙과의 사이에서 아들 왕현(王絃)을 낳았으며, 왕현은 허씨 부인과 결혼하였다.
1277년(충렬왕 3년), 경안궁주의 어머니 경창궁주와 친오빠 수안후 왕종은 역모를 꾀했다는 무고를 받아 유배되었다. 한편, 경안궁주 사후 왕숙은 충렬왕의 딸 정녕원비와 재혼하였으며, 여러 차례 원나라에 가서 대군(大君), 부원대군(駙元大君), 삼중대광(三重大匡) 등의 칭호를 받았고, 1312년(충선왕 4년)에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가계
경안궁주는 고려 제24대 원종과 경창궁주의 장녀로, 생년은 명확하지 않다. 왕씨, 본관은 개성이다. 순안공 왕종 등의 친남매이며, 충렬왕의 이복 남매이다.
어머니 경창궁주는 현종의 아들 평양공 왕기의 7세손 신안공 왕전의 딸로, 어머니는 희종과 성평왕후의 딸 가순궁주이다. 경안궁주의 친조모인 안혜왕후도 희종과 성평왕후의 딸이므로, 경안궁주의 친조모와 외조모는 서로 친자매간이 된다. 경창궁주의 유씨 성은 외가의 성씨를 따른 것이다.
2.2. 공주 시절
1260년(원종 원년) 음력 10월 27일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어 그 호를 경안궁주(慶安宮主)라 하였다. 이날 원종은 여러 대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같은 해 음력 12월 7일 경안궁주는 종실인 제안백 왕숙과 혼인하였다. 당시 1260년(원종 원년) 한 해에만 책봉식이 4건, 가례가 2건이나 있던 탓에 금과 은을 약 1000근이나 소비하고, 쌀 등의 곡식은 3000석을 소비했을 뿐 아니라 삼베 등의 천은 그 소비량을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궁주의 삶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한편 충렬왕 즉위 후인 1277년(충렬왕 3년), 궁주의 모후 경창궁주와 친누이 순안공은 역모를 꾀했다는 무고를 받아 경창궁주는 폐서인이 되었고, 순안공은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