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적십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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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적십자회는 1946년 10월 18일 북조선적십자사로 설립되어, 한국 전쟁, 재일 조선인의 북송 사업, 이산가족 상봉, 자연재해 구호 활동 등 다양한 인도주의적 활동을 펼쳐왔다. 1956년 국제적십자위원회에 가입했으며, 1970년대부터 대한적십자사와 남북 적십자 회담을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일본인 납치 피해자 일시 귀국 지원, 용천역 열차 폭발 사고 구호, 동일본 대지진 위문 등 국제 협력 활동을 지속했다. 현재 평양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홍수 피해 구호, 의료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조선적십자회 - [정부기관]에 관한 문서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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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엠블럼
약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DPRK RCS)
설립일1946년 10월 18일
유형NGO
목적인도주의적
본부평양직할시 중구 련화1동
활동 지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 비서리호림
위원장강수린
집행 부위원장백용호
부위원장김형훈
부위원장리충복
가맹국제 적십자사 및 적신월사 연맹
웹사이트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웹사이트
자원 봉사자 수3,300명
명칭 (한국어)
한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
한자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赤十字會
로마자 표기Joseon Minjujuui Inmin Gonghwaguk Jeoksipjahoe
약칭 (한글)조선적십자회
약칭 (한자)朝鮮赤十字會
약칭 (로마자 표기)Joseon Jeoksipjahoe
활동
활동 내용인도적 지원
의료 활동
의료 교육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주의 단체 - 국제 적십자 위원회
  • 인도주의 단체 - 대한적십자사
  • 국제 적십자·적신월 운동 - 일본 적십자사
    일본 적십자사는 일본 적십자사법에 근거한 인가법인이자 국제 적십자 운동의 일원으로서, 박애사를 전신으로 하여 국내외 재해 구호, 의료 사업, 혈액 사업 등 인도주의적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 국제 적십자·적신월 운동 - 국제 적십자 위원회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단체 - 조선로동당
    조선로동당은 1945년 평양에서 창당되어 김일성이 북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위원장으로 추대된 후 여러 정당과의 통합을 거쳐 현재의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주체사상을 유일 지도 이념으로 하여 북한 사회의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단체 -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는 1955년 결성된 재일 조선인 단체로, 북한을 지지하며 교육, 금융, 언론 기관을 산하에 두고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일본 정부의 감시 대상이자 사회 갈등, 북한 관계 변화, 재정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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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10월 18일 - 전신인 북조선적십자사 설립.
* 1948년 12월 - 내각 결정에 따라 "인민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보건 위생 및 구호 단체"로 규정.
* 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 한국 전쟁에서 전시 구호 활동 실시.
* 1956년 - 적십자 국제 위원회에 75번째로 승인. (남쪽의 대한적십자사는 1955년에 74번째로 승인)
* 1959년~1984년 - 일본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송 사업 실시.
* 1970년 4월 1일 - 요도호 납치 사건으로 일본적십자사에서 승객 및 승무원의 건강과 안전 확보에 배려해달라는 전보를 받고,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확답을 회신.
* 1971년 8월 - 이산가족 문제를 주요 테마로 한 북남 적십자 회담 시작.
* 1984년 9월 - 서울·경기도 호우 수해 피해자를 위해 쌀, 천, 시멘트, 의약품 등의 구호 물품을 판문점 등에서 남측에 인도.
* 1985년 8월 - "북남 이산가족 고향 방문·예술단 공연"
*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일본 적십자에 위문금 송부.
대규모 수해 발생, 수재민 구호 활동 실시.
* 1999년 - 국제 적십자 연맹과 국내 의료 지원 공동 프로젝트 시작.
* 2000년 8월 - 제1차 북남 이산가족 상봉.
* 2002년 -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의 일시 귀국에 리호림 부서기장 등이 동행.
* 2004년
4월 22일 - 평안북도 용천군 용천역에서 열차 폭발 사고 발생, 국제 적십자와 연계하여 구호 활동 실시.
10월 -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으로 일본적십자사에 위문전을 보내고, 후에 30000USD의 위문금을 송부.
12월 26일 - 수마트라 지진으로 정부가 150000USD의 긴급 원조를 결정.
* 2005년 9월 3일 - 허리케인 카트리나미국 적십자사에 위문 서한을 보냄.
* 2006년
7월 19일 - 이산가족 상봉 사업 중단을 남측에 통고.
** 10월 18일 - 창립 60주년 기념 보고회 개최(평양시 인민대학습당).
* 2011년 -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적십자에 위문금 송부.
* 2019년 2월 4일 -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지난 몇 년간 조난된 우리 나라 선원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 주었다"며 일본 당국에 사의를 표했다고 국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2.1. 설립 초기 (1946년 ~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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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십자회는 1946년 10월 18일 "북조선적십자회"로 창립되었다. 1948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결정 제101호에 따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0년까지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1956년 5월 11일 국제적십자연맹(IFRC)에 75번째로 가입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전년인 1955년 74번째로 승인을 받았다. 북한은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했기에, 당시 거의 모든 국제기구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북한에게 적십자사 가입은 큰 상징적 중요성을 지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적십자회는 한국 전쟁 이후 지방 병원과 응급 처치소에서 국민들에게 음식, 의복, 침구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71년에는 남북 양측의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만나 악수를 나누었는데, 이는 북한 적십자회가 한반도 분단으로 헤어진 가족들의 문제에 대한 남한 대한적십자사의 공동 조사 제안을 수락하는 서신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해 말 양측 대표단 간의 예비 회담이 여러 차례 열렸고, 이후 1년 동안 약 30차례 회담을 갖고 예비 합의에 도달했으나, 1973년에는 진전이 멈추었다.

1959년부터 1984년까지 일본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송 사업을 실시하였다.

2.2. 남북 관계 및 국제 협력 (1970년대 ~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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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4월 1일 - 요도호 납치 사건으로 일본적십자사로부터 승객 및 승무원의 건강과 안전 확보를 위한 배려를 요청하는 전보를 받았고, 이후 조선적십자회는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확답을 보냈다.
* 1971년 8월 - 이산가족 문제를 주요 의제로 한 남북 적십자 회담(조선적십자회와 대한적십자사)이 시작되었다.
* 1984년 9월 - 서울·경기도 지역의 호우 피해자들을 위해 쌀, 천, 시멘트, 의약품 등의 구호 물자를 판문점 등을 통해 대한민국 측에 인도했다.
* 1985년 8월 - '북남 이산가족 고향 방문·예술단 공연'이 이루어졌다.
* 1995년
*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일본적십자사에 위문금을 보냈다.
* 국내에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여 수재민 구호 활동을 실시했다.
* 1999년 - 국내 의료 지원을 위해 국제 적십자 연맹과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2000년 8월 - 제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 2002년 - 일본인 납치 피해자 5명의 일시 귀국에 리호림 부서기장 등이 동행했다.
* 2004년
* 4월 22일 - 평안북도 용천군 용천역에서 열차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국제 적십자와 연계한 구호 활동을 실시했다.
* 10월 -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으로 일본적십자사에 위문전을 보내고, 이후 30000USD의 위문금을 보냈다.
* 12월 26일 - 수마트라 지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150000USD의 긴급 원조를 결정했다.
* 2005년 9월 3일 - 허리케인 카트리나미국 적십자사에 위문 서한을 보냈다.
* 2006년
* 7월 19일 - 이산가족 상봉 사업 중단을 대한민국 측에 통고했다.
* 10월 18일 - 창립 60주년 기념 보고회를 평양시 인민대학습당에서 개최했다.
* 2011년 -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적십자사에 위문금을 보냈다.

2.3. 최근 활동 (2010년대 ~ 현재)

* 2011년 -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적십자에 위문금을 송부했다.
* 2016년 - 창립 70주년을 기념했으며, 국제 적십자 및 적신월 운동의 해외 파트너들이 신양군을 방문하여 식량 생산 개선 프로그램과 자연 재해에 대한 지역 인식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 2019년 2월 4일 - 북한 적십자회 중앙위원회가 "지난 몇 년간 조난된 우리 나라 선원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해 주었다"며 일본 당국에 사의를 표했다고 국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3. 조직 및 활동

조선적십자회는 북한에서 홍수 피해 복구 활동에 자주 참여한다. 국제 적십자 연맹(IFRC)과 협력하여 식수 공급, 기반 시설 복구, 산사태 피해 복구, 식량 지원, 수인성 질병 예방 등 다양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삼림 벌채는 자연 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에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했을 때 구호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일본, 인도, 이란 등 여러 국가에 인도주의적 지원 및 구호 활동을 제공했다.

3.1. 조직

조선적십자회는 행정적으로 중앙, 도, 시, 군 단위의 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무총장은 리호림, 회장은 강수린, 집행 부위원장은 백용호, 부위원장은 김형훈과 리충복이다. 이 기구는 평양 중구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01년 현재 직원 수는 213명이며, 조선적십자 기금이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2013년에는 3,300명의 적십자 자원봉사자가 활동했고, 같은 해 이 단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889만 명의 북한 주민이 지원을 받았다.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의료 프로그램은 56개 도시에서 시행되었다.

조선적십자회는 평양적십자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병원은 북한에서 최고 수준으로 여겨진다.

*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지영
서기장:
** 부서기장: 리호림

3.2. 주요 활동

조선적십자회는 북한에서 발생하는 홍수 피해 복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제 적십자 연맹(IFRC)과 협력하여 식수 공급, 기반 시설 복구, 산사태 피해 복구, 식량 지원, 수인성 질병 예방 등 다양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삼림 벌채는 자연 재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984년에는 대한민국에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했을 때 구호 물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일본, 인도, 이란 등 여러 국가에 인도주의적 지원 및 구호 활동을 제공했다.

2013년 기준으로 3,300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같은 해 889만 명의 북한 주민에게 지원을 제공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의료 프로그램도 56개 도시에서 시행되었다.

조선적십자회는 평양적십자병원을 운영하며, 이 병원은 북한 내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적십자회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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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주요 활동 내용
1950년-1953년한국 전쟁에서 전시 구호 활동 실시.
1959년-1984년일본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재일 조선인의 북송 사업 실시.
1970년요도호 납치 사건 관련 일본적십자사와 협력.
1971년남북 적십자 회담 시작 (이산가족 문제).
1984년서울·경기도 호우 수해 피해 지원.
1985년북남 이산가족 고향 방문 및 예술단 공연.
1995년한신·아와지 대지진 위문금 전달, 북한 내 수재민 구호 활동.
1999년국제 적십자 연맹과 국내 의료 지원 공동 프로젝트 시작.
2000년제1차 북남 이산가족 상봉.
2002년일본인 납치 피해자 일시 귀국 지원.
2004년용천역 열차 폭발 사고 구호 활동,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 위문금 전달, 수마트라 지진 긴급 원조.
2005년허리케인 카트리나 위문 서한 발송.
2006년이산가족 상봉 사업 중단 통보, 창립 60주년 기념 보고회 개최.
2011년동일본 대지진 위문금 전달.
2019년일본 당국에 조난 선원 귀환 관련 인도적 지원 사의 표명.

4. 남북 관계에서의 역할

조선적십자회는 1971년 8월 대한적십자사와 이산가족 문제를 주요 주제로 한 회담을 시작했다. 1984년 9월에는 서울·경기도 호우 수해 피해자를 위해 미국(쌀), 천, 시멘트, 의약품 등의 구호 물품을 판문점 등에서 남측(대한민국)에 인도했다. 1985년 8월에는 "북남 이산가족 고향 방문·예술단 공연"을 진행했다.

2000년 8월에는 제1차 북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6년 7월 19일에는 이산가족 상봉 사업의 중단을 남측에 통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