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인
1. 개요
김치인은 조선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 인물이다. 영조 재위 기간 동안 정언, 승지, 대사간,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고, 공조, 이조, 호조, 형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정존겸 관련 상소 사건으로 유배를 가기도 했다. 이후 정조의 신임을 받아 다시 영의정을 역임하고 영중추부사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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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6년 출생 -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
18세기 프랑스의 조각가 에티엔 모리스 팔코네는 르무아네의 제자가 되어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대리석 및 도자기 조각상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러시아에서 표트르 1세의 기마상을 제작하고 예술 이론에도 기여했지만 과장된 경향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
1716년 출생 -
원매 (청나라)
원매는 청나라 중기의 시인이자 미식가, 수필가로 자연의 성정을 중시하는 성령설을 주창하여 새로운 시풍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으며, 은거 생활을 하며 수원식단, 자불어, 수원시화 등 다양한 저술을 남기고 여성 문학을 옹호하며 여제자들을 길러내는 등 진보적이면서도 데카당스적인 면모를 보였다. -
1790년 사망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정치가, 과학자, 발명가, 작가, 출판인, 외교관으로서 미국 독립 선언문 초안 작성, 프랑스와의 군사 동맹 체결, 피뢰침과 프랭클린 스토브 발명, 전기에 대한 연구,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 출판, 사회 개혁 활동, 필라델피아 도서관 설립, 미국 헌법 제정 참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기며 미국 건국과 계몽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790년 사망 -
요제프 2세
요제프 2세는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종교적 관용, 농노 해방, 교육 개혁 등 여러 개혁을 추진했으나 저항에 직면했고, 그의 개혁 이념인 요제프주의는 이후 오스트리아 개혁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
조선의 좌의정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좌의정 -
김홍집
김홍집은 조선 말기 온건 개화파 정치가로서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후 개화사상을 수용하고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을 주도했으나, 친일 정책과 단발령으로 민심을 잃고 아관파천 때 살해당하며 조선 근대화에 기여했으나 일본 간섭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 생애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전적, 정언, 문경어사, 지평, 호남어사 등을 역임하고, 이후 정언, 겸문학, 부교리, 교리, 좌찬득, 부수찬, 낭청 등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승지, 좌승지, 대사간을 거쳐 비국부제조를 겸임했으며, 대사성, 부제학, 예조참의,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경기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중앙 정치에 복귀하여 공조판서, 이조판서, 호조판서, 지돈녕부사, 형조판서를 지냈다. 우의정에 올라 약방도제조, 도제조를 겸했고, 좌의정으로 승진했다가 판부사로 물러났다. 다시 우의정으로 복귀하여 도제조, 내국 도제조를 겸하며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나, 정존겸 관련 상소 사건으로 유배되었다. 판부사, 영의정, 영경연사를 거쳐 홍봉한 관련 사건으로 귀양을 갔다가 풀려났다. 영중추부사, 봉조하를 역임하고, 고부정사와 진주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정조의 신임을 받아 다시 영의정에 임명되었고, 이후 영중추부사로 물러났다.
2.1. 관직 생활 초기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정언, 문경어사, 지평, 호남어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정언, 겸문학, 부교리, 교리, 좌찬득, 부수찬, 낭청 등 청요직을 두루 거쳤다.
2.2. 중앙 요직 진출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좌승지, 대사간을 거치며 비국부제조를 겸임하였다. 이후 대사성, 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치고 부제학으로서 이조참판이 되었다. 경기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가, 이조참판으로 중앙 정치에 복귀했다.
2.3. 판서 및 정승 반열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좌승지, 대사간, 대사성, 부제학, 예조참의를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다. 이후 공조판서, 이조판서, 호조판서, 지돈녕부사를 역임했다. 형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약방도제조와 도제조를 겸했다. 좌의정으로 승진했다가 판부사로 물러났으나, 다시 우의정에 복귀하여 도제조를 겸하며 내국 도제조로서 영조의 신임을 받았다. 이후 다시 좌의정에 올랐다가 도제조를 শেষে 판부사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