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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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홍명은 일본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 한국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스에서 활동했다. 요코하마 상고 야구부 투수 시절 '점보 미야기'라는 애칭으로 불렸으며, 고시엔 4강 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0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1군에서 통산 3패만을 기록하고 방출되었다. 1988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여 8승을 기록했으며, 이후 통산 30승 31패를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정치 활동과 사회인 야구 코치로 활동했으며, 재일 교포 위장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홍명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명미야기 히로아키(NPB), 김홍명(KBO)
원어명Hiroaki Miyagi, Kim Hong-Myeong
국적 일본
출생지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쓰루미구
신장193
체중98
수비 위치투수
투구
타석
선수 경력
프로 입단 연도1981년(일본), 1988년(한국)
드래프트 순위드래프트 3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첫 출장NPB / 1983년 4월 13일
KBO / 1988년
마지막 경기NPB / 1985년 6월 29일
KBO / 1992년
경력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1981 ~ 1987)
빙그레 이글스 (1988 ~ 1992)
코치 경력
코치 경력지바 넷케쓰 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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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 프로야구 시절

* 1983년 4월 1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5회말 1사,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2/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 1983년 4월 2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5차전 (고라쿠엔 구장) 6회말에 마키하라 히로미를 상대로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 1983년 8월 25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19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 첫 선발 등판했으나, 3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 1983년 10월 15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25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7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노무라 오사무를 상대로 첫 홈런을 기록했다.

2.1. 요코하마 상고 시절

요코하마 상고 야구부 투수로 활동했으며, '점보 미야기'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979년 고시엔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키 193cm, 몸무게 100kg의 압도적인 체격을 자랑했으며, 이는 다르빗슈 유 (195cm)가 등장하기 전까지 고시엔 역사상 최장신 투수 기록이었다.

요코하마시에서 라멘 가게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좌투로 교정되었다. 츠루미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2명의 프로 야구 선수를 삼진으로 잡아낼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고, 10개 이상의 고등학교 야구부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중 요코하마 상업고등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9년, 여름 고시엔 현 예선 결승에서 요코하마고의 에이스 아이코 츠요시를 상대로 승리하며 팀을 41년 만에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시켰다. 비록 경기 후 왼쪽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본 대회에서는 변화구 위주의 투구로 팀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준결승에서는 이시이 타케시, 시마다 무네히코가 배터리를 이룬 미시마고에 아쉽게 패배했다.

2.2.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절

1980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로부터 3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3cm의 장신으로 "점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큰 체격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프로에서는 어정쩡한 구속으로 1군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통산 3패의 기록으로 방출되었다. 1983년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으나, 이후 왼쪽 팔꿈치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85년에는 양손으로 세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1987년 오프 시즌에 야쿠르트에서 자유 계약 선수가 된 후, 요코하마 다이요 호에루스 입단 테스트를 받았으나 불합격했다.

3. 한국 프로야구 시절 (빙그레 이글스)

1988년 김영덕 감독의 부름을 받고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는 코치를 제외하고 재일 교포 선수만 외국인 선수로 뛸 수 있었기에, 재일 교포로 위장하여 입단했다. 실질적으로 최초의 "재일 교포가 아닌 일본인 선수"였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빙그레 이글스에서 활동하며 통산 30승 31패를 기록, 승리보다 패배가 한 개 더 많은 기복이 있는 투수였다. 연도별 성적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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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단등판선발완투완봉승리패전세이브홀드승률타자투구 이닝피안타피홈런사사구고의 사구사구탈삼진폭투보크실점자책점평균자책점WHIP
1988년빙그레2422718130--.381656151.215887264613175724.271.52
1989년232050680--.429552125.211976336780065564.011.45
1990년342000830--.727493112.010656451491054423.381.52
1991년19800330--.50026955.17643234340042365.861.95
1992년19800540--.55627561.06973210302047436.341.66
KBO: 5년1197812130310--.4922245505.2528312631815252612832494.431.56


1990년까지 송진우를 제외하면 팀 내에서 귀한 좌완 선발 투수였으나, 1991년부터 송진우가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1992년 시즌 후 계약이 종료되어 일본으로 돌아갔다.

4. 은퇴 후

이른 나이에 야구계를 떠난 김홍명은 일본으로 돌아가 정계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스포츠 선수 출신들이 많았던 스포츠평화당 시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자민당으로 옮겼다. 2003년에는 고향인 요코하마 시의원 선거에 자민당 공천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07년부터는 사회인 야구 클럽 팀 지바 넷케츠 MAKING의 헤드 코치로 취임했다. 또한, 이와 병행하여 야쿠르트 구단 OB회인 츠바메 스포츠 진흥 협회에서 야구 교실 강사도 담당하고 있다.

5. 재일 교포 위장 논란

2003년 일본 주간지 '슈칸 베이스볼'은 김홍명이 실제로는 재일 교포가 아니며, 당시 한국 야구계의 허술한 규정을 이용해 한국계 행세를 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로 인해 KBO와 빙그레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2016년 한국 언론의 취재에서도 미야기 히로아키가 한국계 김홍명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 구단은 코치를 제외하고 재일 교포가 아니면 입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카우트가 김홍명을 재일 교포로 위장하여 빙그레에 입단시켰다. 이는 실질적으로 "재일 교포가 아닌 일본인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에 들어온 첫 사례였다.

6. 출신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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