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소
1. 개요
기로소는 조선 시대에 70세 이상의 고위 관료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1394년 태조 때 기사(耆社)로 시작하여, 태종 때 전함재추소를 거쳐 세종 때 치사기로소로 개칭되었다. 기로소는 임금의 탄일, 설날 등에 하례를 행하고 국사에 대한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했으며, 숙종은 기로소에 들어가 영수각을 짓고 어첩을 봉안했다. 기로소에 들어간 왕으로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 있으며, 관련 문화재로 기사계첩, 남지기로회도, 영조 기로연·수작연도 병풍 등이 있다. 기로소 청사는 현재 광화문역 3번 출구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한국의 역사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지속된 시기로, 강제 병합, 경제적 착취, 정치적 억압, 문화적 동화 정책 등이 특징이며, 3·1 운동과 같은 독립 운동이 전개되었고, 위안부 문제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다양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한국의 역사 -
국가재건최고회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수립된 군사 정권 기구로, 헌법 일부 조항 효력 정지, 국회 해산 등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치며 경제 개발을 추진했으나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았고, 1963년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해산되었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나라별 정부 기관 -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대한민국 고용노동부는 고용, 노동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으로, 사회부 노동국에서 출발하여 노동청, 노동부를 거쳐 2010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되었으며, 고용정책, 근로조건, 노사관계, 산업안전보건 등의 업무를 관장한다.
2. 역사
조선 태조 때 기사(耆社)라는 관청을 설치하면서 기로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문무신 구분 없이 70세 내외의 2품관 이상 관료를 선발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 정2품 판서급, 70세 이상 문신으로 자격이 제한되었다. 기로소에 들어간 왕으로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 있으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98세)이었다.
2.1. 조선 초기
조선에서는 1394년, 태조가 60세를 넘자 기사(耆社)라는 관청을 설치하면서 기로소가 시작되었다. 문신(文臣)과 무신(武臣) 구분 없이 70세 내외의 2품관 이상 관료를 선발하여 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태조 스스로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토(田土), 염전(鹽田), 어전(漁箭), 노비를 하사하고, 군신(君臣)이 함께 어울려 연회를 베풀었다. 태종 즉위 초에는 이것을 제도화하여 전함재추소(前銜宰樞所)라고 하였고, 1428년(세종 10년)에 치사기로소(致仕耆老所)로 이름을 바꾸었다.
2.2. 조선 중기·후기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으로 정2품 판서급, 70세 이상 문신으로 제한하였고, 숙종 때에는 이들을 기로 당상(耆老堂上)이라 하였다. 군신(君臣)이 함께 참여하는 기로소의 특성상 조정 관청 서열에서 기로소가 으뜸을 차지하였다. 기로소는 임금의 탄일, 정조(설날), 동지에 모여 하례(賀禮)를 행하거나, 중요한 국사(國事) 논의에 참여하여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였다. 1719년(숙종 45년), 숙종이 60세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경내에 영수각(靈壽閣)을 짓고 어첩(御牒)을 봉안하였다.
기로소에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조선 초중기 기록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다시 편찬한 《기로소제목록후(耆老所題目錄後)》에 따르면, 기로소에 들어온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 98세), 그 다음으로 숙종 때의 이구원(李久源, 97세), 민형남(閔馨男, 96세) 등이 있었다.
3. 청사
기로소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대로인 육조거리 끄트머리에 있었다. 현재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 자리로, 이순신 장군 동상과 교보문고 사이의 중간 지점이다.
3.1. 주요 건물
* 기영관(耆英館): 기로소 본청 건물 (남향)
* 영수각(靈壽閣): 어첩(御帖, 왕의 글) 보관 건물 (기영관 동쪽)
* 대문(大門): 기로소 정문 (기영관 남쪽)
4. 관련 문화재
기사계첩, 남지기로회도, 영조 기로연·수작연도 병풍 등 기로소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이 문화재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
4.1. 기사계첩
기사계첩은 기로소에 들어간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림이다. 여러 점의 기사계첩이 전해지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작품들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 명칭 | 소장처 |
|---|---|
| 기사계첩 (전 국보 제325호) | 국립중앙박물관 |
| 기사계첩 (전 국보 제334호) | 개인 소장 |
| 기사계첩 (전 보물 제638호)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