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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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일제강점기)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경기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1925년부터 1944년까지의 인구 통계와 1944년의 인구 구성, 행정 구역, 역대 도지사, 사법, 형무소, 경찰, 세무, 임정, 전매, 기상, 의료, 교육, 군사, 교통, 광산, 신사, 기업, 미디어, 출신 유명인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한다. 이 시기 경기도는 일본인과 조선인, 기타 민족으로 구성되었으며, 철도, 도로, 항만 등의 교통 시설이 건설되었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수탈 정책으로 인해 광산 개발과 기업 활동이 이루어졌고, 신사 참배 강요 등 민족 말살 정책이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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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의 지배 아래 놓인 전라북도 지역으로, 조선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일본인이 소수를 이루었으며, 부, 군, 면으로 구성된 행정 구역과 전주지방법원, 전주형무소 등의 사법 및 치안 기관, 그리고 전주지방전매국, 군산세무서 등의 경제 기관이 설치되어 농업, 광업, 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활동과 철도, 도로, 항만을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하고 일본어 신문과 라디오 방송국이 운영되었으며,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전주신사를 비롯한 여러 신사가 설치되었다. - 일제강점기의 도 - 경상남도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경상남도는 인구가 증가하고 농림수산업, 광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으며, 철도와 항만이 주요 교통 시설로 이용되었고, 부산, 마산 등지에 신사가 있었으며, 조선방송협회 방송국이 운영되었다.
2. 인구
1944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조선인이 2,886,724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일본어일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은 197,929명, 기타 민족은 7,581명이었다.[1] 1936년에는 일본인 인구가 153,723명이었다.
2. 1. 1944년 인구 구성
1944년에 실시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인구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1]3. 행정 구역
1945년 당시 경기도는 3부 20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0개의 군(郡)과 각 군에 속한 읍(邑)·면(面)은 다음과 같다.
3. 1. 부 (府)
1945년 당시 경기도에는 3개의 부(府)가 있었다.경성부에는 8개의 구(區)가 있었다.
3. 2. 군 (郡)
각 군(郡)의 읍(邑)과 면(面)은 다음과 같다.
- 고양 (高陽): 고양시 (). 현재의 고양시, 마포구, 은평구
- 광주 (廣州): 광주 (). 현재의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강동구
- 양주 (楊州): 양주시 (). 현재의 양주시, 동두천시, 의정부시, 구리시, 남양주시,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광진구
- 연천 (漣川): 연천군 ().
- 포천 (抱川): 포천시 ().
- 가평 (加平): 가평군 ().
- 양평 (楊平): 양평군 ().
- 여주 (驪州): 여주시 ().
- 이천 (利川): 이천시 ().
- 용인 (龍仁): 용인시 ().
- 안성 (安城): 안성시 ().
- 평택 (平澤): 평택시 ().
- 수원 (水原): 수원시 (). 현재의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 시흥 (始興): 시흥군 (). 현재의 시흥시, 광명시, 안산시,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과천시, 동작구, 관악구, 구로구, 금천구
- 부천 (富川): 부천시 (). 현재의 부천시, 부평구, 남동구, 연수구 인천광역시, 구로구
- 김포 (金浦): 김포시 (). 현재의 김포시, 계양구, 서구 인천광역시, 양천구, 강서구
- 강화 (江華): 강화군 ().
- 파주 (坡州): 파주시 ().
- 장단 (長湍): 장단군 ().
- 개풍 (開豊): 개풍군 (). 현재의 개성시.
4. 역대 도지사
1945년 광복 이후에는 한국인 도지사가 임명되었다.
5. 사법
경성복심법원
경성지방법원
경성지방법원 개성지청, 수원지청, 인천지청
6. 형무소
1941년 당시 경기도에는 경성형무소, 서대문형무소, 인천소년형무소, 개성소년형무소가 있었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강점기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곳으로, 한국 독립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로 여겨진다.
7. 경찰
일제강점기 초기에는 헌병경찰제도에 따라 헌병이 경찰 업무를 담당했다. 1910년 12월, 한국 주차 헌병사령부 산하에 경성헌병대를 설치하고, 경기도 지역에 헌병분대를 배치하였다.[1]
1915년 당시 경기도 지역 헌병 부대는 다음과 같다.
1919년 3.1 운동 이후에는 헌병경찰제도에서 보통경찰제도로 바뀌었지만, 일제 경찰은 여전히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민족 문화를 말살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3.1 운동 당시 경기도 지역에서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27년 당시 경기도 지역 경찰서는 다음과 같다.
8. 세무
일제는 이러한 세무 기관들을 통해 조선에서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 갔으며, 이는 조선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켰다.
9. 임정
10. 전매
11. 기상
1942년 당시 조선총독부 기상대와 경성출장소가 있었다.
12. 의료
13. 교육
일제강점기 경기도에는 고등 교육기관과 중등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이들 교육기관은 조선인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3. 1. 고등 교육기관
- 관공립 (해방 이후 모두 서울대학교로 통합되었다.)
- * 경성제국대학
- * 경성 의학 전문학교
- * 경성 법학 전문학교
- * 경성 치과 의학 전문학교
- * 경성 공업 전문학교 (구 경성 고등공업학교)
- * 경성 광산 전문학교
- * 수원 농림 전문학교 (구 수원 고등농림학교)
- * 경성 경제 전문학교 (구 경성고등상업학교)
- * 경성 사범학교
- * 경성 여자사범학교
- * 경성 약학 전문학교
- 사립
- * 보성전문학교 → 경성척식경제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고려대학교
- * 연희전문학교 →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연세대학교
- * 세브란스 연합 의과 전문학교 → 욱 의학 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 * 이화여자전문학교 → 경성여자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이화여자대학교
- * 명륜전문학교 (조선 시대의 관학 '''성균관''') → 대한민국의 성균관대학교
- * 중앙불교전문학교 → 혜화전문학교 (1944년 폐지) → 대한민국의 동국대학교
- * 숙명여자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숙명여자대학교
- * 중앙여자전문학교 → 대한민국의 중앙대학교
13. 2. 중등 교육기관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중등 교육 학교 목록14. 군사
1936년 당시 경기도에는 다음과 같은 일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1]
- 조선군 사령부 (경성부 용산)
- 조선 헌병대 사령부 (경성부 용산)
- 보병 제78연대 (경성부 용산)
- 보병 제40여단 (경성부 용산)
- 보병 제79연대 (경성부 용산)
- 기병 제28연대 (경성부 용산)
- 야포병 제26연대 (경성부 용산)
- 공병 제20연대 (경성부 용산)
이는 일본이 식민 통치를 강화하고 조선인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15. 교통
일제강점기 경기도의 교통은 크게 철도, 도로, 항만으로 나눌 수 있다. 철도와 도로는 현재 한국 교통 체계의 근간이 되었으며, 인천항은 개항 이후 주요 항구로 성장했다.
15. 1. 철도
1945년 당시 경기도에는 경부선, 경인선, 경의선, 경원선, 경경선, 용산선 등 여러 철도 노선이 있었다. 이 노선들은 현재 한국 철도 체계의 근간이 되었다.[1]조선철도 경동선(이후 수려선, 수인선이 됨), 조선경남철도 경기선, 경춘선과 같은 사설 철도도 있었다.[1]
이 철도들은 일제가 자원을 수탈하고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1]
15. 2. 도로
1927년 당시 경기도 내 1등 및 2등 도로는 다음과 같았다.
이 도로들은 현재 대한민국 도로망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15. 3. 항만
인천항은 개항 이후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마포항, 교동항 등이 주요 항구였다.16. 광산
직산 금광은 일제강점기 조선 경기도에서 활발하게 채굴이 이루어진 주요 금광 중 하나였다. 일제는 조선의 광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광산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직산 금광 역시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다.
17. 신사
일제강점기 경기도에는 조선신궁, 경성신사, 인천신사, 경성호국신사, 개성신사, 수원신사, 가토신사 등이 있었다.
일제는 신사 참배를 강요했는데, 이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한국인의 민족 종교와 전통을 훼손하고 황국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었다.
18. 기업
1940년 당시 경기도에 본사를 둔 자본금 50만 원 이상 기업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들 기업의 활동은 대부분 일본 자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경제의 종속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1]
19. 미디어
일제강점기 경기도에는 조선방송협회 경성중앙방송국(호출 부호: JODK)과 개성보조방송소, 경성일보, 중선신보, 朝鮮新聞|조선신문일본어, 경성신문 등 여러 일본어 신문들이 있었다. 라디오 방송은 일제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고, 일본어 신문들은 일제의 검열을 받아 조선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1]
19. 1. 라디오 방송국
조선방송협회 경성중앙방송국(호출 부호: JODK)과 개성보조방송소가 있었다. 이 방송들은 일제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었다.[1]19. 2. 일본어 신문
경성일보[1], 중선신보, 朝鮮新聞|조선신문일본어, 경성신문은 일제의 검열 하에 놓여 조선인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20. 출신 유명인
- 김두한 (협객, 대한민국 국회의원)
- 이봉창 (독립운동가)
- 최승희 (무용가)
- 홍사익 (평민 출신 조선인으로 유일한 일본 제국 육군 중장)
- 백남운 (북한의 정치가)
- 박세영 (시인)
- 안재홍 (저널리스트)
- 최남선 (학자, 문학가)
- 이능화 (학자)
- 여운형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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