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화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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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동화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활동한 승려이자 교육자이다. 1913년 출가하여 릿쇼 대학에서 불교 교리를 연구하고,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협조하며 친일 행적을 보였다.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고, 국민훈장 동백장과 학술원 공로상을 받았다. 불교사상 연구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일 행적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김동화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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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2.1. 일제 강점기

김동화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1913년 상주 동해사에서 출가했다. 상주보통학교와 남명학원, 문경 김룡사의 경흥강숙을 1923년 졸업했다. 1930년 일본 도쿄 릿쇼 대학 전문부 종교과를 졸업하고, 1932년 릿쇼 대학 종교과를 졸업하여 불교 교리를 연구했다. 1936년에는 릿쇼 대학 전문부 종교과의 전임강사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협조하며 친일 행적을 보였다.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이 보급한 심전개발 운동을 불교계가 지원할 때, 1936년 여름 방학 동안 고향인 상주군 일원을 돌며 순회강연을 했다. 1938년 중일 전쟁 2주년 기념 '시국 인식 및 심전개발 하기 순회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하여 경북 지역에서 강연했다.

1939년 경북불교협회 총무로 선출되면서 릿쇼 대학에서 사직했다. 경북불교협회는 조선총독부 시책에 협조적이었으며, 김동화는 총무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1939년 경북5본산 승려하기수련강습회에서 내선일체 등 정치적인 강연을 했고, 승려들이 식사를 걸러 모은 금액을 국방헌금으로 헌병대에 납부했다.

1940년 은해사에 세워진 오산불교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고, 같은 해 경성부 혜화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1942년 혜화전문학교 교수로 승진했다.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강연 활동에 참여했고, 1943년 구세군 황종률과 함께 영남 지역에서 학병 지원 유세를 폈다. 1944년 《불교》에 징병제 실시는 영광이라는 내용의 친일 시사문을 기고했다.

1944년 중앙 포교사 및 조선 불교 교학위원으로 임명되어 총본산 종무원에서 근무했다. 당시 총본산은 전시체제에 협조하기 위해 조직된 친일 종단이었다. 김동화는 '미영격멸종교단체총궐기대회'에서 불교계 대표로 연설했다.

2.2. 광복 후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뒤 혜화전문학교에 돌아와 교수가 되었고, 1947년에 이 학교의 후신인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학과장에, 1948년에는 부학장에 임명되었다.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에 피난지 부산에서 학장에 취임하였고, 1953년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장이 되었다.

1962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1971년까지 대학원장 및 불교문화연구소장으로 재직했다. 197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교육 공로자로 선정해 수여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고, 같은 해 학술원 공로상을 받고 대한민국학술원의 종신회원이 되었다.

3. 사후 평가

김동화는 불교사상의 현대적 정립으로 한국불교의 발전을 이룬 선각자이며 '근대 불교연구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많은 논문을 남겨, 탄생 100주년인 2002년에 전14권의 《뇌허 김동화 전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

3.1. 긍정적 평가

김동화는 불교사상의 현대적 정립으로 한국불교의 발전을 이룬 선각자이며 '근대 불교연구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많은 논문을 남겼으며, 탄생 100주년인 2002년에는 전14권의 《뇌허 김동화 전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3.2. 부정적 평가

김동화는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으로 인해 비판받는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2008년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에 선정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그의 친일 행적은 징병제 찬양, 학병 지원 유세, 전쟁 지원 연설 등 적극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비판의 강도가 높다.

4. 저서

김동화는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많은 논문을 남겼으며, 탄생 100주년인 2002년에 전14권의 《뇌허 김동화 전집》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