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갑
1. 개요
김제갑은 김방경의 후손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으며, 1553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충청도관찰사 겸 순찰사, 원주목사를 역임하며 영원산성 전투에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아들, 부인과 함께 전사했다. 사후 이조판서 등에 추증되었고, 숙종 때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렬사 등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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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우승지 -
이경억
이경억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1644년 문과 장원 급제 후 효종과 현종 시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우의정과 좌의정까지 올라 국정을 총괄했고, 시호는 문익이다. -
조선의 우승지 -
이후원
이후원은 조선시대 인물이며, 그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으로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
1525년 출생 -
장거정
장거정은 명나라 만력제 시기의 정치가이자 개혁가로, 수보의 자리에 올라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여 명나라의 재정을 안정시키고 국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비판을 받기도 했다. -
1525년 출생 -
다키가와 이치마스
다키가와 이치마스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이세국 공략, 나가시마 포위전, 나가시노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다케다 가쓰요리 토벌에 공을 세우고 간토 어취차역에 임명되었으나, 혼노지의 변 이후 호조 씨족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한 후 승려가 되어 은퇴하였다. -
임진왜란 참전 군인 사망자 -
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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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참전 군인 사망자 -
김성일 (1538년)
김성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이황의 제자이며,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일본의 침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하여 임진왜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병사, 경상도 초유사,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다.
2. 생애
김제갑은 김방경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종사랑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증직된 김언묵(金彦黙)이며, 아버지는 진사로 영의정에 추증된 김석(金錫)이다. 김시민(金時敏)의 삼촌이며 김충갑(金忠甲)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다.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555년 홍문관정자, 병조좌랑, 정언, 충청도관찰사, 창성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88년 평안도 지역 국경 방어 강화책의 일환으로 창성 부사에 임명되었으나, 70세에 가까운 늙은 문관을 보내는 것은 불가하다는 병조판서 정언신(鄭彦信)의 반대로 해임되었다. 1592년 충청도관찰사 겸 순찰사와 원주목사를 지냈다.
1592년 7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모리 요시나리가 원주 영원산성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으나, 험한 지세를 믿고 방심하다가 적의 습격을 받아 아들 김시백, 부인 이씨와 함께 전사했다. 사후 이조판서 겸 경연·홍문관·예문관 대제학, 의금부·성균관·춘추관사에 추증되었고, 아들 김시백은 통정대부 호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숙종 때인 1711년 영의정에 추증되고 정려를 받았으며, 원주의 충렬사,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김방경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종사랑을 지내고 이조 참판에 증직된 김언묵(金彦黙)이며, 진사로 영의정에 추증된 김석(金錫)의 아들이다. 김시민(金時敏)의 삼촌이며 김충갑(金忠甲)의 동생이다. 형 김충갑과 함께 유학자 퇴계 이황의 문인이었다.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1555년 홍문관정자와 병조좌랑, 정언, 충청도관찰사, 창성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588년 평안도 지역 국경 방어 강화책의 일환으로 특별히 창성 부사(昌城府使)로 임명되었지만, 70세에 가까운 늙은 문관을 보내는 것은 불가하다는 병조판서 정언신(鄭彦信)의 반대로 해임되었다. 1592년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겸 순찰사(巡察使)와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지냈다.
2.2. 임진왜란과 영원산성 전투
1592년 7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모리 요시나리가 원주 영원산성으로 쳐들어오자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험한 지세를 믿고 잠깐 방심하였다가 적의 습격을 받아 아들 김시백, 부인 이씨와 함께 전사했다.
2.3. 사후 추증 및 평가
임진왜란 당시 영원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직후, 이조판서 겸 경연·홍문관·예문관 대제학, 의금부·성균관·춘추관사에 추증되었고, 아들 김시백은 통정대부 호조참의로 증직되었다.
숙종 때인 1711년에는 영의정에 추증되고 정려를 받았으며, 원주의 충렬사와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김제갑은 김방경의 후손으로, 김시민의 삼촌이자 김충갑의 동생이다. 형 김충갑과 함께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 1588년 창성 부사로 임명되었으나 정언신의 반대로 해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영원산성 전투에서 관군과 의병을 이끌고 항전했으나, 왜군의 기습으로 아들, 부인과 함께 전사했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증조부 | 김수형(金壽亨) | |
| 조부 | 김언묵(金彦黙) | |
| 아버지 | 김석(金錫) | |
| 어머니 | 행주 기씨 | 기형(奇逈)의 딸 |
| 형 | 김충갑(金忠甲) | 1515년 출생 |
| 누나 | 안동 김씨 | 1518년 출생, 성주 이씨 수찬(修撰) 이휘(李煇)의 처 |
| 형 | 김효갑(金孝甲) | 1520년 출생 |
| 형 | 김우갑(金友甲) | 1522년 출생 |
| 여동생 | 안동 김씨 | 1528년 출생, 한양 조씨 충의위(忠義衛) 조항(趙沆)의 처 |
| 남동생 | 김인갑(金仁甲) | 1534년 출생 |
| 정부인 | 윤효사(尹孝思) | 1524년 출생, 좌의정 윤개(尹漑)의 딸 |
| 장녀 | 김현상(金賢詳) | 1544년 출생 |
| 차녀 | 김연상(金延祥) | 1553년 출생 |
| 장남 | 김시헌(金時獻) | 1560년 출생, 1613년 사망 |
| 며느리 | 남양 홍씨 | 홍성민(洪聖民)의 딸 |
| 계부인 | 전주 이씨(全州 李氏) | 1548년 출생, 1592년 사망, 진천군(晉川君) 이옥정(李玉貞)의 차녀 |
| 차남 | 김시백(金時伯) | 1572년 출생, 1592년 사망 |
| 3녀 | 김경개(金景介) | 1577년 출생 |
| 4녀 | 김경진(金景進) | 1585년 출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