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군 (고려)
1. 개요
덕흥군은 고려 충선왕의 얼자로, 본명은 왕혜이며 몽골식 이름은 왕타스테무르이다. 승려가 되었으나 1351년 원나라로 도망쳤다. 공민왕 즉위 후 기철 숙청에 원망을 품은 기황후의 사주를 받아 1364년 고려를 침공했으나 패배하고 원나라에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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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본명은 왕혜(王譓)이며, 몽골식 이름은 왕타스테무르(王塔思帖木兒, 왕탑사첩목아)이다. 군호는 덕흥군(德興君)이다.
충선왕의 얼자로, 생모가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닌 궁인이나 시녀일 경우 왕자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출가하는 당시 고려의 관습에 따라 덕흥군 역시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 1351년(충정왕 3년) 원나라로 도망쳤다.
공민왕은 즉위 후 반원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고려 내에서 전횡을 일삼던 원나라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을 처형하였다. 기씨 일가가 숙청되자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였고, 이에 고려인 최유(崔濡)가 원나라에서 불량배를 모아 기황후를 설득시켜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타스티무르를 왕으로 세울 것을 모의하였다.
1364년(공민왕 13년) 원나라 조정의 사주를 받아 덕흥군은 압록강을 넘어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수주 달천에서 고려군에게 패배하였다. 원 황제는 타스티무르를 곤장 107대를 쳐서 추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