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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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재로는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영조 시대에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소론을 탄핵하고 신임사화 당시 유배를 겪었으나 영조 때 풀려나 대사간을 지냈다. 이인좌의 난을 수습하고 분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며, 청나라에 가서 《명사》를 얻어오기도 했다. 노론 청명파에 속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740년 영의정에 올라 노론의 선봉으로 활약했다.

김재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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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의 초상화, 1738년(57세) 주청사(奏請使)로 북경에 갔을 때 모습
직책조선의 영의정
중례(仲禮)
청사(淸沙) 또는 허주자(虛舟子)
별호해당사항 없음
아호해당사항 없음
시호충정(忠靖)
국적조선
성별남성
출생일1682년
출생지해당사항 없음
사망일1759년
사망지해당사항 없음
매장지해당사항 없음
본관청풍
아버지김구
어머니해당사항 없음
배우자해당사항 없음
형제자매해당사항 없음
자녀해당사항 없음
친인척해당사항 없음
당파노론
기타 정보
분야해당사항 없음
스승해당사항 없음
주요 제자해당사항 없음
성과해당사항 없음
주요 저작해당사항 없음
경력
복무해당사항 없음
복무 기간해당사항 없음
소속해당사항 없음
근무해당사항 없음
근무 기간해당사항 없음
최종 계급해당사항 없음
충성해당사항 없음
주군해당사항 없음
지휘해당사항 없음
참전해당사항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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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716년 소론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경종 때 신임사화로 귀양을 갔으나, 영조 즉위 후 복권되어 김일경을 사형시키는 데 앞장섰다.

1728년 이인좌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분무원종공신 1등(奮武原從功臣一等)에 책록되었다. 노론 청명파에 속했으며, 아들 김치인과 종손자 김종수는 노론 청명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1740년 영의정에 올랐고, 이후 영의정좌의정을 번갈아 역임하며 노론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2.1. 관직 생활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지냈다. 1716년 소론의 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시켰다. 경종 때 이조참의, 대사간, 개성부 유수 등을 지냈으나, 신임사화 때 귀양을 갔다. 영조 때 풀려나 대사간이 되어 소론 과격파 김일경을 사형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후 수어사, 형조참판, 이조참판, 예조참판, 부제학, 대사간, 병조참판, 대사성, 우부승지,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재등장하자 파직되었다가,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 목사로 기용되어 난을 수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후 병조판서, 약방제조, 지경연사, 예문관제학, 좌참찬, 우참찬, 호조판서, 판돈녕부사, 종묘제조, 이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고, 경상도 관찰사와 황해도 관찰사도 지냈다.

2.2. 실록 편찬 및 학문 활동

지춘추관사로서 실록도청 당상을 겸직하면서 《경종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했고, 신임사화로 죽은 김창집, 이이명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1738년 판중추부사로 청나라에 가서 《명사(明史)》를 얻어왔다. 저서로는 청사유집(淸沙遺集), 본말록(本末錄), 청사일기(淸沙日記), 예기보주(禮記補註), 경오보(庚午譜), 천의소감언해(闡義昭鑑諺解), 좌씨집선속(左氏輯選續), 금석록(金石錄), 난여(爛餘) 등이 있다.

2.3. 정치 활동 및 당파

조선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 수찬 등을 지냈다. 1716년 옛 선비들에게 없는 죄를 거짓으로 꾸며 벌을 주었던 소론유봉휘, 정 식 등을 탄핵하여 파직하게 하였다. 경종 때 이조참의, 대사간, 개성부 유수 등을 지냈으나, 신임사화 때에 귀양을 갔었다. 영조 때 풀려나와 대사간이 되어 소론의 과격파 김일경을 사형시키게 하였다.

그는 노론 벽파에 가담한 친척 김상로, 김양로 등과 달리 노론 내 청명파에 가담하였다. 그의 아들 김치인과 종손자 김종수는 노론 청명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고 1740년 의정부영의정에 올랐고, 관직 생활의 절반은 모두 대신으로 있으면서 영의정좌의정을 번갈아하며 노론의 선봉자로 활약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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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이름
조부김징
생부김구
생모이몽석의 딸
부인심징의 딸
장남김치인
김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