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억령
1. 개요
오억령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이다. 1570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2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임진왜란 시기에는 선조를 호종하고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황해도 관찰사로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 1601년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1614년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저서로는 《만취문집》이 있으며, 글씨에도 능했다. 시호는 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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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복 오씨 -
오연천
오연천은 서울대학교와 울산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행정학자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로서 정부 기관 및 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법원행정처 대필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
동복 오씨 -
오명 (정치인)
오명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전두환 정부부터 김대중 정부까지 요직을 역임하며 한국통신 민영화에 기여하고 아주대학교, 건국대학교 총장, 동아일보 회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공학자이자 정치가, 행정가이다. -
1618년 사망 -
허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치가로서, 홍길동전, 교산시화, 도문대작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나, 진보적인 사상과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1618년 사망 -
월터 롤리
월터 롤리 경은 16세기 잉글랜드의 탐험가, 군인, 정치가, 작가로, 엘리자베스 1세 치세에 활약하며 신대륙 탐험과 식민지 개척에 기여했으나, 말년에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오억령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전후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임진왜란 발발 이전에 일본 사신의 말에서 조선 침입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왕에게 보고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예견대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왕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후 대사간, 도승지, 대사헌, 이조참판, 황해도 관찰사, 부제학, 청백리, 병조참판, 부판윤, 형조판서, 우참찬, 개성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614년(광해군 6년) 8월 27일 위성원종공신 1등(衛聖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저서로는 《만취문집》이 있으며, 글씨에도 뛰어나 초서, 예서, 전서를 모두 잘 썼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2.1. 초기 생애 및 관직 생활
1570년(선조 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2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전생서참봉, 예문관 검열, 호조좌랑,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을 거쳐 경상도안무사로 있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집의, 전한, 성균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사간원 전한으로 있을 때 일본 사신을 맞아 접대했는데, 일본 사신의 말에서 조선 침입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왕에게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그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로소 왕의 인정을 받았다.
2.2. 임진왜란 시기의 활동
1591년 진주사(陳奏使)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는 도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개성에서 선조를 호종(扈從)하였다. 의주에서 직제학(直提學)에 임명되었고, 이후 이조참의, 우부승지, 대사성을 지냈다. 사간원 전한으로 있을 때 일본 사신을 맞아 접대했는데, 일본 사신의 말에서 조선 침입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왕에게 아뢰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훗날 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로소 왕의 인정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