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기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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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운기는 대한제국 시기 함경남도 문천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이다. 만주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청년 사회 운동, 교육 사업, 대종교 활동에 참여했으며, 1926년 대한독립군에 입대하여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고운기 (독립운동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공진원
원래 이름공진원(公震遠)
출생일1907년 3월 27일
국적대한민국
국가대한 임정
사망일1943년 4월 30일
출생지대한제국 함경남도 문천
사망지중화민국 광둥 성 광저우에서 병사
배우자가오닝롄(高寧蓮)
본관문천(文川)
별명호(號)는 학은(鶴隱)·흥원(興園)
중국어 이름은 가오 윈치(高雲起)
종교유교(성리학) → 대종교
직책
직책군무부 부장 비서실 예하 보좌관
장관조성환(임정 군무부 부장)
차관윤기섭(임정 군무부 차장 직무대행 서리)
임기1938년 6월 초순 ~ 1939년 1월 초순
정당
정당한국독립당
주석이동녕(대한 임정 국무령)
총리이동녕(대한 임정 국무령)
수상이동녕(대한 임정 국무회의 수상)
가족
부모부(父): 공척잠(公拓岑)
모(母): 결성 장씨 부인(結城 張氏 夫人)
자녀없음
형제자매4남 1녀 중 막내
군 경력
군 복무대한독립군
복무 기간1926년 3월 중순 ~ 1942년 11월 중순
계급예비역 대한독립군 준장
참전만주 사변
중일 전쟁
상훈
훈장1963년 6월 6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경력
경력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 의정원 의원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감찰위원
웹사이트
웹사이트유공 공적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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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고운기는 함경남도 문천군의 중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평안북도 벽동군(1908~1909), 창성군(1909~1910), 함경남도 원산부(1910~1911), 경기도 김포군(1911~1912) 등지에서 보냈다.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었을 때(만 3세) 경술국치 사건을 겪었다.

1912년 1월 초순(만 4세)에 가족과 함께 경기도 김포를 떠나 중화민국 둥베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지린지린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청년 사회 운동, 교육 사업, 대종교 활동을 하였다.

1926년 대한독립군에 입대하였고 1928년 결혼하였으며, 이후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 펑톈 성 펑톈을 떠나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로 옮겨 대한독립군 간부 등으로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1936년 대한독립군 간부로서 중화민국 네이멍구 지역에 파견되어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7년 중화민국 난징으로 복귀하여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감찰위원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도 활동하였다.

2.1. 유년 시절과 초기 활동

함경남도 문천군의 중농가에서 아버지 공척잠과 어머니 결성 장씨 부인의 4남 1녀 중 넷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평안북도 벽동군(1908~1909), 창성군(1909~1910), 함경남도 원산부(1910~1911), 경기도 김포군(1911~1912) 등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평안북도 창성군에 있었을 때(만 3세) 경술국치 사건을 겪었다.

1912년 1월 초순(만 4세)에 가족과 함께 경기도 김포를 떠나 중화민국 둥베이 지역으로 이주하여, 지린지린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청년 사회 운동, 교육 사업, 대종교 활동을 하였다.

2.2. 독립운동 투신

1926년 대한독립군에 입대하였고 1928년 결혼하였으며, 이후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만주 사변 이후 만주국 펑톈 성 펑톈을 떠나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로 옮겨 대한독립군 간부 등으로 항일 운동에 투신하였다.

2.3.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1936년 대한독립군 간부로서 중화민국 네이멍구 지역에 파견되어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7년 중화민국 난징으로 복귀하여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감찰위원을 역임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으로도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