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노미야 히로시
1. 개요
니노미야 히로시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게이오기주쿠 대학과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58년 일본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여 1961년까지 12경기에서 9골을 기록했으며, 선수 은퇴 후 미쓰비시 중공업의 감독을 맡아 JSL 우승 2회, 천황배 우승 2회를 달성했다. 이후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에는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하다가 커피 가게를 운영했다. 2015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fullname: Hiroshi Ninomiya | |
| 원어 이름 | 二宮 寛 |
|---|---|
| 로마자 표기 | Ninomiya Hiroshi |
| 출생일 | 1937년 2월 13일 |
| 출생지 | 도쿄도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 (1952–1954) |
|---|---|
| 유소년 클럽 | 게이오기주쿠 대학 (1955–1958) |
| 클럽 | 미쓰비시 자동차 (1959–1968) |
| 출장 | 45 |
| 득점 | 8 |
| 국가대표팀 | 일본 (1958–1961) |
|---|---|
| 출장 | 12 |
| 득점 | 9 |
| 클럽 | 미쓰비시 자동차 (1967–1975) |
|---|---|
| 국가대표팀 | 일본 (1976–1978) |
| 천황배 준우승 | 1967년, 1968년 |
|---|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필리프 트루시에
필리프 트루시에는 프랑스 출신 축구 감독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클럽 및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으며, 플랫 스리 전술과 젊은 선수 기용을 특징으로 하지만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나가누마 겐
나가누마 겐은 일본의 축구 선수, 감독, 행정가로, 선수로서는 올림픽에 출전하고, 감독으로서는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으며, 행정가로서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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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이던 1957년 일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되었다. 대학 졸업 후 1959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입사하여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 입단했고, 같은 해 전일본 실업단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에 기여했다. 1968년부터 선수 겸 감독을 맡았으나, 같은 해 여름 현역에서 은퇴하고 감독직에 전념했다.
2.1. 클럽 경력
게이오기주쿠 대학 졸업 후, 1959년 미쓰비시 중공업에 입사하여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에 입단했다. 같은 해 열린 전일본 실업단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1965년 일본 사커 리그(JSL)가 출범하자 미쓰비시 중공업 소속으로 리그에 참가했다. 1968년부터는 선수 겸 감독을 맡았으나, 성적 부진으로 같은 해 여름 현역에서 은퇴하고 감독직에 전념하게 되었다. 리그 통산 45경기에 출전하여 8골을 기록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게이오기주쿠 대학 재학 중이던 1958년 12월 25일, 홍콩과의 친선 경기에서 일본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이듬해인 1959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하며 9경기에 출전해 9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예선에도 참가했으며, 1961년까지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하며 통산 국제 A매치 12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2.2.1. 국가대표팀 통계
1958년 12월 25일, 게이오 대학 학생이었던 니노미야는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홍콩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1959년에는 주전 선수로서 9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그는 1961년까지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12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연도별 출장 및 득점 기록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58 | 2 | 0 |
| 1959 | 9 | 9 |
| 1960 | 0 | 0 |
| 1961 | 1 | 0 |
| |12||9 |
국제 A매치 출전 기록
| No. | 날짜 | 개최지 | 경기장 | 상대 국가 | 점수 | 승/패 | 감독 | 경기 종류 |
|---|---|---|---|---|---|---|---|---|
| 1. | 1958년 12월 25일 | 홍콩 | 홍콩 | 2-5 | 패 | 타케코시 시게마루 | 친선 경기 | |
| 2. | 1958년 12월 28일 | 쿠알라룸푸르 | 말라야 | 2-6 | 패 | 친선 경기 | ||
| 3. | 1959년 01월 04일 | 페낭 | 말라야 | 3-1 | 승 | 친선 경기 | ||
| 4. | 1959년 01월 10일 | 싱가포르 | 싱가포르 | 4-3 | 승 | 친선 경기 | ||
| 5. | 1959년 01월 11일 | 싱가포르 | 싱가포르 | 2-3 | 패 | 친선 경기 | ||
| 6. | 1959년 09월 02일 | 쿠알라룸푸르 | 홍콩 | 2-4 | 패 | 메르데카 대회 | ||
| 7. | 1959년 09월 03일 | 쿠알라룸푸르 | 싱가포르 | 4-1 | 승 | 메르데카 대회 | ||
| 8. | 1959년 09월 05일 | 쿠알라룸푸르 | 대한민국 | 0-0 | 무 | 메르데카 대회 | ||
| 9. | 1959년 09월 06일 | 쿠알라룸푸르 | 대한민국 | 1-3 | 패 | 메르데카 대회 | ||
| 10. | 1959년 12월 13일 | 도쿄도 | 고라쿠엔 경륜장 | 대한민국 | 0-2 | 패 | 올림픽 예선 | |
| 11. | 1959년 12월 20일 | 도쿄도 | 고라쿠엔 경륜장 | 대한민국 | 1-0 | 승 | 올림픽 예선 | |
| 12. | 1961년 05월 28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 | 말라야 | 3-2 | 승 | 다카하시 히데토시 | 친선 경기 |
국제 A매치 득점 기록
3. 감독 경력
1967년 미쓰비시 중공업 축구부 선수 겸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68년 여름부터는 감독직에 전념하여 1975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미쓰비시 감독 시절 JSL 우승 2회(1969년, 1973년)와 천황배 우승 2회(1971년, 1973년)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76년 4월에는 나가누마 겐의 뒤를 이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여 1978년까지 활동했다. 당시 대표팀은 세대교체로 인해 전력이 약화된 상태였으나, 니노미야는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팀 재건에 힘썼다.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 연수와 같은 선진적인 훈련 방식을 도입하고 선수단 환경 개선을 시도하는 등 개혁을 추진했다. 1978년 월드컵 예선과 1978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을 지휘했으나, 성과 부진과 협회와의 갈등으로 아시안 게임 이후 사임했다.
축구 지도자 은퇴 후에는 미쓰비시 자동차로 복귀하여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했으며, 유럽 미쓰비시 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1. 클럽 감독 경력
1967년,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선수로 활동하던 중 이코마 토모히코의 후임으로 선수 겸 감독이 되어 1975년까지 9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미쓰비시 자동차는 JSL에서 두 차례 우승(1969년, 1973년)과 네 차례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천황배에서도 두 번 우승(1971년, 1973년)하는 등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3.2. 국가대표팀 감독 경력
197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예선에서 일본 대표팀이 탈락한 후, 1976년 4월 나가누마 겐 감독의 후임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했다. 당시 대표팀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동메달 멤버 다수가 팀을 떠나 전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니노미야의 설득으로 팀에 남아있던 에이스 공격수 가마모토 구니시게마저 1977년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당시 상황은 "누가 감독을 해도 이기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평가된다. 니노미야 본인도 이러한 상황을 "황무지에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었고, 씨앗을 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로 감독직을 맡았다고 회고했다.
감독 취임 후 니노미야는 여러 개혁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평가받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여러 클럽에 대표팀 후보 선수들을 약 2개월간 분산 파견하여 훈련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는 일본 선수들에게 높은 수준의 훈련을 경험하게 하려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또한, 당시 대표팀 선수들이 개인 훈련복을 사용하던 관행을 깨고 훈련복을 통일하고 식사를 개선하는 등, 선수들이 대표팀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 개선에도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적인 개혁 시도들은 일본 축구 협회 간부들로부터 "선수들을 너무 감싸고 돈다"는 비판을 받으며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니노미야는 1978년 월드컵 예선과 1978년 아시안 게임에서 팀을 이끌었지만, 결국 성과 부진과 협회의 지지 부족으로 1978년 아시안 게임 이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니노미야는 독일 축구계와의 인맥을 바탕으로, 일본 대표팀 감독 시절 서독 분산 합숙을 계기로 오쿠데라 야스히코가 쾰른으로 이적하는 데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4. 은퇴 후
축구 지도자를 은퇴한 후에는 미쓰비시 자동차로 이적하여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했다. 타고난 지성을 바탕으로 유럽 미쓰비시 사장을 역임하는 등 주로 유럽을 무대로 활약했다.
2000년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퇴직한 후에는 가나가와현 하야마정으로 이주하여 커피 가게 '파파니뇨'를 경영하고 있다。
독일 축구계에 지인이 많았으며, 독일의 축구 지도자 헤네스 바이스바일러를 존경했다. 현재 운영 중인 커피 가게 이름은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지어준 것이다. 또한, 일본 대표팀 감독 시절 서독 분산 합숙을 계기로 당시 일본 대표팀 선수였던 오쿠데라 야스히코가 쾰른으로 이적하는 데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5년 9월,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