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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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호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및 지도자이다. 선수 시절에는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복무하며 1964년부터 1968년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제일모직, 해병대, 상업은행 축구단의 창단 멤버로 활동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1970년 아시안 게임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동래고등학교, 한일은행, 현대 호랑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전 시티즌 등에서 감독직을 수행하며,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대전 시티즌 대표이사로 재직했으나, 구단 운영과 관련한 논란으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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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축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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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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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44년 11월 24일 |
출생지 | 통영시, 경상남도, 한국, 일본 제국 |
신장 | 1.77m |
포지션 | 센터백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통영중학교 진주 고등학교 동래 고등학교 |
클럽 | 제일모직 (1964–?) 해병대 (징병) (?–1967) 양지 (1967) 제일모직 (1968) 상업은행 (1969–1973) |
국가대표 | 대한민국 (1966–1972) |
국가대표 출장 | 84회 |
국가대표 골 | 0골 |
감독 경력 | |
감독 | 한일은행 (1982–1987) 대한민국 B (1987) 현대 호랑이 (1988–1990) 대한민국 (1992–1994)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5–2003) 대전 시티즌 (2007–2009) |
수상 내역 | |
아시안 게임 | 금메달 (1970 방콕, 축구) |
AFC 아시안컵 | 은메달 (1972 태국, 팀) |
2. 선수 경력
대한민국 해병대 사병으로 복무했으며, 1966년부터 1972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했다.[2] 선수 시절에는 제일모직 축구단, 해병대 축구단, 상업은행 축구단 등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상업은행 축구단의 창단 멤버이기도 했다.[1] 국가대표로서는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우승에 기여했다.[2]
2. 1. 클럽 경력
대한민국의 해안 도시인 통영시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 나이가 되어 통영고등학교에 진학했으나 축구부가 없어, 프로 선수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다음 해 진주고등학교로 전학했다. 하지만 진주에서 슬럼프를 겪은 후, 다시 부산의 동래고등학교로 전학했다. 김호는 동래고등학교 감독 안종수의 영향을 받아 대학 진학 대신 세미프로 구단인 제일모직 축구단에 입단했다.[1]현역 시절에는 세미프로 선수로서 제일모직 축구단, 해병대 축구단, 상업은행 축구단 등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상업은행 축구단의 창단 멤버였다. 대한민국 해병대 사병으로 복무하며 해병대 축구단에서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 2. 국가대표팀 경력
1965년 대한민국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으며, 1966년부터 1972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선수 시절 주요 성과는 1970년 방콕 아시안 게임 우승이다.원래 포지션은 오른쪽 풀백이었으나, 센터백으로 뛰면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빠른 발과 거친 수비가 특징이었으며, 함께 중앙 수비를 맡았던 김정남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었다.[2] 1970년대 한일전에서는 멕시코 올림픽 득점왕인 차범근과의 대결에서 한 골도 내주지 않는 수비력을 보이기도 했다.
현역 은퇴 후, 1992년 7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대표팀을 이끌었으나, 조별 리그에서 1무 2패로 탈락하며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당시 스페인과는 2-2로 비겼고,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독일을 상대로는 0-3으로 뒤지다 2-3까지 추격하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김호는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1975년 모교인 동래고등학교에서 감독직을 시작했으며, 이후 상업은행 코치를 거쳐 1983년에는 한일은행 감독으로 부임하여 1987년까지 활동했다. 한일은행 감독 시절 팀을 실업축구리그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1988년에는 현대 호랑이의 사령탑을 맡으며 프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부임 첫해 리그 준우승을 차지하며 팀 재건에 기여하는 듯했으나, 이후 성적 부진으로 1990년 시즌 후 사임했다.
1992년 7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전임 감독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 스페인과 비기고 독일을 상대로 추격전을 벌이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2무 1패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월드컵 최고 성적이었다.
월드컵 이후 신생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8년간 팀을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K리그 2회, FA컵 1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2회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수원을 아시아 정상급 클럽으로 만들었다. 또한 고종수, 김두현 등 젊은 선수들을 발굴하여 '김호의 아이들'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3] 2003년 말 수원을 떠났다.
2007년 7월, 대전 시티즌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하여 팀 역사상 최초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31] 그러나 이듬해 대대적인 선수단 리빌딩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하위권의 부진한 성적을 거두었고, 2009년 시즌 중반 에이전트 비리 연루 의혹 및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불명예 퇴진했다.[4]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고향 통영에서 모교 통영중학교 축구부 총감독으로 활동했으며, 2015년 6월에는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용인에서는 미흡한 일처리 능력과 도덕적 해이 등으로 논란이 일었고,[32] 2016년 용인시의회에서 퇴진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33]
2017년에는 과거 갈등이 있었던 대전 시티즌의 사장으로 임명되었으나, 지인 위주의 선수 및 코칭 스태프 선임 등으로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구단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5][6] 결국 많은 비판 속에 2019년 팀을 떠났다.[7][8]
3. 1. 초기 경력
선수 은퇴 후, 김호는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5년 모교인 동래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았고, 1983년에는 세미프로 구단인 한일은행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김호 감독의 지휘 아래 한일은행은 실업축구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 리그인 K리그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일은행은 1987년 다시 실업팀으로 전환했고, 김호 감독은 1987년까지 팀을 이끌었다.1988년, 김호는 조중연 감독의 후임으로 K리그 구단인 현대 호랑이의 사령탑에 오르며 프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당시 현대 호랑이는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사건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호 감독은 부임 첫해인 1988년 팀을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부임 초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후 성적은 좋지 못했다. 1989년에는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고, 울산으로 연고지를 옮긴 첫 해인 1990년에는 6개 팀 중 5위에 그쳤다. 결국 1990년 성적 부진으로 사임했고, 1991년 시즌을 앞두고 팀을 떠났다.
3. 2. 울산 현대 호랑이
1988년 조중연 감독의 후임으로 현대 호랑이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프로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당시 현대 호랑이는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 사건으로 팀 해체 선언 후 번복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었으며,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김호 감독은 부임 첫해인 1988년 팀을 K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팀을 부활시키는 듯했으나, 이듬해인 1989년에는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 팀이 울산으로 연고지를 정착한 첫해인 1990년에도 6개 팀 중 5위에 머무르며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1991년 시즌을 앞두고 사임하였다.3. 3.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1992년 7월,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으로 정식 계약을 맺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미국에서 열린 1994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첫 경기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2-2로 비겼다. 그러나 볼리비아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기면서 조별 예선 탈락 위기에 놓였다. 마지막 독일과의 경기에서는 전반전을 0-3으로 뒤졌으나 후반에 2골을 만회하며 2-3까지 따라붙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독일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다음 라운드 진출에는 실패했다.
최종 성적은 2무 1패로, 이는 2002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최고 성적이었다. 월드컵 종료 후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 4.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4년 FIFA 월드컵이 끝난 후, 김호는 새로 창단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3] 그는 8년 동안(1994년~2003년) 수원을 이끌면서 K리그 우승 2회(1998년, 1999년), FA컵 우승 1회, 리그컵 우승 4회, 슈퍼컵 우승 2회,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아시안 슈퍼컵 우승 2회 등 총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3] 이러한 성과를 통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아시아 최강팀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특히 1998년과 1999년에는 K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2년 연속 K리그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김호는 성적뿐만 아니라, "김호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는 젊은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3] 고종수, 김두현 등 그가 키워낸 선수들 중 상당수는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K리그에서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3]
2003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고,[3] 2004년 차범근에게 감독직을 넘겨주고 수원을 떠났다.
3. 5. 대전 시티즌
2004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감독직을 차범근에게 넘기고 야인으로 지내던 김호는 2007년 7월 최윤겸 감독 폭행사건으로 어수선했던 K리그1 대전 시티즌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되었다. 부임 첫 해 팀 역사상 최초로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31]그러나 2008년 시즌을 앞두고 팀의 노장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선수단을 구성하는 대대적인 리빌딩을 단행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감독 통산 200승을 기록하고 '명예 대전시민'으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리그에서는 단 3승만을 거두며 13위라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2009년에도 시즌 초반 부진이 이어졌고, 여기에 김호와 가까운 관계였던 구단 에이전트가 횡령 혐의로 물의를 빚는 등[4] 에이전트 비리 사건을 비롯한 구단과의 마찰 끝에 시즌 중반 감독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당시 김호는 구단주와 함께 팀을 떠났다.[4]
감독직에서 물러난 지 약 10년 후인 2017년, 김호는 다시 대전 시티즌으로 돌아와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과거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원칙 없이 자신의 지인들을 감독, 에이전트, 선수 등으로 기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시 대전 시티즌은 대전 시의 소유로 운영되었고, 구단의 재정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었기에 이러한 행보는 더욱 큰 비판을 받았다.[5][6] 결국 김호는 많은 비판 속에서 2019년 대전을 떠났다.[7][8] 당시 구단 감독이자 김호의 제자로 알려진 고종수는 다음 해 법정에 서기도 했다.[9] 김호는 대전 시티즌에서 감독과 사장으로 활동하며 여러 논란을 일으켜 축구계에서 쌓아온 명성에 흠집을 남겼다.[4]
4. 행정가 경력
2017년 11월 1일 대전 시티즌의 대표 이사로 선임되어 약 10년 만에 대전으로 복귀했다. 그는 과거 용인시축구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이기범을 대전의 감독으로 내정했다.[34]
그러나 대전 팬들은 김호가 과거 용인시축구센터에서의 논란과 더불어 불미스럽게 대전을 떠났던 점을 들어 그의 대표 이사 선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또한, 2017시즌 중반 예정된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구단주가 바뀔 경우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대표 이사의 입지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김호는 감독 경력이 없는 이기범의 선임을 취소하고 자신의 제자였던 고종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는 선수 시절 인지도가 높은 고종수를 내세워 이기범 선임으로 인한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김호는 감독, 코치, 사무국장, 유소년 지도자까지 자신의 측근들로 주요 보직을 채웠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전지훈련 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측근 인사인 에이전트 K씨가 운영하는 AI스포츠를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전시에서 유소년팀 지원 예산을 추가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이유 없이 유소년 지도자와의 계약을 미루고 결국 지도자 수를 줄이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을 보여 축구계의 집단 반발과 팬들의 큰 비난을 샀다. 이에 반발한 팬들은 '대전시티즌 비상대책위원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35]
선수단 운영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브루노를 포함한 일부 선수들에게 12월 중순부터 계약 해지를 강요하고 숙소 입소 및 훈련에서 배제하면서, 해당 선수 7~8명이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에 제소하는 일이 벌어졌다.[36]
이 외에도 선수단 규모를 60명 가까이로 무리하게 늘리고, 이기범 전 감독 내정자의 아들인 이지호를 영입하는 등의 행보로 팬들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이러한 김호의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기도 했다.[37][38]
2018년 4월 14일 아산 무궁화 FC와의 경기 종료 후에는 심판에게 욕설을 하고 심판실에 난입해 고성을 지른 사실이 알려져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39]
2018시즌 종료 후, 대전 시티즌 이사회 직원 다수가 김호의 사임을 촉구하며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고, 김호의 방만한 구단 운영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대전 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는 '김 호 사장 책임론'을 제기하며 예산 1.7억원을 삭감했고, 김호가 약속했던 경영 개선 방안 보고를 이행하지 않은 채 이사진을 상대로 설명을 계획하고 선수 모집에 나서자 사실상 시의회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국 시의회는 예결특위를 열어 대전시티즌이 요청한 추가경정예산 6억원 전액을 삭감하며 김호의 사퇴를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40]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인 선수 선발 테스트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41] 결국 대전시는 선수 선발 과정에서의 부정 의혹 등을 이유로 대전 시티즌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42]
잇따른 논란과 압박 속에서 김호는 결국 2019년 2월 17일 대표 이사직에서 사퇴했다.[43]
5. 그 외
- 선수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형이 전사하였다.[44]
-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던 1993년 북한전 전반전이 끝난 뒤,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라커룸에서 당시 선수였던 홍명보를 폭행한 사실이 알려졌다.[45]
- 2008년 5월, 대전 시티즌 감독 시절 통산 200승 달성을 앞두고 큰아들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해 아들이 크게 다치고 며느리와 손자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200승을 달성한 뒤 "며느리와 손자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 2010년 지방 선거를 앞두고 무소속 김두관 경상남도지사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선거 운동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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