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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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욕한인교회는 1921년 4월 28일에 설립된 미국 뉴욕에 위치한 한인 개신교 교회이다. 1923년 자체 건물을 마련하여 이전했으며, 1927년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와 유니온 신학교 인근에 위치하여 지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한인 교인이 증가하여, 주변 교회 설립에 기여하며 "모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2021년 새 건물 입당 예배를 드렸으며, 2022년부터 대면 주일 예배를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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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한인교회 | |
---|---|
지도 정보 | |
교회 정보 | |
교회 명칭 | 뉴욕한인교회 |
영문 명칭 | Korean Methodist Church and Institute |
교단 | 연합감리교회 (United Methodist Church) |
역사 | |
설립 년도 | 1918년 |
위치 정보 | |
위치 | 미국 뉴욕주 뉴욕 시 |
주소 | 633 W 115th St, New York, NY 10025 미국 |
연락처 정보 | |
전화번호 | +1 212-666-0456 |
웹사이트 | 뉴욕한인교회 웹사이트 |
2. 역사
1923년 4월 22일, 뉴욕한인교회는 자체 건물을 마련하여 459 West 21번가로 이전했다. 1927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와 유니온 신학교 근처인 현재 위치(633 West 115th Street)로 이전했는데, 이는 주변에 한인 유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치 덕분에 뉴욕한인교회는 지적인 교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902년부터 한인들이 농업 노동자로 미국에 오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학생들과 독립 운동가들이 미국, 특히 동부 해안으로 왔다. 뉴욕한인교회 회원들은 사업을 하거나 학생이었고, 독립 운동가들이 잠시 들르기도 했다. 교회 설립 초기부터 한국의 독립은 중요한 의제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1945년에 끝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많은 교인들이 한국으로 돌아갔다.
회원 수는 감소했지만, 유학 후 미국에 남는 학생들 덕분에 교회가 유지될 수 있었다. 한국 전쟁과 독재 정치를 겪는 동안 교회는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다시 뭉쳤다. 이후 미국의 이민 정책 변화로 교인 수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으로 증가했다. 늘어나는 교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길 건너편 세인트 힐다 & 세인트 휴 학교 예배당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으나, 학교와의 관계가 항상 원만했던 것은 아니어서 브로드웨이 사원(178번가)과 유니온 신학교에서 잠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1970년대 미국의 이민 정책 변화로 더 많은 한국인들이 오면서 뉴욕시 지역에 더 많은 한국 교회가 설립되었다. 멀리 이동해야 했던 많은 뉴욕한인교회 회원들이 새로운 교회로 옮겨가면서, 뉴욕한인교회는 "모교회"로 알려지게 되었다.
2. 1. 공동체 설립과 초기 예배
1910년 한일합방과 1919년 3.1 만세운동이 있은 후 1921년 뉴욕에서 한인들의 3.1절 기념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인 개신교 공동체의 설립을 의논하고 그 결과로 뉴욕 한인교회가 설립되었다. 교회 설립날짜에 대하여는 자세한 기록이 없어 많은 설들이 있으나 현재 1921년 4월 28일을 설립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1]처음 예배는 매디슨 거리 감리교회(Madison Avenue Methodist Church영어, 교회주소는 1723 Madison Avenue New York, NY)에서 가졌다 하며 1923년 4월 22일 교인들의 헌금과 미국 연합감리교회(미국 감리교회)의 도움으로 자체 건물을 459 West 21 Street에 마련하였다.[1] 1927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옆 633 West 115th Street로 다시 이전하였다.[1] 아마도 유학생들이 많고, 진보적인 신학교인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영어)도 옆에 있어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1] 진보 신학의 명문인 유니언 신학교가 옆에 있어 뉴욕한인교회는 지적인 교회로 알려져 있다.[1]
2. 2. 건물 이전과 독립운동
1923년 4월 22일, 교인들의 헌금과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도움으로 459 West 21 Street에 자체 건물을 마련하였다.[1] 1927년에는 컬럼비아 대학교 옆 633 West 115th Street로 다시 이전하였다.[1] 근처에 유학생들이 많고, 진보적인 신학교인 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영어)가 있어 옮긴 것으로 보인다.[1] 진보 신학의 명문인 유니언 신학교 덕분에 뉴욕한인교회는 지적인 교회로 알려지게 되었다.[1]교회 설립 당시 미국 동북부에는 한인이 많지 않았다.[1] 1902년 갈릭호 (:en:SS Gaelic)를 타고 하와이로 한인들이 이민 노동자로 오면서 미국에도 한인들이 살기 시작했지만, 이들이 동부로 이주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1] 한일합방 이후 망명한 애국지사들과 학생들이 개신교 교회를 이루었고, 뉴욕한인교회는 독립운동가들의 뉴욕 거점이 되었다.[1]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독립을 위한 많은 활동을 펼쳤으며,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에는 많은 교인들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 활동하였다.[1]
2. 3. 민주화 운동과 교회의 성장
대한민국이 독재정치로 고통받던 시기, 뉴욕한인교회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1970년대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한인 이민이 증가하면서 교인 수도 늘어났다. 자체 건물이 협소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길 건너편 성공회 학교인 세인트 힐다 & 세인트 휴 학교(St. Hilda's & St. Hugh's School)와 협의하여 주일 예배를 학교 예배실에서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학교와의 관계가 항상 원만했던 것은 아니어서, 한때 178가의 Broadway Temple과 120가의 유니온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뉴욕 지역 한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변에 새로운 교회들이 설립될 때 뉴욕한인교회 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뉴욕한인교회는 작지만 뉴욕 지역의 "모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2. 4. 건물 신축
뉴욕한인교회 건물은 역사적인 가치는 있으나 오래된 건물로 문제가 많아 같은 자리에 새 건물을 짓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2015년 7월부터 이웃에 있는 장로교회 건물(https://www.bpcnyc.org/#/welcome Broadway Presbyterian Church)에서 주일 오후 2시 30분에 예배를 드리고 있다. 건물 신축은 2년 이내에 끝날 것으로 예상하였다.[1]새 건물 건설은 2015년 7월에 시작되었다. 교회는 2021년 4월 18일에 새 건물 입당 예배를 드렸고,[1] 2022년 5월에 정기적인 대면 주일 예배가 재개되었다.
2. 5. "모교회"로서의 역할
대한민국이 독재정치로 고통받던 시기, 뉴욕한인교회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1] 1970년대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한인 이민이 늘어나면서 교인 수도 증가하였다.[1] 뉴욕 지역 한인 인구 증가에 따라 주변에 새로운 교회들이 설립될 때, 뉴욕한인교회 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 이러한 이유로 뉴욕한인교회는 작지만 뉴욕 지역의 "모교회"로 불리기도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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