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사
1. 개요
김근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486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4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홍문관교리 등을 거쳤다. 1519년 기묘사화 당시 김안로의 일파로 도승지를 지냈으며, 이후 이조참판,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525년에는 동지돈녕부사로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1533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 1535년 영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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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9년 사망 -
이사벨라 데스테
이사벨라 데스테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자이자 만토바 후작 프란체스코 2세 곤차가의 부인이며, 정치적 역할과 문화적 후원을 통해 이탈리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39년 사망 -
구루 나나크
구루 나나크는 15세기 펀자브에서 시크교를 창시하고 유일신에 대한 믿음, 인류의 단결, 이타적인 봉사, 정직한 생계 유지 등의 가르침을 설파하며 시크교의 구루로서 존경받는다. -
연안 김씨 -
김각영
김각영은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으로 제32대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며,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하나금융지주 이사회 의장 등을 지냈다. -
연안 김씨 -
김종운 (1929년)
김종운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교육자이다. -
1466년 출생 -
호소카와 마사모토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무로마치 막부 말기의 세키가와 가문 당주이자 관령으로, 명응의 정변을 통해 쇼군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기행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호소카와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후계자 문제로 인한 암살 사건으로 요절하여 가문이 쇠락하게 되었다. -
1466년 출생 -
윤여필
윤여필은 중종반정 공신이자 장경왕후의 아버지로서 국구의 지위에 올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탄핵과 비판에 직면하여 몰락 후 복권된 인물로, 그의 가계는 조선시대 유력 가문으로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2. 생애
1486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기묘사화 이후 김안로의 일파로 활동하며 주요 요직을 거쳐 1533년 우의정을 역임하고, 1535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2.1. 관직 역임
1486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4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사헌부 지평, 사헌부 장령, 사헌부 정언, 홍문관 교리를 역임하였다. 1509년 경차관, 1512년 우부승지, 좌부승지, 좌승지를 거쳤다. 1515년 홍문관 부제학,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1517년 판결사, 충청도관찰사, 형조참의, 병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 발생 후 김안로 일파의 승지가 되었고, 도승지를 거쳤다. 1520년 이조참판, 형조참판, 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525년 동지돈녕부사로서 하정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26년 황해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한성부 우윤, 대사헌, 공조참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을 역임하였다. 1531년 병조판서, 이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형조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1533년 우의정에 오르고, 좌의정 겸 세자사부가 되었다. 1535년 영의정에 올랐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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