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주교)
1. 개요
김성수는 대한성공회 주교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1930년 강화에서 태어나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성 미가엘신학원을 졸업했다.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성 베드로 학교장, 성공회 서울교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1984년 주교, 1993년 관구장 대주교로 서품되었으며, 지적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고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하는 등 장애인 인권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참여했으며, 만해대상 평화 부문을 수상했다.
| 이름 | 김성수 |
|---|---|
| 접미어 | 시몬 주교 |
| 원어 이름 | 김성수 |
| 원어 이름 언어 | 한국어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출생 이름 | 김성수 |
|---|---|
| 출생일 | 1930년 6월 12일 |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
| 종교 | 성공회 |
| 배우자 | 김후리다 |
| 가족 | 1남 1녀 |
| 관구 | 한국관구장(1993년 ~ 1995년) |
|---|---|
| 교구 | 서울교구장(1984년 ~ 1995년) |
| 전임자 | 이천환(바우로) |
| 후임자 | 정철범(마태) |
| 사제 서품 | 1964년 |
|---|---|
| 사제 서품자 | 존 데일리 주교 |
| 주교 서품 | 1984년 5월 31일 |
| 주교 서품자 | 리차드 럿트 주교 |
| 학력 | 단국대학교 정치학사, 성 미카엘 신학원, 셀리오크신학대학교,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
|---|
-
강화군 출신 -
조봉암
조봉암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제헌 국회의원,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정치인으로,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했으나 2011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
강화군 출신 -
권율
조선 중기의 문관이자 무장인 권율은 안동 권씨 출신으로,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료 생활을 시작,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승리하는 등 활약하여 도원수에 올랐으며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도 기여,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선무공신 1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
성공회 주교 -
존 셸비 스퐁
존 셸비 스퐁은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성공회 주교이자 작가로,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며 사회적 포용과 평등을 옹호하고 종교 간 대화를 강조하다가 2021년에 사망했다. -
성공회 주교 -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는 영국의 성공회 주교이자 신약성서 학자로,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등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으며 더럼 주교를 역임했고 현재는 세인트앤드류스 대학교에서 신약성경학과 초기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며 역사적 예수 연구와 바울 신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고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제시하고 전통적인 칭의론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의 신학적 관점은 많은 지지와 함께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대한민국의 성공회교도 -
방응모
방응모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조선일보를 인수하여 사장이 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광산업과 장학 사업, 간척 사업을 추진하고 잡지 창간 등의 활동을 했으나, 친일 행위와 납북 행적으로 논란이 있다. -
대한민국의 성공회교도 -
이재정 (1944년)
이재정은 대한민국의 교육자이자 정치인으로, 성공회대학교 총장,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을 거쳤으며, 국민참여당 대표와 경기도 교육감을 역임했다.
2. 생애
김성수 주교는 1930년 강화군 온수리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계승한 성공회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서울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재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학생 시절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병이 나아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성 미가엘신학원(현재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했고, 1957년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74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봉사했다. 1979년 당시에는 지적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없던 때였기에, 성 베드로 학교는 선각자적인 역할을 했다.
1984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93년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여 6월 민주항쟁에 기여했다. 서울주교좌성당에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의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 외국인 노동자 쉼터인 경기도 마석 '샬롬의 집' 등도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시작되었다.
1999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강화도 온수리 땅에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마을'을 설립하고 촌장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공로로 만해대상 평화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1930년 강화군 온수리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신앙을 계승한 성공회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서울 교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재중학교에 진학하였다. 학생시절 폐결핵에 걸려 학업을 중단했으나, 기적적으로 병이 나아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성 미가엘신학원(현재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했다. 1957년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2.2. 사제 서품과 사회 참여
김성수 신학생은 하루 종일 일해도 꽁보리밥 한 그릇을 겨우 먹을 수 있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면서부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은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74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봉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64년 서른넷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된 김성수 신부는 교구의 인사발령으로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성 베드로 학교가 만들어진 1979년에는 지적 장애인들의 장애를 배려한 교육이 없던 때였으니, 성 베드로 학교는 그 존재함만으로도 선각자였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6월 민주항쟁에 함께 했다. 지금도 서울주교좌성당에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시작된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 외국인 노동자 쉼터인 경기도 마석 '샬롬의 집' 등이 모두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았다.
2.3. 성공회 주교와 사회 운동
1984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93년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선친으로부터 받은 강화도 온수리 3,000평 대지에 지적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일할 곳을 마련하였다. 또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 건립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기관인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 재임했었다.
1964년 서른넷의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된 김성수 신부는 교구의 인사발령으로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1979년 당시에는 지적 장애인들의 장애를 배려한 교육이 없던 때였기에, 성 베드로 학교는 그 존재함만으로도 선각자였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6월 민주항쟁에 함께 했다. 지금도 서울주교좌성당에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시작된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 외국인노동자 쉼터인 경기도 마석 '샬롬의 집' 등은 모두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았다. 성공회대 총장으로 8년간 재직할 때는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모두 반납했다.
초대 성공회 한국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낸 김 주교는 1999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공동체를 세웠다.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 마을'을 설립하고 '촌장'으로 세상을 섬기는 활동을 하여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대상의 평화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2.4. 우리마을 설립과 노년
1984년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1993년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선친으로부터 받은 강화도 온수리 3,000평 대지에 지적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일할 곳을 마련하였다. 또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병원 건립을 목적으로 하는 복지기관인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도 재임했었다.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낸 김성수 주교는 1999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내놓아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 마을'을 설립하였다. '우리마을' 촌장으로서 세상을 섬기는 활동으로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대상 평화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3. 활동 및 업적
김성수 주교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다.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74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봉사했다. 1984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93년에는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강화도 온수리의 3,000평 대지에 지적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였다. 또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 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복지 기관인 푸르메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성공회대학교 총장으로 8년간 재직하면서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모두 반납하기도 했다. 사회에 봉사한 공로로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대상의 평화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3.1. 장애인 인권 운동
김성수 주교는 1984년 주교 서품을 받았고, 1993년에는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강화도 온수리의 3,000평 대지에 지적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였다. 또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재활 병원 건립을 목표로 하는 복지 기관인 푸르메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64년, 34세의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된 김성수 신부는 교구의 인사 발령으로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에서 10년 넘게 교장으로 일했다. 1979년 성 베드로 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는 지적 장애인들의 장애를 고려한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성 베드로 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에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4·13 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여 6월 민주항쟁에 동참하였다. 현재 서울주교좌성당에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시작된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과 경기도 마석에 위치한 외국인 노동자 쉼터인 '샬롬의 집'도 김성수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았다. 또한 성공회대학교 총장으로 8년간 재직하면서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모두 반납하기도 했다.
3.2. 민주화 운동
1964년 서른넷의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된 김성수 신부는 교구의 인사발령으로 국내 첫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10년 넘게 일했다. 1979년 당시에는 지적 장애인들의 장애를 배려한 교육이 없던 때였기에, 성 베드로 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선각자였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6·10 국민대회의 서막이 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함으로써 6월 민주항쟁에 함께 했다. 지금도 서울주교좌성당에는 6월 민주항쟁의 시작지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시작된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 경기도 마석의 외국인노동자 쉼터인 '샬롬의 집' 등도 모두 그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자리를 잡았다.
3.3. 사회 선교 활동
김성수 신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자 했다. 1964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1974년부터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특수학교인 성 베드로 학교장으로 봉사했다. 1984년 주교로 서품되었고, 1993년에는 관구장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선친으로부터 받은 강화도 온수리 3,000평 대지에 지적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우리마을'을 설립하여 장애인들이 일할 곳을 마련하였다. 또한 장애인 재활병원 건립을 위한 복지기관인 푸르메재단 이사장으로도 활동했다.
1979년 당시에는 지적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부족했기에 성 베드로 학교는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7년 성공회 서울교구장 시절, 김성수 주교는 서울주교좌성당에서 '4·13호헌 철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여 6월 민주항쟁에 참여했다. 서울주교좌성당에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있다. 서울 상계동 철거민촌에서 시작된 '성공회 나눔의 집' 운동과 경기도 마석의 외국인노동자 쉼터 '샬롬의 집'도 김성수 주교가 교구장으로 있을 때 설립되었다. 성공회대 총장 재직 8년간은 '등록금을 밥값으로 낭비할 수 없다'며 판공비를 반납하기도 했다.
초대 성공회 한국관구장, 성공회대 총장 등을 지낸 김 주교는 1999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지적장애인 직업재활 공동체 '우리 마을'을 설립했다. '촌장'으로서 사회에 봉사한 공로로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리는 만해대상의 평화 부문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4. 평가 및 유산
(이전 단계에서 빈 문자열이 출력되었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빈 문자열을 그대로 출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