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서
1. 개요
뇌서는 후한 말기에 활동한 인물로, 원술 휘하의 장수로 시작하여 산적 활동을 하기도 했다. 조조에게 항복했으나, 적벽 전투 이후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하후연에게 패배하여 유비에게 귀순했다. 이후 행적은 기록되지 않으며, 레이프 드 크레스피니는 뇌서의 추종자 수가 과장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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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와 주변 인물 -
유벽
유벽은 후한 말 황건 잔당을 이끌고 여남군과 영천군 일대에서 활동하며 원소, 손견, 조조에게 협력하거나 적대하다 관도대전 시기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그의 행적과 최후는 기록에 따라 달라 논쟁이 있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를 돕다 고람에게 전사한다. -
유비와 주변 인물 -
공도 (후한)
후한 말 공도는 200년 유비가 여남에서 거병할 때 가담하여 수천 명을 이끌었으나, 조조의 공격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며,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 휘하에서 군량 운반을 담당하다 하후연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
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뇌서는 후한 말 노강군을 중심으로 활동한 세력가이다.
200년, 뇌서는 진란, 매건(매성의 일족인지 아니면 매성의 친척인지 불분명)과 함께 노강 태수 이술이 양주 자사 엄상을 살해하여 관할 지역이 혼란해진 틈을 타 수만 명의 병사를 모아 장강·회하 일대에서 횡행했다. 그 후, 조조가 파견한 신임 양주 자사 유복이 부임하자 뇌서·매건은 항복했다.
208년, 노강에 주둔하고 있던 뇌서는 유비에게 귀순했다. 이 시기에 뇌서는 조조군의 하후연에게 공격을 받아 패배했는데, 이것이 유비에게 귀순하기 전인지 후인지 불분명하다.
이후, 뇌서의 이름은 사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뇌박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뇌서는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2.1. 초기 활동
뇌서(당시에는 뇌포라고 불림)는 후한 말기 원술 휘하의 장수로 처음 기록되었다. 雷緒중국어라고도 한다. 197년 원술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자, 이에 반발한 다른 군벌들이 그를 상대로 무기를 들게 되었다. 199년, 원술은 뇌서와 진란이 지배하는 로강으로 가려 했으나, 이들은 원술을 받아들이지 않고 쫓아냈다.
200년경, 뇌서, 진란, 매성은 여강에서 산적으로 활동하며, 양자강과 회하 사이 지역을 약탈했다. 조조는 이 지역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유복을 양주의 감찰관으로 보냈고, 유복은 뇌서, 진란, 매성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2.2. 조조와의 관계
200년경 뇌서, 진란, 매성은 로강에서 산적으로 활동하며, 양자강과 회하 사이 지역을 약탈했다. 조조는 이 지역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유복을 양주의 감찰관으로 보냈고, 유복은 이들을 설득하여 항복시켰다.
208년 조조는 적벽 전투에서 손권, 유비, 유기에게 크게 패했다. 209년경 유복이 사망하자, 뇌서, 진란, 매성은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조조는 하후연을 보내 뇌서를 격파하고 로강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뇌서는 상당수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도망쳐 유비에게 항복했다. 삼국지에는 뇌서가 수만 명의 추종자와 함께 형주에 정착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중국학자 레이프 드 크레스피니는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생각한다.
2.3. 유비에게 귀순
208년 뇌서는 하후연에게 패배한 후, 수만 명의 부하를 이끌고 형주의 유비에게 귀순하였다. 레이프 드 크레스피니는 뇌서가 거느린 수만 명의 추종자 수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뇌서의 행적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았다.
3. 평가
뇌서는 후한 말 군웅할거 시대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인물 중 하나이다. 여강의 유명한 호족 출신으로, 초기에는 원술 휘하에서 활동했으나, 이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원소와 조조가 대치하고 있을 무렵, 뇌서는 진란 등과 함께 수만 명의 무리를 모아 강회 지역을 휩쓸었다. 이후 조조 측의 양주자사 유복에게 투항하였으나, 208년에 반란을 일으켜 하후연에게 격파되었다. 그 후 부하 수만 명을 이끌고 유비에게 귀순하는 등 변화무쌍한 행보를 보였다.
4. 뇌박과의 관계
뇌박과의 관계는 있을 것으로 보이나 명확하지 않다.
5. 대중문화 속 뇌서
후한 말 노강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 세력 지도자이다. 삼국지연의에는 뇌박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면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뇌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뇌박과의 관계가 불명확하여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