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1. 개요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는 20세기 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미국의 야구 선수이다. 1887년 네브래스카 주에서 태어난 알렉산더는 191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데뷔하여 1930년까지 컵스, 카디널스를 거치며 통산 373승을 기록했다. 1915년 필리스를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1926년에는 카디널스 소속으로 월드 시리즈에서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알렉산더는 3번의 투수 삼관왕, 6번의 다승왕, 6번의 탈삼진왕을 차지했으며, 1938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50년 사망했으며, 200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등번호 대신 팀 로고 "P"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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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 |
|---|---|
| 출생일 | 1887년 2월 26일 |
| 출생지 | 네브래스카주 엘바 |
| 사망일 | 1950년 11월 4일 |
| 사망지 | 네브래스카주 세인트폴 |
| 신장 | 185 cm |
| 체중 | 83.9 kg |
| 포지션 | 투수 |
| 투구/타석 | 우투/우타 |
| 프로 입단 년도 | 비공개 |
| 첫 출장 | MLB / 1911년 4월 15일 |
| 마지막 출장 | MLB / 1930년 5월 28일 |
| 소속 구단 | 필라델피아 필리스 (1911–1917) 시카고 컵스 (1918–192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6–1929) 필라델피아 필리스 (1930) |
|---|
| 월드 시리즈 우승 | 1926년 |
|---|---|
| 트리플 크라운 | 3회 (1915년, 1916년, 1920년) |
| 내셔널 리그 다승 1위 | 6회 (1911년, 1914–1917년, 1920년) |
| 내셔널 리그 평균자책점 1위 | 4회 (1915년, 1916년, 1919년, 1920년) |
| 내셔널 리그 탈삼진 1위 | 6회 (1912년, 1914–1917년, 1920년) |
| 승패 기록 | 373–208 |
|---|---|
| 평균 자책점 | 2.56 |
| 탈삼진 | 2,198 |
| 헌액 | 1938년 |
|---|---|
| 득표율 | 80.9% (3차 투표) |
| 선출 방법 | BBWAA |
| 은퇴 번호 | 필라델피아 필리스 |
|---|---|
| 필라델피아 야구 명예의 전당 | 필라델피아 필리스 명예의 전당 |
| 시카고 컵스 명예의 전당 | 시카고 컵스 명예의 전당 |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다코타 허드슨
다코타 허드슨은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 출신의 미국 프로 야구 투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쳐 현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소속이며, 97마일의 싱커를 던지는 땅볼 유도형 투수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호세 카페얀
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300 승 클럽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300 승 클럽 -
그레그 매덕스
그레그 매덕스는 뛰어난 제구력과 지략적인 투구로 '정밀 기계'라 불리며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18시즌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55승을 거둔 전직 투수로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톰 글래빈
톰 글래빈은 메이저리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투구와 타격 능력으로 다승왕, 실버 슬러거 상 등을 수상하고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300승을 달성한 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좌완 투수이다. -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그레그 매덕스
그레그 매덕스는 뛰어난 제구력과 지략적인 투구로 '정밀 기계'라 불리며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18시즌 연속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355승을 거둔 전직 투수로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 초기 생애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첫 임기가 시작된 해 네브래스카주 엘바에서 13명의 자식들 중 하나로 태어났다. 20세의 나이로 1907년 한 달에 50USD를 받는 프로 계약을 맺었다. 1909년 일리노이-미주리 리그 클래스 D의 게일즈버그 부스터스에서 15승 8패를 기록했다. 주루 도중 던져진 공에 맞아 선수 경력이 끝날 뻔했으나, 1910년 회복하여 뉴욕 주립 리그 클래스 B의 시러큐스 스타스에서 29승 11패를 기록한 후 750USD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팔렸다.
3. 메이저 리그 경력
알렉산더는 191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데뷔하여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1915년에는 필리스를 창단 첫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1916년에는 한 시즌 16 완봉승이라는 MLB 기록을 세웠다.
알렉산더는 신인 시절 28승(24선발승)을 거두었는데, 24선발승은 1900년 이후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순수신인 최다 선발승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일본에서 1939년 노구치 지로(25선발승), 1946년 시라키 기이치로(28선발승), 1961년 곤도 히로시(28선발승)에 의해 갱신되었다. 한국에서는 2006년 류현진이 기록한 18선발승이 최고 기록이다.
1917년 시즌 후 필리스는 알렉산더를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육군으로 징집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필리스의 소유주 윌리엄 베이커는 후에 돈이 필요했음을 인정했다. 알렉산더는 징병되어 1918년 시즌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복무했다. 그는 독일군의 겨자 가스에 노출되고 폭탄 폭발로 인해 부분적인 청력 손실과 간질을 얻게 되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알렉산더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간질 발작으로 고통받았고, 이는 그의 음주 문제를 악화시켰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더는 시카고 컵스에서 몇 차례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1920년에는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과 간질이 심해지면서 컵스는 1926년 시즌 중반에 그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했다.
카디널스에서 알렉산더는 1926년 월드 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7차전 7회 2사 만루 상황에서 토니 라제리를 삼진으로 잡아낸 장면은 월드 시리즈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1927년 카디널스에서 마지막 20승 시즌을 기록한 후, 알렉산더의 선수 생활은 음주 문제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1930년 필리스로 잠시 복귀했지만, 결국 메이저 리그에서 은퇴했다.
알렉산더의 주요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 기록 | 내용 |
|---|---|
| 투수 삼관왕]] || 3회 (1915년, 1916년, 1920년) (역대 1위 타이기록) | |
| 최다승]] || 6회 (1911년, 1914년, 1915년, 1916년, 1917년, 1920년) (역대 2위 타이기록) | |
| 최우수 방어율]] || 4회, 1915년(1.22), 1916년(1.55), 1919년(1.72), 1920년(1.91) | |
| 최다 탈삼진]] || 6회 (1912년, 1914년, 1915년, 1916년, 1917년, 1920년) | |
| 리그 우승 | 3회 (1915년, 1926년, 1928년) |
| MLB 올센추리 팀에 노미네이트 | (1999년) |
| 통산 완봉승 | 내셔널 리그 기록: 90 |
| 시즌 완봉승 | 16 (1916년, 메이저 리그 기록) |
| 시즌 최다 완봉 | 7회 ※역대 최다 타이기록, 3년 연속 역시 역대 최장 타이기록 |
1915년 30선발승, 1916년 33선발승, 1917년 30선발승으로 1900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인 3년 연속 30선발승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들 중 1916년 거둔 33선발승은 1900년 이후 역대 내셔널리그 최다 선발승 기록으로 남아 있지만 1917년 본인(알렉산더)(30선발승)을 마지막으로 내셔널리그 30선발승 이상 투수는 대가 끊겼다.
3.1. 필라델피아 필리스 (1911-1917)
알렉산더는 1911년 프리 시즌 필라델피아 시티 시리즈(City Series)에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Athletics)를 상대로 5이닝 무안타 무실점 투구를 선보이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데뷔했다. 그는 4월 15일에 공식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그 해 필리스에는 알렉산더가 가장 좋아하는 배터리 파트너가 된 포수 빌 킬리퍼가 합류하여 250경기를 함께했다.
알렉산더는 신인 시절에 28승(현대 신인 기록), 31개의 완투, 367이닝 투구, 7개의 완봉으로 리그를 이끌었으며, 탈삼진 2위, 방어율 4위를 기록했다. 28승 중 24승이 선발승이었고 1900년 이후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순수신인 최다 선발승으로 남아 있지만 1939년 노구치 지로(25선발승) 1946년 시라키 기이치로(28선발승) 1961년 곤도 히로시 (28선발승)(이상 일본)에 의해 갱신됐는데 한국에서는 2006년 류현진의 18선발승이 최고 기록이다.
1912년부터 1921년까지 알렉산더는 최우수 방어율(MLB)에서 4번(1915~1916, 1919, 1920), 다승왕(MLB)에서 5번(1914~1917, 1920), 이닝에서 6번(1912, 1914~1917, 1920), 탈삼진왕(MLB)에서 6번(1912, 1914~1917, 1920), 완투에서 5번(1914~1917, 1920), 완봉에서 5번(1915, 1916 [단일 시즌 기록 16], 1917, 1919, 1921)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그는 1915년, 1916년, 1920년에 내셔널 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했으며, 때로는 1917년에도 수상한 것으로 간주된다.
1915년 그는 필리스를 구단 역사상 첫 번째 페넌트 우승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5번의 1안타 경기를 기록하고 유일한 메이저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그러면서 알렉산더는 알코올 문제를 겪기 시작했고, 이 문제는 그의 남은 인생 동안 그를 괴롭혔다. 1915년, 그는 필리스 소속으로 첫 월드 시리즈 경기(해당 시리즈의 개막전)에서 승리했다. 필리스가 또 다른 월드 시리즈 경기에서 승리하는 데는 65년이 걸렸다.
| 연도 | 소속팀 | | 선발 || 완투 || 완봉 ||승 || 패 || 세이브 || || 승률 || 타자 || 이닝 || 피안타 || 피홈런 || 볼넷 || || 사구 || 탈삼진 || 폭투 || 보크 || 실점 || 자책점 || 평균자책점 || WHIP | ||||||||||||||||||||||
|---|---|---|---|---|---|---|---|---|---|---|---|---|---|---|---|---|---|---|---|---|---|---|---|---|
| 1911 | PHI | 48 | 37 | 31 | 7 | 28 | 13 | 3 | -- | .683 | 1440 | 367.0 | 285 | 5 | 129 | -- | 8 | 227 | 4 | 1 | 133 | 105 | 2.57 | 1.13 |
| 1912 | 46 | 34 | 25 | 3 | 19 | 17 | 3 | -- | .528 | 1290 | 310.1 | 289 | 11 | 105 | -- | 6 | 195 | 5 | 0 | 133 | 97 | 2.81 | 1.27 | |
| 1913 | 47 | 36 | 23 | 9 | 22 | 8 | 2 | -- | .733 | 1234 | 306.1 | 288 | 9 | 75 | -- | 3 | 159 | 3 | 0 | 106 | 95 | 2.79 | 1.19 | |
| 1914 | 46 | 39 | 32 | 6 | 27 | 15 | 1 | -- | .643 | 1459 | 355.0 | 327 | 8 | 76 | -- | 11 | 214 | 1 | 0 | 133 | 94 | 2.38 | 1.14 | |
| 1915 | 49 | 42 | 36 | 12 | 31 | 10 | 3 | -- | .756 | 1435 | 376.1 | 253 | 3 | 64 | -- | 10 | 241 | 2 | 0 | 86 | 51 | 1.22 | 0.84 | |
| 1916 | 48 | 45 | 38 | 16 | 33 | 12 | 3 | -- | .733 | 1500 | 389.0 | 323 | 6 | 50 | -- | 10 | 167 | 3 | 0 | 90 | 67 | 1.55 | 0.96 | |
| 1917 | 45 | 44 | 34 | 8 | 30 | 13 | 0 | -- | .698 | 1529 | 388.0 | 336 | 4 | 56 | -- | 6 | 200 | 1 | 0 | 107 | 79 | 1.83 | 1.01 |
* 굵은 글씨는 해당 시즌 최고 기록
3.2. 시카고 컵스 (1918-1926)
1917년 시즌 후, 필리스는 알렉산더와 포수 빌 킬리퍼를 포수 피클스 딜호퍼, 투수 마이크 프렌더개스트, 그리고 55000USD에 컵스로 트레이드했다. 필리스 구단주 윌리엄 베이커는 나중에 "돈이 필요했다"라고 인정했다.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후, 알렉산더는 군대에 징집되었고, 출국 한 달 전인 1918년 5월 31일 캔자스주 맨해튼에서 법원 결혼식을 올렸다 (그 부부는 1929년에 이혼하고 1931년에 재결합했지만 1941년에 다시 이혼했다).
알렉산더는 1918년 시즌의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제342 야전 포병 연대, 제89 사단의 상사로 복무했다. 프랑스에서 복무하는 동안 그는 독일 겨자 가스에 노출되었고, 근처에서 포탄이 폭발하여 부분적인 청력 손실을 입었고 간질이 시작되었다. 알렉산더는 SS 로샹보를 타고 1919년 4월 미국으로 돌아왔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 알렉산더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고 간질 발작에 시달렸으며, 사람들은 종종 이를 술에 취한 징후로 오해했다. 이는 그의 음주 문제를 악화시켰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알렉산더는 시카고 컵스에서 몇몇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1920년에는 또다시 투수 트리플 크라운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그의 알코올 중독과 간질 증세는 심해졌고, 컵스는 1926년 시즌 중반에 그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했다. 당시 컵스의 감독이었던 조 매카시는 "컵스는 작년에 최하위였고, 올해도 최하위로 시즌을 끝낸다면 알렉산더 없이 끝낼 것이다."라고 트레이드 이유를 밝혔다.
3.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26-1929)
Grover Cleveland Alexander영어는 1926년 시즌 중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는 1926년 월드 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특히 7차전 7회 2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토니 라제리를 삼진으로 잡은 장면은 월드 시리즈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카디널스는 그 해 내셔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926년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와 맞붙었다. 알렉산더는 2차전과 6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두었다. 팀 동료 밥 오파렐은 그들의 영광의 시대에서 6차전 승리 후 알렉산더가 그날 밤 술에 취했고, 다음 날 7차전에 등판했을 때에도 그 여파가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선발 투수 제시 헤인스가 물집이 생기면서 3-2로 카디널스가 앞선 7회에 등판했고, 주자는 만루에 2아웃 상황이었다. 양키스의 강타자 토니 라제리를 상대한 알렉산더는 삼진으로 돌려세운 후, 2이닝 동안 양키스를 무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지켜 세인트루이스에 챔피언십을 안겨주었다. 7차전 마지막 아웃은 베이브 루스가 2루를 훔치려다 실패하면서 만들어졌다.
1927년 카디널스에서 마지막 20승 시즌을 가졌으나, 지속적인 음주 문제가 결국 그의 선수 경력에 영향을 미쳤다.
3.4. 필라델피아 필리스 복귀 및 은퇴 (1930)
Grover Cleveland Alexander영어는 1930년 친정팀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돌아왔으나,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9경기에 출장하여 3번 선발 등판했지만 승리 없이 3패, 21.2innings 동안 40피안타(5피홈런), 평균자책점 9.14를 기록했다. 결국 필리스에서 방출된 후 메이저 리그에서 은퇴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알렉산더는 종교 단체 야구 팀에서 투구하기도 했으며, 알코올 중독과 간질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1931년 이후에는 종교 단체 "House of David"의 야구 팀에서 던졌다.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에 알렉산더는 그로버 클리블랜드 알렉산더의 데이비드 하우스 팀의 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다. 이 팀은 J. L. 윌킨슨이 관리했으며, 종종 캔자스시티 모나크스와 경기를 치렀다. 알렉산더는 새첼 페이지, 존 도날드슨, 뉴트 조셉, 체트 브루어, 앤디 쿠퍼를 포함한 니그로 리그 스타들과 함께 경기를 뛰었다. 금주법이 폐지된 후, 알렉산더는 휴이 밀러와 함께 세인트루이스에서 선술집을 운영했다.
1950년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1950년 월드 시리즈 3차전을 관람했는데, 그곳에서 필리스가 양키스에게 패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1월 4일, 네브래스카주 세인트 폴에서 6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세인트 폴의 엘름우드 묘지에 묻혔다.
5. 주요 기록 및 업적
| 주요 기록 및 업적 |
|---|
6. 평가 및 영향
알렉산더는 20세기 초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373승은 크리스티 매슈슨과 함께 내셔널 리그 최다승 공동 1위이며, 통산 90개의 완봉승은 내셔널 리그 기록이다. 1915년부터 1917년까지 3년 연속 30선발승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1900년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특히 1916년에 거둔 33선발승은 1900년 이후 역대 내셔널리그 최다 선발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또한 통산 승수에서 역대 3위, 투구 이닝 10위(5190이닝), 완봉 2위, 피안타 8위(4868개)를 기록하고 있다.
1915년, 알렉산더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첫 월드 시리즈 경기(시리즈 개막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필리스가 다시 월드 시리즈 경기에서 승리하기까지는 65년이 걸렸다.
1999년, 스포팅 뉴스는 그를 '위대한 야구 선수 100인' 중 12위로 선정했으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후보에도 올랐다.
알렉산더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이 설립된 지 3년째인 1938년에 헌액되었다. 그는 그 해에 헌액된 유일한 선수였다.
알렉산더의 파란만장한 삶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52년, 그의 삶을 다룬 영화 "The Winning Team"이 제작되었으며, 로널드 레이건이 알렉산더 역을 맡았다. 야구 해설가 빌 제임스는 이 영화를 "대단하며 알렉산더의 일생의 이벤트들을 전기판으로 삭감한 리더스 다이제스트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1952년 북미 박스 오피스에서 약 1.7의 수익을 올렸다.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알렉산더가 등번호를 사용하기 전에 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 1915년 시즌 유니폼의 블록 글자 "P"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여 그의 업적을 기렸다.
알렉산더는 오그던 내시의 시 라인업 포 예스터데이에 처음 언급된 선수이기도 하다.
7. 기타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알렉산더가 등번호를 사용하기 전 시대에 선수로 활동했기 때문에, 2001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15년 당시 팀 로고였던 "P"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알렉산더 역을 맡은 전기 영화 《The Winning Team》이 제작되었으며, 이 영화는 1952년 북미 박스 오피스에서 약 1.7의 수익을 올렸다.
1999년, 알렉산더는 The Sporting News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100인 중 12위에 올랐으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센추리 팀 후보로 지명되었다.
오그던 내시의 시 라인업 포 예스터데이에 처음 언급된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