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 하워스
1. 개요
노먼 하워스는 영국의 화학자로, 탄수화물과 비타민 C 연구에 기여하여 193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류의 고리형 구조를 밝히고, 하워스 메틸화 방법을 개발했으며, 비타민 C의 정확한 구조를 X선 결정학으로 규명했다. 1934년에는 에드먼드 허스트와 공동으로 탄수화물로부터 비타민 C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28년 왕립 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947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1950년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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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화학자 -
조지프 프리스틀리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산소 발견, 전기 및 광학 연구 업적, 자유주의적 정치 사상과 유니테리언 신학으로 유명한 영국의 화학자, 신학자, 논리학자, 교육자, 정치 사상가이다. -
잉글랜드의 화학자 -
험프리 데이비
영국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험프리 데이비는 전기분해를 통해 여러 원소를 발견하고, 화학 이론 발전에 기여했으며, 탄광 안전 램프를 발명하고, 왕립 연구소 교수와 왕립 학회 회장을 역임하며 과학계를 이끌었다. -
입체화학자 -
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는 1822년에 태어나 1895년에 사망한 프랑스의 생물학자이자 화학자로서, 분자 키랄성을 입증하고 생물 속생설을 확립했으며, 저온 살균법과 백신 개발을 통해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입체화학자 -
블라디미르 프렐로그
블라디미르 프렐로그는 입체화학에 기여한 크로아티아계 화학자로, 아다만탄 최초 합성, 트뢰거 염기 거울상 이성질체 분리, CIP 체계 개발, 칸-잉골드-프렐로그 순위 규칙 확립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197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
왕립학회 석학회원 -
제임스 쿡
제임스 쿡은 18세기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군 장교로서, 세 차례의 태평양 탐험을 통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해안을 탐사하고 지도를 제작하는 등 지리적 발견에 기여했으며 남극권에 진입하고 하와이 제도를 기록했으나, 하와이에서 원주민과의 충돌로 사망했다. -
왕립학회 석학회원 -
네빌 프랜시스 모트
네빌 프랜시스 모트는 영국의 물리학자로서 기체에서의 충돌, 고체 물리학 연구를 수행하고 거니-모트 이론을 제시했으며, 197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생애
월터 노먼 하워스는 1883년 영국 랭커셔 화이드 코피스에서 태어났다. 14세까지 아버지의 리놀륨 공장에서 일했으며, 1903년 맨체스터 대학교에 입학하여 화학을 전공했다. 1906년 윌리엄 퍼킨(William Henry Perkin) 교수의 지도로 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독일 괴팅겐 대학교에서 오토 발라흐(Otto Wallach)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하여 1910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12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교수가 되어 탄수화물을 연구하면서 당류가 고리형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1925년 버밍엄 대학교 학장이 된 후에는 비타민으로 연구 방향을 바꾸었다. 1934년 비타민 C 대량 합성에 성공했으며, 1937년 파울 카러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1947년 기사작위를 받았고, 1950년 67세 생일에 사망했다.
하워스는 3차원에서 화학 구조를 나타내는 방법인 하워스 투영식을 개발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월터 노먼 하워스는 1883년 영국 랭커셔 화이드 코피스에서 태어났다. 14세까지 아버지의 리놀륨 공장에서 일한 후, 1903년 맨체스터 대학교 입학 시험에 합격하여 화학을 공부했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학 공부를 계속하여, 1906년에 수석 졸업 학위를 받았다. 윌리엄 헨리 퍼킨 주니어 밑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1851년 만국 박람회 왕립 위원회로부터 1851 연구 펠로우십을 받아 괴팅겐 대학교에서 오토 발라흐의 연구실에서 1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1년에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DSc 학위를 받았다.
2.2. 연구 경력
1911년부터 1912년까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단기간 왕립과학기술대학에서 화학분야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했다. 1912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교수가 되어 탄수화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어빈 등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며, 황산 메틸과 알칼리를 사용하여 당의 메틸 에테르를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하워스 메틸화)을 개발했다. 이후 이당류의 구조적 특징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1920년 더럼 대학교의 암스트롱 칼리지(뉴캐슬 어폰 타인)의 유기 화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하워스는 칼리지의 화학과 학과장이 되었다.
1925년, 버밍엄 대학교의 메이슨 화학 교수로 임명되어 1948년까지 재직했다. 버밍엄 대학교에서 여러 광학 활성 당의 구조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1928년까지 말토스, 셀로비오스, 락토스, 젠티오비오스, 멜리비오스, 젠티아노스, 라피노스, 그리고 알도스 당의 글리코사이드 고리 이성질체 구조를 포함한 여러 구조를 추론하고 확인했다. 1929년에 당의 구성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영국 정부를 위해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의 연구실을 조직하여 화학 물질과 의약품을 생산했다.
2.3. 비타민 C 연구 및 합성
하워스가 버밍엄 대학교 화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그는 헥수론산이라고 불리던 비타민 C가 당에서 추출한 산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X-선 결정학을 통해 헥수론산 즉, 비타민 C의 정확한 구조를 알아냈다. 1933년, 당시 연구 부국장이었던 에드먼드 허스트와 박사 후 과정 학생 모리스 스테이시가 이끄는 팀과 함께, 하워스는 비타민 C의 정확한 구조와 광학 이성질체 특성을 제대로 추론한 후, 비타민의 합성을 보고했다.
1934년, 하워스는 에드먼드 허스트와 공동 연구를 통해 탄수화물로부터 비타민 C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타데우시 라이히슈타인에 이어 두 번째 성공이었다.) 하워스는 헝가리 생리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로부터 "수용성 비타민 C" 또는 "헥수론산"(천연물에서 추출한 화합물의 이전 이름)의 초기 참고 샘플을 받았다.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찰스 글렌 킹과 함께 비타민 성질을 공동 발견했고, 최근 헝가리 파프리카에서 대량으로 추출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 화합물의 항괴혈병 특성을 기리기 위해 하워스와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는 이제 분자에 대한 새로운 이름으로 "a-아스코르브산"을 제안했고, L-아스코르브산은 공식적인 화학 이름이 되었다.
3. 주요 업적
1912년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강사가 된 하워스는 탄수화물 화학에 관심을 갖고 황산 메틸과 알칼리를 사용해 당의 메틸 에테르를 제조하는 새로운 방법인 하워스 메틸화를 개발했다. 이후 이당류의 구조적 특징을 연구했다.
1925년 버밍엄 대학교 메이슨 화학 교수로 임명된 후, 여러 광학 활성 당의 구조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1928년까지 말토스, 셀로비오스, 락토스, 젠티오비오스, 멜리비오스, 젠티아노스, 라피노스 등 다양한 당의 구조를 밝혀냈고, 알도스 당의 글리코사이드 고리 이성질체 구조를 확인했다. 1929년에는 이 연구 결과를 담은 당의 구성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1933년 에드먼드 허스트 경과 모리스 스테이시와 함께 비타민 C의 정확한 구조와 광학 이성질체 특성을 밝혀내고, 1934년 탄수화물로부터 비타민 C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워스는 헝가리 생리학자 알베르트 센트죄르지로부터 받은 "수용성 비타민 C" 또는 "헥수론산" 샘플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으며, 센트죄르지와 함께 비타민 C의 항괴혈병 특성을 고려하여 "아스코르브산"이라는 새 이름을 제안했다. L-아스코르브산은 비타민 C의 공식 화학명이 되었다.
하워스는 당류의 3차원 구조를 종이에 표현하는 하워스 투영식을 개발하여 생화학 분야에 크게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영국 원자 폭탄 프로젝트인 MAUD 위원회에서 연구를 감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