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 (1648년)
1. 개요
정호(1648년)는 조선 숙종, 경종, 영조 시대의 문신이다. 숙종 후반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으나, 신임옥사와 정미환국으로 파직되기도 했다. 이후 영조 때 다시 등용되어 영중추부사를 지냈다. 그의 묘소는 충청북도 괴산군에 있으며, 누암서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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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출생 -
페드루 2세 (포르투갈)
페드루 2세는 정신 질환을 앓는 형을 대신하여 섭정이 된 후 왕위를 계승하여 잉글랜드와 동맹을 맺고 브라질의 금광 개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며,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했다. -
1648년 출생 -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
골웨이 백작 앙리 드 마스는 프랑스 출신으로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활동한 군인이자 외교관으로, 찰스 2세와의 협상, 윌리엄 3세 휘하 복무, 아일랜드 최고 사령관 역임 등의 활동을 했으며 오그림 전투 공훈으로 작위를 받았으나 알만사 전투 패배는 오점으로 남았다. -
1736년 사망 -
외젠 드 사부아 공자
외젠 드 사부아 공자는 수아송 백작 외젠 모리스와 올림피아 만시니 사이에서 태어난 삼남으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1736년 사망 -
심수현 (조선)
심수현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704년 문과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영조 시대에 우의정과 영의정까지 오른 청송 심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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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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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숙종 후반기에 문과에 급제해서, 검열, 정언을 거쳐 경성판관이 되지만 기사환국으로 파직된다. 그러나 갑술환국으로 사헌부지평으로 복직해서, 수찬과 부교리, 정언과 부수찬, 교리, 시독관을 거쳐 다시 교리를 하다가 의성현령으로 외직에 나가있다가 수찬, 집의, 보덕, 사간을 거쳐 다시 외직으로 나가 동래부사와 광주부윤을 거쳐 승지가 되고 대사성, 이조참의, 부제학을 하다가 함경도관찰사,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도승지, 부제학, 대사간,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감시관이 되고, 60대 이후 뒤늦은 나이에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와 부제학을 거쳐 예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70대에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예문관제학, 좌참찬을 지내지만, 신임옥사로 파직된다. 이후 영조 때 예조판서로 복직되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된다. 그러나 정미환국 이후 파직되지만, 이후 다시 등용되어 영중추부사가 된다.
2.1. 관직 생활
숙종 후반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정언을 거쳐 경성판관이 되지만 기사환국으로 파직된다. 그러나 갑술환국으로 사헌부지평으로 복직해서 수찬과 부교리, 정언과 부수찬, 교리, 시독관을 거쳐 다시 교리를 하다가 의성현령으로 외직에 나갔다. 수찬, 집의, 보덕, 사간을 거쳐 다시 외직으로 나가 동래부사와 광주부윤을 거쳐 승지가 되고 대사성, 이조참의, 부제학을 하다가 함경도관찰사, 홍문관부제학을 거쳐 도승지, 부제학, 대사간,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감시관이 되었다. 60대 이후 뒤늦은 나이에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와 부제학을 거쳐 예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을 거쳐 70대에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예문관제학, 좌참찬을 지내지만, 신임옥사로 파직된다. 이후 영조 때 예조판서로 복직되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된다. 그러나 정미환국 이후 파직되지만, 이후 다시 등용되어 영중추부사가 된다.
2.2. 경종, 영조 시대의 활동
정호는 숙종 후반기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정언을 거쳐 경성판관이 되었으나,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었다. 그러나 갑술환국으로 사헌부지평으로 복직하여 수찬, 부교리, 정언, 부수찬, 교리, 시독관을 거쳐 의성현령으로 외직에 나갔다. 이후 수찬, 집의, 보덕, 사간을 거쳐 동래부사와 광주부윤을 역임하고 승지가 되었다. 대사성, 이조참의, 부제학을 거쳐 함경도관찰사, 홍문관부제학을 역임하고 도승지, 부제학, 대사간, 대사헌을 거쳐 감시관이 되었다.
60대 이후에는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쳐 경기도관찰사와 부제학을 역임하고, 예조참판, 사헌부대사헌, 이조참판을 지냈다. 70대에는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예문관제학, 좌참찬을 역임하였으나, 신임옥사로 파직되었다.
영조 즉위 후 예조판서로 복직되었으며,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미환국 이후 파직되었다가 다시 등용되어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3. 가계
정호의 딸은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의 손자이자 한성부 우윤 심정보(沈廷輔)의 아들인 심사유(沈師遊)와 혼인하였다. 손녀는 심정보의 사촌 심정규(沈廷揆)의 손자 심항진(沈恒鎭)과 혼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