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순 (1934년)
1. 개요
김용순은 1934년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여 2003년 사망한 북한의 정치인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강원도 인민위원회 부위원장, 원산시 인민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198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되었다. 1990년대에는 당 국제 담당 비서로서 대남 및 대외 외교를 담당하며,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에 기여했다. 2003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까지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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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용순 |
|---|---|
| 출생일 | 1934년 7월 5일 |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원군 |
| 사망일 | 2003년 10월 26일 |
| 사망지 | 평양직할시 |
| 직업 |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
| 정당 | 조선로동당 |
| 한자 | 金容淳 |
|---|---|
| 한글 | 김용순 |
| 로마자 표기 | Gim Yongsun |
| 문화어 표기 | 김용순 |
| 주요 직책 | 당 중앙위원회 위원 당 통일전선부 부장 조선반핵평화위원회 위원장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조선.일본우호친선협회 최고고문 당 비서국 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제11기 대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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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신 학교 |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국제관계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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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장 | 김일성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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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 김성 (아들, 외교관) 김란 (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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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영웅 수훈자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
공화국영웅 수훈자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20세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 -
김여정
김여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김정일과 고용희 사이에서 태어나 김정은의 여동생이며, 조선로동당 핵심 실세로 부상하여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 주요 외교 행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대외적으로 강경한 어조의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대미 압박을 주도하기도 한다. -
사회주의자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사회주의자 -
클레멘트 애틀리
클레멘트 애틀리는 1883년에 태어나 1967년에 사망한 영국의 정치가로,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승리로 이끌고 총리가 되어 주요 산업 국유화, 국민건강보험 서비스 설립, 복지 국가 건설 등 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2. 생애
김용순은 1934년 일제강점기 평안남도에서 태어났으며,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김용순의 초기 생애, 정치 경력, 대남 및 대외 관계, 사망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4년 7월 5일,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강군에서 태어났으며,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친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1955년 김일성종합대학 법학부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했다.
2.2. 정치 경력
김용순은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김일성 훈장 수훈자였다. 1979년부터 3년 동안 동료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 '재교육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설이 있다. 돈 오브도퍼에 따르면, 호탕한 성격이었으며 1980년대 중반 퇴폐적인 행동으로 인해 강등되었지만, 김정일과 여동생 김경희와의 친분 덕분에 그의 경력은 유지되었다.
1990년 5월, 당 국제 담당 비서에 취임하여 한국, 일본, 미국 등 서방 국가와의 외교 교섭을 담당했다. 1991년 2월 20일, 조선로동당 대표단의 단장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992년, 북한의 유엔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여 아널드 캔터, 리처드 솔로몬, 더글러스 P. 팔, 제임스 릴리 등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당시 최고위급의 북미 외교 회담을 가졌다. 같은 해 12월 대남 공작 담당 당 비서, 당 정치국원 후보에 취임하여 한국과의 남북 회담을 진행했다.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에 취임했고, 8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1994년 7월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1998년 11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지만, 1999년 4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복귀했다.
2000년 6월 첫 남북 정상 회담 계획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해 9월 북측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하여 포스코 시설을 시찰했으며, 1985년 허담 이후 남한을 시찰한 최초의 조선로동당 비서였다.
2001년까지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의 부장을 역임했다. 통일전선부장을 맡으면서 삼호청사의 비서도 맡았고, 공작 기관인 조선적십자회의 총괄도 담당했다. 따라서 대 한국 외교와 대 일본 외교를 혼자 담당하는 상태였으며, 북한 외무성은 이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는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에 외무성이 관여할 수 없다는 사정도 있었지만, 그가 공작 기관의 장이었기 때문에 평양을 방문하는 한국 및 일본 고위 관료 앞에 항상 김용순이 나타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2003년 6월 간부 전용 메르세데스-벤츠 S600을 타고 가던 중 군용 트럭과 충돌했다. 2003년 10월 23일, 사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입원, 10월 26일 사망했다.
2.3. 대남 및 대외 관계
김용순은 1990년 5월 당 국제 담당 비서에 취임하여 한국, 일본, 미국 등 서방 국가와의 외교 교섭을 담당했다. 1991년 2월 20일, 조선로동당 대표단의 단장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992년 북한의 유엔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하여 아널드 캔터, 리처드 솔로몬, 더글러스 P. 팔, 제임스 릴리 등 미국 국무부 관계자들과 당시 최고위급의 북미 외교 회담을 가졌다.
1992년 12월 대남 공작 담당 당 비서, 당 정치국원 후보에 취임하여 한국과의 남북 회담을 진행했다. 1993년 4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에 취임했고, 8월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에 취임했다. 1994년 7월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1998년 11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지만, 1999년 4월 다시 부위원장으로 복귀했다.
2000년 6월 김대중과 김정일 간의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개최에 큰 역할을 했다. 그해 9월, 북한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한국을 방문하여 포항시에 위치한 포스코 (포항종합제철) 시설을 시찰했는데, 이는 1985년 허담 이후 조선로동당 비서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01년까지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의 부장을 역임했다. 통일전선부장을 맡으면서 삼호청사의 비서도 겸임했고, 공작 기관인 조선적십자회의 총괄도 담당했다. 이로 인해 한국과 일본 외교를 김용순 혼자 담당하는 상태였으며, 북한 외무성은 이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는 국교를 수립하지 않은 한국과 일본에 외무성이 관여할 수 없다는 사정도 있었지만, 그가 공작 기관의 장이었기 때문에 평양을 방문하는 한국 및 일본 고위 관료 앞에 항상 김용순이 나타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2.4. 사망
2003년 6월, 간부 전용 메르세데스-벤츠 S600을 타고 가던 중 군용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26일 사망했다.
3. 일화
* 1980년대 중반 노동당사에서 서구풍 댄스 파티를 주최하여 퇴폐적 행위로 비판받고 탄광 강제 노동을 했다. 이후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와의 친분으로 복귀했다.
* 술고래로 알려진 김용순은 김정일의 파티 친구였으며, 여성 편력과 사치스러운 생활로도 유명했다.
* 아들 김성은 외교관으로, UN 주재 북한 대사를 역임했다.
* 작가 브래들리 K. 마틴에 따르면, 김용순은 여성 동료와의 불륜 문제로 1979년부터 3년간 교화소에 수용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