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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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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아그룹은 1945년 충남토건사로 시작하여 건설, 운송,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대한민국의 기업 집단이었다.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 건설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0년대에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며 성장했으나,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 1997년 외환 위기,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 연루 등으로 재정 위기를 겪었다. 1998년 워크아웃 절차를 거쳐 해체되었으며, 주요 계열사들은 매각, 청산, 부도 처리되었다. 현재 동아건설은 SM그룹, 대한통운은 CJ그룹에 인수되어 CJ대한통운으로, 동아생명은 KDB생명으로, 동아증권은 NH투자증권으로 변경되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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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그룹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동아그룹 로고
원어Dong AH Group
창립1945년 (충남토건 주식회사=이후 1972년 동아건설산업(주)으로 상호변경 동아콘크리트 설립 이후 동아가 그룹체제로 골격 형성됨.)
창립자최준문
해체2001년 5월 11일
국가대한민국
장소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현 예금보험공사 사옥(구 동아생명 본사 사옥), 중구 서소문동(동아그룹, 현 부영그룹 사옥) 등
모기업동아건설산업(주)
웹사이트www.dongah.co.kr
인물
1대최준문(1945~1985) <1985년 고혈압으로 작고>
2대최원석 (1977~1998.5.15)
전문경영인 체제 회장정부와 채권단이 임명함
1대고병우 (1998.6.4~2000.6.10) (전 건설부 장관)
2대최동섭 (2000.7~2000.11) (전 건설부 장관).
자산
총액11조원(1992년 당시)

2. 연혁

1981년 원효대교를 완공하고, 최원석 회장은 88 서울 올림픽 유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준공했다.[4] 1983년 리비아에 진출하여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고, 동해생명, 공영토건을 인수했다.[5]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통운이 물류를 담당했고, 사우디아라비아 T.E.P공사(12.7억달러)를 준공했다.[6] 1987년 종업원 수가 30,000여 명을 돌파했다.[7] 1988년 88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통운이 물류를 담당했다.[7] 1989년 울진원자력발전소 1, 2호기를 준공했다.

1990년 리비아 대수로 2단계 공사를 60억달러에 수주하고, 공산학원 임야 72만 평을 부산대학교에 기증했다. 1991년 리비아 대수로 1단계 통수식을 하고, 미국기계학회 NA 및 NPT 인증서를 취득했으며, 주암 다목적댐을 준공하고, 포스코경영센터를 착공하고, 동아증권을 설립했다. 1992년 광양제철소 준공식에 최원석 회장이 참가했다. 1993년 최원석 회장이 탁구 경기대회에서 북한 대표 서인생 회장과 만났으며, 용산 전쟁기념관을 준공하고, 화생방 집단 방호 시설(MCPS) 14동을 준공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발생했고, 최원석 회장은 성수대교를 무료로 재시공하여 헌납하겠다고 발표했다. 1995년 성수대교 붕괴 및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최원석 회장이 검찰에 소환되었다. 1996년 동아방송예술대학교를 설립하고, 대한통운 마트를 설립했으며, 최원석 회장은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구속은 면하고 사면되었다. 1997년 수산업에 진출했고, 미국 (지) 선정 세계 100대 건설사 중 동아건설이 42위에 올랐다. 1998년 1월 유동성 위기로 1차 협조융자(서울은행)를 받았다. 2월 18일 마이클 잭슨이 김포매립지 워터프루프 놀이공원 투자를 위해 방한하여 최원석 회장과 기념 촬영을 했다. 3월 정부와 동아, 대우, 현대 건설 3사 합작 리비아 대수로 공사 논의가 무산되었다. 3월~4월 동아그룹 및 동아건설이 농림부에 김포매립지 용도 변경을 요구했다.

2. 1. 설립 초기 (1945년 ~ 1970년대)

1945년 8월 충남토건사(동아건설의 모태)가 설립되었다.[1] 1966년 동아콘크리트를 설립하여 그룹의 골격이 형성되었고,[1] 1968년에는 대한통운을 인수하였다.[1] 1969년 대한통운(주)은 동해화력발전소와 호남화력발전소의 발전기기를 운송했다.[1]

1971년 동아건설산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하고,[1] 고리원자력 발전소 1~2호기 건설공사와 서울 지하철 1호선 제3공구 공사를 착공했다.[1] 1972년에는 미국령 괌에 동아아메리카주식회사를 설립했다.[1]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12.5억달러 규모의 전화통신공사를 수주했고,[1] 성수대교를 착공했으며, 학교법인 송산학원을 설립하고 대전 동아공고를 개교했다.[1] 1978년에는 원효대교를 착공하여 1981년까지 국가에 무상 기부했고,[1] 월성원자력 발전소 1호기 건설공사를 착공했다.[1] 1979년 성수대교를 준공하고,[1] 사우디아라비아 알주와 산악도로공사를 준공했다.[1]

2. 2. 해외 진출 및 성장 (1970년대 ~ 1980년대)

1977년 사우디아라비아와 12.5억달러 규모의 전화통신공사를 수주하며 해외 건설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3] 1983년에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시작하여[5] 세계적인 건설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1년 최원석 회장은 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기여하였다.[4]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6]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한통운이 물류 운반을 담당했다.[7]

2. 3. 사업 다각화 및 위기 (1990년대)

1990년대 동아그룹은 금융, 방송, 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다. 1991년 동아증권을 설립하고, 1996년에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를 설립했다. 1997년에는 수산업 분야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동아그룹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혔다. 이 사건으로 동아건설은 성수대교를 무료로 재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1995년에는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최원석 회장이 연루되면서 그룹 경영에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최원석 회장은 검찰에 소환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구속은 면하고 이후 사면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 속에서 동아그룹의 경영난은 더욱 심화되었다.

3. 해체 과정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동아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1998년 1월, 서울은행으로부터 1차 협조 융자를 받았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1]

1998년 5월 12일, 신복영 서울은행장은 최원석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 사퇴를 요구했다.[2] 신 행장은 최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야만 금융 지원과 김포매립지 용도 변경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2] 결국 최 회장은 5월 15일 회장직에서 사퇴했고, 5월 18일 동아그룹 해체가 확정되었다.[3]

이후 동아그룹은 워크아웃 절차를 통해 동아건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열사가 매각, 청산, 분리되었다.[4] 5월 22일, 서울은행은 최원석 회장의 재산을 몰수하고 출국 금지 조치를 내렸다.[5] 5월 23일에는 최 회장 소유 자택과 동산에 35건의 근저당권(200억 원)을 설정했다.[6]

6월 4일, 전문경영인 체제가 도입되어 고병우 전 건설부 장관이 신임 동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7] 그러나 고병우 회장은 취임 기간 동안 계열사들을 헐값에 매각하고, 정치권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등 경영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8]

1998년 9월, 동아그룹은 기업 구조조정 협약에 따라 동아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23개 전체 계열사를 매각하여 건설 전문기업으로 남는다는 조건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하였다.

3. 1. 주요 계열사 매각 및 청산

1998년 7월, 동아증권은 세종기술투자㈜에 21억에 헐값으로 매각되었다.[2][3][4][5][6][7] 같은 해 9월, 동아그룹은 기업 구조조정 협약에 따라 동아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23개 계열사를 매각, 청산, 분리하여 건설 전문 기업으로 남는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1999년 3월, 동아생명은 부실 생보사로 지정되어 공개 매각 절차가 진행되었으나,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 2000년 2월 18일, 동아생명은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단돈 1000KRW에 비밀 매각되었다. 이는 당시 세간에 알려진 550억과는 큰 차이가 있는 헐값 매각이었다. 계약 내용에는 외부에 공개를 금지하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2000년 5월, 동아생명은 금호생명과 합병하여 금호생명으로 상호가 변경되었고, 대한통운은 동아그룹에서 분리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같은 해 11월, 동아건설은 최종 부도 처리되었고, 2001년 5월 11일 법원의 파산 선고로 동아그룹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4. 해체 이후

1998년 동아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8] 핵심 계열사였던 대한통운CJ그룹에 인수되었고, 동아생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단돈 1000KRW에 비밀리에 매각된 후 KDB생명으로 변경되었다. 동아증권은 NH투자증권으로, 동아건설은 SM그룹에 인수되었다.

4. 1. 계열사별 운명

계열사결과
대한통운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었다가 CJ그룹에 다시 인수됨.
공영토건현황 미확인.
동아건설2009년 횡령사고 이후 프라임 그룹을 거쳐 SM그룹에 인수됨.[8]
동아생명1998년 단돈 1000KRW에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비밀리에 매각되어 금호생명에 흡수 합병됨. 이후 2010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산업은행에 인수되어 KDB생명으로 변경됨.
동아증권1998년 7월 세종기술투자에 매각되어 세종증권으로 변경되었다가, 2006년 2월 농협에 인수되어 NH투자증권으로 변경됨.
동아방송예술대학교현재도 운영 중.
동아TV1999년 5월 인터파크에 인수되어 인터파크TV로 설립된 후, 같은 해 7월 (주)동아TV로 상호 변경.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2015년 5월 LF에 인수됨.
동아증권 탁구단, 대전 프로축구해체. 대전 프로축구는 여러 곳에 인수됨.[8]
김포매립지 (현 인천 청라지구, 인천매립지)1999년 6월 농업기반공사에 매각됨.
동아시티백화점(現 모다백화점 부평점)1999년 4월 롯데쇼핑에 매각, 2019년 6월 현재 상호로 재개점.


5. 평가 및 영향

동아그룹의 해체는 대한민국 경제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건설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부실 경영, 정경유착,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실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평가된다.[1]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그룹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으며,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 최원석 회장이 연루되면서 그룹의 신뢰도는 더욱 추락했다.[1] 이러한 사건들은 경영 악화로 이어져, 결국 1998년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되었다.[1]

최원석 회장은 김포매립지 용도 변경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했으나, 정부는 농지 보존과 특혜 시비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1] 마이클 잭슨의 투자 유치 시도 역시 무산되었다.[1] 결국 최원석 회장은 1998년 5월, 주거래 은행이었던 서울은행의 압박으로 회장직에서 사퇴해야 했다.[1]

최원석 회장의 경영 방식과 개인적인 문제(이혼 등)도 그룹 해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제기된다.[1] 특히, 1998년 3월 최원석 회장이 부인과 이혼하면서 여러가지로 최원석 회장이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으며, 이 여자 문제가 동아그룹이 해체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조

[1] 문서 사실상 동아일보(동아일보사) 혹은 동아제약, 동아연필, 동아출판사 관련이 없음
[2] 뉴스 케이블채널 GTV 세종증권서 인수 http://newslibrary.n[...] 매일경제 2016-08-11
[3] 뉴스 [세종증권] GTV인수 '세종TV'로 새출발 https://www.sedaily.[...] 서울경제 2019-11-11
[4] 뉴스 케이블TV 채널35 SDNTV로 개칭 http://www.imaeil.co[...] 매일신문 2017-02-06
[5] 뉴스 세종증권 前회장 유죄 확정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2-07-02
[6] 뉴스 [중병앓는 방송산업] (上) 난장판된 뉴미디어시장 / 채널 등... https://news.naver.c[...] MBN(매일경제) 2016-08-11
[7] 뉴스 여성채널 GTV 7월 1일 개국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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