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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샤프 (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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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비드 샤프는 영국의 산악인으로, 2006년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 중 사망했다. 그는 2002년 초오유 산 등정을 포함하여 여러 산을 등반했으며, 보조 산소 없이 등반하는 것을 선호했다. 2006년 아시안 트레킹의 패키지를 이용하여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도했지만, 셰르파의 도움 없이 최소한의 산소만을 지참하고 등반하다가 저체온증으로 인해 '그린 부츠' 동굴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은 에베레스트 등반의 윤리적 문제와 구조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며, 40명이 넘는 등반가들이 샤프를 지나쳤지만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쟁이 더욱 심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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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샤프 (산악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데이비드 샤프
출생일1972년 2월 15일
출생지하펜덴, 잉글랜드
사망일2006년 5월 15일 (향년 34세)
사망 장소에베레스트, 티베트
사망 원인저체온증 또는 뇌부종
국적영국
직업등반가
수학 교사
5피트 11인치
학력
교육Prior Pursglove College
노팅엄 대학교

2. 생애 및 등반 경력

데이비드 샤프는 본업이 수학 교사였으며, 중학생 시절 Roseberry Topping 등반을 시작으로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50] 그는 마터호른 산, 옐브루스 산, 킬리만자로 산, 가셔브룸 등정에 성공했으며, 2002년에는 초오유 산 정상에 올랐다.[50][51] 이후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 에베레스트 산 등정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51]

2. 1. 초기 생애

데이비드 샤프는 런던 근교의 하펜던에서 태어났다.[7] 그는 잉글랜드에서 성장하며 중학생 시절 로즈베리 토핑(Roseberry Topping)을 등반한 것을 계기로 산악 활동을 시작했다.[50] 이후 프라이어 퍼스글로브 칼리지와 노팅엄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7] 대학 시절에는 산악 클럽의 회원이었다.[8] 1993년 노팅엄 대학교에서 기계 공학 학위를 받았다.[7]

졸업 후 글로벌 보안 회사인 QinetiQ에서 근무했다.[1] 직장 생활 중 6개월간의 안식년을 얻어 배낭여행으로 남아메리카아시아를 여행하기도 했다.[1][9] 2005년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교사 훈련 과정을 수료했으며, 2006년 가을부터는 수학 교사로 일할 계획이었다.[7] 그는 경험 많은 산악인이었지만, 자신이 잘 아는 산을 오를 때는 가이드나 현지 등반 지원, 고산병 치료제나 보조 산소와 같은 인공적인 도움 없이 등반하는 것을 선호했다.[4]

2. 2. 주요 등반 경력

샤프는 중학생 시절 로즈베리 토핑 등반을 시작으로 산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마터호른 산, 옐브루스 산, 킬리만자로 산, 가셔브룸 등정에 성공하며 경험을 쌓았다.[50]

2001년에는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가셔브룸 II (해발 8035m) 원정에 참여했다.[12] 이 산은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길기트-발티스탄 주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경계에 있다. 헨리 토드가 이끈 이 원정대는 악천후로 인해 등정에 실패했다.[12]

2002년에는 히말라야 산맥의 초오유 산 (해발 8201m) 등정에 성공했다.[51] 이 원정은 히말라얀 프로젝트의 리처드 도건과 제이미 맥기니스가 이끌었으며,[12] 샤프는 이 등반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등반 중 동료 대원 한 명이 크레바스에 추락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12] 당시 원정대장 도건은 샤프를 강한 등반가로 평가하면서도, 마른 체형 때문에 체지방이 거의 없어 추위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추운 날씨의 등반에서 체지방은 생존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12][10]

이듬해인 2003년, 샤프는 리처드 도건이 이끄는 영국팀과 함께 에베레스트 산에 처음 도전했다.[11] 이 원정에는 테렌스 배넌, 마틴 더건, 스티븐 시노트, 제이미 맥기니스도 포함되었으며, 배넌과 맥기니스만 정상에 도달했다.[11] 샤프는 뛰어난 고소 적응 능력과 암벽 등반 실력을 보여주며 팀 내에서 가장 강력한 대원으로 평가받았고, 캠프에서는 쾌활한 성격으로 알려졌다.[5] 또한 어려움에 처한 스페인 등반가에게 추가 산소를 제공하며 돕는 등 동료애를 발휘하기도 했다.[5] 그러나 등반 도중 동상에 걸리기 시작하여 정상 공격을 포기하고 하산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발가락 일부를 잃는 부상을 입었다.[5][11]

2004년에는 프랑스-오스트리아 연합팀에 합류하여 에베레스트 북벽을 통해 다시 정상에 도전했다.[11] 이 원정에서 샤프는 약 8500m 고도까지 도달했으나, 다른 대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쓰리 스텝의 첫 번째 스텝 앞에서 등반을 멈춰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11][12] 당시 원정대장이었던 프랑스 산악인 위그 도바르드와는 보조 산소 사용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도바르드는 혼자 보조 산소 없이 등반하는 것에 비판적이었으나,[7] 샤프는 개인적으로 보조 산소 사용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다른 등반가들에게 이메일로 밝히기도 했다.[7] 이 등반에서도 샤프는 손가락에 동상을 입었다.

3. 2006년 에베레스트 등반과 죽음

2006년 5월, 수학 교사 출신의 영국인 등산가 데이비드 샤프는 세 번째 에베레스트 산 등반을 단독으로 시도하던 중 저체온증과 극심한 피로 상태로 그린 부츠 동굴 근처에서 조난당했다.[52] 그는 아시안 트레킹을 통해 등반 허가를 받았으나, 셰르파나 가이드 없이, 그리고 충분한 보조 산소와 무전기 등 필수적인 장비를 갖추지 않은 채 등반에 나섰다.[4][12][9]

5월 14일 밤부터 15일 사이, 정상 등정을 시도하거나 하산 중이던 약 40명에 달하는 등반가들이 샤프가 쓰러져 있는 곳을 지나쳤다.[52][54] 일부 등반가들은 샤프를 그린 부츠로 착각하거나[55],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나쳤다. 막심 차야와 셰르파 푸르바 타시 등 일부는 샤프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구조를 시도했으나, 고지대의 극한 환경과 샤프의 위중한 상태, 그리고 구조 인력 및 장비 부족으로 인해 결국 실패했다.[52][53][37] 샤프는 결국 5월 15일경 그린 부츠 동굴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은 5월 16일 아침 하산 중이던 한국 등반 팀 셰르파에 의해 확인되었다.[52]

이 사건은 산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뉴질랜드 등반가 마크 잉글리스가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샤프를 지나쳤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54], 죽어가는 등반가를 외면한 다른 등반가들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거세게 제기되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정상 등정에 대한 욕망이 인간 생명 존중보다 우선시되는 세태"를 개탄하며 관련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43] 반면, 샤프의 어머니 린다 샤프는 아들의 죽음은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며 다른 등반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46] 또한, 샤프가 충분한 준비 없이 위험한 단독 등반을 감행한 것 자체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되었다.[52]

샤프의 시신은 사고 발생 다음 해인 2007년, 에베레스트 산의 혹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회수되어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56] 이 사건은 에베레스트 상업 등반의 문제점과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겼다.

3. 1. 등반 준비

샤프는 2년 만에 에베레스트로 돌아와 아시안 트레킹사를 통해 등반을 준비했다.[11] 그는 셰르파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그리고 보조 산소 없이 등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4][16] 샤프는 보조 산소를 사용하는 등반은 진정한 도전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12]

그는 아시안 트레킹의 '기본 서비스' 패키지를 6200USD에 이용했는데, 이는 특정 고도 이상에서의 지원이나 셰르파 동행을 포함하지 않는 상품이었다 (단, 추가 비용 지불 시 이용 가능).[9] 이 패키지는 등반 허가, 티베트로의 이동, 장비 운송, 식량, 베이스캠프 및 전진 베이스캠프(ABC, 약 6340m)까지의 텐트만을 제공했다.[9] 샤프는 공식적인 원정대나 리더 없이, 13명의 다른 독립 등반가들과 함께 '국제 에베레스트 원정대'라는 이름 하에 그룹을 이루었다.[9] 이 그룹에는 그해 에베레스트 등반 중 사망한 비토르 네그레테, 토마스 베버, 이고르 플류슈킨도 포함되어 있었다.[9] 비록 그룹 형태였지만 리더가 없었고, 서로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등반가들의 자율적인 에티켓에 맡겨졌다.[17]

등반을 예약하기 전, 친구이자 숙련된 등반가 겸 가이드인 제이미 맥기니스(Jamie McGuinness)는 샤프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자신의 체계적인 원정대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샤프는 좋은 조건임을 인정했지만, 독립적으로 자신의 속도에 맞춰 등반하기를 원하며 이를 거절했다.[12]

이러한 결정에 따라 샤프는 셰르파 없이 등반했으며, 고고도 등반에 필요한 충분한 양의 보조 산소를 준비하지 않았다. 보고에 따르면 비상용으로 단 두 개의 산소통만을 준비했는데, 이는 약 8~10시간 등반 분량에 해당했다.[4][12][37][18][19] 또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시안 트레킹이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무전기나 위성 전화도 휴대하지 않았다.[4][12][37][18][19] 아시안 트레킹은 구조 활동을 수행할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샤프는 차량으로 베이스캠프까지 이동했고, 그의 장비는 아시안 트레킹 패키지의 일부로 야크를 통해 전진 베이스캠프까지 운송되었다. 그는 고도 적응을 위해 전진 베이스캠프에서 5일간 머물렀으며,[9] 이후 상부 캠프 설치 및 물자 비축, 추가 고소 적응을 위해 여러 차례 산을 오르내렸다.[12] 샤프는 5월 13일 늦은 저녁, 정상 등정을 목표로 북동쪽 능선 아래의 상부 캠프에서 출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2]

3. 2. 등반 과정

데이비드 샤프는 2006년 5월, 세 번째 에베레스트 산 등반을 시도했다. 그는 아시안 트레킹사를 통해 등반 허가를 얻고, 6200USD를 지불하여 전진 베이스 캠프(ABC, 해발 약 6340m)까지의 후방 지원만 받는 '기본 서비스' 패키지를 이용했다.[9] 이 패키지에는 셰르파나 가이드 지원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샤프는 단독 등반을 선택했다.[4][12] 그는 또한 충분한 양의 보조 산소(단 두 병만 가져갔다는 보고가 있으며, 이는 고지대에서 약 8~10시간 등반 분량이다)와 비상시 연락할 무전기를 준비하지 않았다.[4][12][37][18][19] 샤프는 보조 산소를 사용하는 등반을 진정한 도전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알려졌다.[12]

샤프는 고도 적응을 위해 전진 베이스 캠프에서 5일간 머물고, 상부 캠프 설치와 물자 비축을 위해 여러 차례 산을 오르내렸다.[9] 5월 13일 늦은 저녁, 그는 북동쪽 능선 루트의 상부 캠프에서 정상 등정을 위해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12] 그는 정상에 도달했거나, 5월 14일 매우 늦은 시각에 정상 부근에서 하산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산 중 악천후, 장비 문제, 또는 산소 부족으로 인한 고산병 증세 등으로 인해 비박을 해야만 했다. 그는 해발 약 8500m 지점, 소위 퍼스트 스텝 근처에 위치한 '그린 부츠 동굴'로 알려진 바위 돌출부 아래에서 비박했다.[20] 그날 밤은 그 시즌 중 가장 추운 밤 중 하나였다.

그린 부츠 사진. 에베레스트 산 북동쪽 능선 경로의 랜드마크가 된 신원 미상 등반가의 시신이다.


에베레스트 북동 능선 루트와 주요 지점. 샤프가 발견된 그린 부츠 동굴 위치는 †2로 표시되어 있다.


샤프는 원정대의 일원으로 등반하지 않았고, 정상 등정 시도에 대해 미리 알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상태를 알릴 통신 장비도 없었기에 그의 조난 상황은 즉시 알려지지 않았다.[5]
다른 등반대와의 조우 및 상태 악화

  • 5월 14일 오후: 베이스 캠프로 내려가던 한 등반 팀이 올라가고 있는 샤프와 마주쳤다.[52]
  • 5월 14일 밤 ~ 15일 새벽:
  • 자정 경: 정상 등정을 위해 올라가던 터키 팀의 첫 번째 그룹이 샤프를 발견했다. 그들은 샤프가 살아있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샤프가 손짓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증언했다.[17][27] 이후 샤프를 본 다른 사람들은 그가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했다.[17] 샤프가 이 두 만남 사이에 잠들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17]
  • 오전 1시 이전: 마크 우드워드가 이끄는 Himex 원정대의 두 번째 팀(마크 잉글리스, 웨인 알렉산더, 마크 웨투 등 포함)이 그린 부츠 동굴 근처에서 샤프를 발견했다. 당시 샤프는 다리를 N자로 굽히고 앉아 있었고, 산소 마스크나 고글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52] 우드워드는 샤프가 의식을 잃고 숨만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깨우려 했으나 반응이 없자, 저체온증으로 인한 혼수 상태로 판단했다.[12][37][29] 우드워드는 샤프를 구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팀원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등반을 계속했다.[4][29] 그는 샤프에 대해 전진 베이스 캠프에 무전을 시도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12][37]
  • 약 20분 뒤: 또 다른 터키 등반 팀이 샤프를 발견하고 구조를 시도했으나 샤프가 이를 거절했다는 기록이 있으나,[52] 당시 샤프가 혼수 상태였다는 다른 증언[52]과 상충될 수 있다.
  • 5월 15일 아침:
  • 오전 7시경: 정상 등정 후 하산하던 터키 팀 리더 세르한 포찬이 다시 샤프를 발견했다. 포찬은 이전 통과 시 샤프가 사망했다고 생각했으나, 햇빛 아래서 그가 살아있고 위독한 상태임을 깨달았다.[27] 샤프는 산소 공급이 끊겼고 심한 동상 상태였다. 포찬과 다른 터키 등반가들은 샤프에게 마실 것을 주고 움직이도록 도우려 했으나, 팀 내 다른 등반가의 의료 문제와 산소 부족으로 인해 하산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27]
  • 오전 8시 30분경: 다른 터키 팀원 두 명이 샤프의 얼어붙은 마스크를 청소하고 산소를 공급하려 시도했으나, 자신들의 산소도 부족해져 하산해야 했다.[27]
  • 오전 9시 30분: 하산 중이던 레바논의 등반가 막심 차야와 셰르파 도르제가 샤프를 발견했다. 당시 샤프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으며, 이빨을 부딪히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53][37] 그의 코와 뺨 등은 동상으로 검게 변색되었고, 하박부와 정강이까지 완전히 얼어붙은 것으로 보였다. 모자, 고글, 장갑(얇은 울 장갑만 착용)도 없었고, 그의 산소통은 비어 있었다.[37] 차야는 자신의 예비 산소를 공급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Himex 원정대 매니저 러셀 브라이스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알렸다. 차야는 약 한 시간 동안 샤프 곁을 지켰으나, 자신의 산소도 부족하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브라이스의 조언에 따라 하산을 재개했다.[37]
  • 오전 11시 45분: 샤프가 깨어났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셰르파 푸르바 타시가 도착했다. 타시의 질문에 샤프는 My name is David Sharp and I am with Asian Trekking|내 이름은 데이비드 샤프이고 아시안 트레킹 소속이다eng라고 대답했다.[52] 타시는 샤프를 수십 미터 떨어진 양지 바른 곳으로 옮겼으나, 혼자서는 더 이상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샤프를 남겨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52]
  • 5월 15일 오후: 샤프가 깨어 있는 것을 본 다른 등반 팀들은 그가 이전에 '죽음의 지대'(해발 8000m 이상)를 두 번이나 등반한 경험이 있고 고도 적응 능력이 좋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상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지나쳤다.[52]

사망 확인 및 이후샤프의 출발 이틀 뒤인 5월 16일 아침, 하산 중이던 한국 등반 팀 소속 셰르파가 "붉은 장화를 신은 등반객"(샤프)이 사망했음을 무전으로 보고했다.[52] 샤프는 저체온증과 극심한 피로로 인해 그린 부츠 동굴에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52]

샤프의 시신은 사고 발생 다음 해인 2007년에 회수되었다.[56] 에베레스트의 혹독한 환경 때문에 고지대에서 사망한 등반가의 시신 대부분이 현지에 방치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이례적인 조치였다. 이 사고는 샤프를 지나쳐 간 여러 등반 팀의 윤리적 문제와 상업 등반의 현실에 대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3. 3. 구조 논란

데이비드 샤프의 죽음은 그를 구조하지 않은 다른 등반가들의 행동과 관련된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다. 샤프는 2006년 5월 14일 밤부터 15일 새벽 사이 에베레스트 산 북동릉의 그린 부츠 동굴 근처, 해발 8500m 지점에서 저체온증과 탈진 상태로 발견되었다.[52][20]

여러 등반팀이 샤프를 지나쳤다. 5월 14일 오후에는 하산하던 팀이 등반 중인 샤프와 마주쳤다. 15일 오전 1시경, 마크 우드워드가 이끄는 히멕스(Himex) 원정대의 한 팀(마크 잉글리스, 웨인 알렉산더, 마크 웨투 등 포함)은 그린 부츠 옆에 앉아 있는 샤프를 발견했다. 그는 의식은 없었으나 숨을 쉬고 있었고, 얇은 장갑만 낀 채 산소 마스크나 고글은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52][29] 우드워드는 샤프를 깨우려 했으나 반응이 없자, 혼수 상태로 판단하고 구조가 불가능하다고 여겨 등반을 계속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멈추는 것은 자신의 팀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며, 구조는 등반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52][4][29] 우드워드는 베이스캠프에 무전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밝혔다.[12][37]

이후 터키 등반팀도 샤프를 발견했다. 첫 그룹은 자정 무렵 샤프가 손짓하며 가라고 했다고 보고했고, 나중에 지나간 다른 팀원들은 그가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했다.[17][27] 5월 15일 오전 7시경, 하산하던 터키팀 리더 세르한 포찬은 샤프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동료들과 함께 마실 것을 주고 움직이게 하려 했으나, 산소 부족과 팀 내 다른 환자 발생으로 인해 구조를 포기하고 하산했다.[27]

오전 9시 30분경, 하산하던 레바논의 막심 차야와 셰르파 도르제는 여전히 의식이 없고 경련을 일으키는 샤프를 발견했다. 샤프는 동상으로 코와 뺨이 검게 변했고 사지가 얼어붙은 상태였으며, 산소통은 비어 있었다.[53] 차야는 예비 산소를 공급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러셀 브라이스가 관리하는 전진 기지에 상황을 알렸다. 브라이스는 차야에게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하산하라고 조언했다. 차야는 약 한 시간 동안 샤프 곁을 지키다 떠났으며,[37] 이후 ''워싱턴 포스트''에 "데이비드 샤프가 죽음을 바라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37]

오전 11시 45분경, 푸르바 타시 셰르파가 샤프의 상태를 확인하러 도착했다. 샤프는 자신의 이름과 소속("My name is David Sharp and I am with Asian Trekking")을 말할 정도의 의식은 있었으나, 타시 혼자서는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없었다. 타시는 다른 셰르파와 함께 샤프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햇볕이 드는 곳으로 옮기려 했으나(가장 힘센 셰르파 2명이 20분 소요)[37][29], 더 이상의 구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떠날 수밖에 없었다.[4] 제이미 맥기네스에 따르면, 아룬 트렉스 소속 다와 셰르파 역시 한 시간가량 샤프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움직이려 했으나, 혼자서는 샤프를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고 결국 포기해야 했다.[28]

마크 잉글리스는 5월 26일 인터뷰에서 약 40명의 등반가가 샤프를 지나쳤지만 아무도 돕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54] 그는 처음에 자신이 무전으로 러셀 브라이스에게 연락했고, 브라이스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는 산소 없이 몇 시간 동안 거기에 있었다. 사실상 죽은 상태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31] 그러나 브라이스는 이 주장을 강력히 부인하며, 샤프에 대한 첫 보고는 오전 9시경 막심 차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이스는 상세한 무선 통신 기록과 당시 촬영 중이던 디스커버리 채널의 영상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4] 이후 잉글리스는 고산 환경에서의 저산소증으로 인한 기억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을 일부 철회했다.[33][34]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에베레스트: 한계를 넘어'' 영상에는 잉글리스 팀이 하산 중에 샤프를 발견하고 돕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팀원들은 등반 중에도 샤프를 봤지만 당시에는 브라이스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확인했으며, 하산 시점에는 팀 자체의 산소 부족, 극심한 피로, 동상 등으로 구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해진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이 사건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등반가들이 정상 등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며, "에베레스트 등반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가 매우 끔찍해졌다"고 개탄했다.[31] 그는 특히 마크 잉글리스를 비판하며 그의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4]

반면, 샤프의 어머니 린다 샤프는 다른 등반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다른 사람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36] 샤프의 친구였던 제이미 맥기네스 역시 샤프가 위험을 이해했으며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4]

데이비드 왓슨과 같은 다른 등반가들은 샤프가 조난당했다는 사실이 더 일찍 알려졌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37] 샤프는 아시안 트레킹의 '기본 서비스' 패키지를 이용해 셰르파나 가이드 없이 단독 등반을 했고, 충분한 보조 산소나 무전기도 준비하지 않았다.[4][9][12] 이러한 샤프 자신의 선택이 비극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같은 해, 호주 등반가 링컨 홀은 사망 선고를 받은 후 다음 날 생존한 채 발견되어 다른 등반가 팀(다니엘 마주어 등)의 구조 활동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은 샤프의 경우와 대조되며 구조의 가능성과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논쟁을 더욱 심화시켰다.

샤프의 시신은 이례적으로 2007년에 회수되어 그린 부츠 동굴 근처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56]

4. 사건의 영향과 교훈

데이비드 샤프의 죽음은 단순한 조난 사고를 넘어, 현대 에베레스트 산 등반 문화와 산악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샤프가 죽어가는 동안 다수의 등반가가 그를 지나쳐 정상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등반가들의 책임과 윤리 의식에 대한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특히 에드먼드 힐러리 경과 같은 저명한 산악인들은 정상 등정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등반 행태를 강하게 비판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 사건은 에베레스트 산 등반이 점차 상업화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받았다. 충분한 준비나 경험 없이 상업 등반대에 의존하는 경향과 일부 등반대의 운영 방식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데이비드 샤프 사건은 극한 환경에서의 등반에는 철저한 준비와 자기 책임 의식이 필수적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또한, 조난당한 동료 등반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산악 공동체의 기본적인 윤리와 인간 존중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며칠 뒤 링컨 홀이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등반가들의 도움으로 구조된 사례는 이러한 윤리적 선택의 중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4. 1. 산악 윤리 논쟁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데이비드 샤프를 구조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며, 다른 등반가가 죽어가는 것을 외면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에베레스트 산 등반에서 정상 등정 욕구가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되는 세태를 비판하며 "내 생각에 에베레스트 산 등반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가 매우 끔찍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정상에 오르기만을 원합니다. 고산병으로 고통받으며 바위 아래 움츠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모자를 들어 인사를 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31] 힐러리는 뉴질랜드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도 오늘날 등반가들의 냉담함에 경악을 표하며, 마크 잉글리스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4]

뉴질랜드의 의족 등반가 마크 잉글리스는 처음에 샤프가 발견되었을 때 이미 사망했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40여 명의 등반가들이 구조 시도 없이 샤프를 지나쳐 갔다고 주장했다. 샤프가 사망한 곳은 정상에서 약 450m 아래, 제4캠프에서 250m 위에 있는 등산로 옆의 “그린 부츠 동굴”로 알려진 바위 돌출부 아래였다. 잉글리스의 등반대는 등반 중 오전 1시경 샤프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인지했지만, 야간 구조의 어려움을 이유로 정상 등반을 계속했다. 팀의 일원인 마크 웨츠(Mark Whetu)는 샤프에게 제4캠프로 이어지는 LED 헤드램프 불빛을 따라가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진다. 에베레스트 가이드 제이미 맥기니스(Jamie McGuinness)에 따르면, 약 9시간 후 하산 길에 샤프를 발견한 아룬 트렉스(Arun Treks) 소속 다와(Dawa) 셰르파가 산소를 공급하고 그를 움직이려 한 시간가량 시도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울면서 샤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42]

잉글리스는 샤프가 적절한 산소와 장갑 없이 준비가 부족했으며, 발견 당시 이미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선으로 등반대장 러셀 브라이스에게 연락했고, 브라이스가 '자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이미 실질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43][44] 그러나 러셀 브라이스는 잉글리스의 주장을 부인했다. 그는 샤프에 관한 어떠한 무선 연락도 받지 못했으며, 약 9시간 후 레바논 등반가 맥심 차야로부터 처음 상황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차야는 등반 중 어둠 속에서 샤프를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때 샤프는 장갑을 끼지 않아 심각한 동상을 입고 있었다. 잉글리스 팀의 선두자는 자신들의 팀원에 대한 책임이 우선이며, 샤프 자신의 팀에 대한 비난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45]

이 사건과 대조적으로, 며칠 뒤인 5월 26일 호주 등반가 링컨 홀은 사망 선고를 받은 다음 날 생존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홀을 발견한 다니엘 마주어, 앤드루 브래시(Andrew Brash), 마일즈 오스본(Myles Osborne), 장부 셰르파(Jangbu Sherpa) 등 4명의 등반가는 자신들의 등반을 포기하고 홀의 곁을 지켰으며, 구조를 위해 파견된 11명의 셰르파와 함께 그를 안전하게 하산시켰다. 홀은 이후 완전히 회복했다.

한편, 데이비드 샤프의 어머니 린다 샤프는 아들의 죽음에 대해 다른 등반가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는 바위 그늘에서 발견되었어요... 브라이스 팀의 셰르파 한 명이 데이비드를 확인했을 때 그는 아직 살아 있었어요. 하지만 셰르파는 데이비드에게 산소를 주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죠. 자기 목숨은 자기가 지켜야 해요 - 남을 도우려 해서는 안 돼요"라며 등반가 개인의 책임을 강조했다.[46]

이후 2006년 6월, 잉글리스는 브라이스로부터 지시를 받았다는 자신의 초기 주장을 철회하고, 고지대의 저산소증으로 인해 기억이 불확실했다고 해명했다.[47][48]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Everest: Beyond the Limit|에베레스트 등반: 극한에의 도전영어' 영상은 잉글리스 팀 구성원 모두가 등반 중에 샤프를 발견했음을 인정했지만, 등반 중 브라이스가 샤프에 관해 연락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음을 보여주었다. 2009년 스카이에서 방영된 'Dying For Everest영어' 다큐멘터리에서 잉글리스는 무선 교신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불확실하며, 저산소증으로 인한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이러한 잉글리스의 태도를 "안타깝다"고 평했다.

5. 미디어

데이비드 샤프의 비극적인 죽음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다루어졌으며, 특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소재로 다뤄졌다. 그의 마지막 등반과 죽음을 둘러싼 상황, 그리고 다른 등반가들의 대응에 대한 논란은 디스커버리 채널의 ''에베레스트: 한계 너머''와 Sky의 ''Dying For Everest영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들은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과 증언을 담고 있어 사건의 진실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5. 1. 다큐멘터리: 에베레스트: 한계를 넘어

데이비드 샤프는 2006년 5월 15일 아침, 디스커버리 채널의 TV 프로그램 ''에베레스트: 한계 너머'' 첫 시즌 촬영 중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 시즌은 샤프의 마지막 등반과 같은 시기에 촬영되었다.[6] 해당 영상은 하산 중이던 히멕스(HIMEX) 소속 셰르파의 헬멧 카메라로 촬영되었으며, 이 셰르파는 마크 잉글리스를 포함한 다른 히멕스 등반가들과 함께 샤프를 도우려 시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에베레스트: 한계 너머''의 영상은 잉글리스 팀이 샤프를 발견한 것이 (그들의 초기 주장과 달리) 등반 중이 아니라 하산 중이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잉글리스 팀 구성원들은 등반 중에 샤프를 보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당시 러셀 브라이스에게 샤프에 대해 연락했다는 주장은 부인했다. 영상에 따르면, 잉글리스 팀은 하산 중 샤프에게 도달했을 때, 팀의 산소 부족, 극심한 피로, 심각한 동상자 발생 등의 상황을 브라이스에게 보고하며 구조 활동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전달했다.

한편, 2009년 Sky에서 방영된 다른 다큐멘터리 ''Dying For Everest''에서 잉글리스는 등반 중 브라이스에게 무전 연락을 했고 계속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곧이어 저산소증으로 인한 기억 착오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브라이스는 이러한 주장을 부인했으며, 보존된 통신 기록에도 잉글리스로부터의 해당 무선 연락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다큐멘터리는 잉글리스 팀이 등반 중 심각한 상태의 샤프를 발견하고도 별다른 도움 없이 지나쳤으며, 몇 시간 뒤 하산 길에 그가 빈사 상태임을 확인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다른 등반가를 구조하지 않은 잉글리스의 태도를 "안타깝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5. 2. 다큐멘터리: Dying For Everest

Sky에서 2009년 4월 20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Dying For Everest영어”에서는 마크 잉글리스의 증언이 담겨 있다. 잉글리스는 이 프로그램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 기억으로는, 무전을 사용했습니다. 대답은, 앞으로 가라,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였습니다. 그것이 러셀 브라이스의 대답이었는지 다른 누군가의 대답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저산소증으로... 머릿속의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러셀 브라이스는 그날 밤 다수의 무선 통신을 수신했으며, 완전한 기록(로그)이 보존되어 있으나 마크 잉글리스로부터의 통신 기록은 없었다고 한다. 잉글리스의 팀은 데이비드 샤프를 지나쳐 계속 등반했으며,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하산 중 몇 시간 뒤 다시 그 지점을 통과했을 때, 팀은 데이비드가 빈사 상태임을 확인했다.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이러한 마크 잉글리스의 태도에 대해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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