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 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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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복 오씨는 오현좌를 시조로 하고 오녕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오현좌가 동복군에 봉해진 데서 유래하며,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32명을 배출했다. 오승은 세종 때 공조 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했고, 오억령은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오단의 손자 오시수는 남인의 영수로서 우의정에 올랐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광양, 장흥, 해남, 화순, 전라북도 남원, 황해도 벽성 등에 분포하며, 인구는 2015년 기준 73,39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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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 오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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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한자 표기 | 同福 吳氏 |
로마자 표기 | Dongbok O ssi |
국가 | 한국 |
지역 | 화순군 |
관련 인물 | 오광록 |
웹사이트 | 동복 오씨 대종회 웹사이트 |
역사 | |
유래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
인구 통계 (2015년) | |
인구 | 72,394명 |
2. 역사
오현좌(吳賢佐)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공이 인정되어 동복군(同福君)에 봉해지고, 그의 후손들은 아들 오녕(吳寧)을 시조(始祖)로 하고 동복(同福)을 본관(本貫)으로 삼게 되었다. 그의 후손 오잠(吳潛)은 1320년(충숙왕 7년)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에 오르고, 구성군(龜城君)에 봉해졌다.[4]
제(濟)
동복 오씨는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32명을 배출하였다. 9세 오승(吳陞)은 조선 세종 때 공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15세 오억령(吳億齡)은 청백리에 녹선되고 우참찬을 지냈다. 오억령의 동생 오백령(吳百齡)은 광해군 때 복천군(福川君)에 봉해졌고, 오백령의 아들 오단(吳端)의 딸이 인조 3남 인평대군과 혼인하였다. 오단의 손자 오시수(吳始壽)는 남인의 영수로서 1679년(숙종 5년) 우의정에 올랐다.
3. 항렬자
연(然)
병(炳)재(在) 병(秉)
근(根)치(致) 응(應) 해(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