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빗슈 유는 일본인 어머니와 이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 야구 선수로, 오사카부 하비키노시 출신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며, 2004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입단하여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약했다. 2012년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하며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고, 이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카고 컵스를 거쳐 현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는 투구 스타일과 뛰어난 수비 능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으며, 국제 대회에서도 일본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또한,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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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다르빗슈 쇼 (동생) KENTA (동생) 야마모토 세이코 (아내) 야마모토 이쿠에이 (장인) 미유 (처형) 야마모토 "KID" 노리후미 (처남) 사에코 (전 부인) 야마모토 아르센 (조카)
다르빗슈 유는 일본인 어머니 이쿠요와 이란인 아버지 파르사드 다르빗슈 세파트 사이에서 오사카부하비키노시에서 태어났다.[6] 다르빗슈의 아버지는 1977년 이란을 떠나 미국에서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축구를 했으며, 에커드 칼리지에서 이쿠요를 만났다.[7][8][9][10][11][12]
다르빗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하비키노 보이즈 소속으로 전국 대회 8강, 국제 대회 동메달을 획득했다. 중학교 재학 중 50곳이 넘는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며, 도호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13]
아내는 전 여자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인 야마모토 세이코이다.[156]이란테헤란 출신 아버지 파르사드 다르빗슈 세파트와 미국 유학 중 만난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157] 아버지는 이란 야구 연맹 고문을 맡고 있다. 다르빗슈는 2010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무슬림이 아님을 밝혔다.[158] 2015년 야마모토 세이코와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으며,[159] 2016년 정식 부부가 되었다.[160] 전 부인은 탤런트사에코이며, 동생은 다르빗슈 쇼, KENTA이다.[161][162]
2. 1. 프로 입단 전
다르빗슈 유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젠 하비키노 보이즈' 소속으로 전국 대회 8강, 세계 대회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50곳이 넘는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도호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시엔 대회에서 여성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으며,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195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강속구는 당시 150km/h에 육박했다.
2학년 봄과 여름, 3학년 봄과 여름, 총 4차례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다. 2학년 여름 대회 결승전에서는 사카 가쓰히코가 있는 조소가쿠인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했다. 3학년 봄에는 구마모토현립 구마모토 공업고등학교를 상대로 고교 야구 대회 사상 12번째이자 10년 만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178][179] 마지막 대회인 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3차전에서 지바 경제대학 부속 고등학교에 패했지만, '고교생 No.1 투수'로 불렸다.
2004년 9월에는 흡연 사진이 주간지에 게재되어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으로부터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7일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가 다르빗슈 유를 단독 1순위로 지명했다. 12월 17일, 계약금 1억엔, 연봉 1500만엔, 성과급 5000만엔의 조건으로 가계약을 맺었다. 이는 고졸 신인으로서 마쓰자카 다이스케, 데라하라 하야토 이후 최고 조건이었다.
다르빗슈 유는 전년도 12월 자율 트레이닝 중 다친 오른쪽 무릎 관절염의 영향으로, 1월 신인 합동 자율 트레이닝에서 닥터 스톱을 받아 스프링 캠프를 2군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사진 주간지에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흡연한 사실이 보도되자, 구단 측은 2월 21일 가마가야시에 있는 구단 기숙사로 다르빗슈를 송환하고 무기한 근신 처분과 함께 근신 중 사회 봉사활동을 명령했다. 2월 28일 12개 구단 합동 신인 연수회에는 참석했다. 도호쿠 고등학교는 2월 22일 정학 처분을 내렸고, 3월 1일 졸업식은 정학 처분 기간 중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3월 8일 정학 해제 후 다른 학생들보다 1주일 늦게 졸업했다.[17]
이후 2군에서 재활 훈련을 계속하면서 5월 5일 2군 경기에 첫 등판했고, 이후 완봉승도 기록했다. 6월에는 1군으로 승격, 첫 등판이자 첫 선발 경기인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여 14경기에 등판, 완봉승을 포함해 5승 5패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서는 연봉 2배인 3000만엔에 서명했다.[464]
2. 2. 1. 2005년
2월에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출발이 늦어졌고 개막 초부터 4월까지는 평균자책점 5.16, WHIP 1.45를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5월 30일 이후 정규 경기에서 10연승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까지 단 한 번도 패전 투수가 되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규정 투구 횟수를 채우는 등 평균자책점 2.89와 12승 5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7월 7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인보이스 세이부 돔)에서는 야기 도모야의 유니폼을 빌려 등판하는 등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면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날 닛폰햄은 팀의 전신인 도에이 플라이어스가 1961년 9월에 달성한 이래 팀 11연승(당시 구단 타이기록)이 걸려있는 경기였다. 게다가 그 때 본인은 “여기서 진다면 최악입니다”라고 발언했다.[465] 시즌 종반을 앞둔 시점에서 쓰루오카 신야와 배터리를 짜는 일이 많아지면서 2007년 중반 이후부터는 다르빗슈 유가 등판할 시의 포수는 거의 쓰루오카로 고정되어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세컨드 스테이지(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전) 제1차전에 선발로 나서 11탈삼진과 1실점 완투로 승리 투수가 되었고, 이후 센트럴 리그 우승팀인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첫 경기에서 선발을 맡았지만 6이닝 3실점을 기록하면서 패전 투수가 된다. 3승 1패로 접어든 5차전에 또다시 선발 등판해, 7과 1/3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팀은 44년 만에 통산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그 활약에 의해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을 수상했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중화 타이베이 대표팀인 라뉴 베어스와의 결승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0탈삼진 무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어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44년만의 두 번째 일본 시리즈 우승과 아시아 시리즈 제패에 기여하며 팀의 새로운 에이스 투수로 성장했다. 재계약 갱신에서는 3,000만엔으로부터 4,200만엔이 상승한 72억엔에다가 성과급 지불에 서명했다.[466]
2. 2. 2. 2006년
2006년 시즌 다르빗슈 유는 15승 5패, 평균자책점 1.82, WHIP 0.83, 피안타율 1할 7푼 4리를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완투는 12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12개였다. 시즌 막바지에는 나루세 요시히사와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지만 0.003점 차이로 타이틀을 놓쳤다. 하지만 이마나카 신지 이후 14년 만에 7개 항목을 모두 채워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수상했다. 이외에도 최다 탈삼진, 골든 글러브상, 베스트 나인 타이틀을 차지했다. 팀의 리그 2연패에 크게 기여하며 퍼시픽 리그 MVP로 선정되었는데, 21세의 MVP는 사와무라 에이지, 이나오 가즈히사의 20세에 이은 최연소 기록이었다.[468]
시즌 중에는 처음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고, 8월 9일 삿포로 돔에서 열린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승리 투수가 된 후 인터뷰에서 여배우 사에코와의 결혼을 발표했다.[467]
2. 2. 3. 2007년
3월 20일, 2년 연속 두 번째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아 지바 롯데를 상대로 1대 0 완봉승을 거두었다. 10개의 삼진을 빼앗아 개막전을 1대 0으로 완봉하고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한 것은 사상 최초였다.[470] 전년도 이상의 페이스로 승수를 쌓으며 시즌 전반기부터 최다승,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라쿠텐의 이와쿠마 히사시와 타이틀 경쟁을 펼쳤다. 시즌 첫 맞대결인 4월 10일에는 양쪽 모두 5회까지 노히트 피칭을 이어갔고, 이와쿠마가 투구수 100개의 3피안타 1실점 완투, 다르빗슈는 투구수 95개의 3피안타 완봉으로 이와쿠마와의 투수전 끝에 승리했다. 7월 17일, 도쿄 돔에서 열린 라쿠텐전에서는 투구수 89개의 10탈삼진 무볼넷 완투로 11승째를 올렸다.[471] 그러나 전반기 마지막 등판인 7월 24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165개의 완투에도 불구하고 만루 홈런을 허용하는 등 5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 리그 첫 경기인 쿠바전에 등판했지만 4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 다르빗슈는 트레이드 마크인 장발을 깎고 삭발한 모습으로 경기장에 나타났다.[472]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해라”라고 강요당한 다나카 마사히로도 삭발을 했고, 다나카는 “저를 길동무 삼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르빗슈의 머리를 직접 민 사람은 가와사키 무네노리였고, 다음날에는 다르빗슈와 다나카에 이어 가와사키와 아베 신노스케도 삭발을 하고 경기장에 나타났다.[473] 그러나 이 첫 경기에서 호시노 감독의 신뢰를 잃어 메달이 걸린 결승 토너먼트 준결승 선발 자리도 박탈당했다. 결국 그 후 등판은 소화 경기였던 예선 리그 최종전 미국전 선발과 3위 결정전 미국전 패전 처리로 등판했다.
소속팀 복귀 후 5경기에서 선발 등판해 2개의 완투를 포함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1.29, WHIP 0.66이라는 호투를 보이며 지바 롯데와의 3위 경쟁을 펼쳤고, 결국 닛폰햄이 지바 롯데를 4위로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2경기에 등판, 1실점 14탈삼진 완투와 3피안타 완봉으로 2승, 평균자책점 0.50을 기록했다. 그 해에는 투수 부문 주요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평균자책점, 최다승, 최다 탈삼진 모두 리그 2위를 기록, 올림픽 이탈 기간이 있었음에도 투구 이닝과 탈삼진은 2년 연속 200개를 넘었고 평균자책점은 2년 연속 1점대, WHIP도 1.00 이하를 기록했다. 사와무라상 선정 기준에서도 2년 연속 전 항목을 달성했지만 시즌 21승을 기록한 이와쿠마가 단독 수상자가 되면서 2년 연속 사와무라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기준 전 항목을 달성하고도 사와무라상을 받지 못한 것은 기준이 제정된 1982년 에가와 스구루 이후 두 번째였다(1982년에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한 기타벳푸 마나부도 기준 전 항목을 달성했지만, 이와쿠마는 완투 수가 선정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제1 스테이지(오릭스 버펄로스 전)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9이닝 14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었다.[474] 이 중요한 정규 시즌 후반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포크볼, 투심 패스트볼을 모두 해제하여 직구는 최고 속도 153km/h를 기록했다. 또, 이 경기에서 승리한 14개의 탈삼진은 일본 시리즈를 포함한 포스트시즌 사상 최다 기록이었다. 패하면 세이부에게 사활이 걸리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2 스테이지 2차전에 선발 등판, 우타자가 많은 세이부 타선의 몸쪽을 파고드는 투심 패스트볼을 많이 던지면서 그 해 타선이 강력했던 세이부 타선을 3안타 완봉승으로 막아냈다.[475] 3피안타는 포스트시즌 사상 최소 기록이었다.
12월 1일 계약 갱신에서는 7000만엔 증가한 연봉 2.7억엔에 추가 성과급에 바로 서명했는데, 프로 5년차로서는 일본 야구계 사상 최고 연봉이었다.[476] 12월 19일(일본 시간 12월 20일)에는 여배우 사에코와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 시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에는 다르빗슈의 아버지, 같은 해 3월에 태어난 장남과 가족 외에도 후지이 슈고, 가와사키 무네노리, 니시오카 쓰요시, 아오키 노리치카, 그리고 세이부 우승 기념 여행 중이던 와쿠이 히데아키, 나카지마 히로유키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12월 22일, 다르빗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2억엔에 인센티브를 더한 조건으로 재계약했는데, 이는 2006년보다 1.28억엔이 증가한 금액이었다. 21세의 다르빗슈는 일본 야구 역사상 2억엔을 돌파한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2. 2. 5. 2009년
3월 20일, 4년 연속 개막전 투수를 맡아 소프트뱅크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147구를 던져 13탈삼진으로 사상 5번째 4시즌 연속 개막전 완투를 달성했지만 5실점(3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481][482] 세 번째 경기에서 간신히 첫 승리를 올렸고, 4월 17일 세이부전까지 5경기 연속 두 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웠다(13K → 11K → 11K → 12K → 10K).
4월 24일 라쿠텐전부터 5월 21일 요코하마전까지 31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 종전 개인 최다 기록인 25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경신했다. 5월에는 WHIP 1.23, 평균자책점 0.90으로 호투했지만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1승 2패에 그쳤다. 오른쪽 무릎 통증으로 6월 5일 선발 등판을 피했지만,[483] 6월 12일 주니치전에서 7이닝 무실점 호투로 5월 1일 이후 첫 승리 투수가 되었다. 7월 3일 라쿠텐전에서는 자신의 최고 구속 154km/h를 경신하는 155km/h를 기록했고,[484] 7월 17일 라쿠텐전에서는 156km/h를 기록하며 연달아 개인 최고 구속을 경신했지만 7이닝 3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어 6월 12일부터 이어온 연승 기록은 5연승에서 멈췄다.[485]
전반기에는 9승 5패, 평균자책점 1.56, WHIP 1.04, 143탈삼진을 기록했고, 4년 연속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7월 23일 1차전에서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 원심, 고속 체인지업 등 새로운 구종을 선보이며 2이닝 1실점(무자책점)으로 호투했다.[486] 후반기에는 69이닝 동안 3승 3패, 평균자책점 2.22, WHIP 0.95, 79탈삼진을 기록했다.
시즌 내내 안정된 투구를 이어갔지만, 규정 투구 이닝을 채운 투수 중 리그 최악에서 3위인 득점지원을 받는 등 타선 지원 부족으로 12승에 그치며 개인 최악의 8패를 당했고, 4년 연속 WHIP 1.00 이하 기록도 놓쳤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처음으로 200이닝을 달성했다. 222탈삼진으로 최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고, 1959년 이나오 가즈히사 이후 4년 연속 평균자책점 1점대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최고 평균자책점 타이틀도 차지했다. 같은 이닝을 평균적인 투수가 던졌을 때보다 실점을 얼마나 막았는지 나타내는 RSAA에서도 1959년 이나오 가즈히사 이후 프로 야구 사상 두 번째로 4년 연속 40점 이상을 달성했다.
시즌 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영입 자금으로 8000만달러(약 65.6억엔)를 준비하는 등[487]포스팅 시스템을 통한 메이저 리그 진출이 예상되었지만, 10월 19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닛폰햄 잔류 의사를 밝혔다. 계약 갱신과 관련해서는 전년도까지 총액 8억엔에 추가 성과급이 붙는 3년 계약에서 성과급 없는 단년 계약을 맺고, 현역 일본인 선수 최고 연봉인 5억엔에 서명했다. 24세에 5억엔을 달성한 것은 1998년 오프 시즌 오릭스 소속 이치로의 25세 기록을 경신한, 사상 최고 속도이자 최연소 기록이며, 선발 투수로서 5억엔 돌파도 일본 프로 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488]
2. 2. 6. 2010년
4월 12일, 닛폰햄 구단 역사상 최다 기록인 5년 연속 개막전 투수를 맡았다. 4월 26일 소프트뱅크전에서 개인 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고[489], 5월 10일 라쿠텐전에서는 이와쿠마 히사시와의 투수전 끝에 승리 투수가 되면서 15개의 탈삼진으로 완봉 승리를 거두었다.[490]
6월 15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3회말 2사 3루 상황에 아라이 다카히로에게 던진 공이 폭투가 되면서 3루 주자 맷 머턴이 홈을 밟아 5월 10일 라쿠텐전부터 이어져 온 연속 무실점 기록이 46⅔이닝에서 멈췄다. 이 기록은 프로 야구 역대 11위이자, 현역 선수 중에서는 후지카와 규지에 이어 2위에 해당하며, 4경기 연속 완봉으로 퍼시픽 리그 신기록 달성에는 실패했다. 교류전에서는 43이닝 1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0.21을 기록하며 역대 1위에 올랐다. 6월 30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개인 최고 속도인 56경기 만에 10승을 달성했다. 전반기에는 13승 2패, 평균자책점 1.44, 탈삼진 140개를 기록했고, 팬 투표와 선수간 투표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5년 연속이자 통산 5번째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후반기에는 5승 4패, 평균자책점 1.43, 탈삼진 136개를 기록했고, 최종적으로는 개인 최다인 232이닝을 던져 개인 최고 평균자책점 1.44, 최다승인 18승을 기록했다. WHIP는 선발 투수 중 최소인 0.83이었고, 1993년 노모 히데오 이후 처음으로 시즌 250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야구계 최초로 5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FA를 신청했음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밝혔고[491],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양키스 등도 영입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12월 20일 텍사스 레인저스가 포스팅 시스템 사상 최고 금액인 51703411USD로 교섭권을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2. 2. 7. 2011년
다르빗슈는 2010년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2011년에도 파이터스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밝혔다.[41]
2. 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다르빗슈는 2011년 12월,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선언했다.[54]텍사스 레인저스가 5,170만 달러의 최고 입찰액을 제시하며 다르빗슈와의 독점 교섭권을 획득했고,[56] 2012년 1월 18일, 6년 총액 6000달러의 계약에 합의했다.[57] 등번호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과 같은 11번을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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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9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 첫 선발 등판하여 5⅔이닝 8피안타 5실점 5탈삼진 5사사구를 기록했지만,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58] 4월 24일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는 구로다 히로키와의 맞대결에서 8⅓이닝 7피안타 무실점 10탈삼진 2볼넷으로 호투하며 시즌 3승을 달성했다.[60] 4월 한 달간 5경기에 등판해 4승 무패, 평균자책점 2.18, WHIP 1.42의 뛰어난 성적으로 아메리칸 리그 이달의 신인상을 수상했다.[496]
5월 2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에서는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5이닝을 투구하며 미일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497] 전반기 16경기에서 10승 5패, 평균자책점 3.59, WHIP 1.36의 성적을 기록하며 올스타전 최종 투표를 통해 2012 MLB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되었다.[498]
메이저 리그 첫 시즌, 다르빗슈는 29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6승 9패, 18번의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다.[499] 이후 2017년 시즌 중반까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한 다르빗슈는, 트레이드를 통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이적하게 된다.
2. 3. 1. 2012년
2012년 4월 3일, 다르빗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마지막 타자 마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아시아 투수 최초의 퍼펙트 게임 달성에 실패했다. 7-0으로 앞선 상황에서 안타를 맞은 다르빗슈는 곧바로 교체되었고, 8.2이닝 1안타 14탈삼진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는 1991년 놀란 라이언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가 한 경기에서 14개의 삼진을 잡아낸 첫 사례였다.[367]
2. 3. 2. 2013년
2013년 4월 3일, 다르빗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9회 2아웃까지 퍼펙트 게임을 이어갔으나, 마지막 타자 마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아시아 투수 최초의 퍼펙트 게임 달성에 실패했다.[53] 8.2이닝 동안 1안타 14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고, 1991년 놀란 라이언 이후 텍사스 레인저스 투수로는 처음으로 한 경기 14탈삼진을 기록했다.[53]
같은 해, 텍사스 레인저스 사장 놀란 라이언은 다르빗슈가 타자를 2스트라이크로 몰아넣고도 빠른 공의 제구 미스로 기회를 놓치는 점을 지적하며 빠른 공 계열의 제구력 문제를 언급했다. 하지만, 컵스로 이적한 후에는 투구 템포를 조절하고 컷 패스트볼의 구사율을 높이면서 제구력이 크게 향상되어 볼넷 허용이 줄었다. 다르빗슈는 투구 템포를 늦추면서 자신의 투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타자와의 승부에도 더 신중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2013년 4월 2일, 다르빗슈는 슬라이더를 던져 마윈 곤잘레스에게 안타를 허용하기 전까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8⅔이닝 동안 퍼펙트 게임을 펼쳤다.[63] 그는 111개의 공을 던져 14개의 삼진을 잡고 볼넷은 한 개도 허용하지 않았다.[64]5월 27일, 다르빗슈는 메모리얼 데이까지 100개의 삼진을 기록한 2002년의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 이후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65]7월 10일, 다르빗슈는 승모근 염좌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맷 무어가 올스타 로스터를 대체했다. 8월 12일,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다가 카를로스 코퍼런에게 홈런을 허용했다. 다르빗슈는 그 경기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15개의 삼진을 잡았고 텍사스는 2-1로 승리했다. 시즌이 끝날 무렵, 그는 이닝 동안 277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또한, 아니발 산체스, 이와쿠마 히사시, 바톨로 콜론에 이어 아메리칸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2.83으로 4위를 차지했다. 평범한 13승 9패의 승패 기록에도 불구하고, 다르빗슈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맥스 슈어저에 이어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14년 6월 30일 조정을 위해 주 무기인 팔과 반대쪽인 왼팔로 캐치볼을 하는 다르빗슈
2. 3. 4. 2015년
다르빗슈는 2014년 시즌 첫 등판에서 4월 6일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데이비드 데이저스와 윌 마이어스를 삼진으로 잡아 통산 500번째 탈삼진을 기록했다. 이닝 만에 500개의 삼진을 달성하여, 케리 우드의 이전 기록보다 3이닝 앞선 메이저 리그 최단 이닝 기록을 세웠다.[66][67][68] 레인저스는 다르빗슈가 7이닝 무실점으로 6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3-0으로 승리했다.
5월 9일, 다르빗슈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7회까지 노히터를 기록했지만, 데이비드 오티스에게 안타를 허용했다.[69] 이 안타는 처음에는 실책으로 판정되어 9회까지 노히터가 유지될 뻔했지만, 오티스가 그 이닝에서 안타를 기록하면서 무산되었다.[70]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은 이후 득점 판정을 번복하여 7회에 노히터를 종료시켰다.
6월 11일, 다르빗슈는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첫 완봉승을 거두었다. 6개의 안타와 3개의 볼넷을 허용하고 10개의 삼진을 잡아냈다.[71] 7월 6일에는 2014년 MLB 올스타전에 출전 선수로 선발되어 3회에 등판, 세 타자를 모두 처리했다.
2. 3. 5. 2016년
다르빗슈는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동안 오른쪽 삼두근에 통증을 느꼈다. 이후 MRI 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가 파열된 것으로 확인되어, 2015년 시즌 전체를 결장하게 되었다.[72] 그는 2015년 3월 17일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으며, 수술은 제임스 앤드류스 박사가 집도했다.[73]
2. 3. 6. 2017년
2017년 7월 말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어 류현진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2017년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호투하며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승리투수가 되었고, 팀을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시켰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는 3차전과 7차전에 선발등판했지만 2경기 모두 1.2이닝으로 조기강판되는 등, 총 3.1이닝 9실점을 기록, 극심하게 부진하여 3선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결국 팀은 월드시리즈에서 3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77]
2. 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17년)
2017년 7월 말 류현진과 한솥밥을 먹게 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78] 다저스에서 9번의 선발 등판에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3.44를 기록했다.[79]2017년 전체 시즌을 합산하면, 다르빗슈는 두 팀에서 31번 선발 등판하여 10승 12패, 209 탈삼진, 12개의 폭투(메이저 리그 7위),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80]
2017년 시즌 중 다저스에서의 다르빗슈
포스트시즌에서 그는 2017년 NLDS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로 5이닝 동안 1실점하며 7개의 탈삼진을 기록, 승리투수가 되었다. 또한 2017년 NLCS에서도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6⅓ 이닝 동안 1실점, 7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2017년 월드 시리즈에서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두 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2회를 채우지 못했다. 그는 두 경기 모두 패했고, 3⅓이닝 동안 9실점(8자책)을 기록했으며 단 한 명의 타자도 삼진으로 돌려세우지 못했다.[81] 이는 그의 경력에서 가장 짧은 두 번의 선발 등판이었으며, 다르빗슈는 1960년 월드 시리즈의 아트 디트마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 2이닝 미만의 선발 등판을 두 번 기록한 최초의 선발 투수가 되었다.[82] 월드 시리즈 직후, 익명의 애스트로스 선수는 다르빗슈가 투구 사인을 노출했다고 주장했다.[83] 다저스 팀 동료 체이스 어틀리는 다르빗슈의 3차전 선발 등판을 평가한 결과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지만, 다르빗슈는 7차전을 위해 접근 방식을 변경했다. 한 달 이상 지난 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에서 애스트로스가 다르빗슈가 어떻게 투구 사인을 노출하는지 알아냈다고 밝혔다. "다르빗슈는 포수로부터 사인을 받을 때 공을 옆구리에 든다. 그가 글러브로 공을 가져갈 때 다시 잡는지 여부가 슬라이더/커터 또는 패스트볼을 던질지 여부를 알려주는 단서였다." 이 익명의 애스트로스 선수는 애스트로스가 3차전에 앞서 이를 알고 있었고, 3차전에서도 승리했지만, 7차전을 위한 더 나은 게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84]
시즌 후, 다르빗슈는 선수 경력 최초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다저스가 우승을 놓치게 했다고 많은 팬들이 비난한 실망스러운 월드 시리즈 등판으로 인해 다저스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85][86]
2020년 1월 13일 애스트로스가 2017년 MLB 포스트시즌 동안 카메라를 사용하여 포수-투수 간 사인을 훔친 혐의로 징계를 받은 후, 다르빗슈는 자신의 부진한 등판에 대해 사인 훔치기를 탓하지 않고, 대신 2017년 애스트로스 타자들이 재능이 있다고 주장했으며, 다저스가 우승 퍼레이드를 열면 "유 쓰레기(Yu Garbage)" 유니폼을 입겠다고 트위터에 유머러스하게 게시했다.[85][86]
2. 5. 시카고 컵스 시절 (2018년 ~ 2020년)
2018년 컵스 스프링 트레이닝 중의 다르빗슈
2018년 2월 13일, 다르빗슈는 시카고 컵스와 6년 1.26억달러 계약을 체결했다.[87] 2018년 3월 31일 마이애미 말린스를 상대로 컵스 소속으로 첫 경기를 치렀는데, 이닝 동안 5실점했고, 컵스는 연장 10회에서 10-6으로 승리했다.[88] 5월 7일, 다르빗슈는 독감으로 1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89] 5월 26일에는 오른쪽 상완 삼두근 건염으로 다시 10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90] 2018년 8월 19일, 다르빗슈는 재활 등판을 시작했지만, 2회 초 워밍업 도중 트레이너를 불러 경기를 중단했다.[91] MRI 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에 스트레스 반응과 상완 삼두근 염좌가 발견되어 2018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92] 그는 8경기, 40이닝을 소화하며 1승 3패, 평균자책점 4.95를 기록했다.[80]
2019년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31번의 선발 등판에서 6승 8패, 평균자책점 3.98, 225탈삼진을 기록했다.[93] 그는 33개의 홈런을 허용하여 내셔널 리그 최다를 기록했고, 11개의 폭투를 던져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았으며, 11명의 타자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켜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았다.[94]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단축된 2020 시즌에서 다르빗슈는 8승 3패,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80] 그는 내셔널 리그에서 승리, 평균자책점, 9이닝당 볼넷(1.658) 및 9이닝당 홈런(0.592)에서 1위를, WHIP(0.961)에서 4위, 승률(.727)에서 5위, 9이닝당 피안타(6.987)에서 7위, 9이닝당 탈삼진(11.013)에서 8위를 기록했다.[95]
2. 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2021년 ~ 현재)
2021년부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활동한 다르빗슈 유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연도
등판
선발
완투
완봉
무사구
승리
패전
세이브
홀드
승률
타자
투구 이닝
피안타
피홈런
사구
고의사구
사구
탈삼진
폭투
보크
실점
자책점
평균자책점
WHIP
2021
30
30
0
0
0
8
11
0
0
.421
681
166.1
138
28
44
1
8
199
9
0
81
78
4.22
1.09
2022
30
30
0
0
0
16
8
0
0
.667
771
194.2
148
22
37
0
12
197
4
1
67
67
3.10
0.95
2023
24
24
0
0
0
8
10
0
0
.444
574
136.1
134
18
43
0
8
141
1
1
71
69
4.56
1.30
2024
16
16
0
0
0
7
3
0
0
.700
331
81.2
65
12
22
0
3
78
2
0
32
30
3.31
1.07
2024년 5월 19일(일본 시간 20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프로 야구''' 통산 '''200승'''(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107승, 일본 야구 기구 93승)을 달성했다.[152] 이는 노모 히데오, 구로다 히로키를 포함한 통산 200승 달성자 27명 중에서 '''모두 선발 승리'''로 달성한 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일본 시대에 구원 등판이 3경기 있었지만 모두 승패 없음. 구로다의 선발 199승을 넘어섰다).
호시노 센이치 감독에 의해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지명된[112] 다르빗슈는 8월 13일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 예선 라운드에서 쿠바를 상대로 첫 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4이닝 동안 4실점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113] 이 부진한 투구로 인해 호시노 감독은 그에 대한 믿음을 잃었고, 그를 준결승전 선발에서 제외했으며, 토너먼트에서 일본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만 다르빗슈를 등판시켰다. 다르빗슈는 8월 20일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미국을 상대로 선발 등판했으며, 미국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결정적인 리드를 잡은 후 마무리를 위해 등판했다. 최종 성적은 0승 1패, 평균자책점 5.14(7이닝 동안 10탈삼진 기록)로 대회를 마쳤다.
다르빗슈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일본 국가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114] 3월 5일 중국과의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나서 4이닝 동안 볼넷 1개만을 허용하고 무안타 3탈삼진으로 호투하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3월 17일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는 5이닝 동안 4피안타 1볼넷 3실점(2자책)으로 부진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115]
6일 후, 다르빗슈는 준결승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마지막 이닝을 무실점 1피안타 2탈삼진으로 막아내며 생애 첫 세이브를 기록, 일본의 9-4 승리에 기여했다.[116]
결승전에서 다르빗슈는 일본이 3-2로 앞선 9회말에 대한민국을 상대로 구원 등판했다. 그는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으나, 이후 두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허용했고, 다음 타자를 삼진 처리했지만 2사 상황에서 동점 적시타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이닝을 끝냈다. 일본은 10회초에 2점을 추가하며 5-3으로 다시 앞서나갔고, 다르빗슈는 10회말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이후 세 타자를 모두 잡아내며(그 중 2명은 삼진) 일본의 대회 2연패를 확정지었다.[117]
다르빗슈는 이 대회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2.08, 13이닝 동안 20탈삼진을 기록했다. 특히 구원 등판 당시에는 개인 통산 최고 구속인 159km/h를 기록하기도 했다.[118]
신장 195cm의 장신에서 나오는 최고 구속 159km/h의 강속구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커터, 투심 패스트볼(슈트), 원심 패스트볼 등 다채로운 변화구를 던진다.[500] 구종 모두 평균 이상의 수준을 갖추고 있으며, 너클볼이나 싱커도 던질 수 있지만 2007년 이후 정규 경기에서는 던지지 않았다.
신인 시절에는 싱커를 결정구로 사용했지만, 2006년부터 체인지업, 포크볼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싱커를 거의 던지지 않다가 2007년에 완전히 봉인했다. 2007년부터 커터와 세로 슬라이더, 2008년부터는 SFF를 던지기 시작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는 버디 칼라일에게 배운 떨어지는 패스트볼인 원심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이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처음으로 원심을 던진 일본인 투수의 사례이다.[500] 같은 해 6월 19일 오릭스전에서는 140km/h대의 고속 체인지업을 던졌는데,[501] 이는 직구에 가까운 구속으로 떨어져 타자가 직구와 혼동하기 쉽고, 기존 체인지업보다 제구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501]
볼넷 비율은 2008년에 1.97을 기록했지만, 2010년까지 통산 2.58을 기록했다. 시라이 가즈유키는 "세밀한 컨트롤은 당시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더 좋았다"라고 평가하며, "투구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야외 구장에서의 승률이 낮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특히 QVC 마린필드에서는 제구력 문제를 드러내며 2008년 4월 30일까지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시즌에는 야외 구장에서 3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1.13, 2010년에는 48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56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다르빗슈는 섀도우 피칭을 통한 투구폼 교정을 하지 않는 등 독자적인 조정법을 사용한다. 닛폰햄 수석 트레이너 나카가키 세이이치로는 "체감적, 공간적 위치를 본인 감각으로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다. 내부 감각에 의한 신체운동 구현력이 뛰어나다"라고 평가했다.[502] 몸의 좌우 밸런스를 위해 오른팔이 아닌 왼팔로도 캐치볼을 하며, 변화구나 60미터 정도의 멀리 던지기도 가능하다.
2021년 파드리스의 다르빗슈
2012년 레인저스 소속 다르빗슈
다르빗슈는 드롭 앤 드라이브 동작으로 3/4 암 슬롯에서 공을 던지는 오른손 투수이다.[120] 6피트 5인치(약 196cm), 220파운드(약 100kg)의 큰 체격을 가지고 있다. 평균 93~95마일(최고 99마일[121][122][123][124])의 포심 패스트볼과 80마일 초반대의 날카로운 슬러브(슬라이더)를 구사한다.[122][125][126] 이 외에도 투심 패스트볼(슈토라고도 함),[127] 커터, 두 종류의 커브볼,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128] "빠른 커브"와 "느린 커브"를 던지는데, 전자는 평균 약 80마일, 후자는 약 71마일이다. 느린 커브는 주로 볼 카운트가 유리할 때, 빠른 커브는 주로 2스트라이크 카운트에서 사용된다.[129] 일부 프로 스카우트들은 다르빗슈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전체에서 최고의 슬라이더를 포함한 최고의 구종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122] 2019년 8월, 다르빗슈는 크레이그 킴브렐에게 너클 커브를 배우고 사용하기 시작했다.[130]
다르빗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자주 던지는 투구 시퀀스를 변경하는 경향이 있어, 사전 스카우팅이 어렵다.[131]
다르빗슈는 세트 포지션과 와인드업 포지션을 모두 사용하지만, 주자가 없을 때조차도 세트 포지션에서만 투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32] 다르빗슈의 경우, 세트 포지션은 종종 투구 폼을 동기화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사용된다.[132]
2006 시즌 전, 다르빗슈의 "주력" 구종은 스크루볼이었고, 패스트볼보다 변화구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2006년 2월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국가대표팀과의 시범 경기에서 스크루볼로 인해 부상을 입은 후, 스크루볼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스플리터를 개발하여 스크루볼을 대체했다. 그는 또한 해마다 패스트볼 속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19 시즌에 그는 10개의 다른 구종을 사용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움직임을 가진 커터, 포심과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스플리터, 일반 커브와 슬로우 커브, 너클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 2020년, 그는 트위터를 통해 스플리터와 투심 패스트볼의 하이브리드인 '최고의 구종'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 구종은 93마일에 달할 수 있다.[134] 다르빗슈는 새로운 구종을 자신의 무기에 추가하기 위해, 종종 사전에 거의 정보 없이 새로운 구종을 실전에서 사용하며, 이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한다.[135]
2008년 시라이 카즈유키는 "세밀한 컨트롤은 당시 마쓰자카 쪽이 아직 좋다"는 평가를 받았으며[403], MLB 스카우트로부터는 "컨트롤(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능력)은 평균 이상인 반면, 커맨드(노린 곳에 던지는 능력)는 평균적"[404] "투구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405]"라고 평가받았다[407]。 다르빗슈 본인도 "커맨드는 원래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MLB에서는 꼭 필요한 기술이므로, 어떻게 하면 향상될지 생각하면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408]。
컵스 시절에는 투수 코치의 조언에 따라 "투구 템포를 빠르게 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으로 제구가 안정되면서 사사구가 격감했다. 다르빗슈 본인도 "미국(MLB)에 와서 많은 코치들이 가능한 한 빨리 던지려고 했지만, 나에게는 잘 되지 않았다. 템포를 빨리 하려고 하면 자신의 투구에 집중할 수 없게 되어, 사사구가 많아진다"라고 말했다.
5. 에피소드
다르빗슈 유는 2017년 월드 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두 번 선발 등판했지만, 모두 2회를 채우지 못하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두 경기 합계 3⅓이닝 동안 9실점(8자책)을 기록했고, 삼진은 하나도 잡지 못했다.[81] 이는 다르빗슈의 경력에서 가장 짧은 두 번의 선발 등판이었으며, 1960년 월드 시리즈의 아트 디트마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 2이닝 미만의 선발 등판을 두 번 기록한 최초의 선발 투수가 되었다.[82]
월드 시리즈 직후, 익명의 애스트로스 선수는 다르빗슈가 투구 사인을 노출했다고 주장했다.[83] 그러나 다저스 팀 동료 체이스 어틀리는 다르빗슈의 3차전 선발 등판을 평가한 결과 그렇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다르빗슈는 7차전을 위해 접근 방식을 변경했다. 한 달 이상 지난 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에서 애스트로스가 다르빗슈가 투구 사인을 노출하는 방식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다르빗슈는 포수로부터 사인을 받을 때 공을 옆구리에 든다. 그가 글러브로 공을 가져갈 때 다시 잡는지 여부가 슬라이더/커터 또는 패스트볼을 던질지 여부를 알려주는 단서였다."라고 설명했다.[84]
시즌 후, 다르빗슈는 선수 경력 최초로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고, 다저스가 우승을 놓치게 했다고 많은 팬들이 비난한 실망스러운 월드 시리즈 등판으로 인해 다저스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85][86]
2020년 1월 13일, 애스트로스가 2017년 MLB 포스트시즌 동안 카메라를 사용하여 포수-투수 간 사인을 훔친 혐의로 징계를 받은 후, 다르빗슈는 자신의 부진한 등판에 대해 사인 훔치기를 탓하지 않고, 대신 2017년 애스트로스 타자들이 재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저스가 우승 퍼레이드를 열면 "유 쓰레기(Yu Garbage)" 유니폼을 입겠다고 트위터에 유머러스하게 게시했다.[85][86]
2022년 9월 2일, 다르빗슈는 통산 3,000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노모 히데오에 이어 이 기록을 달성한 두 번째 일본인 투수가 되었다.[99]
2023년 2월 9일, 다르빗슈는 파드리스와 6년 1억 800만 달러의 계약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100]
2023년 8월 14일, 다르빗슈는 통산 1,919개의 삼진을 잡아내, 노모 히데오를 넘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일본 출신 투수 통산 삼진 1위가 되었다.[101]
2024년 5월 20일, 다르빗슈는 MLB와 NPB를 합산하여 통산 200승을 기록했으며, 구로다 히로키와 노모 히데오만이 그보다 앞서 있다.[106]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일본 대표팀으로 출전했지만, 팀은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다르빗슈는 3경기에 등판하여 0승 1패, 평균자책점 5.14를 기록했다.[360]
2009년 제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일원으로 우승에 기여했다. 그는 5경기에 등판하여 2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2.08, 20탈삼진을 기록했다.[362]
2023년 제5회 WBC에서도 일본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5. 1. 가족 관계
다르빗슈 유는 이란테헤란 출신의 아버지 다르빗슈 세파트 파르사(Farsad Darvishsefat)와 미국 유학 중 만나게 된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57] 아버지 파르사는 전 축구 선수로, 모국 이란의 "이란 야구 연맹" 고문을 맡고 있으며 사업도 폭넓게 하고 있다. 다르빗슈의 아버지가 공동 경영하는 자이렉스(오사카시스미노에구)는 "다르빗슈"라는 명칭의 상표를 출원하여 등록했다.[157] 다르빗슈는 시아파무슬림이 다수인 이란 출신 아버지와는 달리, 본인은 무슬림이 아님을 2010년 9월 1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밝혔다.[158]
2015년에는 격투가 야마모토 세이코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159] 처음에는 사실혼 관계였지만, 2016년에 혼인 신고를 하여 정식 부부가 되었다.[160]
다르빗슈 유의 전 부인은 탤런트사에코이다. 전 종합 격투가 다르빗슈 쇼 (Dark翔)[161], 전 배우 KENTA는 남동생이며, 전 격투가 야마모토 KID 노리후미는 의붓 형, 전 격투가 야마모토 미유는 의붓 누나, 미유의 친아들인 야마모토 아센은 친척 관계이다.[162]
5. 2. 야구계
다르빗슈 유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여 '젠 하비키노 보이즈' 소속으로 전국 대회 8강, 세계 대회 3위의 성적을 거두었다.[169] 50개 이상의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도호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고시엔 대회에서 여성 팬들에게 주목받는 인기 선수였다.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로 활약하며 195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최고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던졌다.[174] 2학년 봄과 여름, 3학년 봄과 여름, 총 4차례 고시엔 대회에 출전했다. 2학년 여름 대회 결승전에서는 사카 가쓰히코가 있는 조소가쿠인 고등학교에 패해 준우승했고, 3학년 봄에는 구마모토 공업고등학교를 상대로 고교 야구 대회 사상 12번째이자 10년 만의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178][179] 마지막 대회인 제86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3차전에서 지바 경제대 부속 고등학교에 패했지만, '고교생 No.1 투수'로 불렸다.
고교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구분
등판
투구회
탈삼진
평균자책점
통산 성적
67
332 1/3
375
1.10
고시엔 대회 통산 성적은 다음과 같다.
구분
등판
완투
완봉
투구회
탈삼진
사사구
자책점
승
패
평균자책점
통산
12
7
4
92
87
27
15
7
3
1.47
선발
4
2
1
30
29
7
9
2
1
2.70
선수권
8
5
3
62
58
20
6
5
2
0.87
2004년 9월 흡연 사진이 주간지에 실려 고교 야구 연맹으로부터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11월 17일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가 다르빗슈 유를 단독 1순위로 지명했다. 12월 17일 계약금 1억엔, 연봉 1500만엔, 성과급 5000만엔의 조건으로 가계약했다. 이는 고졸 신인으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데라하라 하야토 이후 최고 조건이었다.
신인 시절에는 미성년 흡연으로 구단에서 근신 처분을 받는 등 프로 의식 부족이 지적되기도 했지만, 감독과 코치의 지도로 개선되었다. 입단 2년차 이후에는 금연하고 식단과 훈련 내용을 철저히 관리하는 등 자기관리에 힘썼다.
노무라 가쓰야 등 많은 야구계 관계자들이 현역 최고 투수로 인정했으며, 다쓰나미 가즈요시는 "지금까지 여러 투수와 대결했지만 종합적으로 넘버원의 투수가 아닙니까"라고 평가했다.
다르빗슈는 스리쿼터[368]에서 평균 구속 152.9 km/h, 최고 구속 159 km/h의 강한 패스트볼과 다양한 슬라이더[371], 컷볼(커터), 커브[372], 포크볼 (스플리터), 체인지업 등 다채로운 변화구를 구사한다.[373][374]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해 '젠 하비키노 보이즈'(전 하비키노시 선발 연식야구팀) 소속으로 전국 대회 8강, 세계 대회 3위에 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여성 팬들에게 주목받았으며, 1학년 가을부터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다.
2004년 9월 흡연 사진이 주간지에 게재되어 일본 고등학교 야구 연맹으로부터 엄중 주의 처분을 받았다.
2005년 파친코 필승공략 DREAMS(종합 도서)에서 다르빗슈를 주인공으로 한 4컷 야구 만화 ‘힘내라! 다르빗슈 군’(이후 “힘내라 다르비 군!!”으로 변경)이 연재되었다.
도쿄 방송 《랭크 왕국》에서 “멋지다고 생각하는 스포츠 선수” 1위로 선정되었다(2위는 스즈키 이치로).
2009년 야마자키 마사요시, 마키하라 노리유키 등 남성 아티스트의 ‘눈물이 나오는 노래’ 컴필레이션 앨범 “남자의 울음” 자켓 사진에 기용되었다.[504]
2012년 트위터에 김치, 한국 반찬, 한국 맥주 사진과 함께 한국 요리를 먹으러 왔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한 일본 네티즌의 혐한성 발언에 "35살이나 됐으면 성인답게 행동하라"고 쓴소리를 했다.[505]
일본인 어머니 이쿠요와 이란인 아버지 파르사드 다르빗슈 세파트 사이에서 오사카부하비키노시에서 태어났다.[6]
다르빗슈의 아버지는 매사추세츠주버크셔군 버크셔 스쿨과 플로리다 주립 대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동했고, 에커드 칼리지에서 이쿠요를 만났다.[9][10][11][12]
6. 사회 공헌 활동
2007년부터 개발도상국에 물 지원을 하기 위해 일본 물 포럼과 협력하여 "다르빗슈 물 기금"을 설립했다. 정규 경기에서 1승을 올릴 때마다 100000JPY을 일본 물 포럼에 기부하고 있다.[506]
2008년부터는 1승을 할 때마다 고향인 오사카부하비키노시에 100000JPY을 기부하고 있다. "어린이의 복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그의 희망으로 하비키노 시는 2008년 5월에 '다르빗슈 유 어린이 복지기금'을 설립했다. 2009년 12월 18일, 이 기금의 일부를 활용하여 오사카 부 하비키노 시립 중학교 중앙도서관에 야구를 포함한 스포츠 관련 서적 31권을 모은 '다르빗슈 유 문고'가 개설되었다. 또한 다르빗슈는 "고향에 대한 보답으로, 그라운드의 건설비용을 내고 싶다"라고 밝혔으며, 오사카 부 하비키노 시는 다르빗슈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경식 야구 전용 그라운드를 정비하여 2013년도에 완공을 목표로 한다고 2010년에 발표했다. 경식 야구장 건설 비용은 다르빗슈 측과 향후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가축 전염병 구제역 피해를 입은 아내의 본가가 있는 미야자키현의 축산 농가에 300만엔의 지원금을 보냈다. 6월 19일 등판부터는 아웃카운트 1개당 30000JPY을 사회복지법인 미야자키현 공동모금회에 기부하기로 발표했으며, 합계 981만엔을 기부했다. 이러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 2010년도 골든 스피릿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성금으로 5000만엔을 일본적십자사를 통해 기부했다.
다르빗슈는 10세 때 아버지의 고향인 이란이 지진으로 고통받자 처음으로 기부를 했으며, 이때 용돈을 기부했다.[139][140] 2007년 2월에는 개발 도상국에 우물, 펌프 및 빗물 저장 시설을 건설, 설치 및 유지 관리하는 데 전념하는 인도주의 기금인 "유 다르빗슈 워터 펀드"를 설립했다. 그는 정규 시즌에서 승리할 때마다 100000JPY를 기부하여 기금에 기여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기금은 일본 워터 포럼에서 관리한다.[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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