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룡사
1. 개요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가 창건한 운봉사의 전신으로, 여러 차례의 화재를 겪으며 18세기 이후 김룡사로 개칭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보물로 지정된 사인비구 제작 동종과 영산회괘불도, 등록문화재인 김룡사 사료수집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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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시의 건축물 -
점촌역
점촌역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위치한 경북선의 철도역으로 1924년 영업을 시작한 지상역이며, 무궁화호가 정차하고, 옹기 및 기와 장인들의 역사에서 유래한 역명과 철도문화 체험 테마역으로 조성된 이력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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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역
경상북도 문경시에 위치한 문경역은 1969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나 여객 및 화물 영업이 중단된 후, 레일바이크 개업으로 활기를 되찾아 2024년 여객 취급 재개와 함께 현재 위치로 이전한 중부내륙선의 철도역이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불교에 관한 -
탕카
탕카는 티베트 불교 회화의 한 형태로, 불교 교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7세기경 인도에서 유래하여 만다라, 부처 등을 묘사하고, 천연 안료로 면이나 비단에 그림을 그리며, 채색 탕카, 자수 탕카 등으로 분류된다. -
불교에 관한 -
한용운
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의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로, 3.1 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불교 혁신과 민족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시집 《님의 침묵》을 통해 저항 문학을 대표했다.
2. 역사
신라 진평왕 10년인 588년에 운달조사(蕓達祖師)가 창건한 운봉사(雲峰寺)를 전신으로 한다. 이후 김룡사로 개칭되었으며, 조선 인조 2년(1624년) 혜총(惠聰) 스님이 중창했으나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 특히 1997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의 모습은 비교적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경북 북부 지역 사찰을 관리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성철, 서암, 서옹 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2.1. 창건과 유래
신라 진평왕 10년인 588년에 蕓達祖師중국어 (간체)가 운달산 자락에 절을 세우고 운봉사라고 이름 지은 것이 김룡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절 이름이 김룡사로 바뀐 데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운봉사 아래 숨어 살며 부처에게 참회하다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김용(金龍)이라 지었고, 이후 가세가 일어나 마을 이름도 김룡리가 되면서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이 바뀐 시기는 18세기 이후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혜총 스님이 절을 크게 다시 지었으나, 여러 차례 불이 나면서 번성했던 건물들이 줄어들었다. 특히 1997년에 큰불이 나서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타버렸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다.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가는 짧은 전나무 숲길과 절 입구의 오래된 멋을 지닌 목조 건물인 해우소가 볼 만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개 주요 사찰(본산) 중 하나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45개 작은 절(말사)을 관리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절의 정문 이름인 홍하문(紅霞門)은 성철 스님이 즐겨 사용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
2.2. 조선 시대
사찰 이름이 김룡사로 바뀐 데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절 아래 숨어 살며 불전에 참회하였는데, 아들을 낳아 이름을 김용(金龍)이라 지었다. 이때부터 가세가 나아져 마을 이름도 김룡리가 되었고,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이름이 바뀐 시기는 18세기 이후로 추정되나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혜총(惠聰)이 중창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며 번창하던 건물이 줄어들었다.
2.3.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경북 북부 일대에서 45개의 말사를 거느렸다.
2.4. 현대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경북 북부 일대에서 45개의 말사를 거느렸으나, 조계종에서는 제8교구의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편성되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이 이 곳에서 수행했다. 성철이 즐겨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말에서 따와 정문의 이름은 홍하문(紅霞門)이다.
여러 차례의 화재를 겪었으며, 특히 1997년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불전이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 남은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다.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가는 짧은 전나무 숲길과 절 입구의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인 해우소가 볼 만한 장소이다.
3.2. 등록문화재
* 김룡사 사료수집 (金龍寺 史料蒐集) : 등록문화재 제635호
* 대본산 김룡사 본말사 연혁 원고 (大本山 金龍寺 本末寺 沿革) : 등록문화재 제636호
3.3.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 사인비구 제작 동종 - 문경김룡사동종 : 보물 제11-2호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 소장)
*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 : 보물 제1640호
* 김룡사 사료수집 : 등록문화재 제635호
* 대본산 김룡사 본말사 연혁 원고 : 등록문화재 제636호
* 문경 김룡사 대웅전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53호
* 문경 김룡사 대성암 금당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4호
4. 주요 볼거리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이어지는 짧은 전나무 숲길은 운치를 더하며, 절 입구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인 해우소 역시 독특한 볼거리로 꼽힌다.
1997년의 큰 화재로 인해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전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현재 경내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룡사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 스님이 수행했던 유서 깊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철 스님이 자주 인용했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