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갈문왕
1. 개요
구도 갈문왕은 신라의 인물로, 172년 파진찬에 임명되었으며, 185년 좌군주가 되어 소문국을 정벌했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도 했으나 와산 전투에서 패배하여 부곡성주로 좌천되었다. 사후 갈문왕으로 추봉되었으며, 미추 이사금, 말구 등과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있다. 김욱보 또는 김욱부의 아들이며, 이칠 갈문왕의 딸인 술례부인을 부인으로 두었다. 옥모부인의 아버지이기도 하며, 그의 외손자들은 조분 이사금과 첨해 이사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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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문왕 -
김용수 (신라)
김용수는 신라의 왕족으로 진지왕의 아들이자 진평왕의 사위이며 태종무열왕의 아버지이고, 645년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했으며, 654년 아들 춘추가 왕위에 오르자 문흥갈문왕으로 추존되었다. -
갈문왕 -
입종 갈문왕
입종 갈문왕은 신라 지증왕의 아들이자 법흥왕의 동생이며 진흥왕의 아버지로, 사부지로도 불렸고 울진 봉평리 신라비와 울주 천전리 각석을 통해 그의 행적이 일부 확인된다. -
신라의 군인 -
문무왕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국왕으로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불교 장려 등의 정책을 통해 신라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군주이다. -
신라의 군인 -
김시득
김시득은 신라의 장군으로, 기벌포 해전에서 당나라 수군을 상대로 22번 승리하여 당군 격퇴에 공을 세웠으며, 김유신의 서자인 김군승과 동일 인물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관등 차이 등으로 인해 동일 인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
육군 군인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육군 군인 -
샤를 드골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끌고 전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프랑스 해방과 재건에 기여했으나, 독단적인 성격과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2. 생애
구도 갈문왕은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 파진찬에 임명되었고, 벌휴 이사금 때 좌군주(左軍主)가 되어 소문국을 정벌했다. 벌휴 이사금 때 백제의 침공을 막아냈으나, 와산(蛙山) 전투에서 패배하여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됐다. 사후 미추 이사금 때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
아들이라 기록된 미추나 말구와는 활동 연대가 100년이나 차이가 나서 실제 아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2.2. 백제와의 전투
188년 2월(벌휴 이사금 5년), 백제가 모산성을 침공하자 이를 막아냈다. 189년 7월(벌휴 이사금 6년), 백제가 다시 침공해오자 구양(拘壤)에서 싸워 승리했다. 190년 8월(벌휴 이사금 7년), 백제군에게 속아 와산(蛙山) 전투에서 패배하여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2.3. 사후
사후 263년 2월(미추 이사금 2년) 갈문왕으로 추봉되었다.
아들이라고 기록된 미추나 말구와는 활동 연대가 100년이나 차이가 나서 실제 아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3. 가계
구도 갈문왕의 가계는 신라 왕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는 각간 김욱보(金郁輔) 또는 김욱부(金郁部)이며, 부인은 이칠 갈문왕(伊柒葛文王)의 딸인 술례부인(述禮夫人)이다.
구도 갈문왕의 딸은 옥모부인 김씨(玉帽夫人 金氏)이며, 사위는 석골정(昔骨正)이다. 외손자는 조분 이사금과 첨해 이사금이다. 아들로는 미추 이사금(味鄒泥師今)과 말구(末仇)가 있다.
3.1. 가계에 대한 의문점
미추 이사금이나 말구와 활동 연대가 100년 이상 차이가 나므로, 실제 아들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