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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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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가 창건한 운봉사의 전신으로, 여러 차례의 화재를 겪으며 18세기 이후 김룡사로 개칭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보물로 지정된 사인비구 제작 동종과 영산회괘불도, 등록문화재인 김룡사 사료수집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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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룡사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건립 연대신라 진평왕 10년 (588년)
창건자운달조사(蕓達祖師)
종파대한불교조계종
문화재보물 2건, 등록문화재 2건
소재지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리 410

2. 역사

신라 진평왕 10년인 588년에 운달조사(蕓達祖師)가 창건한 운봉사(雲峰寺)를 전신으로 한다. 이후 김룡사로 개칭되었으며, 조선 인조 2년(1624년) 혜총(惠聰) 스님이 중창했으나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 특히 1997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의 모습은 비교적 최근에 복원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서 경북 북부 지역 사찰을 관리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이다. 성철, 서암, 서옹 등 여러 고승들이 수행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2. 1. 창건과 유래

신라 진평왕 10년인 588년에 蕓達祖師|운달조사zho운달산 자락에 절을 세우고 '''운봉사'''라고 이름 지은 것이 김룡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절 이름이 김룡사로 바뀐 데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운봉사 아래 숨어 살며 부처에게 참회하다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김용(金龍)이라 지었고, 이후 가세가 일어나 마을 이름도 김룡리가 되면서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이 바뀐 시기는 18세기 이후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혜총 스님이 절을 크게 다시 지었으나, 여러 차례 불이 나면서 번성했던 건물들이 줄어들었다. 특히 1997년에 큰불이 나서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타버렸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이다.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가는 짧은 전나무 숲길과 절 입구의 오래된 멋을 지닌 목조 건물인 해우소가 볼 만하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개 주요 사찰(본산) 중 하나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45개 작은 절(말사)을 관리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편성되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 스님이 이곳에서 수행했다. 절의 정문 이름인 홍하문(紅霞門)은 성철 스님이 즐겨 사용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붉은 노을이 푸른 바다를 꿰뚫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

2. 2. 조선 시대

사찰 이름이 김룡사로 바뀐 데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죄를 짓고 절 아래 숨어 살며 불전에 참회하였는데, 아들을 낳아 이름을 김용(金龍)이라 지었다. 이때부터 가세가 나아져 마을 이름도 김룡리가 되었고,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고쳐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이름이 바뀐 시기는 18세기 이후로 추정되나 정확하지는 않다.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혜총(惠聰)이 중창했으나, 이후 여러 차례 화재를 겪으며 번창하던 건물이 줄어들었다.

2. 3.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경북 북부 일대에서 45개의 말사를 거느렸다.

2. 4. 현대

일제강점기에는 31본산의 하나로 경북 북부 일대에서 45개의 말사를 거느렸으나, 조계종에서는 제8교구의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편성되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이 이 곳에서 수행했다. 성철이 즐겨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말에서 따와 정문의 이름은 홍하문(紅霞門)이다.

여러 차례의 화재를 겪었으며, 특히 1997년 화재로 대웅전을 제외한 불전이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 남은 건물은 대부분 새로 지은 것들이다.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가는 짧은 전나무 숲길과 절 입구의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인 해우소가 볼 만한 장소이다.

3. 관련 문화재

김룡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2점과 등록문화재 2점, 그리고 경상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1점과 문화재자료 1점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있다.

3. 1. 보물

3. 2. 등록문화재

3. 3.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4. 주요 볼거리

비구니 암자인 대성암으로 이어지는 짧은 전나무 숲길은 운치를 더하며, 절 입구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목조 건물인 해우소 역시 독특한 볼거리로 꼽힌다.

1997년의 큰 화재로 인해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전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현재 경내에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이후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룡사는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 서암, 서옹 스님이 수행했던 유서 깊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성철 스님이 자주 인용했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구절에서 이름을 따온 일주문인 홍하문(紅霞門)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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