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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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로소는 조선 시대에 70세 이상의 고위 관료들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1394년 태조 때 기사(耆社)로 시작하여, 태종 때 전함재추소를 거쳐 세종 때 치사기로소로 개칭되었다. 기로소는 임금의 탄일, 설날 등에 하례를 행하고 국사에 대한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했으며, 숙종은 기로소에 들어가 영수각을 짓고 어첩을 봉안했다. 기로소에 들어간 왕으로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 있으며, 관련 문화재로 기사계첩, 남지기로회도, 영조 기로연·수작연도 병풍 등이 있다. 기로소 청사는 현재 광화문역 3번 출구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 태조 때 기사(耆社)라는 관청을 설치하면서 기로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문무신 구분 없이 70세 내외의 2품관 이상 관료를 선발하였으나, 조선 중기 이후 정2품 판서급, 70세 이상 문신으로 자격이 제한되었다. 기로소에 들어간 왕으로는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 있으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98세)이었다.
기로소 청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대로인 육조거리 끄트머리에 있었다. 현재 서울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3번 출구 자리로, 이순신 장군 동상과 교보문고 사이의 중간 지점이다.
2. 역사
2. 1. 조선 초기
조선에서는 1394년, 태조가 60세를 넘자 기사(耆社)라는 관청을 설치하면서 기로소가 시작되었다. 문신(文臣)과 무신(武臣) 구분 없이 70세 내외의 2품관 이상 관료를 선발하여 기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태조 스스로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전토(田土), 염전(鹽田), 어전(漁箭), 노비를 하사하고, 군신(君臣)이 함께 어울려 연회를 베풀었다. 태종 즉위 초에는 이것을 제도화하여 '''전함재추소'''(前銜宰樞所)라고 하였고, 1428년(세종 10년)에 '''치사기로소'''(致仕耆老所)로 이름을 바꾸었다.
2. 2. 조선 중기·후기
조선 중기 이후에는 기로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으로 정2품 판서급, 70세 이상 문신으로 제한하였고, 숙종 때에는 이들을 기로 당상(耆老堂上)이라 하였다. 군신(君臣)이 함께 참여하는 기로소의 특성상 조정 관청 서열에서 기로소가 으뜸을 차지하였다. 기로소는 임금의 탄일, 정조(설날), 동지에 모여 하례(賀禮)를 행하거나, 중요한 국사(國事) 논의에 참여하여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였다. 1719년(숙종 45년), 숙종이 60세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면서 경내에 영수각(靈壽閣)을 짓고 어첩(御牒)을 봉안하였다.[1]
기로소에 들어가면 녹명안(錄名案)에 이름이 기록되었는데, 조선 초중기 기록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다시 편찬한 《기로소제목록후(耆老所題目錄後)》에 따르면, 기로소에 들어온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이며, 최고령자는 현종 때의 윤경(尹絅, 98세), 그 다음으로 숙종 때의 이구원(李久源, 97세), 민형남(閔馨男, 96세) 등이 있었다.[1]
3. 청사
3. 1. 주요 건물
4. 관련 문화재
기사계첩, 남지기로회도, 영조 기로연·수작연도 병풍 등 기로소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재들이 남아있다. 이 문화재들은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 여러 곳에 보관되어 있다.[1]
4. 1. 기사계첩
기사계첩은 기로소에 들어간 신하들의 모임을 기념하여 제작된 그림이다. 여러 점의 기사계첩이 전해지며,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작품들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등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1]명칭 | 소장처 |
---|---|
기사계첩 (전 국보 제325호) | 국립중앙박물관 |
기사계첩 (전 국보 제334호) | 개인 소장 |
기사계첩 (전 보물 제638호) |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
4. 2. 남지기로회도
이기룡필 남지기로회도(보물)는 서울대학교박물관에, 남지기로회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는 개인 소장에,[1] 남지기로회도(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는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1]4. 3. 영조 기로연·수작연도 병풍
영조가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여 열린 잔치를 그린 그림이다.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1]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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