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노코지가
1. 개요
아야노코지는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1269년 ~ 1324년)를 시조로 하는 일본의 씨족이다. 가문의 최고 관직은 곤다이나곤이었으며, 가가쿠, 특히 요곡, 와곤, 고토, 피리 등에 대한 지식을 전수하며 가가쿠의 사범 가문으로 조정에 봉사했다. 센고쿠 시대에 일시적으로 단절되었다가 게이초 18년(1613년)에 재흥되었고,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화족에 편입되어 자작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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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
도쿄부
도쿄부는 1868년 에도에서 개칭된 도쿄에 설치된 일본의 행정 구역으로, 에도 시가지에서 현재의 도쿄도와 거의 같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으며, 1943년 도쿄도제가 시행되면서 도쿄도로 개편되었다. -
일본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공가 가문 -
다카쓰카사가
다카쓰카사가는 가마쿠라 시대에 창설되어 모란 문양을 사용했으며, 센고쿠 시대에 단절되었다가 재건되었고, 에도 시대에 도쿠가와 쇼군가의 오토다이도코로를 배출했으며, 메이지 시대에 공작 작위를 받은 일본의 귀족 가문이다. -
공가 가문 -
사이온지가
후지와라노 킨자네의 아들 사이온지 미치스에를 시조로 하는 사이온지 가는 막부와의 소통, 황실과의 혼인, 비파 제작 가문으로서의 명맥 유지, 그리고 사이온지 긴모치의 메이지 유신 공헌과 내각총리대신 역임 등을 통해 일본 역사 속에서 영향력을 이어온 귀족 가문이다. -
공가 -
판적봉환
판적봉환은 1868년부터 1871년까지 일본에서 시행된 제도로, 봉건적 막번 체제를 개혁하고 중앙집권화를 강화하기 위해 각 번의 토지와 백성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
공가 -
공경
공경은 고대 중국에서 유래하여 일본 궁중 관리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율령 체제에서 대신들을 포함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화족 제도가 창설되면서 폐지되었다.
2. 역사
좌대신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 (정2위 곤츄나곤. 1269년 - 1324년)를 선조로 한다. 형은 니와타가의 선조인 니와타 츠네스케 (정2위 곤츄나곤, 친아버지는 후지와라노 킨나오, 1241년 - 몰년 미상)이다.
당초에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은 곤츄나곤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아야노코지 토시카즈 (정2위 곤츄나곤. 1451년 - 1518년) 이후, 일시 단절되었다. 게이초 18년 (1613년)에 이츠츠지가에서 아야노코지 타카아리 (정3위 참의, 1595년 - 1644년)이 들어와 가명이 재흥되었다. 그리고 아야노코지 토시무네 (1690년 - 1770년) 이후에는 곤다이나곤을 최고위관직으로 하였다.
가가쿠 가운데 요곡이나 와곤, 고토, 피리에 대한 지식은 니와타가가 아닌 아야노코지가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가가쿠의 사범가로 조정을 섬기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가록은 200석이었다.국립역사민속박물관의 『구고구령취조장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막말기의 아야노코지령은, 야마시로국오토쿠니군 가미쿠세 촌 중 7석 4두 3말, 야마시로국 오토쿠니군 니시토카와 촌 중 100석, 야마시로국 오토쿠니군 테라도 촌 중 92석 5두 7말이며, 합계 3촌·200석. 메이지 시대 후에는 아리카즈가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2.1. 가문의 기원과 초기 역사
미나모토노 마사자네의 후손인 아야노코지 노부아리(1269년 - 1324년)를 시조로 한다. 형은 니와타가의 선조인 니와타 츠네스케(1241년 - 몰년 미상)이다.
당초에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은 곤츄나곤이었다. 센고쿠 시대의 아야노코지 토시카즈(1451년 - 1518년) 이후 가문이 일시 단절되었다가, 게이초 18년(1613년) 이츠츠지가에서 아야노코지 타카아리(1595년 - 1644년)가 들어와 가문을 재흥시켰다. 아야노코지 토시무네(1690년 - 1770년) 이후에는 곤다이나곤을 최고위관직으로 하였다.
가가쿠 가운데 요곡이나 와곤, 고토, 피리에 대한 지식은 니와타가가 아닌 아야노코지가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가가쿠의 사범가로 조정을 섬기게 되었다.
에도 시대의 가록은 200석이었다. 메이지 시대 후에는 아리카즈가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2.2. 센고쿠 시대와 가문의 단절
2.3. 에도 시대와 가문의 재흥
2.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아야노코지 가문은 화족에 편입되었다. 1884년 7월 7일 화족령 시행으로 화족이 오작제가 되면서, 7월 8일에 아리요시가 자작 작위를 받았다. 아리요시는 궁내성에 근무하며 시종, 아악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양자인 아야노코지 마모루는 15은행 근무를 거쳐 귀족원 자작 의원에 당선되어 연구회에 소속되었다. 아야노코지 자작가 저택은 도쿄시 시부야구 하타가야에 있었다.
3. 가가쿠
4. 계보
아야노코지 가문의 계보는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여러 분가와 양자 관계를 포함한다.
실선은 부자관계, 점선(세로)는 양자관계
; 실선은 친자, 점선(세로)는 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