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말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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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말디인은 이탈리아 벤티밀리아 근처의 그리말디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시대 인골을 지칭한다. 19세기 말에 발견된 이 유물은 알베르 1세 (모나코 공)의 후원으로 발굴되었으며, 두개골의 특징과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한때 "흑인"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유골은 5만 년에서 3만 년 전의 무스테리아 홍수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오리냐크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유골의 복원 과정에서 얼굴 재구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초기 인류의 이동과 인종 분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전통적인 인종 분류는 폐기되었으며, 그리말디인은 해부학적 현생 인류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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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말디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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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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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장소 | 이탈리아 리구리아주 그리말디 동굴 |
시대 | 구석기 시대 말기 |
인종 | 크로마뇽인 |
특징 | 흑인의 특징이 나타남 |
의미 | 인류의 진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 |
상세 정보 | |
시대적 배경 | 구석기 시대 말기에 유럽에 나타난 크로마뇽인의 일종으로 추정 |
특징 | 두개골과 뼈의 형태에서 흑인의 특징이 나타남. 긴 팔과 다리, 넓적한 코, 튀어나온 턱 등이 특징 |
논란 | 그리말디인이 흑인의 조상인지, 아니면 단순히 크로마뇽인의 변종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음 일부 학자들은 그리말디인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인류의 초기 형태일 가능성을 제기 |
연구 가치 | 인류의 진화 과정과 인종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됨 |
같이 보기 | |
관련 인물 | 크로마뇽인 |
관련 용어 | 구석기 시대 인류 진화 인종 |
2. 그리말디 동굴의 발견과 초기 조사
19세기 말, 이탈리아 벤티밀리아 근처 "발치 로시"(붉은 절벽) 주변의 동굴과 암벽 그늘에서 석기 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2] 특히 "그로테 데이 판치울리"(어린이 동굴)에서는 소라 껍질 허리띠를 착용한 어린이 두 구와 석기, 여러 비너스상이 발견되어 주목받았다.[3]
알베르 1세의 후원으로 이 지역의 주요 동굴 7곳에 대한 고고학 탐사가 진행되었고, 이 동굴들은 그리말디 가의 이름을 따 "그리말디 동굴"로 명명되었다.[4] 발굴된 유물들은 모나코의 선사 인류학 박물관(Le Musée d'anthropologie préhistorique)에 전시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5] "바르마 그란데" 동굴에서 발견된 유적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25,000년 전 구석기 시대 유물로 밝혀졌다.[6]
2. 1. 주요 유물
19세기 말, 이탈리아 벤티밀리아 근처 "발치 로시"(붉은 절벽) 주변의 동굴과 암벽 그늘에서 매우 오래된 석기 시대 유물들이 여러 점 발견되었다.[2] 그중 가장 극적인 발견 중 하나는 "그로테 데이 판치울리"(어린이 동굴)에서 발견된 소라 껍질 허리띠를 착용한 어린이 두 구의 유골과 석기, 여러 비너스상이었다.[3] 19세기 말, 알베르 1세는 일곱 개의 가장 중요한 동굴에 대한 고고학 탐사를 후원했는데, 이 동굴들은 알베르 1세가 일원이었던 그리말디 가문을 기려 "그리말디 동굴"이라고 명명되었다.[4] 이 유물은 모나코의 ''르 뮈제 당트로폴로지 프레이스토리크''(선사 인류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5]
이 동굴에서는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다. "바르마 그란데" 동굴에서 나온 유적은 최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25,000년 전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는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6]
3. 그리말디인 유골의 발견
그로테 데이 판치울리 동굴 상층에서는 오리냐크 문화 유물과 순록 유해가, 하층에서는 메르크 코뿔소, 하마, 털매머드와 같이 보다 따뜻한 기후에 서식하는 동물군이 발견되었다.[4] 1901년 6월 사제 드 빌뇌브는 하부 오리냐크 문화 층에서 그리말디 골격을 발견했다. 이 골격들은 동굴 상층과 발치 로시 주변의 다른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 골격과는 뚜렷이 달랐으며, 왕자를 기리기 위해 "그리말디인"으로 명명되었다.
두 골격 중 하나는 50세 이상 여성, 다른 하나는 16~17세 청소년의 것이었다.[7] 골격은 보존 상태가 양호했지만, 약 8m 퇴적물의 무게로 두개골, 특히 얼굴뼈가 다소 찌그러졌다. 드 빌뇌브는 두개골의 돌출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지나,[8] 이후 노파의 돌출입은 병적인 상태 때문이었음이 밝혀졌다.[9]
3. 1. 네안데르탈인과의 관계
그로테 데이 판치울리 동굴 최하층에서는 네안데르탈인과 관련된 무스테리아 문화 도구가 발견되었다.[4] 이는 당시 인류의 다양성과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네안데르탈인 유골이 발견되지 않은 점과 비교하여, 동아시아와 유럽의 인류 진화 경로 차이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3. 2. 연대 측정
당시의 연대 측정 기술은 제한적이었지만, 그리말디인들은 구석기 시대 후기에 속한 것으로 여겨졌다.[10] 진정한 연대는 지층 분석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 그리말디인 유골 아래의 더 열대적인 동물상에서는 코뿔소, 하마, 코끼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현재로부터 5만 년에서 3만 년 전의 습윤기인 무스테리아 홍수기에 알려져 있다.[11] 오리냐크 문화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의 가장 최근 보정을 사용하여 47,000년에서 41,000년 전으로 추정된다.[12] 그리말디인 유골이 오리냐크 문화의 가장 아래층에 위치해 있으므로, 실제 연대는 더 이른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4. 그리말디인의 신체적 특징
그리말디인 유골은 이전에 유럽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매우 달랐다. 튼튼한 네안데르탈인과는 달리, 그리말디인 유골은 가늘고 섬세했으며, 심지어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 유골보다도 더 그러했다.[8] 그리말디인들은 키가 작았는데, 성인 크로마뇽인이 일반적으로 170cm 이상이었던 것에 비해 두 유골 모두 160cm를 넘지 않았다. 소년의 키는 155cm에 불과했다.[7]
두개골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에게서 나타나는 길고 낮은 두개골과는 달리, 비교적 높은 뇌실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넓은 콧구멍을 가지고 있었고, 크로마뇽인의 특징인 사각형 안와와 넓은 안색이 없었다.[13] 비골은 크로마뇽인과 현대 유럽인처럼 높은 콧등을 가지고 있었고, 이마의 전두골의 두 융기는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는 또 다른 유럽인의 특징이었다. 뇌 용량 또한 그들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컸다.
4. 1. "흑인" 유형 논쟁
그리말디인 유골은 이전에 유럽에서 발굴된 유물들과 매우 달랐다. 튼튼한 네안데르탈인과는 달리, 그리말디인 유골은 가늘고 섬세했으며, 심지어 같은 동굴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 유골보다도 더 그러했다.[8] 그리말디인들은 키가 작았다. 성인 크로마뇽인은 일반적으로 170cm 이상이었지만(덩치가 큰 남성은 190cm에 달할 수 있었다), 두 유골 모두 160cm를 넘지 않았다. 소년은 겨우 155cm로 가장 작았다.[7]두 개의 두개골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에게서도 약간 나타나는 길고 낮은 두개골과는 달리, 비교적 높은 뇌실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넓은 콧구멍을 가지고 있었고, 크로마뇽인의 특징인 사각형 안와와 넓은 안색이 없었다.[13] 이러한 특징들은 드 빌뇌브가 주걱턱으로 해석한 것과 결합되어, 발견자들은 그리말디인이 "흑인" 유형이라고 결론 내렸다.[8] 하지만 일부 특징은 그와 일치하지 않았다. 비골은 크로마뇽인과 현대 유럽인처럼 높은 콧등을 가지고 있었고, 더 열대 지역의 집단과는 매우 달랐다. 이마의 전두골의 두 융기는 하나의 중앙 융기를 형성하기보다는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는 또 다른 유럽인의 특징이었다. 뇌 용량 또한 그들의 크기에 비해 상당히 컸다.
5. 유골 복원 작업과 해석
그리말디인 유골은 덮고 있던 퇴적물의 무게로 인해 손상되어 복원이 필요했다. 특히 노부인의 경우, 모든 어금니를 잃은 후 상악골이 앞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 얼굴 하부가 돌출되었다.[14]
청소년의 치아는 온전했지만, 인류학자 M. 불과 R. 베르노는 두개골과 얼굴 재구성 과정에서 이를 조작했다. M. 불은 사랑니를 꺼내기 위해 위턱에 구멍을 냈는데, 이는 사랑니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치열을 재형성했을 것이기 때문에 얼굴 모습에 변화를 초래했다. 또한, 턱뼈에 맞추기에는 치아가 너무 많아 매우 돌출된 턱을 재구성했는데, 이는 여성의 턱을 염두에 둔 결과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청소년의 "전돌증" 진단은 추측에 불과하다.[14]
발견 당시 청소년은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여성은 엎드린 자세였다. 전시를 위해 유해를 옆으로 눕혔는데, 이는 원래 자세와 달리 의례 매장을 연상하게 했다.[15] 이러한 전시는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15]
베르노가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14] 그는 조작 행위를 기록했으며,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특징을 강조하려 했다.[9] 그는 발굴 사진을 찍어 출판했는데, 그 사진에서 여성이 엎드린 자세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진은 당시에는 매우 희귀했다.[9]
5. 1. 복원의 필요성
두개골은 덮고 있는 퇴적물의 무게로 인해 손상되었고, 특히 하악 부분에 대한 일부 복원이 필요했다. 그 노부인은 교정학에서 알려진 현상을 겪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어금니를 하악골에서 잃어버린 후, 상악골은 점차 앞으로 이동했고 얼굴의 하부가 더 돌출되었다.[14]5. 2. 얼굴 재구성 과정의 문제점
청소년의 치아는 모두 온전했지만, 인류학자 M. 불과 R. 베르노가 두개골과 얼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를 조작했다. M. 불은 안에 아직 남아있던 사랑니를 꺼내기 위해 상악골에 구멍을 냈다. 이는 사랑니의 자연스러운 성장이 치열을 자연스럽게 재형성했을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얼굴 모습을 변화시켰다. 턱뼈에 맞추기에는 치아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는 매우 돌출된 턱을 재구성했는데, 아마도 여성의 턱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의 "전돌증" 진단은 추측에 불과하다.[14]5. 3. 박물관 전시 방식의 변화
그리말디인 유해가 발견되었을 때, 청소년은 등을 대고 누워 있었고 여성은 엎드린 자세였다. 전시를 위해 준비하면서 자세가 변경되었다. 전안면증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 유해를 옆으로 눕혔는데, 이는 원래 자세와는 달리 의례 매장을 연상하게 했다.[15]이러한 전시 모습의 사진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15]
베르노가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은 분명 아니다.[14] 그는 조작 행위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기록했으며,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특징을 강조하려 했다.[9] 그의 정직성은 그가 또한 발굴 사진을 찍어 출판했다는 사실로 더욱 뒷받침되는데, 그 사진에서 여성이 엎드린 자세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9] 이러한 사진은 당시에는 매우 희귀했다.
6. 인종 분류의 역사와 논쟁
그리말디인 유골은 발견 초기부터 인종 분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초기에는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그리말디인을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19세기 말, 크로마뇽인이 발견되면서 현생 인류가 유럽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일부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프랑스를 인류의 요람으로 선언하려 했다.[16] 그리말디인의 두개골은 열대 아프리카와 유럽인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아서 키스는 그리말디인이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의 "중간 인종"일 수 있다고 보았다.[7] 그는 그리말디인이 북아프리카에서 육교를 통해 유럽으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브롤터 해협이나 알제리에서 시칠리아를 거치는 경로가 유력하게 거론되었다.[4]
셰이크 안타 디오프와 같은 아프리카 중심주의 학자들은 그리말디인이 "흑인"을 대표한다고 주장했다.[20][21] 디오프는 검은 피부, 돌출된 얼굴, 곱슬머리 등을 흑인의 기준으로 제시했다.[22]
1970년대 이후, 이스라엘의 카프제 동굴 등에서 새로운 유골들이 발견되면서 초기 인류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다. "크로마뇽인"이라는 용어는 "해부학적 현생 인류"로 대체되었고, 그리말디인 유골도 이 범주에 포함되었다.[16] 현대 유전학의 발전으로 전통적인 인종 분류는 학계에서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23][24]
6. 1. 유럽 중심주의적 해석
1868년 최초의 크로마뇽인 발견은 현생 인류가 유럽에서 기원했다는 생각을 낳았다. 당시 일부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프랑스를 인류의 요람이라고 선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16]그리말디 유골의 두개골 계측 특성은 열대 아프리카와 유럽의 특징과 유사성을 공유했다.[17][9][18] 아서 키스 경은 그리말디인이 아프리카인과 유럽인 사이의 "중간 인종"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7] 그는 그리말디인이 북아프리카에서 육교를 통해 유럽으로 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브롤터 해협과 알제리에서 시칠리아를 거치는 경로는 후기 구석기 시대에 건널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4] 다른 사람들은 그리말디인이 부시맨(코이산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4]
6. 2. 아프리카 중심주의적 해석
셰이크 안타 디오프는 그리말디인이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과는 다른 뚜렷한 "흑인"을 대표한다고 주장했으며, 1974년 저서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에서 이 분류를 주장했다.[20][21] 디오프는 "흑인을 특징짓기 위해 인류학자들이 설정한 기준, 즉 검은 피부, 얼굴 돌출, 곱슬머리, 콧날(얼굴 및 코 지표는 서로 다른 인류학자들에 의해 매우 임의적으로 선택됨), 흑인골격(상지 및 하지 비율)"을 옹호했다.[22] 그러나 현대 유전학의 출현으로 전통적인 인종 분류는 이제 학자들에 의해 폐기되었다.[23][24]6. 3. 크로마뇽인으로의 분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의 제벨 카프제에서 발견된 유골, 프랑스 남부의 콩브-카펠, 일본의 미나토가와 유적, 잠비아의 카브웨 해골, 그리고 여러 고(古)인디언들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초기 인류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확장되었다.[19] 그리말디 유골을 포함하여 아프리카 밖으로 확장되는 인류 집단을 포괄하기 위해, "크로마뇽인"이라는 오래된 용어는 "해부학적 현생 인류"로 대체되었다.[1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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