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베시마 나오미쓰
1. 개요
나베시마 나오미쓰는 일본 제국의 귀족으로, 1891년 영국 유학 후 외무성 촉탁, 통감부 농업 조사 촉탁 등을 역임했다. 1921년 후작위를 습작하고 귀족원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간토 대지진 이후에는 토지를 개방하여 피해자들을 도왔다. 그는 사가현의 문화 진흥에도 기여했으며, 여러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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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어 표기 | 鍋島直映일본어 (나베시마 나오미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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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자 표기 | Nabeshima Naomitsu |
| 출생일 | 1872년 8월 20일 |
| 사망일 | 1943년 12월 10일 |
| 작위 | 후작 |
| 칭호 | 정2위 훈3등 |
| 배우자 | 나베시마 사다코 (구로다 나가토모의 차녀) |
| 자녀 | 장남 나베시마 나오야스 |
| 친족 | 아버지: 나베시마 나오히로 (귀족원 의원) 숙부: 나베시마 나오토라 (귀족원 의원) 숙부: 나베시마 나오하루 (귀족원 의원) 의붓 형: 마에다 도시쓰구 (귀족원 의원) 의붓 형: 구로다 나가시게 (귀족원 부의장) 의붓 형: 구로다 나가카즈 (귀족원 의원) 동생: 나베시마 나오쓰나 (귀족원 의원) 처남: 마쓰다이라 쓰네오 (참의원 의장) 처남: 야나기사와 야스시게 (귀족원 의원) 처남: 구로다 나가유키 (귀족원 의원) 조카: 나베시마 나오쓰구 (사가현 지사) 사촌 동생: 홋타 마사쓰네 (귀족원 의원) |
| 출신 학교 |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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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직 | 외무성 촉탁 |
|---|---|
| 직책 | 귀족원 의원 |
| 선거구 | 후작 의원 |
| 임기 시작일 | 1921년 7월 11일 |
| 임기 종료일 | 1943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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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나베시마가 -
나베시마 나오마사
나베시마 나오마사는 막말에서 메이지 유신기에 사가 번의 번정 개혁과 근대화를 주도하며 재정 개혁, 서양 기술 도입, 천연두 예방 접종 도입, 정치적 중립, 신정부 수립 참여 등의 업적을 남긴 사가 번 제10대 번주이다. -
사가 나베시마가 -
나베시마 가쓰시게
나베시마 가쓰시게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으로 전향, 사가 번주가 되어 번정의 기틀을 다지고 나베시마 가문으로의 정권 이양을 추진했으며, 오사카 전투, 시마바라의 난 참전, 간척 사업 추진, 사가성 축성 등으로 사가번의 통치 기반을 강화했다. -
통감부 관련자 -
메가타 다네타로
메가타 다네타로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법률가, 교육자로, 귀족원 의원과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일본 법률 및 재정 제도 정비에 기여했고,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본 근대 교육 발전에도 공헌했으며 국제연맹 총회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
통감부 관련자 -
시노다 지사쿠
시노다 지사쿠는 러일 전쟁 당시 국제법 고문으로 활동하고 한국통감부와 조선총독부에서 관직을 역임한 일본의 관료이자 법학자이다. -
1872년 출생 -
폴 랑주뱅
폴 랑주뱅은 프랑스의 물리학자로서 상자성 및 반자성 연구, 초음파 발생, 상대성 이론 전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으며, 반파시즘 운동에 참여하고 프랑스 인권연맹 회장을 역임하다가 1946년 사망하여 1948년 파리의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
1872년 출생 -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
마이클 조지프 새비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뉴질랜드 노동당 창당에 기여하고 총리직에 올라 사회 보장 제도 도입, 방송 국영화 등 정책을 추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을 결정하고 뉴질랜드 복지 국가 설계자로 평가받았다.
2. 생애
나베시마 나오미쓰는 1915년(다이쇼 4년) 종삼위에 올랐으며, 1925년(다이쇼 14년) 정삼위, 1933년(쇼와 8년) 종이위를 거쳐 1936년(쇼와 11년)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2.1. 유학 및 귀국
1891년(메이지 24년) 3월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898년(메이지 31년) 12월에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했다. 1899년(메이지 32년) 8월에 귀국하여, 같은 해 11월 28일에 테이코와 결혼했다.
2.2. 외교 및 통감부 활동
1899년(메이지 32년) 8월에 귀국하여, 같은 해 11월 28일에 테이코와 결혼하였다. 1904년(메이지 37년) 외무성 촉탁이 되어 대한제국 및 만주로 출장했다. 1906년 다시 한국에 건너가 통감부로부터 현지 농업 조사를 촉탁받았다.
2.3. 귀족원 의원 활동
1921년(다이쇼 10년) 7월 11일, 선대 나오히로가 사망하자 가독을 상속받아 후작이 되었고, 귀족원 후작 의원으로 취임하여 화요회에 소속되었다 . 간토 대지진 이후에는 쇼토에 있던 나베시마 농장과 저택 부지를 개방하여 피해자와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입주시켰으며, 도카이의 마츠무라 가이세키를 초빙해 가미야마 정에 교회를 짓게 하였다. 이후 쇼토는 재계 인사나 정부 요인 등도 이주하여 고급 주택가가 되었다.
2.4. 간토 대지진 이후
간토 대지진 이후에는 쇼토에 있던 나베시마 농장과 저택 부지를 해방하여, 피해자나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입주시키고, 도카이의 마쓰무라 가이세키를 불러 가미야마 정에 교회를 짓게 하는 등, 이후 이 쇼토는 재계 인사나 정부 요인 등도 이주하여 고급 주택가가 되었다.
2.5. 사망
1943년(쇼와 18년), 71세로 사망했다. 가독은 적자인 나오야스가 이었다.
3. 인물
* 1940년 8월 20일 재단법인 나베시마 호코회를 창설하여 고향 사가의 문화 진흥과 인재 육성에 힘썼다.
* 메이지 천황으로부터 "나베시마는 신과 같은 인품을 지녔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