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이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단양 이씨는 충청북도 단양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는 고려 태조를 도운 이배환이며, 후손이 실전되어 고려 시대 내시진전직을 지낸 이방규를 중시조로 한다. 조선 개국 후 이무가 왕자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정사일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익위공계, 집의공파 등으로 분파되며, 주요 인물로는 이윤영, 이익흥, 이시윤 등이 있다. 조선 시대에 19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으며, 경기도 고양시 등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2015년에는 19,001명으로 조사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단양 이씨 - 이윤영 (1890년)
3·1 운동 참여, 신사참배 저항 등의 활동을 한 일제강점기 목사이자 교육자이며 해방 후 조선민주당 창당, 제헌 국회의원, 무임소장관, 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신흥대학 학장을 지낸 정치인이다. - 단양 이씨 - 이영돈
이영돈은 고려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고 KBS, SBS, 채널A 등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등 다수의 시사 및 교양 프로그램을 연출 및 진행하며 한국방송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방송 프로듀서이다.
2. 역사
단양 이씨의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三韓) 통합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배환은 단양 출신으로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배환 이후의 세계(世系)는 실전(失傳)되어, 고려 시대에 내시진전직(內侍眞殿直)을 지낸 10세손 '''이방규'''(李方揆)를 중시조로 삼고 있다.[1]
이방규의 후손인 이무(李茂)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역임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398년(태조 7년)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정사일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의정부우의정(右議政)과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에 봉해졌다.[1]
2. 1. 시조 및 중시조
단양 이씨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三韓)을 통합하는데 공을 세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고 한다.그러나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에서 내시진전직(內侍眞殿直)을 지낸 10세손 '''이방규'''(李方揆)를 중시조로 하여 계대(繼代)해 오고 있다.[1]
2. 2. 고려 시대
시조 '''이배환'''(李盃煥)은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三韓) 통합에 공을 세워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록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다고 한다.그러나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에서 내시진전직(內侍眞殿直)을 지낸 10세손 '''이방규'''(李方揆)를 중시조로 하여 계대(繼代)해 오고 있다.
이배환의 14세손인 판서(判書) 이거경(李居敬)의 아들 이무(李茂)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올라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를 지내고, 조선 개국 후 1398년(태조 7년)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서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정사일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녹훈되고 의정부우의정(右議政)과 단산부원군(丹山府院君)에 봉해졌다.[1]
2. 3. 조선 시대
이무(李茂)는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올라 지밀직사사를 지냈다. 조선 건국 후 1398년(태조 7년) 참찬문하부사로서 이방원(李芳遠)을 도와 왕자의 난 때 정사일등공신(定社一等功臣)에 책봉되고, 의정부 우의정과 단산부원군에 봉해졌다.[1]3. 본관
단양(丹陽)은 충청북도 단양군의 지명이다.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혹은 적성현(赤城縣) 일대였다. 단양은 삼국시대에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지역으로, 551년(신라 진흥왕 12)에 백제와 신라의 공동작전으로 신라의 영토가 되어 진흥왕이 순시할 때 세운 적성비가 남아 있다. 757년(경덕왕 16)에 내제군(奈提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단산현(丹山縣)으로 이름을 바꾸고 1018년(고려 현종 9)에 원주(原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충주(忠州)의 속현이 되었다.
1291년(고려 충렬왕 17) 감무(監務)를 두면서 독립하였고, 1318년(고려 충숙왕 5)에 단양으로 개칭하여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1413년(조선 태종 13)에 단양군(郡)이 되었다.
4. 분파
5. 주요 인물
- 이무 :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이인임의 당여로 몰렸다가 조선 건국 후 복권,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1]
- 이겸 : 조선 중기의 문신.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다가 영조 때 복권되었다.
- 이지시 : 조선 선조 때 무신. 임진왜란 때 전사하여 선무공신에 책정되었다.
- 이립 : 조선 중기의 의병장. 정묘호란 때 전사하였다.
- 이윤영 : 제헌 국회의원 역임.
- 이익흥 : 제13대 내무부 장관 역임.
- 이시윤 : 제11대 감사원장 역임.
- 이근진 : 제16대 국회의원 역임.
- 이우근 :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역임.
- 이은영 :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영돈 : 방송 제작자.
5. 1. 고려
- 이무(李茂, 1355년 ~ 1409년) :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우왕 때 밀직사사가 되었으나, 간관의 탄핵으로 파직되어 이인임의 당으로 몰려 곡주(谷州)로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후 다시 등용되었다.[1]
5. 2. 조선
- 이무(1355년 ~ 1409년) :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우왕 때 밀직사사가 되었으나, 간관의 탄핵으로 파직되어 이인임의 당으로 몰려 곡주(谷州)로 유배되었다. 조선 건국 후 다시 등용되어 1393년(태조 2) 개성부윤, 1398년 참찬문하부사·판예조사·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가 되었다. 1400년(정종 2) 동북면 도순문찰리사 겸 의흥부윤이 되었고, 판삼군부사가 되어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 1등에 책훈되었다. 1402년(태종 2) 우정승이 되었으며, 단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이듬해 영승추부사가 되었다. 1409년 태종의 처남들인 민무구, 민무질의 옥사에 관련되어 창원으로 유배되었다가 죽산(竹山)에서 사형되었다. 뒤에 신원되었고, 시호는 익평(翼平)이다.[1]
- 이겸 : 1507년(중종 2)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흥덕현감·장령·사성을 거쳐 중화부사에 이르렀다. 1519년 기묘사화 때 파직되었다. 영조 때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 이지시(? ~ 1592년) : 1567년(선조 즉위년) 무과에 장원급제, 훈련원정으로 있다가 주서에 등용되었고, 이어 승지로 발탁되었다. 1583년(선조 16)에는 이성현감으로 있으면서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분전하다가 아우 지례와 더불어 전사하였다. 선무공신에 책정되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태인의 모충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경의(景毅)이다.
- 이립(? ~ 1627년) : 정묘호란 때 여진을 맞아 싸우다가 전사한 의병장.
5. 3. 근현대
6. 과거 급제자
단양 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9명을 배출하였다.
; 고려 문과
- 이공로(李公老)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목록은 여기를 참조.
6. 1. 과거 급제자 목록
7. 집성촌
8. 인구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