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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예 (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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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예는 춘추 시대 진나라 재상 동호의 후손으로, 진나라 말기 장한 휘하의 도위로 진승·오광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활약했다. 기원전 206년 진나라 멸망 후, 항우에게 관중 땅을 받아 적왕에 봉해졌으나, 유방에게 패하여 항복했다. 이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패하자 다시 항우에게 귀순했으나, 그 이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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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원전 204년 사망 - 전광
    전광은 기원전 205년 제나라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서 배신과 연합을 반복하다가 한신에게 패하여 살해당했다.
  • 기원전 204년 사망 - 기신
    기신은 초한쟁 당시 유방을 섬긴 인물로, 형양성 포위 때 유방으로 위장하여 항우에게 항복하는 척하며 유방의 탈출을 돕고 화형당했으며, 그의 충성심은 후대에 높이 평가되었고, 사기에 기록된 기신과 한서에 기록된 기성이 동일 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동예 (진나라)
기본 정보
이름동예 (董翳)
봉호적왕 (翟王)
생애
출생알 수 없음
사망기원전 204년
사망 장소형양시 사수향 (汜水鄉)
정치 경력
재위 시작기원전 206년
재위 유형재위
직위적왕 (翟王)

2. 생애

동이는 춘추 시대 진나라의 고위 재상인 동호의 후손이었다.

진나라 2세 황제(호해) 시대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장한 휘하에서 도위가 되었다. 장한이 항우에게 패배한 후, 동예는 장한에게 항우에게 항복할 것을 권했다. 기원전 206년, 항우는 관중으로 쳐들어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의 제후를 봉건하며 관중을 셋으로 나누어 장한을 옹왕, 사마흔을 새왕, 동예를 적왕으로 삼았다. 이를 삼진이라고 불렀으며, 적왕 동예는 상군을 영토로 삼고 고노에 도읍을 정했다.

그 후, 동예의 행적은 불분명하다.[1]

2. 1. 진나라 시기

진나라 도위를 지냈으며, 진승·오광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장한을 따라 각지를 전전했다. 장한이 항우에게 항복하도록 권했고, 항우가 항복한 진군을 몰살할 때 장한, 사마흔과 함께 살아남았다.[3][2] 장한을 항복하게 권한 것이 항우에게 공적으로 인정되어, 항우가 제후들을 분봉할 때 관중 지방을 장한, 사마흔과 함께 나누어 받아 적왕으로 봉해졌다. 적나라의 봉토는 옛 진나라 상군이었으며, 도읍은 고노(高奴, 중화인민공화국 옌안 시)에 두었다.[3][2]

한왕 원년(기원전 206년), 한왕 유방이 관중으로 쳐들어왔다(삼진 평정). 한왕의 장수 한신의 공격으로 옹왕 장한이 폐구성에 갇히고 옹나라의 거의 모든 판도가 한나라에 넘어가면서, 8월에 자신도 한나라 장군 정복(丁復)과 주진(朱軫)의 공격을 받아 유방에게 항복했다. 유방은 적나라를 폐하고 옛 적나라 판도에 상군을 다시 설치해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했다. 이달에 새왕 사마흔도 한나라의 공격에 수도 약양성이 함락되어 동예처럼 한나라에 항복했다.[3]

기원전 205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격파당하자 새왕 사마흔과 함께 항우에게 항복했다.

이후 동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왕 4년 10월(기원전 204년), 항우가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팽월을 치러 출진했는데, 한나라 측의 도발에 넘어간 조구가 출진해 사수를 건너다가 한군의 공격을 받아 참패했고, 조구는 새왕 흔·장사 예(翳)와 함께 자결했는데,[4] 이 예가 동예라면 봉국이 해제되고 옛 직위로 돌아간 것이다.

2. 2. 삼진 시기

기원전 206년, 한왕 유방관중으로 쳐들어와 삼진을 공격했다. 한신의 공격으로 옹왕 장한이 폐구성에 갇히고 옹나라의 거의 모든 영토가 한나라에 넘어가면서, 8월에 동예도 한나라 장군 정복(丁復)과 주진(朱軫)의 공격을 받아 유방에게 항복했다.[3] 유방은 적나라를 폐지하고 옛 적나라 땅에 상군을 다시 설치해 한나라의 군으로 편입했다. 같은 달에 새왕 사마흔도 한나라의 공격에 수도 약양성이 함락되어 동예처럼 한나라에 항복했다.[3]

기원전 205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크게 패하자, 동예는 사마흔과 함께 항우에게 항복했다.

이후 동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1] 다만, 기원전 204년 (한왕 4년) 10월, 항우가 대사마 조구에게 성고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팽월을 치러 출진했는데, 한나라 측의 도발에 넘어간 조구가 출진해 사수를 건너다가 한군의 공격을 받아 참패했고, 조구는 새왕 흔·장사 예(翳)와 함께 자결했는데,[4] 이 예가 동예라면 봉국이 해제되고 옛 직위로 돌아간 것이다.

2. 3. 초한쟁패기

기원전 206년, 유방관중으로 쳐들어와 삼진 평정을 시작했다. 한신의 공격으로 옹왕 장한이 폐구성에 갇히고 옹나라 대부분이 한나라에 넘어가면서, 8월에 동예도 한나라 장군 정복(丁復)과 주진(朱軫)의 공격을 받아 유방에게 항복했다.[3][2] 유방은 적나라를 폐지하고 옛 적나라 땅에 상군을 다시 설치해 한나라에 편입했다. 같은 달 새왕 사마흔도 한나라의 공격에 수도 약양성이 함락되어 동예처럼 한나라에 항복했다.[3]

기원전 205년, 팽성 대전에서 유방이 항우에게 패하자 동예는 사마흔과 함께 항우에게 항복했다.

참조

[1] 서적 史記 項羽本紀
[2] 서적 사기 권7 항우본기
[3] 서적 한서 권13 이성제후왕표
[4] 서적 한서 권1상 고제본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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