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배희
1. 개요
곽배희는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 운동가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을 역임하며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 권리 향상에 기여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CBS 라디오 PD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이태영을 만나 여성 문제에 눈을 뜨고 활동을 시작했으며, 호주제를 비판하며 헌법재판소에서 최후 변론을 맡기도 했다. 대통령상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으며, 저서로는 《위기에 선 가족》 등이 있다.
| 이름 | 곽배희 |
|---|---|
| 원어명 | 郭培姬 |
| 로마자 표기 | Gwak Bae-hui |
| 출생일 | 1946년 1월 20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인권운동가 |
| 경력 |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
| 종교 | 미상 |
| 배우자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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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회학자 -
강준만
강준만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한 대한민국의 대학교수이자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다. -
대한민국의 사회학자 -
이정옥 (사회학자)
이정옥은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와 사회과학연구소장, 사회과학대학장을 역임하고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사회학자이자 정무직 공무원으로, 여성가족부 장관과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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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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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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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에서 1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나 딸과 아들에 대해 차별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외할아버지는 전북 남원의 만석꾼이었고, 아버지는 일본 명치대학 출신으로 공직에 종사하다가 친척의 좌익 활동으로 퇴직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어머니는 두 딸 중 장녀로서 완벽하고 정확한 성격이었고 곽배희는 어머니의 이런 성격을 닮았다. 어머니는 남녀차별을 받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여성이기에 유산을 받지 못하는 사회제도적 한을 겪었고, 곽배희가 중학교 2학년 때 사망하였다. 연합뉴스 사장을 역임하기도 한 김종철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다. 1969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법대 학장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만든 변호사 이태영이었다.
대학생 시절 4년 내내 학점을 'A+' 받은 지독한 공부벌레였고, 학생운동에 나선 친구들을 보며 '자기만 능력있으면 되지 뭐하러 나설까'라고 생각하며 집에서 책 읽고 음악만 들었으며,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고 왜 이런 곳에 찾아올까'라고 의아해 하던 개인주의자였다. 하지만 이태영을 통해 삶의 큰 전환을 맞았고 이에 대해 "이태영 선생을 만나 여성문제는 물론 한국사회 문제에 눈 뜨고 평생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야말로 번개나 벼락을 맞은 충격이었지요. 그 분의 열정과 헌신을 곁에서 지켜보고 상담소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저도 사람이 되어갔습니다"라는 고백을 하였다.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 C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다가 이태영의 권유로 19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였고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권리 향상에 기여하였다. 곽배희는 호주제를 가정과 사회 질서를 남성중심으로 편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인 제도로 규정하였다. 2000년 2월 29일에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하였고, 이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으로서 가정 내의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대내적으로 혹은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004년 12월 9일, 호주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과 관련하여 호주제 위헌론자를 대표해서 헌법재판소에서 최후 변론을 맡기도 하였다.
이혼숙려제도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곽배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서울가정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KBS 이사 등으로 일했다.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곽배희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2006년에는 제2회 [http://www.ysfolc.org/b_01.html 영산법률문화상] 을, 2011년에는 제21회 호암상(사회봉사상 부문) 등을 수상하였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2. 이태영과의 만남과 변화
곽배희는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에서 1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딸과 아들에 대한 차별이 없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다. 외할아버지는 전북 남원의 만석꾼이었고, 아버지는 일본 명치대학 출신으로 공직에 종사하다가 친척의 좌익 활동으로 퇴직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어머니는 두 딸 중 장녀로서 완벽하고 정확한 성격이었고 곽배희는 어머니의 이런 성격을 닮았다. 어머니는 남녀차별을 받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여성이기에 유산을 받지 못하는 사회제도적 한을 겪었고, 곽배희가 중학교 2학년 때 사망하였다. 1969년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법대 학장이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만든 변호사 이태영이었다.
대학생 시절 4년 내내 학점을 'A+' 받은 지독한 공부벌레였고, 학생운동에 나선 친구들을 보며 '자기만 능력있으면 되지 뭐하러 나설까'라고 생각하며 집에서 책 읽고 음악만 들었으며,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고 왜 이런 곳에 찾아올까'라고 의아해 하던 개인주의자였다. 하지만 이태영을 통해 여성문제는 물론 한국사회 문제에 눈 뜨고 평생 할 일을 찾았다고 하며, "번개나 벼락을 맞은 충격"이었다고 고백했다. 이태영의 열정과 헌신을 곁에서 지켜보고 상담소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절절한 사연을 들으며 사람이 되어갔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 C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다가 이태영의 권유로 19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였다.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권리 향상에 기여하였다. 곽배희는 호주제를 가정과 사회 질서를 남성중심으로 편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인 제도로 규정하였다. 2000년 2월 29일에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하였다.
2.3. 한국가정법률상담소 활동
곽배희는 19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며 이혼숙려제도 도입, 호주제 폐지 등 여성 권리 향상에 기여하였다. 곽배희는 호주제를 가정과 사회 질서를 남성 중심으로 편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인 제도로 규정하였다. 2000년 2월 29일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한 후 가정 내 민주화를 위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2004년 12월 9일 호주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과 관련, 호주제 위헌론자를 대표해 헌법재판소에서 최후 변론을 맡기도 하였다.
이혼숙려제도에 대해 곽배희는 "충분히 검토해서 이혼을 하기는 하는데 피해 없이 제대로 자기 권리를 찾고 하라는 뜻"이라며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가정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KBS 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인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곽배희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2006년 제2회 [http://www.ysfolc.org/b_01.html 영산법률문화상] 을, 2011년 제21회 호암상(사회봉사상 부문) 등을 수상하였다.
2.4. 호주제 폐지 운동
곽배희는 호주제를 가정과 사회 질서를 남성 중심으로 편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하며 비인간적인 제도로 규정하였다. 1973년부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며 이혼숙려제도 도입과 더불어 호주제 폐지 등 여성 권리 향상에 기여하였다. 2000년 2월 29일에는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하여 가정 내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2004년 12월 9일에는 호주제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과 관련하여 호주제 위헌론자를 대표해 헌법재판소에서 최후 변론을 맡기도 하였다.
3. 주요 활동 및 업적
3.1. 이혼숙려제도 도입 노력
3.2. 사회 활동
CBS 라디오 PD를 역임하였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을 거쳐 2000년부터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여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KBS 이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가정법원 및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5. 경력
CBS 라디오 PD를 역임했다. 1973년부터 1995년까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을 거쳐, 2000년부터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을 맡고 있다. 여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KBS 이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가정법원 및 국가인권위원회 조정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6. 저서
wikitext
*《위기에 선 가족》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
*《결혼에 갇힌 여자들》. 친구미디어.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