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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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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동 수사(Oblate)는 라틴어 'oblatus'에서 유래된 용어로, '헌신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원래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수도원에 헌신된 아이들을 지칭했으며, 이후에는 수도원이나 교회 봉직에 연금을 지급받는 평신도 남녀를 의미하기도 했다. 11세기에는 두 종류의 평신도 형제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수도원의 봉사 동안 종교적 순종을 따르는 노동자였다. 카시네제 베네딕토회는 '콘베르시', '코미시', '오블라테'를 구분했으며, 교회법상 종교에 들어가는 방식에 따라 '수도사'와 '오블라테'로, 자신과 재산의 헌납 여부에 따라 '교회인'과 그렇지 않은 오블라테로 구분되었다. 현대에는 재속 봉헌자와 수도원 봉헌자로 나뉘며, 다양한 수도회에서 '오블라트'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보니파시오, 베다 베네라빌리스, 빙겐의 힐데가르트 등 많은 저명한 인물들이 오블라테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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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수사

2. 기원과 역사

'오블라테'(oblatus|오블라투스lat, "헌신한 사람")는 기독교 역사에서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인 용어이다.[5] 처음에는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부모가 수도원에 봉헌한 아이들을 지칭했으나, 656년 톨레도 공의회 이후 아동 입회 규정이 변화했다.[5] 이후에는 수도원에 기부하고 거주하는 평신도 후원자를 가리키기도 했다.[5]

11세기 윌리엄 폰 히르샤우는 수도원에 서원을 한 평신도 형제(conversi|콘베르시lat)와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봉사자(oblati|오블라티lat)를 구분하여 도입했다.[5]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수도회에서 다양한 지위와 규정이 생겨나 '콘베르수스'와 '오블라투스'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졌다.[5] 중세 후기에는 '오블라투스', '콘프라테르'(confraterlat), '도나투스'(donatuslat) 등의 명칭이 수도원에 기여한 평신도 회원에게 혼용되기도 했다.[5]

교회법적으로는 종교 입문 방식이나 재산 헌납 정도에 따라 오블라테를 구분하기도 했다.[5]

2. 1. 초기 기원

'노동 수사'를 의미하는 Oblate|오블라테lat라는 단어는 라틴어 oblatus|오블라투스lat(헌신한 사람)에서 유래했으며, 기독교 교회사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5]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부모에 의해 수도원에 맡겨져 헌신된 아이들을 '오블라테'라고 불렀다. 이 규칙이 쓰여진 후 약 150년 동안 이러한 관행이 널리 퍼졌고, 당시 교회의 공의회들은 이 아이들을 수도사로 간주했다. 그러나 656년 톨레도 공의회에서는 10세 이전의 아이를 수도원에 맡기는 것을 금지하고, 아이가 사춘기에 이르면 스스로 수도원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도록 결정하면서 이러한 관행은 변화를 맞이했다.[5] 이 공의회 이후에는 puer oblatus|푸에르 오블라투스lat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아직 사춘기가 되지 않아 미래에 수도원을 떠날 선택권이 있는 오블라테를 가리키거나[3], 단순히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했다.[4] 시간이 지나면서 '오블라테'는 왕족이나 다른 후원자들이 수도원이나 교회에 연금을 내고 머무는 평신도 남녀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다. 이들은 마치 양로원이나 쉼터처럼 수도원에서 생활했다.[5]

11세기에는 슈파이어 구 교구의 윌리엄 폰 히르샤우 수도원장(1091년 사망)이 두 종류의 평신도 형제를 수도원에 도입했다.[5]

  • fratres barbati|프라테르 바르바티lat 또는 conversi|콘베르시lat: 수도 서원을 했지만, 폐쇄적인 수도사나 외부 수도사가 아닌 평신도 형제.
  • oblati|오블라티lat: 수도원의 봉사 동안 자발적으로 종교적 순종과 준수를 따르는 노동자 또는 하인.


하지만 이후 여러 수도회에서 평신도 형제의 다양한 지위와 여러 개혁에 의해 도입된 끊임없이 변화하는 규정은 conversus|콘베르수스lat와 oblatus|오블라투스lat의 구분을 점차 모호하게 만들었다.[5]

예를 들어, 카시네제 베네딕토회는 처음에는 conversi|콘베르시lat, commissi|코미시lat 및 oblati|오블라티lat를 신중하게 구분했다. 서약의 본질과 복장의 형태는 각 경우에 구체적으로 달랐다. conversus|콘베르수스lat, 즉 정확히 말하면 평신도 형제는 성가대 수도사와 같은 엄숙한 서약을 했고,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commissus|코미수스lat는 단순한 서약을 했고, 스카풀라 없이 수도사처럼 옷을 입었다. oblatus|오블라투스lat는 수도원장에게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했고,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했으며, 검소한 세속 의복을 착용했다.[5]

1625년 기록에서, conversus|콘베르수스lat는 한 번에 1년 동안 단순한 서약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commissus|코미수스lat의 지위보다 낮아졌다. 그는 사실, 이전 세기의 oblatus|오블라투스lat와 옷을 제외하고는 구별할 수 없었다. 그 후 중세 후기에, oblatus|오블라투스lat, confrater|콘프라테르lat 및 donatus|도나투스lat는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되었으며, 수도원에 대한 관대함이나 특별한 봉사에 대해 형제들의 기도와 선행에 참여하여 평신도 회원의 특권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5]

교회법상, 두 가지 구분만이 중요했다.[5]

1. 종교에 들어가는 사람과 "per modum professionis|페르 모둠 프로페시오니스lat"와 "per modum simplicis conversionis|페르 모둠 심플리치스 콘베르시오니스lat"로 들어가는 사람의 구별, 전자는 monachi|모나키lat(수도사)이고 후자는 oblati|오블라티lat.

2. mortuus mundo|모르투스 문도lat("세상에 대해 죽은", 즉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조건 없이 종교에 헌납한) 오블라테와 자신과 자신의 재산에 대한 일부 통제력을 유지한 오블라테의 구분 - 전자의 경우(plene oblatus|플레네 오블라투스lat)만 교회 특권과 면제(베네딕토 14세, "De Synodo Dioce.", VI)를 누리는 persona ecclesiastica|페르소나 에클레시아스티카lat(교회인)으로 간주되었다.[5]

2. 2. 중세 시대

'오블라테'(oblatus|오블라투스lat, "헌신한 사람")는 기독교 교회사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용어이다.[5]

초기에는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부모가 수도원에 바친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였다. 이 규칙이 쓰여진 후 약 150년 동안 이러한 관습이 유행했으며, 당시 교회의 공의회들은 이 아이들을 수도사로 취급했다. 이러한 관행은 656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이 공의회는 10세 이전의 아동 입회를 금지하고, 사춘기에 도달하면 본인이 원할 경우 수도원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허용했다.[5] '푸에르 오블라투스'(puer oblatuslat)라는 용어는 이 공의회 이후 사용되었으며, 아직 사춘기에 이르지 않아 미래에 수도원을 떠날 기회가 있는 '오블라테'를 의미했다.[3][4] 나중에는 왕족이나 다른 후원자들이 수도원이나 교회에 연금을 내고 양로원이나 쉼터처럼 거주하는 평신도 남녀를 '오블라테'라고 부르기도 했다.[5]

11세기, 슈파이어의 옛 교구에 속한 히르자우 수도원의 윌리엄 폰 히르샤우 수도원장(1091년 사망)은 수도원에 두 종류의 평신도 형제를 도입했다.[5]

  • ''프라테르 바르바티''(fratres barbati|프라테르 바르바티lat, 수염 난 형제) 또는 ''콘베르시''(conversi|콘베르시lat): 서원을 했지만, 폐쇄적인 수도사나 외부에서 활동하는 수도사는 아니었다.
  • ''오블라티''(oblati|오블라티lat): 수도원에 봉사하는 동안 자발적으로 종교적 순종과 규율을 따르는 노동자 또는 하인이었다.


이후 여러 수도회에서 평신도 형제의 다양한 지위가 생겨나고 개혁을 통해 규정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콘베르수스''(conversus|콘베르수스lat)와 ''오블라투스''의 구분은 점차 희미해졌다.[5]

예를 들어, 카시네제 베네딕토회는 처음에는 ''콘베르시'', ''코미시''(commissi|코미시lat), ''오블라티''를 신중하게 구분했다. 서약의 성격과 복장의 형태가 각기 달랐다.[5]

  • ''콘베르수스'': 정확히 말하면 평신도 형제로, 성가대 수도사와 동일한 엄숙한 서약을 했고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 ''코미수스'': 단순한 서약을 했으며, 스카풀라 없이 수도사처럼 옷을 입었다.
  • ''오블라투스'': 수도원장에게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했으며, 검소한 세속 의복을 입었다.


1625년의 기록에 따르면, ''콘베르수스''는 한 번에 1년 동안만 단순한 서약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 시대의 ''코미수스''보다 지위가 낮아졌다. 사실상 복장을 제외하면 이전 세기의 ''오블라투스''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그 후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는 ''오블라투스'', ''콘프라테르''(confrater|콘프라테르lat), ''도나투스''(donatus|도나투스lat)가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되었다. 이 칭호들은 수도원에 대한 관대함이나 특별한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형제들의 기도와 선행에 참여하는 특권을 받은 평신도 회원 모두에게 주어졌다.[5]

교회법 상으로는 두 가지 구분이 중요하게 여겨졌다.[5]

  • 종교 입문 방식에 따른 구분: 엄숙한 서원을 통해 들어가는 수도사(monachi|모나키lat)와 단순한 귀의 방식으로 들어가는 ''오블라티''.
  • 재산 헌납 정도에 따른 구분: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조건 없이 종교에 헌납하여 "세상에 대해 죽은 자"(mortuus mundo|모르투스 문도lat)가 된 오블라테(plene oblatus|플레네 오블라투스lat)와, 자신과 자신의 재산에 대한 일부 통제력을 유지한 오블라테. 전자만이 교회 특권과 면제를 누리는 교회인(persona ecclesiastica)으로 간주되었다(베네딕토 14세, "De Synodo Dioce.", VI).[5]

2. 3. 중세 후기 ~ 근대

'오블라테'(라틴어 oblatus|오블라투스la, "헌신한 사람"이라는 뜻)라는 단어는 기독교 교회사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5]

성 베네딕토 규칙에 따라 부모에 의해 수도원에 서약되고 헌신된 아이들은 이 규칙이 쓰여진 후 약 150년 동안 '오블라테'로 널리 불렸다. 당시 이러한 관습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교회의 공의회들은 이들을 수도사로 간주했다. 이 관행은 656년 톨레도 공의회에서 10세 이전의 입회를 금지하고, 사춘기에 도달하면 본인이 원할 경우 수도원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5] 이 공의회 이후 사용된 '푸에르 오블라투스'(puer oblatusla)라는 용어는 아직 사춘기에 도달하지 않아 미래에 수도원을 떠날 기회가 있는 오블라테를 지칭했으며,[3] 때로는 수도원에 들어가는 사람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4] 시간이 지나면서 '오블라테'는 왕족이나 다른 후원자들이 수도원이나 교회 봉직에 연금을 지급한 평신도 남녀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는데, 이들은 마치 양로원이나 쉼터처럼 수도원에서 생활했다.[5]

11세기, 슈파이어 구 교구의 윌리엄 폰 히르샤우 수도원장(1091년 사망)은 두 종류의 평신도 형제를 수도원에 도입했다.[5]

  • ''프라테르 바르바티''(fratres barbatila) 또는 ''콘베르시''(conversila): 서원을 했지만, 폐쇄적인 수도사나 외부 수도사는 아니었다.
  • ''오블라티''(oblatila): 수도원에 봉사하는 동안 자발적으로 종교적 순종과 준수를 따르는 노동자 또는 하인이었다.


이후 여러 수도회에서 평신도 형제의 다양한 지위가 생겨나고, 여러 개혁을 통해 규정이 계속 변화하면서 ''콘베르수스''(conversusla)와 ''오블라투스''(oblatusla)의 구분은 점차 모호해졌다.[5]

예를 들어, 카시네제 베네딕토회는 초기에 ''콘베르시'', ''코미시''(commissila), ''오블라티''를 신중하게 구분했다. 서약의 종류와 복장의 형태가 각기 달랐다. ''콘베르수스'', 즉 평신도 형제는 성가대 수도사와 같은 엄숙한 서약을 하고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코미수스''는 단순한 서약을 하고 스카풀라 없이 수도사처럼 옷을 입었다. ''오블라투스''는 수도원장에게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하고 자신과 재산을 수도원에 헌납했으며, 검소한 세속 의복을 입었다.[5]

그러나 1625년의 기록에 따르면, ''콘베르수스''는 한 번에 1년 동안만 단순한 서약을 할 수 있게 되어 ''코미수스''보다 낮은 지위가 되었다. 사실상 그는 이전 세기의 ''오블라투스''와 옷을 제외하고는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서는 ''오블라투스'', ''콘프라테르''(confraterla), ''도나투스''(donatusla)가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되었으며, 수도원에 대한 관대함이나 특별한 봉사를 통해 형제들의 기도와 선행에 참여하는 특권을 받은 모든 평신도 회원에게 부여되었다.[5]

교회법상으로는 두 가지 구분이 중요했다.[5]

1. 종교에 들어가는 방식에 따른 구분: "per modum professionis"(서원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수도사''(monachila)로, "per modum simplicis conversionis"(단순한 개종을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오블라티''로 구분되었다.

2. 헌신의 정도에 따른 구분: ''"mortuus mundo"''(세상에 대해 죽은 자), 즉 자신과 재산을 조건 없이 종교에 헌납한 오블라테('plene oblatus')와 자신과 재산에 대한 일부 통제권을 유지한 오블라테로 구분되었다. 전자만이 교회 특권과 면제 혜택을 누리는 ''교회인''(persona ecclesiasticala)으로 간주되었다(베네딕토 14세, "De Synodo Dioce.", VI).[5]

2. 4. 교회법상 구분

교회법상 중요한 구분은 두 가지였다.[5]

첫째는 종교에 들어가는 방식에 따른 구분이다. per modum professionis|페르 모둠 프로페시오니스la 방식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수도사(monachi)로, per modum simplicis conversionis|페르 모둠 심플리치스 콘베르시오니스la 방식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오블라티''(oblati)로 구분되었다.[5]

둘째는 오블라테 내부에서의 구분이다. 자신과 자신의 재산을 조건 없이 종교에 헌납하여 '세상에 대해 죽은'(mortuus mundo|모르투스 문도la) 오블라테와, 자신과 자신의 재산에 대한 일부 통제력을 유지한 오블라테로 나뉘었다. 이 중 전자의 경우(plene oblatus|플레네 오블라투스la)만이 교회 특권과 면제를 누리는 '교회인'(persona ecclesiastica|페르소나 에클레시아스티카la)으로 간주되었다. 이는 베네딕토 14세의 문서 "De Synodo Dioecesana"(VI)에 언급되어 있다.[5]

3. 현대의 오블라테

현대의 오블라테는 특정 수도원 공동체와 영적인 유대를 맺고 그 규칙과 정신을 따르기로 서약한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수도원 밖의 일상생활 속에서 수도원의 영성을 실천하는 재속 봉헌자이며, 다른 하나는 수도 공동체 내에서 생활하며 봉사하는 수도원 봉헌자이다.

3. 1. 재속 봉헌자 (Secular oblates)

많은 베네딕토회 공동체는 여전히 '''재속 봉헌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수도원과 기도를 통해 관계를 맺고 있는 성직자 또는 평신도이다. 재속 봉헌자는 개인적인 상황과 기존의 약속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정과 직장에서의 사생활에서 성 베네딕토 규칙서를 가능한 한 준수하겠다는 공식적인 서약(매년 갱신하거나 평생 서약)을 한다.[6]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봉헌자는 수도 공동체와 개별적인 관계를 맺지만, 교회 내에서 별도의 단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 현대 가톨릭 교회법에는 재속 봉헌자에 관한 규정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비가톨릭 기독교인도 가톨릭 수도원의 봉헌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7] 마찬가지로, 감리교 수도원에서도 비감리교 기독교인이 봉헌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8] 많은 성공회 수도원에서도 비성공회 기독교인을 봉헌자로 받아들인다.[9]

3. 2. 수도원 봉헌자 (Conventual oblates)

수도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다수의 '''수도원''' 또는 '''폐쇄 수도원 서원자'''가 있다. 이들은 이전에 서약한 경험이 없다면, 1년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다. 이후 전체 공동체 앞에서 수도원장에게 수도원에 대한 단순한 서약을 한다. 정식 수련 기간을 마치면 서원을 하고 수도원장에게 복종 서약을 하며, 수도원 생활에 참여하고 자신의 능력을 수도원과 그 사명을 위해 기꺼이 사용할 것을 약속한다. 수도사수녀가 엄숙한 서약을 통해 모든 소유를 포기하는 것과 달리, 수도원 서원자는 수도원과 상호 의무를 규정하는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에는 서약 기간(특정 기간 또는 영구)도 명시된다. 서원자의 약속은 본인 스스로 또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수도원장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10]

4. 오블라테를 사용하는 수도회

"오블라트"(Oblateeng)라는 단어를 이름이나 이름의 확장된 형태로 사용하는 여러 수도회(즉, 교회법에 따라 봉헌된 삶을 사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평신도(세속) 오블라트나 정규 오블라트와는 다른 개념이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블라트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수도회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성 프란치스코 드 살 오블라트회
  • 성모 무염시태 선교 오블라트회
  • 동정 마리아 오블라트회
  • 로마의 성 프란체스카 오블라트회 (1433년 이탈리아에서 설립되었으며, 공동 생활을 하는 서원 오블라트 공동체로 시작함)
  • 프로비던스 오블라트 수녀회
  • 성 요셉 오블라트회
  • 성 암브로스와 찰스 오블라트회

5. 저명한 오블라테

참조

[1] 웹사이트 Norvene Vest, OblOSB. Presentation about Benedictine Oblates, July 1999, Conception Abbey, MO. https://web.archive.[...] 2018-03-16
[2] 웹사이트 Lay Membership https://web.archive.[...] 2015-01-11
[3] 간행물 Chronological Notes on the Life of Duns Scotus jstor.org
[4] 웹사이트 https://web.archive.[...] 2008-12-08
[5] 문서 Oblati
[6] 웹사이트 Lay Participation in Benedictine Spirituality https://thelaymonast[...] 2024-02-12
[7] 웹사이트 World Congress of Benedictine Oblates "Comments from National Coordinators" 2009 http://www.benedicti[...] 2018-03-16
[8] 웹사이트 Discernment http://www.kildaremo[...] Saint Brigid of Kildare Monastery 2014-06-10
[9] 웹사이트 Membership http://www.companion[...] Companions of St. Luke - OSB 2014-06-10
[10] 웹사이트 'Oblaten – was bedeutet dieses komische Wort?' https://www.kloster-[...]
[11] 서적 Bede and Educa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2] 서적 Jutta & Hildegard: The Biographical Sources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13] 서적 The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xford Univ. Press
[14] 서적 'Romano Guardini: Proclaiming the Sacred in a Modern World' https://books.google[...] LiturgyTraining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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