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균
1. 개요
권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연산군 시대에 관직에 진출하여 동부승지, 도승지 등을 역임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공조판서, 형조판서,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신진사류의 공격으로 파직되기도 했으나, 기묘사화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했다. 권균은 연산군 시대부터 중종 시대에 걸쳐 훈구파로서 활약했으며, 기묘사화 당시 신진사류 제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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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년 출생 -
프랑스의 잔
프랑스의 잔은 프랑스의 공주이자 성녀로, 정치적 목적으로 루이 12세와 결혼했으나 이혼 후 수녀회를 설립했으며 사후 시성되었다. -
1464년 출생 -
고카시와바라 천황
고카시와바라 천황은 일본의 104대 천황으로, 오닌의 난 이후 재정난 속에서 즉위하여 22년 만에 즉위식을 올렸으며, 재정 부족에도 조선과의 관계 개선과 백성을 위한 마음을 проявлял. -
1526년 사망 -
러요시 2세
러요시 2세는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국왕로, 1516년 즉위 후 불안정한 통치를 하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전사하여 헝가리가 오스만 제국에 영토를 빼앗기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
1526년 사망 -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
후안 세바스티안 엘카노는 스페인 바스크인 탐험가로, 마젤란 탐험대의 반란에 가담했으나 용서받고 마젤란 사후 빅토리아호를 이끌어 세계 최초로 지구를 일주하는 데 성공했으며, 카를 5세로부터 문장을 받았으나 그의 업적은 오랫동안 마젤란에 가려져 역사적 평가와 재조명의 대상이 되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1452년 (문종 2년)에 태어났으나, 자세한 가계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연산군의 신임을 받다가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2등 공신이 되었으며, 기묘사화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하였다.
2.1. 관직 진출과 초기 경력
1486년(연산군)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수찬이 되고, 검토관을 겸하며 실록 편찬에 착수했다. 이후 사간원 정언으로 승진했으며, 정언, 지평을 거쳐 시강관과 시독관을 겸하다가 부응교로 승진했다.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를 거쳐 연산군의 신임을 얻어 시강원 보덕을 겸한 뒤 동부승지로 당상관에 임명되었다.
2.2. 중종반정과 공신 책봉
연산군의 신임을 받던 권균은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하여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과 함께 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중종을 옹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로로 권균은 정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반정 이후 권균은 공조판서, 의정부좌참찬 등을 역임하며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다. 경기도관찰사로 나가 민정을 다스리기도 했으며, 형조판서 재직 시에는 내의원제조를 겸임했다. 이후 의정부좌찬성,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예조판서에 오르고 특진관을 겸임하는 등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2.3. 주요 관직 역임
1486년(성종 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권균은 연산군과 중종 대에 걸쳐 다양한 요직을 역임했다. 연산군 대에는 사간원 정언, 사헌부 장령, 홍문관 응교 등을 거치며 왕의 신임을 얻었고, 동부승지, 우부승지, 도승지 등 승정원의 주요 관직을 역임했다.
중종반정 이후에는 공조판서를 시작으로 의정부좌참찬을 거쳐 경기도 관찰사로 나가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이후 형조판서를 맡아 내의원 제조를 겸임하였고, 의정부좌찬성, 판의금부사를 역임하고 장악원 제조를 겸하였다. 이후 평안도 관찰사로 잠시 외직을 맡기도 하였으나, 곧 예조판서로 임명되어 특진관을 겸하였다.
권균은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병조판서 등 육조의 주요 판서직을 두루 거쳤다. 신진사류와의 갈등으로 잠시 물러나기도 했으나, 기묘사화 이후 복직하여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까지 올랐다.
권균이 역임한 주요 관직은 다음과 같다.
2.4. 신진사류와의 갈등과 기묘사화
연산군 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권균은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2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 이조판서 등 요직을 거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러나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신진사류는 권균을 비롯한 훈구 세력을 비판하며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권균은 신진사류의 공격으로 잠시 물러났으나, 기묘사화를 계기로 조광조 등 신진사류가 제거되자 좌찬성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우의정까지 승진하여 권력을 강화하였다.
기묘사화는 권균을 비롯한 훈구 세력이 신진사류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조광조 등 많은 신진사류가 희생되었으며, 조선의 정치는 훈구 세력 중심으로 회귀하였다. 권균은 기묘사화를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신진사류 제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