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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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봉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97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했다. 숙종 말 연잉군(후일 영조)의 왕세제 책봉을 반대하고, 경종 대에는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반대하여 노론을 실각시키는 등 소론의 영수로서 정치적 입장을 펼쳤다. 영조 즉위 후 탕평책으로 우의정에 올랐으나, 신임사화의 주동자로 몰려 면직된 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유봉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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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697년(숙종) 23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정랑, 헌납, 부교리, 부수찬, 정언, 문학 등을 거쳐 부제학, 대사간, 전라도관찰사, 이조참의를 지냈다. 숙종 말기에는 도승지, 동지의금부사, 부제학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개성유수를 지냈다. 1721년(경종 1년) 노론이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려 할 때 강력히 반대하다 실패하였다. 대사헌과 우참찬 재임 중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시행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는데도 대리청정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여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2년 우부빈객, 예문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1723년 이조판서에 올랐고, 이후 홍문관제학, 병조판서를 지냈다.

1725년 영조 즉위 후 탕평책으로 노론·소론 연립 정권이 수립될 때 우의정에 올랐고, 소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좌의정까지 올랐다. 그러나 신임사화 주동자라는 노론의 집요한 공격으로 이듬해 면직, 경흥에 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2.1. 관직 생활

1697년(숙종 2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정랑, 헌납, 부교리, 부수찬, 정언, 문학 등을 거쳐 부제학, 대사간을 두루 거쳤으며, 전라도관찰사와 이조참의를 거쳐 숙종 말기에는 도승지, 동지의금부사, 부제학을 지냈고, 외직으로 개성유수를 지냈다. 1721년(경종 1) 사직으로 있을 때 노론이 중심이 되어 왕의 아우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자 할 때 강력히 반대하다가 실패하였다. 대사헌과 우참찬을 지낼 때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는데도 대리청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이를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2년 우부빈객(右副賓客)이 되고, 예문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1723년 이조판서로 승진하였다. 이후 홍문관제학, 병조판서를 지냈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한 뒤 탕평책으로 노론·소론의 연립 정권이 수립될 때 우의정이 되었고, 이어 소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동자라는 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 이듬해 면직되었고, 경흥에 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2.2. 왕세제 책봉 및 대리청정 반대

1721년(경종 1) 노론이 중심이 되어 왕의 아우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자 할 때 강력히 반대하다가 실패하였다. 이후 대사헌과 우참찬을 지낼 때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는데도 대리청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2.3. 소론의 영수

1697년(숙종 23)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정랑, 헌납, 부교리, 부수찬, 정언, 문학 등을 거쳐 부제학, 대사간, 전라도관찰사, 이조참의를 지냈다. 숙종 말기에는 도승지, 동지의금부사, 부제학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개성유수를 지냈다. 1721년(경종 1) 사직으로 있을 때 노론이 중심이 되어 왕의 아우인 연잉군(延仍君)을 왕세제로 책봉하고자 할 때 강력히 반대하다가 실패하였다. 대사헌과 우참찬을 지낼 때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는데도 대리청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극간해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2년 우부빈객(右副賓客)이 되고, 예문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1723년 이조판서로 승진하였다. 이후 홍문관제학, 병조판서를 지냈다.

2.4. 영조 즉위와 신임사화

경종 1년(1721년) 사직으로 있을 때 노론이 중심이 되어 왕의 아우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하고자 할 때 강력히 반대하다가 실패하였다. 대사헌과 우참찬을 지낼 때 그 뒤 왕세제의 대리청정이 실현되자, 소론의 영수로서 왕이 병을 앓지 않은데도 대리청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극간해 철회시키고 노론을 실각시켰다. 1722년 우부빈객(右副賓客)이 되고, 예문관제학, 예조판서를 거쳐 1723년 이조판서로 승진하였다. 이후 홍문관제학, 병조판서를 지냈다.

영조 즉위 후인 1725년 탕평책으로 노론·소론의 연립 정권이 수립될 때 우의정이 되고 이어 소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 우의정이 되고 좌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신임사화를 일으킨 주동자라는 노론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 이듬해 면직되었고, 경흥에 안치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3.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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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내용
할아버지유성오 (유준의 장남, 유속의 양자)
아버지유상운 (1636 ~ 1707)
어머니전의 이씨 (이행원의 딸)
부인함안 조씨 (조근의 딸)
장남유필원
자부파평 윤씨 (윤정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