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로
1. 개요
김재로는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 시대에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소론을 탄핵하고 신임사화 당시 유배를 겪었으나 영조 때 풀려나 대사간을 지냈다. 이인좌의 난을 수습하고 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청나라에 가서 《명사》를 얻어오기도 했다. 노론 청명파에 속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740년 영의정에 올라 노론의 선봉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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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 | 조선의 영의정 |
|---|---|
| 자 | 중례(仲禮) |
| 호 | 청사(淸沙) 또는 허주자(虛舟子) |
| 별호 | 해당사항 없음 |
| 아호 | 해당사항 없음 |
| 시호 | 충정(忠靖) |
| 국적 | 조선 |
| 성별 | 남성 |
| 출생일 | 1682년 |
| 출생지 | 해당사항 없음 |
| 사망일 | 1759년 |
| 사망지 | 해당사항 없음 |
| 매장지 | 해당사항 없음 |
| 본관 | 청풍 |
| 아버지 | 김구 |
| 어머니 | 해당사항 없음 |
| 배우자 | 해당사항 없음 |
| 형제자매 | 해당사항 없음 |
| 자녀 | 해당사항 없음 |
| 친인척 | 해당사항 없음 |
| 당파 | 노론 |
| 분야 | 해당사항 없음 |
|---|---|
| 스승 | 해당사항 없음 |
| 주요 제자 | 해당사항 없음 |
| 성과 | 해당사항 없음 |
| 주요 저작 | 해당사항 없음 |
| 복무 | 해당사항 없음 |
|---|---|
| 복무 기간 | 해당사항 없음 |
| 소속 | 해당사항 없음 |
| 근무 | 해당사항 없음 |
| 근무 기간 | 해당사항 없음 |
| 최종 계급 | 해당사항 없음 |
| 충성 | 해당사항 없음 |
| 주군 | 해당사항 없음 |
| 지휘 | 해당사항 없음 |
| 참전 | 해당사항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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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김씨 -
김규식
김규식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교육자, 학자로서, 미국 유학 후 독립운동과 교육에 헌신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여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망했다. -
청풍 김씨 -
김병관 (성우)
김병관은 대한민국 성우로서, 다양한 애니메이션과 외화 더빙에 참여했으며 특히 모건 프리먼, 토미 리 존스, 로버트 쇼 등의 전담 성우로 알려져 있고, 《정의의 용사 카봇》, 《나루토》, 《쇼생크 탈출》, 《죠스》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
김규식 -
6.25 전쟁
6.25 전쟁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휴전 협정으로 종결되었으며, 한반도의 분단과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한국 전쟁을 의미한다. -
김규식 -
좌우합작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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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의정 -
김홍집
김홍집은 조선 말기 온건 개화파 정치가로서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주도했으나, 친일 정책과 단발령으로 민심을 잃고 아관파천 때 살해당하며 조선 근대화에 기여했으나 일본 간섭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조선의 영의정 -
이준경
이준경은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명종 대에 영의정을 지냈고 선조 즉위 후 원상으로서 국정을 주도했으며, 을사사화 때 사림을 보호하고 을묘왜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2. 생애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716년 소론의 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경종 때 신임사화로 귀양을 갔으나, 영조 즉위 후 복권되어 김일경을 사형시키는 데 앞장섰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노론 청명파에 속했으며, 아들 김치인과 종손자 김종수는 노론 청명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1740년 영의정에 올랐고, 이후 영의정과 좌의정을 번갈아 역임하며 노론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2.1. 관직 생활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지냈다. 1716년 소론의 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경종 때 이조참의, 대사간, 개성부 유수 등을 지냈으나, 신임사화 때 귀양을 갔다. 영조 때 풀려나 대사간이 되어 소론 과격파 김일경을 사형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후 수어사, 형조참판, 이조참판, 예조참판, 부제학, 대사간, 병조참판, 대사성, 우부승지,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파직되었다가,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 목사로 기용되어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병조판서, 약방제조, 지경연사, 예문관제학, 좌참찬, 우참찬, 호조판서, 판돈녕부사, 종묘제조,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고, 경상도 관찰사와 황해도 관찰사도 지냈다.
2.2. 실록 편찬 및 학문 활동
지춘추관사로서 실록도청 당상을 겸직하면서 《경종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신임사화로 죽은 김창집, 이이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1738년 판중추부사로 청나라에 가서 《명사(明史)》를 얻어왔다. 저서로는 청사유집(淸沙遺集), 본말록(本末錄), 청사일기(淸沙日記), 예기보주(禮記補註), 경오보(庚午譜),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좌씨집선속(左氏輯選續), 금석록(金石錄), 난여(爛餘) 등이 있다.
2.3. 정치 활동 및 당파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지냈다. 1716년 옛 선비들에게 없는 죄를 거짓으로 꾸며 벌을 주었던 소론의 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하게 하였다. 경종 때 이조참의, 대사간, 개성부 유수 등을 지냈으나, 신임사화 때에 귀양을 갔었다. 영조 때 풀려나와 대사간이 되어 소론의 과격파 김일경을 사형시키게 하였다.
그는 노론 벽파에 가담한 친척 김상로, 김양로 등과 달리 노론 내 청명파에 가담하였다. 그의 아들 김치인과 종손자 김종수는 노론 청명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고 1740년 의정부영의정에 올랐고, 관직 생활의 절반은 모두 대신으로 있으면서 영의정과 좌의정을 번갈아하며 노론의 선봉자로 활약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
| 조부 | 김징 |
| 생부 | 김구 |
| 생모 | 이몽석의 딸 |
| 부인 | 심징의 딸 |
| 장남 | 김치인 |
| 형 | 김희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