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노세 유키히코
1. 개요
구스노세 유키히코는 일본 제국의 군인으로, 육군 대신을 역임했다. 도사 번 출신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후 육군 내에서 다양한 보직을 거쳤다. 특히 1895년 명성황후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러일 전쟁에 참전하고 대만총독부 참모, 가라후토 청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13년 육군 대신에 취임했으나, 이듬해 사임하고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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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구스노세 유키히코 |
|---|---|
| 원어 이름 | 楠瀬 幸彦 |
| 원어 이름 (언어) | 일본어 |
| 출생일 | 1858년 4월 20일 |
| 출생지 | 고치현, 일본 |
| 사망일 | 1927년 3월 20일 |
| 소속 | |
|---|---|
| 복무 기간 | 1880년–1917년 |
| 최종 계급 | |
| 주요 지휘 | 일본 제국 육군 제12사단, 일본 제국 육군 제2군, 일본 제국 육군 제4군, 만주군 |
| 참전 전투 | 러일 전쟁 |
| 직책 | 제11대 육군대신 |
|---|---|
| 군주 | 다이쇼 |
| 임기 시작 | 1913년 6월 24일 |
| 임기 종료 | 1914년 4월 16일 |
| 이전 | 기코시 야스쓰나 |
| 이후 | 오카 이치노스케 |
| 이후 활동 | 육군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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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체류 일본인 -
요사노 뎃칸
일본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요사노 뎃칸은 와카 개혁과 낭만주의 운동을 이끌고 문예 잡지 '묘조'를 창간하여 수많은 젊은 시인들을 발굴, 육성했으며, 진보적인 여성 시인 요사노 아키코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의 가집 『미다레가미』 제작을 프로듀스하며 일본 낭만주의 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조선 체류 일본인 -
아다치 겐조
아다치 겐조는 조선에서 언론 활동을 하다 일본으로 돌아와 중의원 의원 14선, 체신대신, 내무대신을 역임한 일본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만주사변 이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
막말 도사번 사람 -
존 만지로
존 만지로는 14세에 조난당해 미국에서 10년간 생활하며 서양 문물을 습득하고 일본의 개국과 근대화에 기여한 일본 고치현 출신의 어부이다. -
막말 도사번 사람 -
이타가키 다이스케
이타가키 다이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가이자 자유민권 운동가로, 자유당을 창당하여 일본 입헌정치 발전에 기여했으며, 자유민권운동을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을 보였으나 제국주의적 팽창과의 연관성 등 비판도 있다. -
일본의 육군대신 -
도조 히데키
도조 히데키는 일본 제국 육군의 군인으로 육군 대신, 참모총장,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진주만 공격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고, 전범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
일본의 육군대신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2. 생애
도사 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도쿄 카이난 사숙, 육군유년학교를 거쳐, 1880년 12월, 육군사관학교(구 3기)를 졸업했다.
프랑스 유학, 육사 교관, 근위 포병 연대 중대장, 참모본부 제1국원, 참모본부 부관, 러시아 공사관 부속 등을 역임했다.
1894년 11월, 임시 경성 공사관 부속(한국 정부 군부 고문)이 되어, 미우라 고로 공사 등과 함께, 1895년 10월 8일에 발생한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미사변)에 관여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입옥했으나, 1896년 1월 14일, 제5사관 군법회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대만총독부 참모, 서부도독부 참모장, 제12사단 참모장을 거쳐, 1901년 6월 26일, 육군 소장으로 진급。
쓰시마 경비대 사령관, 오사카 포병공창 이리를 역임.
러일 전쟁에서는, 제2군병참감으로 출정했다.
제4군 창설 시 포병부장이 되어, 봉천 회전에서는 만주군 중포대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유라 요새 사령관, 가라후토 수비대 사령관, 초대 가라후토청 장관 등을 거쳐, 1907년 11월, 육군 중장으로 진급, 제1사단 사령부 부속, 유라 요새 사령관, 기술 심사부 장을 역임했다.
1913년 6월, 제1차 야마모토 내각의 군부대신 현역무관제 개정 문제로 소동에 책임을 지고 사임한 키고시 야스츠나의 뒤를 이어, 초고속 인사이동으로 육군 대신에 취임했다.
다음 해 4월에 대신을 사임하고 대기 상태가 되었으며, 1915년 4월 16일에 휴직했다。
1917년 4월 16일에 예비역으로 편입되어, 현역에서 물러났다. 묘소는 다마 영원에 있다.
2.1. 을미사변 가담과 이후 행보
도사 번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구스노세 유키히코는 1880년 12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 후, 육군사관학교 교관, 참모본부 제1국원, 러시아 공사관원 등을 지냈다. 1894년 11월 임시 경성 공사관원 (조선의 군사 고문)이 된 그는 미우라 고로 공사 등과 함께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이 사건으로 1896년 1월까지 투옥되었으나, 제5사단 군법회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이후 구스노세는 타이완 총독부 참모, 서부도독부 참모장, 제12사단 참모장을 거쳐 1901년 6월 육군 소장으로 진급했다. 러일 전쟁 중에는 제2군 병참감, 제4군 포병부장, 봉천 전투에서는 만주군 중포대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유라 요새 사령관, 가라후토 수비대 사령관, 초대 가라후토 청 장관, 제1사단 사령부원, 기술심사부장을 거쳐 1913년 6월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개정 문제로 물러난 기고시 야스쓰나의 뒤를 이어 육군 대신으로 취임했다. 1914년 4월에 대신직을 사임했고, 1915년 4월 16일에 휴직했다。1917년 4월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
2.2. 러일 전쟁 이후와 육군 대신 취임
구스노세 유키히코는 러일 전쟁에서 제2군 병참감으로 참전했다. 제4군 창설 시 포병부장이 되었고, 봉천 전투에서는 만주군 중포대 사령관으로 참전했다.
전후에는 유라 요새 사령관, 가라후토 수비대 사령관, 초대 가라후토 청 장관, 제1사단 사령부원, 기술 심사부장을 역임했다.
1913년 6월, 군부대신 현역 무관제 개정 문제로 사임한 기고시 야스쓰나의 뒤를 이어 육군 대신으로 취임했다. 1914년 4월에 대신직을 사임했고, 1917년 4월 예비역으로 편입되어 현역에서 물러났다.
3. 평가
3.1. 한국과의 관계
4. 가족
와타나베 히사시 육군 소장의 딸인 구스노세 후쿠와 결혼하였다. 다섯째 아들인 구스노세 구마히코는 체신성 관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