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총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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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와 세종캠퍼스 학생들의 자치 기구이다. 4·19 혁명 당시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고, 이후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에도 반정부 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사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며,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에서 다양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총학생회는 매년 11월에 선거를 통해 회장단을 선출하며, 1961년부터 2021년까지 다양한 정치 성향과 활동을 보여왔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대한민국 사회의 주요 변곡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4·19 혁명 하루 전인 4월 18일에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여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지폈으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 기간 동안 학생운동 세력의 중심에서 반정부 활동을 이끌었다. 1964년 6월 3일에는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는 6.3 항쟁을 주도했다.
19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퇴조하면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2.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고려대 총학의 영향
2000년대 이후에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2000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려대학교 방문 당시 과거 행적을 비판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고,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했으며, 2013년에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2. 1. 이승만 정부
고려대 학생들은 4·19 혁명 하루 전인 4월 18일에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여 독재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지폈다.[1] 이를 계기로 학도호국단이 아닌 정식 총학생회가 발족되었다.[1] 현재까지도 고려대 총학생회는 "4·18 구국대장정" 행사를 통해 4·19 혁명 성지를 방문하며 그 정신을 기리고 있다.[1]
2. 2.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
박정희, 전두환 정권 기간 동안 고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운동 세력은 반정부 활동을 주도하였다. 고대 총학생회가 주도한 것으로 1964년 6월 3일 한일기본조약에 반대하는 6.3 항쟁이 대표적이다.[1]
1964년 6월 3일 정오,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자, 이명박 당시 고려대 상대 학생회장 등의 주도로 고려대, 연세대, 서울대생 외에 서울 18개 대학 1만 5천여 명 등 총 3만 명가량이 거리로 몰려나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이명박 등 주도자들은 체포되었다.[1]
이후에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반정부 투쟁은 계속되었으며, 권위주의 정권은 고려대 총학생회를 탄압하기 위해 학내에 형사를 배치하고, 총학생회의 정치적인 발언권을 제한하였다. 하지만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조직을 유지했으며, 2010년까지 반정부 투쟁을 이어갔다.[1]
2. 3. 김대중 정부
2000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함성득 교수의 초청으로 고려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과거 행적을 비판하며 정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1] 이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차 안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학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1] 이후 고려대학교 측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다시 강연을 요청하여 특강이 이루어졌다.[1]
2. 4. 노무현 정부
2005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 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이건희의 편법 상속, 노동자 탄압 등을 비판하며 학위 수여 저지 투쟁을 벌였다. 이는 삼성그룹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위로, 외부에는 총학생회의 주도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문과대 학생회와 다함께라는 노동운동 단체 소속 학생들이 주도했다.[2]
2. 5. 이명박 정부
2008년 이명박 정부 당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비운동권 학생회였다. 하지만 비운동권은 사회 참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시각과 달리,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반대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하였다.
2. 6. 박근혜 정부
2013년 10월 30일, 고려대학교 46대 총학생회는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총학생회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며, 박근혜 정부와 여당이 사건을 덮는 데 급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46대 총학생회는 사법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청와대의 수사 외압 중단 등을 요구했다.[3]
3. '비운동권' 총학생회의 등장
3. 1. 등장 배경
2002년, '비운동권'을 표방한 총학생회가 등장했지만, 보수적인 성향으로 인해 진정한 비운동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2004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여 학생들이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2005년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등, 학생운동 성향 총학생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었다.[1]
2006년 4월 고려대 학생 출교 논란은 학생운동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고대공감대'를 중심으로 한 비운동권 학생들은 2007년, 2008년 총학생회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1]
3. 2. 차이점
'고대공감대' 총학생회(2007~2008)는 기존 학생운동 진영과 차별화되는 한편, 2002년의 보수주의 세력과도 거리를 두었다. 2007년과 2008년, 2년 동안 고대공감대는 등록금 투쟁을 전면에 내세웠고, 실제로 2008년 등록금 동결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또한 2008년 총학생회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하여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이 체포되기도 하였다.[4]
이들은 학내 복지 사업에도 집중했다. 기업 후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은 축제 등 다양한 학내 행사를 꾸몄으며, 사소하지만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복지 공약을 내걸었다. 대표적인 실현 공약으로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 제작, 자취 주거 정보 '안암골 택리지' 발간, 고대생 멤버십 카드 발급[5], 하나은행 ATM 수수료 무료화[6] 등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학내 복지에 집중하면서 기존 학생 복지를 담당하던 학생복지위원회와 잦은 충돌이 있었고, 학생 사회의 당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4. 총학생회 선거 논란
2010년 제43대 총학생회 선거에는 '함께, 멀리', 'Movin, Movin!', '희망충전', '2010소통시대' (추천인 순) 네 선거운동본부(선본)가 출마했다. 선거 초기에는 큰 논란이 없었으나, 선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운영 미숙, 네거티브 공방, 후보 협박 논란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논란은 43대 총학생회 선거 논란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4. 1. 43대 총학생회 선거 논란 (2010년)
2010년 고려대학교 43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운영 미숙, 네거티브 공방, 후보 협박 논란 등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7][8][9][15]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모바일 투표 예산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다.[7] 당초 모바일 투표는 투표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으나,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행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더 저렴한 업체가 있었고, 선거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었다. 결국 모바일 투표는 시행되었지만, 부족한 예산은 다음 총학생회 예산에서 제하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늦잠으로 인해 선거 유세가 무산되는 일도 발생했다.[8]
선거 과정에서는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와 같은 네거티브 공방이 벌어졌다.[9] 특히, 언론 보도를 통해 '룸살롱 대접'과 같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논란이 커졌다.[11] 전병헌 민주당 국회의원의 딸이 후보로 출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개입 논란도 있었다.[13]
'소통시대' 선본이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학생 사찰 의혹이 제기되었다.[14] 이들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학생들의 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마지막 날에는 '소통시대' 선본원이 '함께 멀리' 부후보에게 협박을 가했다는 논란이 발생했다.[15]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양측 선본 모두에게 경고 및 주의 조치를 내렸다.[17]
4. 1. 1. 중앙선관위원회의 운영 미숙
당초 모바일 투표는 41대 ~ 42대 총학생회 선거 당시 실시되어 투표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정태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모바일 투표 비용이 950만원이라 예산이 부족하여 진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후 더 싼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있었다는 점과 선거 예산으로 남았어야 할 예산이 없었다는 점이 밝혀져 논란이 재점화되었다.[7] 결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의를 통해 모바일 투표를 시행하고, 부족한 예산은 다음 대의 총학생회 예산에서 제하기로 결정되었다.한편 경고 조치를 받아 사과문을 작성하여 검사 후 부착해야 했던 함께 멀리는 검사를 받으러 총학생회실에 갔으나, 정태호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문을 잠근 채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에 따라 당초 예정되었던 노벨 광장에서의 합동 유세가 무산되었다. 이는 함께 멀리 측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과하고 사과 대자보를 붙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후 이러한 논란 때문에 법대 측 선거관리위원이었던 박경선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탄핵을 발의하였으나, 찬성 2, 반대 4, 기권 7로 부결되었다.[8]
4. 1. 2. 네거티브 논란
선거 중반부에 '함께멀리' 선본 부후보가 공대 학생회 선거 뒤풀이에서 공대 선관위에 양주를 제공하려 했다는 음해성 글이 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라왔다.[9] 이용자들은 이러한 '네거티브'성 게시글을 비판했으나, '미스터킴'이라는 사용자가 관련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커졌다.[9]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당시 동석했던 공대 선관위원 중 한 명이 댓글로 해명하면서 루머는 가라앉는 듯했다.[10]하지만 이후 연합뉴스 황 모 기자가 사실 무근의 '룸살롱 대접' 등의 내용이 담긴 기사를 작성하면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11] 고려대 커뮤니티 등에서 기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11] 해당 선본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정보도를 요청했다.[12]
'소통시대' 선본의 정후보가 전병헌 민주당 국회의원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아일보가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13] 지만원 등도 비판적인 글을 올렸으나, 해당 선본은 반박문을 발표했다.[13]
두 선본에 대해 지속적으로 네거티브성 비판을 가하던 특정 닉네임들은 선거 이후 커뮤니티 활동이 없는 상태이다.
4. 1. 3. 소통시대 사찰 사건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소통시대'가 운영하는 강의평가사이트를 통해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열람하고 공유한 사실이 드러나 학생 사찰 의혹이 제기되었다.[14] 이들은 고파스에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글을 올린 학생들의 학번, 이름 등 개인 정보를 열람한 뒤, 이를 내부 커뮤니티에서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임시전학대회에서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징계 안건이 상정되었다.탄핵 투표는 최종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 탄핵 총투표에는 약 5천 명의 학생이 참가했으며, 소통시대는 당선 당시 2341표를 득표했었다.
4. 1. 4. 후보 협박 논란
투표 마지막 날이었던 12월 4일, 당시 경영대 투표 장소에 있던 '함께 멀리' 부후보에게 41대 총학생회장이자 '소통시대' 선본원이었던 정수환이 협박을 가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15] 이에 대해 정수환은 '오해다. 선거 막바지였기 때문에 친한 사이라 격려차 방문하였다.'라고 해명하였다.[16] '함께 멀리' 측에서 탄원서가 제출되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하여 중선관위 회의가 열렸고, 12시간을 넘는 회의 끝에 '소통시대'에는 경고 1회, '함께 멀리' 선본에 대해서는 주의 1회 조치의 결정이 내려졌다.[17]4. 2. 47대 총학생회 선거 부정선거 논란 (2013년)
2013년 11월 2일, 전년도 선거에서 '고대공감대' 선거운동본부장 신강산이 '고대공감대' 선본의 부정선거를 폭로했다.[1] 이로 인해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은 2013년 11월 5일 고려대학교를 자퇴하였으며, 45대와 46대 총학생회장은 47대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의 부정선거에 연루되어 학생회에서 제명되었다.[1] 고려대학교 학생중앙운영위원회는 47대 선거를 무효로 결정하고, 2014년 11월에 치러지는 선거를 47대 선거로 다시 치르기로 했다.[1] 그 결과, '지음' 선본이 당선되어 47대 총학생회가 되었다.[1]5. 총학생회 소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대에서 시작되어, 전통적으로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전대협과 한총련 등에서 활동하며 많은 학생운동가를 배출하였다.[1]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총학생회도 있었다.[1] 고려대 총학생회는 민족해방(NL)계열과 민중민주(PD)계열 양측에서 학생운동 정파의 주축이었다.[1]
19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 1997년 IMF로 인한 취업난, 2000년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장으로 총학생회의 대외 정치활동은 줄었다.[2] 2007년과 2008년에는 연속으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됐다.[2] 2008년 비운동권 총학생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 등 사회 문제에 앞장섰지만, 2009년에는 다시 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됐다.[2]
5. 1. 총학생회 계보
선거 본부 명칭 | 총학생회장 | 부총학생회장 | 관련 단체 | 정치 성향 | |
1961년 1대 | style=text-align:left| | 유재홍(상과58) | |||
1962년 2대 | style=text-align:left| | 김유진(경제59) | |||
1963년 3대 | style=text-align:left| | 류재호(법학60) | |||
1964년 4대 | style=text-align:left| | 구자신(경제61) | |||
1965년 5대 | style=text-align:left| | 류우길(상과61) | |||
1966년 6대 | style=text-align:left| | 서상욱(정외63) | |||
1967년 7대 | style=text-align:left| | 조동세(상과64) | |||
1968년 8대 | style=text-align:left| | 이철식(물리65) | |||
1969년 9대 | style=text-align:left| | 조춘구(경제66) | |||
1970년 10대 | style=text-align:left| | 김용덕(사회67) | |||
1971년 11대 | style=text-align:left| | 서정규(경영68) | |||
1972년 12대 | style=text-align:left| | 김동규(축산69) | |||
1973년 13대 | style=text-align:left| | 박득순(법학70) | |||
1974년 14대 | style=text-align:left| | 정세균(법학71) | |||
1975년 15대 | style=text-align:left| | 이윤세(통계72) | |||
1980년 16대 | style=text-align:left| | 신계륜(행정73) | (신설) | ||
1984년 17대 | style=text-align:left| | 김영춘(영문81) | 허인회(정외82) | ||
1985년 18대 | style=text-align:left| | 허인회(정외82) | 이성봉(행정82) | ||
1986년 19대 | style=text-align:left| | 김윤태(사회83) | 문귀식(경제83) | ||
1987년 20대 | style=text-align:left| | 이인영(국문84) | 최훈(국교84)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족해방 |
1988년 21대 | style=text-align:left| | 오영식(법학85) | 여택수(사회85)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족해방 |
1989년 22대 | style=text-align:left| | 이영남(무역84) | 이보환(재료공86)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중민주 |
1990년 23대 | style=text-align:left| | 윤진호(산공86) | 안병일(사회87)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족해방 |
1991년 24대 | style=text-align:left| | 최홍재(신방87) | 이동은(농경제88)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족해방 |
1992년 25대 | style=text-align:left| | 허영(사회89) | 허화영(산자89) |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 민중민주 |
1993년 26대 | style=text-align:left| | 신창현(언어89) | 김종대(산자90)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1994년 27대 | style=text-align:left| | 정재관(정외91) | 정우성(전기공91)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중민주 |
1995년 28대 | style=text-align:left| | 정태흥(법학91) | 김성회(지환91)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1996년 29대 | 사람사랑 | 이종철(정외92) | 윤호준(식품공92)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1997년 30대 | 좌파, 젊은 당신의 실천 미학 | 지현찬(서문93) | 강신현(재료공93)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전국학생연대회의 | 민중민주 |
1998년 31대 | 직접행동 | 김지욱(경영91) | 이한별(영문93)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전국학생연대회의 | 민중민주 |
1999년 32대 | 고대맥박 | 이강헌(산공95) | 송범근(교육95)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2000년 33대 | 코뮤나로드 | 정동희(기공95) | 이길수(법학96) | 전국학생회협의회 | 민중민주 |
2001년 34대 | 다른 미래 | 김지은(법학96) | 정우성(국문97)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2002년 35대 | 최초를 꿈꾸는 사람들 | 손창일(법학95) | 팽성철(건축98) | 두레교회[18] | 보수주의 |
2003년 36대 | Promise with | 박재익(산공98) | 김성광(한사99)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전국학생연대회의 | 민족해방, 민중민주 연합 |
2004년 37대 | KU Together | 유지훈(국문00) | 박주은(국교01)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2005년 38대 | 강한나라 강한고대 | 유병문(산시정공02) | 안형진(법학02) |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 민족해방 |
2006년 39대[19] | 리얼리스트 | 이유미(독문02) | 이희태(정외03) | 전국학생행진 | 민중민주 |
2007년 40대 | 고대공감대 | 박상하(재료공04) | 박성민(경영00) | 없음 | 비운동권 |
2008년 41대 | 고대공감대 2008 | 정수환(전전전05) | 박종찬(식자경00) | 없음 | 비운동권 |
2009년 42대 | 젊은 고대, 깨어나다![20] | 정태호(행정05) | 박재균(물리05) | 한국대학생연합 | 민족해방 |
2010년 43대 | 2010소통시대[21] | 전지원(경제05) | 이송(전전전06) | 없음 | 비운동권[22] |
2011년 44대 | 후마니타스[23] | 조우리(사환시공06) | 유지영(정외06) | 한국대학생연합 | 민족해방 |
2012년 45대 | 고대공감대 | 박종찬(식자경00)[24] | 정연기(기계06) | 없음 | 비운동권 |
2013년 46대 | 고대공감대 | 황순영(정외10) | 배정호(생공07) | 없음 | 비운동권 |
없음 | 비운동권 | ||||
2015년 47대[26] | 지음 | 서재우(산경12) | 강민구(의학11) | 없음 | 비운동권 |
2016년 48대 | 별:자리 | 박세훈(자전13) | 안소현(수교13) | 없음 | 비운동권 |
2017년 49대 | 이음줄 | 이승준(심리11) | 김보혁(정외14) | 없음 | 비운동권 |
2018년 50대 | ABLE | 김태구(경영12) | 홍지수(보정관15) | 없음 | 비운동권 |
2019년 51대 | SYNERGY | 김가영(생과13) | 이진우(사회16) | 없음 | 비운동권 |
2020년 | 비상대책위원회 | ||||
2021년 | 비상대책위원회 |
- 2001년 34대 총학생회는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였다.
- 2002년 35대 총학생회는 최초의 비운동권 총학생회로 알려졌으나, 보수주의적 학생운동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40대, 41대 총학생회는 스스로를 여타 정치집단과 무관한 진정한 비운동권이라고 내세우고 있다.
- 2005년 38대 총학생회장은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연행되었다.
- 2008년 41대 부총학생회장은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의 운영자이며, UCAN의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45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정후보로 재출마해 당선되었다.
- 2009년 42대 총학생회장은 2011년 민노당 전국 학생위원장을 맡고 있다.
- 2010년 43대 총학생회장의 부친은 민주당 전병헌 국회의원으로, 당해 총학 정책 및 사업 추진이 민주당의 행보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2011년 44대 총학생회장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부결되어 무산되었다.
- 2009년 42대 부총학생회장은 44대 총학생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 2014년 47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은 2014년 47대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의 부정선거가 폭로된 이후 11월 5일 자퇴하였으며 선거 무효가 결정되었다.
- 45대와 46대 총학생회장은 2013년에 치러진 47대 총학생회장 선거 과정의 부정선거에 연루되어 학생회에서 제명되었다.
- 2015년 47대 총학생회는 부정선거 방지 학생자치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제도적인 개혁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앙운영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5. 2. 총학생회의 정치활동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대로 시작되었듯, 전통적으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전대협과 한총련 등의 활동을 주도하며 많은 학생운동가들을 배출하였다.[1]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에는 민주노동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은 총학생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1] 이처럼 고려대 총학생회는 민족해방(NL)계열과 민중민주(PD)계열 양측에서 학생운동 정파의 주축을 이루어 왔다.[1]그러나 1996년 한총련의 연세대 사태, 1997년 IMF로 인한 취업난, 2000년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등장으로 총학생회의 대외 정치활동은 크게 줄어들었다.[2] 2007년, 2008년에는 연속으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됐다.[2] 2008년 당선된 비운동권 총학생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과 같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앞장섰지만, 2009년에는 다시 운동권 총학생회가 당선됐다.[2]
5. 3. 총학생회장단 선거 절차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단 선거는 매년 11월경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와 세종캠퍼스에서 각각 실시된다.[1]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는 선거본부를 구성하여 총학생회장-부총학생회장이 한 팀을 이룬다.[2]투표 기간은 3일이며, 재학생의 33% 이상이 투표해야 총학생회장단이 결정된다.[3] 투표율이 33%에 미치지 못할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단과대학 대표자들 간의 협의를 통해 연장투표를 할 수 있다.[4] 그러나 연장투표에서도 투표율이 33%를 넘지 못하거나 총오차가 5% 이상일 경우, 다음 해 3월에 총학생회 재선거를 실시한다.[5]
선거관리위원회는 회칙에 따라 전대 총학생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전대 단과대학 학생회장들이 위원을 맡아 활동한다.[6]
참조
[1]
뉴스
고대신문 기사
http://www.kukey.com[...]
고대신문
2005-05-0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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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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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2005-05-09
[3]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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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스
고대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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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5]
뉴스
프로메테우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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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2008-09-25
[6]
뉴스
고대신문 기사
http://www.kukey.com[...]
고대신문
[7]
뉴스
논란 되고 있는 모바일 투표 업체
http://www.koreapas.[...]
KUBS
2009-11-27
[8]
뉴스
중선관위 긴급회의, 정태호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해임안 부결돼
http://www.koreapas.[...]
KUBS
2009-11-26
[9]
게시판
박세인 후보 양주사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합니다.
http://www.koreapas.[...]
고파스
2009-11-27
[10]
뉴스
《함께멀리》 박세인 부후보 '양주 사건'에 대한 입장 밝혀
http://www.koreapas.[...]
고파스
2009-11-27
[11]
게시판
여러분 또 익게가 뉴스를 탔네요
http://www.koreapas.[...]
고파스
2009-11-30
[12]
게시판
기사드립에 대해서 함께멀리 대응글 올라왔네요
http://www.koreapas.[...]
고파스
2009-11-30
[13]
웹사이트
지만원씨의 글과 동아일보, ID RoyalMT의 글에 대한 '소통시대' 전지원 정후보의 입장
http://ku09.ohpy.com[...]
[14]
뉴스
고대총학,'학생사찰' 탄핵위기..회장은 현직의원딸
http://article.joins[...]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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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멀리>"협박 받았다" 공정한 선거 진행 어렵다며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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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TV
2009-12-04
[16]
뉴스
정수환 씨,'함께멀리 협박설은 사실 무근이다'
http://www.korea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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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2010 소통시대'와 '함께, 멀리' 선본의 징계결정에 관한 경위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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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8]
뉴스
35대 총학생회는 보수주의적 학생운동 세력이다.
http://www.dailian.c[...]
[19]
문서
39대 총학생회는 2005년 겨울에 총학생회 선거 무산에 따라, 2006년 봄에 실시한 재선거를 통해 구성되었다.
[20]
뉴스
고대신문 선거결과 기사
http://www.kukey.com[...]
고대신문
[21]
뉴스
KUBS 선거결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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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BS
[22]
문서
소통시대 선본의 부후보는 2009년 고대공감대 선본의 정후보였다. 또한, 41대 총학생회장이 소통시대 선본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가 대표로 참여했던 '우리 하나되어'의 부대표가 소통시대의 정후보이다.
[23]
뉴스
중선관위 당선공고
http://www.koreapas.[...]
[24]
웹인용
고대 총학생회장 선거 '고파스' 후보가 당선
https://www.hankooki[...]
2014-01-27
[25]
문서
부정선거에 연루되자 부총학생회장과 함께 2014년 11월 5일 자퇴. 선거 자체가 무효로 판단되어 2015년 총학생회가 47대 총학생회장이 됨
[26]
문서
47대 총학생회는 2014년 당시 47대 총학생회가 부정선거로 인한 무효처리됨에 따라, 2014년 겨울에 실시한 재선거를 통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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