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영
1. 개요
김문영은 신라 시대의 인물로, 백제 정벌 당시 신라의 독군으로 활약했다.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이 승리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로 인해 당나라 소정방에게 처형될 위기에 놓였지만 김유신의 항의로 중지되었다. 문무왕 대에는 수약주총관, 비열성주행군총관 등을 역임하며 고구려 공격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고, 웅진도독부와 함께 돌사성을 함락시키고, 사천 벌판에서 연남건의 군대와 싸워 승리했다. 이후 당나라와 전쟁에서도 12성을 빼앗는 등 활약했다. 신문왕 때 왕비 간택 예식에 참여했으며, 효소왕 대에는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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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군인 -
문무왕
문무왕은 신라의 제30대 국왕으로 삼국 통일을 완수하고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통일 신라의 기틀을 다졌으며, 중앙 집권 체제 강화, 불교 장려 등의 정책을 통해 신라의 안정과 발전에 기여한 군주이다. -
신라의 군인 -
김시득
김시득은 신라의 장군으로, 기벌포 해전에서 당나라 수군을 상대로 22번 승리하여 당군 격퇴에 공을 세웠으며, 김유신의 서자인 김군승과 동일 인물이라는 기록도 있지만 관등 차이 등으로 인해 동일 인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
신라의 총관 -
김흠순
김흠순은 신라의 왕족이자 장군으로, 김유신의 동생이며 황산벌 전투에서 아들의 죽음으로 신라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여 삼국 통일에 기여한 후 승상에 올랐으나 당나라에 억류되기도 했고, 그의 삶은 여러 작품에서 재조명되었다. -
신라의 총관 -
김서현
김서현은 가락국 구형왕의 손자이자 신라 각간을 지낸 인물로, 김유신의 아버지이며, 각간, 소판, 대량주도독 등을 역임하며 군사적으로 공헌했고, 그의 딸 문명왕후는 태종 무열왕과 혼인했다. -
7세기 한국 사람 -
을지문덕
을지문덕은 612년 살수대첩에서 뛰어난 전략과 지휘 능력으로 수나라의 침략을 격퇴하고 고구려의 국력을 과시한 인물로,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후대에 국난 극복의 영웅으로 기려지고 있다. -
7세기 한국 사람 -
고연수
고연수는 고구려 말기의 북부 욕살로, 안시성 공격 당시 안시성 구원에 나섰으나 당나라 군대에 패배하여 항복 후 사망했다.
2. 생애
김문영은 태종 무열왕 때부터 효소왕 때까지 활약한 신라의 문신이자 무관이었다. 삼국통일 전쟁 시기에는 장군으로서 백제와 고구려와의 전투에 참전하였고, 통일 이후에는 상대등에 임명되는 등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신문왕 3년(683년) 이찬으로서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는 것을 주선하였다. 효소왕 3년(694년) 상대등이 되었다.
2.1. 삼국통일 전쟁
태종 무열왕 7년(660년) 신라·당나라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문영은 신라의 독군(督軍)이었다. 신라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이 이끌던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이 거느린 5천 군사를 상대로 고전했고, 가까스로 백제군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전투로 당나라 총관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병과 합류하기로 한 기일에서 하루 늦었다. 소정방은 이를 문제삼아 독군 김문영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김유신의 항의로 겨우 중지되었다.
문무왕 원년(661년) 7월 17일에 수약주총관(首若州摠管)이 되었다. 문무왕 4년(664년) 7월, 문무왕의 명으로 장군 김인문·김품일(金品日) 등과 함께 일선(一善)·한산(漢山) 2주(州)의 군사를 거느리고 웅진도독부와 함께 고구려의 돌사성(突沙城)을 쳐서 함락시켰다. 문무왕 8년(668년) 대아찬으로서 아찬 복세(福世)와 함께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으로 임명되어 고구려 공격에 나섰고, 이때 평양 근교 사천(蛇川) 벌판에서 고구려 태대막리지 연남건의 군사와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문무왕 10년(670년)부터 시작된 옛 백제 지역의 당나라 군사 공략에서 김문영은 김군관(金軍官)과 함께 12성을 빼앗았으며, 이 과정에서 당나라 번병 7천 명을 베고 말과 병기들을 무수히 노획하였다.
2.2. 나당 전쟁
태종 무열왕 7년(660년) 신라(羅)·당나라(唐)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문영은 신라의 독군(督軍)이었다. 신라의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이 이끌던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이 거느린 5천 군사를 상대로 고전했고, 가까스로 백제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전투로 당초 당의 총관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병과 합류하기로 한 기일에서 하루 늦었다. 소정방은 이를 문제삼아 독군 김문영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김유신의 항의로 겨우 중지되었다.
문무왕 원년(661년) 7월 17일에 수약주총관(首若州摠管)이 되었다. 문무왕 4년(664년) 7월에 문무왕의 명으로 장군 김인문·김품일(金品日) 등과 함께 일선(一善)·한산(漢山) 2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웅진도독부와 함께 고구려의 돌사성(突沙城)을 쳐서 함락시켰으며, 문무왕 8년(668년) 대아찬으로서 아찬 복세(福世)와 함께 비열성주행군총관(卑列城州行軍摠管)으로 임명되어 고구려 공격에 나섰고, 이때 평양 근교의 사천(蛇川) 벌판에서 고구려의 태대막리지 연남건의 군사와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문무왕 10년(670년)부터 시작된 옛 백제 지역의 당병 공략에서 김문영은 김군관(金軍官)과 함께 12성을 빼앗았으며 이 과정에서 당의 번병 7천 명을 베고 말과 병기들을 무수히 노획하였다.
2.3. 통일 이후의 정치 활동
태종 무열왕 7년(660년) 신라·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김문영은 신라의 독군(督軍)이었다. 신라의 태자 김법민과 대장군 김유신이 이끌던 신라군은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의 계백이 거느린 5천 군사를 상대로 고전했고, 가까스로 백제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했지만 이 전투로 당초 당의 총관 소정방이 거느리고 온 당병과 합류하기로 한 기일에서 하루 늦었다. 소정방은 이를 문제삼아 독군 김문영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김유신의 항의로 겨우 중지되었다.
문무왕 원년(661년) 7월 17일에 수약주총관(首若州摠管)이 되었다. 문무왕 4년(664년) 7월에 문무왕의 명으로 장군 김인문·김품일 등과 함께 일선·한산 2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웅진도독부와 함께 고구려의 돌사성을 쳐서 함락시켰으며, 문무왕 8년(668년)에 대아찬으로서 아찬 복세와 함께 비열성주행군총관으로 임명되어 고구려 공격에 나섰고, 이때 평양 근교의 사천 벌판에서 고구려의 태대막리지 연남건의 군사와 교전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문무왕 10년(670년)부터 시작된 옛 백제 지역의 당병 공략에서 김문영은 김군관과 함께 12성을 빼앗았으며 이 과정에서 당의 번병 7천 명을 베고 말과 병기들을 무수히 노획하였다.
신문왕 3년(683년)에는 이찬으로서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간택하고 그것을 주선하는 예식에 참여하였다. 효소왕 3년(694년)에 상대등으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