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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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에 윤지, 조상우 등 24명의 문신들이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계첩이다. 어용화사들이 참여하여 제작되었으며, 연회 장면과 기로신들의 초상화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 제325호, 국보 제334호, 보물 제638호로 지정되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기사계첩은 1719년(숙종 45년)에 당시 59세였던 숙종이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제작된 계첩이다.[1] 기로소는 조선 시대 정2품 이상의 문관 중 70세 이상인 신하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였으나, 임금의 경우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인 59세에 들어가는 것이 관례였다. 숙종의 기로소 입소를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으며, 이 행사의 전말과 참여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어진 제작 경험이 있는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동원되어 이 계첩이 만들어졌다.[1][2]
기사계첩은 원래 12부가 제작되어 1부는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행사에 참석한 11명의 기신(耆臣, 나이가 많은 신하)들이 나누어 가졌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국보 제325호), 홍완구 소장본(국보 제334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보물 제638호) 등 3부가 전해진다.
2. 제작 배경 및 경위
2. 1. 어용화사 참여
이 계첩 제작에는 어진 제작에 참여했던 김진여, 장태흥, 박동보, 장득만, 허숙 등 어용화사들이 동원되었다.[1] 이를 통해 당시 뛰어난 화가들이 기로도상 작업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2. 2. 제작 과정
이 계첩은 원래 12부가 제작되어 한 부는 기로소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행사에 참여한 11명의 기신들이 각각 나누어 가졌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3부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국보 제325호), 홍완구 소장본(국보 제334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본(보물 제638호)이 있다.
이 작업에는 김진여, 장태흥, 박동보, 장득만, 허숙 등 어진 제작에도 참여했던 뛰어난 화원들이 동원되었다.[1]
계첩은 좌참찬 임방의 서문, 숙종의 어제, 대제학 김유의 발문, 어첩 봉안에 참여한 관원들의 명단, 다섯 개의 연회 장면 그림, 행사에 참여한 기신 11명의 좌목과 반신 초상화, 자필 축시, 계첩 제작에 참여한 감조관, 서사관, 화원의 명단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1]
다섯 개의 연회 장면은 다음과 같다.[1]
행사도들은 짙은 채색과 세밀한 붓놀림으로 행사장면과 참여 인물들을 묘사하여 당시 궁중 의궤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초상화는 반신상으로 18세기 초엽 초상화의 양식과 수법을 잘 드러낸다.
당시 기로소에 소속된 당상은 영의정 김창집(1648-1722, 72세), 영중추부사 이유(1645-1721, 75세), 판중추부사 김우항(1649-1723, 71세), 행판돈녕부사 최규서(1650-1735, 70세), 행사직 이선부(1646-?, 74세), 홍만조(1645-1725, 75세), 지중추부사 황흠(1639-1730, 81세), 한성부판윤 정호(1648-1736, 72세), 우참판 신임(1639-1725, 81세), 지중추부사 강현(1650-1733, 70세), 임방(1640-1724, 80세) 등 열한 명이었다.[2] 그러나 최규서는 서울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2] 따라서 화첩에는 행사에 참석했던 이유, 김창집, 김우항, 임방, 황흠, 강현, 홍만조, 이선부, 정호, 신임 10명의 초상화만 실려있다. 좌목에는 최규서의 이름도 있지만, 초상화는 그려지지 않았다.
3. 구성 및 내용
이 계첩 제작에는 김진여, 장태흥, 박동보, 장득만, 허숙 등 어진 제작에도 참여했던 당대 최고의 어용화사(御用畫師)들이 동원되었다.[1]
화첩은 좌참찬 임방의 서문, 숙종의 어제(御製), 대제학 김유의 발문(跋文), 어첩 봉안 참여 관원 명단, 다섯 개의 연회 장면 그림, 참여 기신 11명의 명단(좌목, 座目)과 반신상 초상화[2], 기신들의 축시(祝詩), 제작 참여자 명단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1] 각 연회 장면 그림은 당시 궁중 의례의 모습을, 기신들의 초상화는 18세기 초 초상화 양식을 잘 보여준다.[1][2]
3. 1. 연회 장면
기사계첩에 실린 다섯 개의 연회 장면은 짙은 채색과 세밀한 붓터치로 행사 장면과 참여 인물들을 묘사하여 당시 궁중 의궤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1]3. 2. 기신 초상화
기사계첩에 실린 기신들의 초상화는 18세기 초엽 초상화의 양식과 수법을 잘 보여주는 반신상들이다. 원래 기로소에 소속된 당상은 영의정 김창집, 영중추부사 이유, 판중추부사 김우항, 행판돈녕부사 최규서, 행사직 이선부, 홍만조, 지중추부사 황흠, 한성부판윤 정호, 우참판 신임, 지중추부사 강현, 임방 등 열한 명이었다.[2] 그러나 최규서는 서울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2] 따라서 화첩에는 이유, 김창집, 김우항, 임방, 황흠, 강현, 홍만조, 이선부, 정호, 신임 등 10명의 초상화만 실려 있다. 좌목에는 최규서의 이름도 있지만, 초상화는 그려지지 않았다.
4. 도상 분석
기사계첩에 실린 그림들은 행사의 모습을 담은 행사도와 참여 인물들의 초상화로 구성된다. 이 그림들은 18세기 초 조선 시대 궁중 회화와 초상화의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 자료로 평가받는다.
4. 1. 행사도
계첩에 실려있는 행사도들은 짙은 채색과 세밀한 붓을 사용하여 행사 장면과 참여한 인물들을 묘사하여, 당시 궁중 의궤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2]4. 2. 초상화
화첩의 초상은 반신상으로 18세기 초엽 초상화의 양식과 수법이 잘 드러난다. 당시 기로소에 소속된 당상은 영의정 김창집(1648~1722, 72세), 영중추부사 이유(1645~1721, 75세), 판중추부사 김우항(1649~1723, 71세), 행판돈녕부사 최규서(1650~1735, 70세), 행사직 이선부(1646~?, 74세), 홍만조(1645~1725, 75세), 지중추부사 황흠(1639~1730, 81세), 한성부판윤 정호(1648~1736, 72세), 우참판 신임(1639~1725, 81세), 지중추부사 강현(1650~1733, 70세), 임방(1640~1724, 80세) 등 열한 명이었다.[2] 최규서는 서울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화첩에는 이유, 김창집, 김우항, 임방, 황흠, 강현, 홍만조, 이선부, 정호, 신임 등 10인의 초상화가 실려있다. 좌목에는 최규서의 이름도 들어 있으나 초상화는 그려지지 않았다.5. 문화재 지정
기사계첩 중 일부는 대한민국의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5. 1. 국보
- 기사계첩 (국보 제325호)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기사계첩 (국보 제334호) - 서울 송파구, 홍완구 소장
5. 2. 보물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사계첩 (보물 제638호)이다.참조
[1]
웹사이트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http://cms.ewha.ac.k[...]
[2]
기사
기사계첩 네이버캐스트
http://navercast.n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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