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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커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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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독 커피 위기는 1970년대 동독에서 발생한 커피 부족 사태를 의미한다. 1945년 이후 동독은 소련으로부터 커피를 수입했으나, 1954년 수입 중단 이후 외화를 들여 커피를 수입해야 했다. 1976년 브라질 커피 흉작으로 커피 가격이 급등하면서 동독은 심각한 커피 수입난에 직면했고, 대체 커피 생산과 배급을 시도했지만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 위기는 동독의 외화 부족을 심화시키고, 베트남과의 커피 생산 협력을 이끌어내는 등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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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커피 위기
사건 개요
사건동독 커피 위기
발생 시기1970년대 후반
원인커피 가격 급등
외환 부족
에티오피아와의 무역 불균형
영향커피 배급제 도입
커피 대체재 확산 (믹스커피)
정부에 대한 불만 증가
암시장 활성화
배경
당시 상황동독은 계획 경제 체제였으며, 수입품에 대한 정부 통제가 강했음.
커피의 중요성동독에서 커피는 단순한 기호품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사회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
위기 심화
가격 상승세계적인 커피 가격 상승으로 인해 동독의 외환 부담이 커짐.
무역 불균형에티오피아로부터 커피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무기 거래 등이 연루되어 무역 불균형이 심화됨.
정부 대응
배급제 도입정부는 커피 배급제를 도입하여 소비를 제한하려 함.
대체재 장려커피 대체재를 개발하고 소비를 장려함 (예: 믹스커피).
암시장 단속암시장을 단속하여 커피 불법 거래를 막으려 함.
결과 및 영향
불만 고조커피 부족과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됨.
정치적 영향위기가 동독 사회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고,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로 이어지는 동유럽 혁명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침.
문화적 영향당시 커피 대체재와 관련된 문화가 형성됨.
관련 인물
관련 인물해당 정보는 문서에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관련 장소
관련 장소동독
에티오피아

2. 배경

1945년 이후 소련 점령 지역에서 커피는 결핍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동독 최초의 커피 수입국은 소련이었다. 1954년부터 소련으로부터 커피 수입이 중단되자 공급 문제가 발생했고, 원자재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다른 곳에서 커피를 수입해야 했다. 1957년부터 동독에서 로스트 커피 뢰스트파인(Röstfeinde)이 생산되었다.[24]

1960년대부터 동독에서 기본적인 생필품 공급은 안정화되었지만, 사치재 및 고급 소비재는 여전히 부족했다.[25] 1970년대 동독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원두 기준 3.6kg이었고, 커피 구입을 위한 지출은 33억 동독 마르크로 가구 지출과 비슷하며 신발 지출의 약 두 배였다.[26] 서독의 친구와 친척들의 선물은 동독 커피 수요의 약 20%를 충족했다.[6]

1977년 동독에서는 외화로만 구매 가능했던 상품의 공급 문제가 발생했다. 동독에서 발생한 커피 위기는 세계 커피 시장, 동독의 외교 및 개발 원조 정책, 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주었다.[27],[28] 동독은 커피 생산국에 무기와 차량 등을 수출하고 커피를 수입하는 구상무역을 진행하기도 했다.[29]

2. 1. 동독의 커피 수급 상황 (1945년~1970년대)

1945년 이후 소련 점령 지역에서 커피는 결핍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동독으로 수입된 최초의 커피는 소련에서 들어왔다. 1954년 소련으로부터의 커피 수입이 중단되면서 공급 문제가 발생했고, 원자재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로 다른 곳에서 커피를 수입해야 했다. 1957년부터 동독에서 로스트 커피 뢰스트파인(Röstfein)이 생산되었다.[24] 1960년대부터 동독에서 기본적인 생필품 공급은 안정화되었지만, 사치재 및 고급 소비재는 여전히 공급이 부족했다.[25] 제과류, 담배, 주류 등의 기호식품 외에도 커피가 포함되었으며, 1970년대 동독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원두 기준 3.6kg이었다. 당시 동독에서 커피 구입을 위한 지출은 33억 동독 마르크였으며, 이는 가구에 소비된 지출과 비슷했고 신발에 소비된 지출의 약 두 배였다.[26] 1970년대까지 커피는 동독 가계 예산에서 가장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지만, 서독에 있는 친구와 친척들의 선물은 국가 커피 수요의 약 20%를 충족시켰다.[6]

3. 1977년 동독 커피 위기

1977년 동독은 커피 수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커피는 동구권 국가에서 부족했던 자유롭게 통용되는 서방 통화, 즉 ''Westgeldde''로 구매해야 하는 상품이었다. 이 커피 위기는 세계 커피 시장의 변화를 초래했고, 동독 외교 정책의 재편[2]과 상당한 긴축을 가져왔다.[3] 특히 동독 정부는 제3세계 국가와 물물 교환을 하여, 커피와 에너지를 대가로 무기와 트럭을 수출했다.[4]

1975년 흑서리 이후 1976년에 커피 위기가 시작되었다. 브라질에서 흉작이 발생한 후 커피 가격이 급등하여 동독 정부는 커피 구매에 상당한 외화를 지출해야 했는데, 이는 연간 예상 지출액의 거의 5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8] 사회주의 통일당 (SED) 지도부는 오일 쇼크로 인한 석유 수입을 위한 충분한 외환 확보를 시도하면서 식량 및 사치품 수입을 제한했다.[9] 1973년 오일 쇼크의 영향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동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10]

알렉산더 샬크-골로트코프스키가 제안한 커피 생산 중단은 정치국 위원 베르너 람베르츠가 에티오피아모잠비크와 같은 제3세계 국가와의 물물 교환 및 무기 판매를 장려한 덕분에 피할 수 있었다.[11] 가장 저렴한 종류의 커피인 "코스타"는 단종되었고 더 비싼 종류만 판매되었다.[12] "Kaffee-Mix"와 같은 다른 대안도 제공되었는데, 이는 진품 커피와 커피 대용품의 50% 혼합물이었으며 배급은 필요하지 않았다. 동독 정부는 많은 국민들이 서독 친척들이 보내는 ''Westpakete''를 통해 커피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전형적인 답례품인 드레스덴 슈톨렌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으며, 아몬드, 건포도, 유자와 같은 많은 재료가 수입품으로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독 경제에도 어려움을 초래했다.

3. 1. 위기의 전개

1976년 브라질산 커피의 흉작으로 세계적인 커피 가격이 폭등하면서 대형 커피 위기가 발생했다. 동독은 연간 예산의 약 6배에 달하는 7억 서독 마르크 (3억달러)를 커피 수입에 지출해야 했다.[30] 오일 쇼크로 인한 유가 상승은 197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동독에 영향을 미쳤는데, 코메콘의 석유 거래 가격 결정 방식 때문이었다.[31]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은 석유 수입을 위해 식료품 및 기호식품 수입을 통제했다.[32]

대외무역부 장관 알렉산더 샬크골로트코프스키는 커피 수입 중단을 제안했지만, 사회주의통일당 중앙위원회 위원 베르너 람베르츠의 지시로 에티오피아 등에서 무기 수출 및 구상무역을 통해 커피 수입을 계속할 수 있었다.[33][34] 가장 저렴했던 코스타(Kosta) 커피는 판매가 중단되었고, 더 비싼 론도(Rondo)와 모나(Mona)가 판매되었다.[35] 또한 50%가 대체 커피로 구성된 카페믹스(Kaffee-Mix)가 판매되었으나, 배급제는 도입되지 않았다.[36] 동독 정부는 서독 친척을 통한 커피 수급을 예상했지만, 슈톨렌에 포함되는 아몬드, 건포도 등의 수입 문제로 경제 문제는 여전했다.[42]

동독 국민들은 대체 커피를 거부했고, 커피 수급 불안정을 일상 생활에 대한 공격으로 여겼다.[37] 대체 커피는 야콥스 크뢰눙에서 따 온 "에리히스 크뢰눙"(Erichs Krönung)과 같은 멸칭으로 불렸다.[38] 대체 커피에 포함된 대두 단백은 필터 막힘 및 커피 머신 고장을 유발했다.[39] 불만, 청원,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40] 1978년 이후 커피 가격이 정상화되었으나,[41] 커피 수입을 위한 외화 소비는 1980년대 동독의 주요 정치 문제였고, 계속되는 공급 부족은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동독 커피 소비량의 약 20-25%는 서독 친척의 선물로 충당되었다.[42] 커피는 원유 다음으로 중요한 주요 무역품이 되었다.[43]

3. 2. 위기의 영향

동독 국민들은 대체 커피를 거부했고, 커피 수급 불안정을 일상 생활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간주했다.[37] 대체 커피는 서독의 커피 브랜드 야콥스 크뢰눙(Jacobs Krönung)에서 따 온 '에리히스 크뢰눙(Erichs Krönung)'과 같은 멸칭으로 불렸다.[38] 대체 커피에는 대두 단백이 포함되어 있었고, 열과 압력으로 인해 단백질이 변성되었기 때문에 필터 막힘 및 커피 머신 고장을 유발했다.[39] 다양한 계층에서 불만과 청원이 접수되었고,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40]

1978년 이후 커피 가격이 정상화되었으나,[41] 커피 수입을 위한 외화 소비는 1980년대 동독의 주요 정치 문제 중 하나였고, 계속되는 공급 부족은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동독 커피 소비량의 약 20-25%는 서독의 친척이 보내주는 것으로 충당되었다.[42] 커피는 기호 식품 외에도 원유 다음으로 중요한 주요 무역 품목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43]

동독 시민들은[13] 커피믹스(Kaffee-Mix)를 거부했으며, 커피 부족을 일상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요 소비재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했다. 커피 혼합물은 일부 커피 머신을 손상시키기도 했는데, 혼합물에 포함된 완두 가루 등 대체 재료에 열과 압력 하에서 팽창하여 필터를 막는 단백질이 함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4] 이로 인해 수많은 불만과 격분한 반응, 항의가 발생했다.[15] 1978년에 국제 시장에서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정상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16] 동독 정부가 외환을 확보하는 데 직면한 문제는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점차 국가 정치 지도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부족 현상을 연장시켰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동독 전체 커피 소비량의 20~25%가 서독에서 구호품으로 온 것으로 추산된다.[17] 커피는 단순한 소비재나 상품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내독일 통일의 상징으로서 가치를 획득했다.[18]

4. 서독에의 영향

1977년 서독에서는 커피 가격이 인상되었지만 공급 부족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그 대신 저가 커피 시장이 발달했다.[42] 그 해에는 카로 미트(Caro mit), 요타슈포르트(Jota-Sport), 아로마타(Aromata), 로가 할브운트할브(Rogga halb & halb) 등 대체 커피[44] 가 발매되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치보와 에두쇼 등 커피 소매점에서는 1970년대부터 커피와 논푸드 상품을 같이 취급하기 시작했다.[42]

5. 베트남의 커피 산업에 준 영향



동독과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공유했던 분단 국가로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는 통일 이후 독일베트남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45][46] 1975년부터 베트남에서 로부스타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동독의 커피 위기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 로부스타 커피는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 품질과 가격은 낮았지만, 더 빠르게 자라고 기계화된 수확이 가능하며 카페인 함유량이 높고 베트남 중부 고원 지방의 기후에 적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동독의 지원으로 베트남 커피 산업은 크게 성장했지만, 1990년 동독의 붕괴로 인해 베트남은 새로운 판로를 찾아야 했다. 베트남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 정상화에 힘입어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2001년에는 커피 과잉 생산으로 인해 세계적인 커피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6년 기준으로 독일은 베트남 커피의 최대 수입국이다.[49]

5. 1. 동독-베트남 협력

동독과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공유했던 분단 국가라는 특성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통일 이후 독일베트남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45][46] 192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47] 1975년부터 베트남에서는 로부스타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는데, 로부스타 커피는 더 빠르게 자라고, 기계화된 수확이 가능했고, 카페인 함유량이 높으며 베트남 중부 고원 지방의 기후에도 적합했다. 반면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서 품질과 가격은 낮았다.

1977년 커피 위기를 계기로 1980년과 1986년에는 동독과 베트남 정부간 계약이 체결되었다. 이 계약을 통해 동독은 커피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기계를 지원하고 베트남의 커피 재배 면적을 600 헥타르에서 8600 헥타르로 확대했다. 또한 동독에서 베트남 농업 교육을 진행했다.[47] 동독은 비엣둑 콤비나트(Kombinat Việt-Đức) 설립, 차량, 설비, 관개 시설을 지원했고, 약 2000만달러를 들여서 부온마투옷 인근에 Thủy điện Đray H'linh|드라이린 수력발전소vi를 건설했다.[47] 해안 지대에서 약 1만 명이 새로 건설된 농장 지대로 이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주거 및 상업 시설도 동독의 지원으로 건설되었다. 이를 대가로 동독은 향후 20년간 베트남 커피 생산량의 50%를 공급받을 예정이었다.[47] 그러나 커피는 재배 후 수확까지 8년이 걸렸고, 첫 수확이 진행된 1990년에는 동독 정권이 붕괴했다.[48]

그 결과 베트남은 세계 시장으로 수출을 모색했고,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브라질에 이은 세계 2위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2001년에는 초과 생산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커피 위기가 발생했다. 2016년 기준 베트남 커피의 최대 수입국은 독일이다.[49]

베트남 닥락에서 꽃이 핀 로부스타 커피

5. 2. 베트남 커피 산업의 발전과 변화

동독과 북베트남은 사회주의 체제를 공유했던 분단 국가라는 특성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통일 이후 독일과 베트남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45][46] 1920년대 후반부터 베트남에서는 프랑스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47] 동독의 커피 위기가 시작되었던 1975년부터 베트남에서는 로부스타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다. 로부스타 커피는 더 빠르게 자랐고, 기계화된 수확이 가능했고, 카페인 함유량이 높으며 베트남 중부 고원 지방의 기후에도 적합했다. 반면 아라비카 커피에 비해서 품질과 가격은 낮았다.

1980년과 1986년에는 동독과 베트남 정부간 계약이 체결되었다. 동독은 커피 생산에 필요한 시설과 기계를 지원하고, 베트남에서는 커피 재배 면적을 600ha에서 8600ha로 확대했으며, 동독에서 베트남 농업 교육을 진행했다.[47] 동독은 비엣둑 콤비나트(Kombinat Việt-Đức) 설립, 차량, 설비, 관개 시설을 지원했고, 약 2000만달러를 들여서 부온마투옷 인근에 Thủy điện Đray H'linh를 건설했다.[47] 해안 지대에서 약 1만 명이 새로 건설된 농장 지대로 이주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주거 및 상업 시설도 동독의 지원으로 건설되었다. 이를 대가로 동독은 향후 20년간 베트남 커피 생산량의 50%를 공급받을 예정이었다.[47] 커피는 재배 후 수확까지 8년이 걸리는데, 첫 수확이 진행된 1990년에는 동독 정권이 붕괴했다.[48]

그 결과 베트남은 세계 시장으로 수출을 모색했고,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브라질에 이은 세계 2위 커피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2001년에는 초과 생산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커피 위기가 발생했다. 2016년 기준 베트남 커피의 최대 수입국은 독일이다.[4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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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Afrika und das Andere: Alterität und Innovation : Jahrestagung der VAD vom 3.–6.10.1996 in Berlin (Schriften der Vereinigung von Afrikanisten in Deutschland) https://books.google[...] LIT Verlag 1998
[3] 학위논문 Development policies and solidarity in the GDR, presented using examples of state cooperation with Mozambique and Ethiopia and the development-related education of independent groups https://depositonce.[...]
[4] 서적 "Es geht um unsere Existenz": Die Politik der DDR gegenüber der Dritten Welt am Beispiel von Mosambik und Äthiopien https://books.google[...] Ch. Links Verlag
[5] 논문 Die "Kaffeekrise" von 1977
[6] 서적 Die heile Welt der Diktatur Econ & Lis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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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서적 Afrika und das andere: Alterität und Innovation Von Vereinigung von Afrikanisten in Deutschland Jahrestagung LIT Verlag Berlin-Hamburg-Mün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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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서적 „Es geht um unsere Existenz“. Die Politik der DDR gegenüber der Dritten Welt am Beispiel von Mosambik und Äthiopien. Ch. Links Verlag, Berlin
[30] 뉴스 DDR: Die Bürger werden aufsässig Der Spiegel
[31] 서적 Faktor Öl: Die Mineralölwirtschaft in Deutschland 1859–1974. C. H. Beck
[32] 논문 Bundesrepublik und DDR in der Doppelkrise europäischer Industriegesellschaften. Zum sozialökonomischen Wandel in den 1970er Jah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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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뉴스 Kaffee gegen Waffen https://www.mdr.de/z[...] MDR Zeitreise 2014-08-06
[35] 간행물 Mitteilung des Ministeriums für Handel und Versorgung vom September 1977, Berlin (ADN) 197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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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웹인용 "Kaffee in der DDR" http://www.die-kaffe[...] 2024-01-04
[40] 서적 Bürger, Bitten und Behörden. Geschichte der Eingabe in der DDR Rosa-Luxemburg-Stiftung 2004
[41] 웹인용 Kosta, Rondo, Kaffeemix – Honeckers Kaffeekrise MDR.DE Sendung vom 16. Januar 2007 http://www.mdr.de/ba[...] 2024-01-04
[42] 간행물 "Kaffee in beiden deutschen Nachkriegsstaaten: Konsum, Diskurs, Deutung und Beziehungen" https://web.archive.[...]
[43] 웹인용 kaffeeverband.de http://www.kaffeever[...] Reader des deutschen Kaffeeverbandes 2024-01-04
[44] 문서 Kaffee- und Teemarkt 6. Mai 1977 Seite 3, verweist auf ähnliche Entwicklungen in den USA
[45] 웹인용 ihk-koeln.de http://www.ihk-koeln[...] IHK-Länderschwerpunkt Vietnam Stand 10/2003, demnach waren über 100.000 Vietnamesen zu Arbeit, Ausbildung und Studium in der DDR, die über 10.000 Akademiker machen einen bedeutenden Anteil der vietnamesischen Elite aus 2024-01-04
[46] 서적 Geteiltes Land, geteiltes Leid. Geschichte der deutsch-vietnamesischen Beziehungen von 1945 bis zur Gegenwart Berlin 2022
[47] 논문 Socialist Modernization in Vietnam: The East German Approach, 1976–1989 – in: Comrades of Color – East Germany in the Cold War World Quinn Slobodian, New York 2015
[48] 웹사이트 daklakcoffee.de: Vietnam und die DDR schließen “Kaffeeabkommen” https://web.archive.[...] 2016-06-14
[49] 웹인용 Vietnamese coffee wins Germans' hearts http://e.vnexpress.n[...]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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