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하시가
1. 개요
구라하시가는 1612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손인 구라하시 야스요시가 분가하여 시작된 가문이다. 대대로 음양도를 가업으로 삼았으며, 에도 시대에는 150석의 영지를 소유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에 편입되어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1920년 작위를 반납했다. 현재는 데릴사위 제도를 통해 가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현 당주는 구라하시 스미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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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
도쿄부
도쿄부는 1868년 에도에서 개칭된 도쿄에 설치된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에도 시가지에서 현재의 도쿄도와 거의 같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1943년 도쿄도제가 시행되면서 도쿄도로 개편되었다. -
일본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공가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공가 -
공경
공경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하여 일본 궁중 관리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율령 체제에서 대신들을 포함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 제도가 창설되면서 폐지되었다. -
공가 가문 -
다카쓰카사가
다카쓰카사가는 가마쿠라 시대에 창설되어 모란 문양을 사용했으며, 센고쿠 시대에 단절되었다가 재건되었고,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쇼군가의 오토다이도코로를 배출했으며, 메이지 시대에 공작 작위를 받은 일본의 귀족 가문이다. -
공가 가문 -
사이온지가
후지와라노 킨자네의 아들 사이온지 미치스에를 시조로 하는 사이온지 가는 막부와의 소통, 황실과의 혼인, 비파 제작 가문으로서의 명맥 유지, 그리고 사이온지 긴모치의 메이지 유신 공헌과 내각총리대신 역임 등을 통해 일본 역사 속에서 영향력을 이어온 귀족 가문이다.
2. 역사
게이초 17년(1612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손인 음양두(종삼위, 비참의) 쓰치미카도 히사나가의 차남 야스요시가 분가하여 '구라하시'(倉橋)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구라하시 가문이 시작되었다. 구라하시라는 가문 명칭은 먼 조상인 아베노 우치노마로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민부쿄 야스요시 이후, 대대로 음양도를 가업으로 삼았으며, 에도 시대의 고쿠다카는 150석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10대 당주 야스아키 시대에 화족에 편입되었고, 1884년 7월 8일 야스테루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12월, 야스마사의 후계가 미성년 딸 미사코뿐이었기 때문에 작위를 반납했다.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통해 구라하시 가문을 유지하고 있다.
가문의 문장은 쓰치미카도가를 본떠 "아게보쵸 (호랑나비)"이며, 보리사는 "진여당"이다. 에도 시대 때의 거처는 "사카이초미카도가이"였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남계 혈맥은 우다 겐지 아야노코지가의 아들로 구라하시 가문의 양자가 된 아리요시 (1738년 ~ 1784년) 대에 단절되었다. 구라하시 가문의 현재 당주 구라하시 스미노부는 센고쿠 시대 아베씨 적류 당주 쓰치미카도 아리나가부터 세어 4차례 여계를 거친 14대손에 해당한다.
2.1. 가문의 기원
게이초 17년(1612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손인 음양두 (종삼위, 비참의) 쓰치미카도 히사나가의 차남 야스요시가 분가하여 '구라하시'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구라하시 가문이 시작되었다.
구라하시라는 가문의 명칭은 먼 조상인 아베노 우치노마로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2. 에도 시대
게이초 17년 (1612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손인 음양두 (종3위 비참의) 쓰치미카도 히사나가의 차남 야스요시가 분가하여 구라하시(倉橋)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구라하시 가문이 시작되었다. 구라하시는 먼 선조 아베노 우치노마로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민부쿄 야스요시 이후, 대대로 음양도를 가업으로 삼았다. 에도 시대의 고쿠다카는 150석이었다. 10대 당주 민부쿄 야스아키 때 메이지로 바뀌며 화족에 올랐고, 야스테루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12월, 야스마사의 후계가 미성년 딸 미사코뿐이었기 때문에 작위를 반납했다.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거쳐 구라하시 가문으로 현존하고 있다.
가문의 문장은 쓰치미카도가를 본떠 "아게보쵸 (호랑나비)"이며, 보리사는 "진여당"이다. 에도 시대 때의 거처는 "사카이초미카도가이"였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남계 혈맥은 우다 겐지 아야노코지가의 아들로 구라하시 가문의 양자가 된 아리요시 (1738년 ~ 1784년) 대에 단절되었다. 구라하시 가문의 현재 당주 구라하시 스미노부는 센고쿠 시대 아베씨 적류 당주 쓰치미카도 아리나가부터 세어 4차례 여계를 거친 14대손에 해당한다.
2.3.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10대 당주 야스아키 시대에 화족에 편입되었고, 1884년 7월 8일 야스테루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12월, 야스마사의 후계가 미성년 딸 미사코뿐이었기 때문에 작위를 반납했다.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통해 구라하시 가문을 유지하고 있다.
3. 역대 당주
구라하시 가문의 역대 당주는 다음과 같다.
| 대수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1 | 다이키치 | 1599년 - 1670년 | 종2위 |
| 2 | 야스후사(야스즈미) | 1639년 - 1673년 | 종4위하 |
| 3 | 야스사다 | 1668년 - 1748년 | 종2위 |
| 4 | 야스아키 | 1687년 - 1753년 | 종2위 |
| 5 | 야스타카 | 1715년 - 1749년 | 종3위 |
| 6 | 에이큐 | 1736년 - 1751년 | 종5위하, 양자, 오하라 에이아쓰의 아들 |
| 7 | 아리요시 | 1738년 - 1784년 | 종3위, 양자, 아야노코지 도시무네의 아들 |
| 8 | 구라하시 야스에이 | 1758년 - 1806년 | 정2위 |
| 9 | 야스유키 | 1779년 - 1858년 | 정2위 |
| 10 | 야스토시 | 1815년 - 1881년 | 정3위 |
| 11 | 야스아키 | 1835년 - 1910년 | 종3위, 자작 |
| 12 | 야스키요 | 1853년 - 1898년 | |
| 13 | 야스마사 | 1876년 - 1919년 | 자작 |
| 14 | (구라하시 미사코) | 1903년 - ? |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령에 따라 구라하시 가문은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야스마사 사후 작위는 반납되었다. 그의 종형인 야스타카의 후손들이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 대수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 - | 야스타카 | 1874년 - 1947년 | 분가 |
| - | 구라하시 마사요시 | - 1950년 | |
| - | 노부타다 | 1906년 - 1984년 | |
| - | 구라하시 스미노부 | 1936년 - | |
| - | (구라하시 테루유키) | 1972년 - |
3.1. 주요 당주
게이초 17년 (1612년), 아베노 세이메이의 후예인 음양두 (종3위 비참의) 쓰치미카도 히사나가의 차남 야스요시가 분가하여 구라하시(倉橋)를 칭한 것이 구라하시가의 시작이었다.
초대 민부쿄 야스요시 이후, 대대로 음양도를 가업으로 하였다. 에도 시대의 고쿠다카는 150석이었지만, 10대 당주 민부쿄 야스아키 때 메이지 시대로 바뀌며 화족에 올랐고, 야스테루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12월, 야스마사의 후계가 미성년 딸 미사코만 남았기 때문에 작위를 반납했다.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거치긴 했지만 구라하시가로써 현존하고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남계 혈맥은 우다 겐지 아야노코지가의 아들로 구라하시가의 양자가 된 아리요시 (1738년 ~ 1784년) 대에 단절되었다. 구라하시가의 현재 당주 구라하시 스미노부는 센고쿠 시대의 아베씨 적류 당주 쓰치미카도 아리나가부터 세어 4차례 여계를 거친 14대손에 해당한다.
3.2. 현재 당주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거치긴 했지만 구라하시 가문으로써 현존하고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남계 혈맥은 우다 겐지 아야노코지가의 아들로 구라하시 가문의 양자가 된 아리요시 (寛保일본어 3년 (1738년) ~ 天明일본어 4년 (1784년)) 대에 단절되었다. 현재 구라하시 가문의 당주 구라하시 스미노부는 센고쿠 시대 아베씨 적류 당주 쓰치미카도 아리나가부터 세어 4차례 여계를 거친 14대손에 해당한다.
4. 가계도
| 범례 | |
|---|---|
5. 문화적 특징
구라하시 가문은 먼 선조 아베노 우치노마로의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대 민부쿄 야스요시 이후, 대대로 음양도를 가업으로 삼았다. 에도 시대의 고쿠다카는 150석이었으나, 메이지 시대로 바뀌며 10대 당주 민부쿄 야스아키 때 화족에 올랐고, 야스테루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20년 12월, 야스마사의 후계가 미성년 딸 미사코만 남아 작위를 반납했다. 야스마사의 사촌형인 야스타카는 작위를 잇지 않았지만, 그 후손들이 데릴사위 상속을 거쳐 구라하시 가문으로 현존하고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남계 혈맥은 우다 겐지 아야노코지가의 아들로 구라하시 가문의 양자가 된 아리요시(1738년 ~ 1784년) 대에 단절되었다. 현재 구라하시 가문의 당주 구라하시 스미노부는 센고쿠 시대 아베씨 적류 당주 쓰치미카도 아리나가부터 세어 4차례 여계를 거친 14대손에 해당한다.
5.1. 가문의 문장
쓰치미카도가를 본뜬 "아게보쵸 (호랑나비)"를 사용했다.
6. 한국과의 관계
(원문 소스가 제공되지 않아 주어진 요약에 기반하여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원문 소스가 제공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