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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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렌스 오츠는 1880년에 태어나 1912년 사망한 영국의 군인이자 남극 탐험가이다. 그는 부유한 토지 귀족 가문 출신으로, 군 복무 중 제2차 보어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고 빅토리아 십자 훈장 수훈이 추천되기도 했다. 1910년 로버트 팰컨 스콧의 테라 노바 탐험대에 합류하여 남극점에 도달하는 데 기여했으나, 귀환 중 극심한 추위와 부상으로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기 희생은 영국인의 강인한 정신을 상징하는 사례로 평가받으며,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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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런스 오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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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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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렌스 에드워드 그레이스 오츠 |
다른 이름 | 타이투스 오츠 |
출생지 | 풋니, 서리 주, 잉글랜드 |
사망지 | 로스 빙붕, 남극 |
사망 원인 | 저체온증 |
학력 | 이튼 칼리지 |
직업 | 기병 장교, 탐험가 |
2. 생애
'''로런스 오츠'''는 영국 육군 장교이자 남극 탐험가로, 로버트 팰컨 스콧이 이끈 테라노바 탐험에 참여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1] 그는 부유한 토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제2차 보어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기도 했다. 이후 남극 탐험에 자원하여 참여했으나, 극심한 악천후와 동상으로 고통받던 중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보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2][3] 그의 마지막 말 I am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 time|아이 앰 저스트 고잉 아웃사이드 앤드 메이 비 섬 타임eng("나는 잠시 나갔다 올 뿐인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는 극기적인 자기희생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4]
2. 1. 어린 시절
오츠는 1880년 서리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FRGS인 윌리엄 에드워드 오츠이며, 어머니는 조슈아 벅턴의 딸인 캐롤라인 애니이다. 그는 이들 부부의 장남이었다. 오츠 가문은 부유한 토지 귀족으로, 16세기부터 듀스버리와 리즈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 오츠는 1891년 게스팅소프의 오버 홀 영지의 영주가 되었고[5][6], 이후 가족과 함께 에식스 게스팅소프로 이사했다.[4] 오츠에게는 한 살 많은 누나 릴리안이 있었는데,[7] 그녀는 아일랜드의 바리톤 가수이자 배우인 프레데릭 래널로우와 결혼했다.[8] 그의 삼촌은 자연주의자이자 아프리카 탐험가인 프랭크 오츠였다.오츠는 1885년부터 1891년까지 퍼트니에서 살았으며, 인근 윌링턴 스쿨에 처음으로 입학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이후 이튼 칼리지에 진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2년이 채 되기 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6] 그 뒤 이스트본에 있는 사립 학교인 사우스 린 스쿨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9] 그의 아버지는 1896년 마데이라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2. 2. 군 복무
1898년, 오츠는 웨스트 요크셔 연대 제3(민병대) 대대에 임관되었다. 그는 1900년 5월 제6(인니스킬링) 드래군 기병대에 소위로 전속되어 제2차 보어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트란스발 공화국, 오렌지 자유국, 케이프 식민지에서 작전에 참여했다. 1901년 3월, 전투 중 총상으로 왼쪽 허벅지 뼈가 부서졌고, 이 부상으로 그의 왼쪽 다리는 오른쪽보다 2.5cm 짧아졌다. 그는 교전 중 두 차례나 항복 요구를 받았지만, "우리는 싸우러 왔지, 항복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답하며 거부했다.[6] 이러한 용기로 그는 빅토리아 십자 훈장 수훈 대상으로 추천되었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10]테라노바 탐험의 동료였던 앱슬리 체리-가라드는 오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 중 한두 명이 오츠가 잘 아는 케이프타운의 윈버그로 나갔는데, 그는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다리가 부러져 그곳에서 요양을 했고, 그가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싸워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이끌고 항복을 거부했다. 그는 나중에 피를 흘리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고,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은 머리 가운데 총알이 박혀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확신했다! 지금 그의 기억은 회복기에 옆 침대에 누워 있던 부상당한 보어인이 그가 병동을 나갈 때마다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섰다는 것뿐이다."
오츠는 1902년에 중위로 진급했으며, 남아프리카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된 후 케이프타운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왔다.[11] 그는 1902년 6월 23일자 키치너 경의 최종 보고서에서 공개 칭찬을 받았다.[12] 이후 1906년에 대위로 진급했으며, 아일랜드, 이집트, 인도 등에서 복무했다. 그는 종종 역사적 인물인 타이터스 오츠의 이름을 딴 "타이터스 오츠"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3]
3. 테라 노바 탐험
로런스 오츠는 1910년 로버트 팰컨 스콧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인 테라 노바 탐험에 합류했다. 말에 대한 전문 지식과 탐험 자금 기여를 인정받아 탐험대원으로 선발되었으며, 주로 탐험에 사용될 조랑말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탐험 준비 과정에서 오츠는 스콧과 탐험 방식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1911년 11월, 스콧과 오츠를 포함한 탐험대는 케이프 에반스를 출발하여 남극점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여러 지원팀이 차례로 귀환한 후, 1912년 1월 4일 스콧, 오츠, 윌슨, 바우어스, 에반스 5명이 최종적으로 남극점을 향했다. 그러나 1월 18일 남극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로알 아문센의 노르웨이 탐험대가 35일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환하는 길은 혹독한 날씨와 식량 부족, 부상 등으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에드가 에반스가 낙상 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오츠 역시 심각한 동상으로 인해 탐험대의 행진을 늦추게 되었다. 1912년 3월 17일경, 오츠는 자신의 상태가 동료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판단하여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텐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가 희생했다. 그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남은 스콧, 윌슨, 바우어스는 보급 지점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악천후 속에 갇혀 사망했다. 오츠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 근처에 그의 용감한 희생을 기리는 돌무덤과 십자가가 세워졌다.
3. 1. 탐험 준비

1910년, 로런스 오츠는 로버트 팰컨 스콧이 이끄는 남극 탐험대인 테라 노바 탐험에 지원했다. 그는 주로 말에 대한 경험과 탐험 자금으로 1000GBP를 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탐험대원으로 합격했다. 탐험대 동료들은 그를 "군인"이라고 불렀으며[14], 그의 주요 임무는 스콧이 초기 보급 기지 설치와 남극점 도달 여정의 전반부에서 썰매를 끄는 데 사용할 조랑말 19마리를 돌보는 것이었다. 탐험대원 앱슬리 체리-가라드는 오츠를 "말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만큼 잊어버린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전문성을 인정했다. 스콧은 최종적으로 오츠를 남극점에 도달할 5명의 대원 중 한 명으로 선택했다.[15] 오스트레일리아 남극 탐험에 더글러스 모슨과 함께 참여했던 동료 극지 탐험가 벨그레이브 에드워드 서튼 니니스는 자신의 일기에 오츠를 "뛰어나고 단순한 사람"이라고 묘사하면서도, 그가 탐험대의 역할에 적합한지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16]
항해 초기부터 오츠는 ''테라 노바'' 호의 선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니니스는 선상 승무원들의 말을 인용하며 "그[오츠]는 일반적인 행동으로 인해 선원들 사이에서 인기를 높이지 못했고", 만약 오츠가 다른 동료들과 관계가 틀어진다면 맥머도 해협의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는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니니스는 오츠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원치 않아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16] 오츠는 탐험대의 운영 방식을 두고 스콧과 여러 차례 의견 충돌을 겪었다. 탐험대원 프랭크 데벤햄은 "그들의 성격은 서로에게 맞지 않았다"고 회상했다.[17] 오츠는 스콧이 탐험을 위해 준비한 조랑말들을 처음 보고는, 5GBP짜리 그 말들이 너무 늙고 상태가 좋지 않아 쓸모없는 "불쌍한 짐덩이"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18] 그는 나중에 "동물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에 대한 스콧의 무지는 엄청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19] 오츠는 자신의 일기에 "나는 스콧을 몹시 싫어하며, 만약 이 탐험이 영국 탐험대가 아니었다면 모든 것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는 정직하지 않고, 자신을 먼저 생각하며,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적었다.[19]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거친 발언들이 종종 열악한 환경 탓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반면 스콧은 오츠에 대해 비교적 덜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그를 "쾌활한 비관주의자"라고 불렀고, "그 군인은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보지만, 나는 이것이 그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14]
3. 2. 남극점 도달과 귀환

스콧, 오츠, 그리고 탐험대의 다른 14명의 대원들은 1911년 11월 1일 케이프 에반스 기지 캠프에서 남극점을 향해 출발했다. 약 1440.36km에 달하는 여정 동안, 미리 정해진 지점에서 스콧은 탐험대 지원 대원들을 차례로 귀환시켰다. 1912년 1월 4일, 남위 87° 32' 지점에서 스콧, 에드워드 애드리안 윌슨, 헨리 로버트슨 바우어스, 에드가 에반스, 오츠로 구성된 5명의 최종 극지 탐험대만이 남극점을 향한 마지막 약 268.76km의 행진을 계속했다.
1912년 1월 18일, 그들은 마침내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센과 그의 4인조 팀이 폴하임 캠프에 남겨둔 텐트만을 발견했다. 그들은 남극점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텐트 안에는 아문센이 남긴 메모가 있었는데, 그의 탐험대가 1911년 12월 14일에 남극점에 도달하여 스콧 탐험대보다 35일 앞섰다는 내용이었다.
스콧 탐험대는 귀환하는 길에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는 유례없는 악천후, 부족한 식량 보급, 낙상으로 인한 부상, 그리고 괴혈병과 동상의 영향 때문이었다. 1912년 2월 17일, 비어드모어 빙하 기슭 근처에서 에드가 에반스가 며칠 전 낙상으로 입은 머리 부상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20]
3월 15일, 오츠는 동료들에게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을 침낭에 두고 가라고 제안했지만, 동료들은 이를 거절했다. 그는 그날 몇 마일을 더 나아갔으나, 밤이 되자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21]
3. 3. 죽음
스콧의 3월 16일 또는 17일 일기(스콧은 날짜를 확신하지 못했지만 17일이 맞다고 생각했다)에 따르면, 오츠는 전날 텐트 밖으로 나가 약 -40.0°C의 눈보라 속에서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스콧은 일기에 "우리는 불쌍한 오츠가 죽음으로 걸어가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만류하려 했지만, 용감한 남자이자 영국 신사의 행동임을 알았습니다."라고 적었다.[22] 스콧의 기록에 따르면, 오츠는 텐트를 나서기 직전 "잠시 밖에 나갔다 올 텐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23][24]오츠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스콧, 윌슨, 보워스는 식량이 있는 원 톤 보급소를 향해 약 32.19km를 더 나아갔지만, 3월 20일 남위 79° 40' 지점에서 극심한 눈보라에 발이 묶였다. 텐트 안에 갇힌 채 추위와 쇠약함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들은 9일 후, 목표 지점을 불과 약 17.70km 남겨두고 사망했다. 그들의 얼어붙은 시신은 1912년 11월 12일 수색대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오츠의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수색대는 오츠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 근처에 돌무덤과 십자가를 세우고 다음과 같은 비문을 남겼다: "여기서 매우 용감한 신사, 이니스킬링 드래군의 L. E. G. 오츠 대위가 사망했다. 1912년 3월, 극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역경에 시달리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기꺼이 죽음을 맞이했다."[25]
4. 유산
오츠의 자기 희생은 최근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지며, 그의 절제된 마지막 말은 "강인한 정신"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영국인의 특징의 진정한 예시로 자주 인용된다.[26]
오츠의 순록 가죽 침낭은 회수되어 현재 케임브리지에 있는 스콧 극지 연구소 박물관에 탐험대의 다른 물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햄프셔주 길버트 화이트 하우스의 오츠 박물관은 로렌스 오츠와 그의 삼촌 프랭크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27]
로열 드래군 가드는 제6(인니스킬링) 드래군을 계승하며, 오츠를 기리기 위해 그의 생일이자 성 패트릭의 날인 3월 17일을 연대 기념일로 정했다.[10][28] 그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여왕 훈장과 극지 훈장은 요크의 연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29] 당시 인니스킬링 드래군 가드는 잭 헤이워드 경으로부터 2만파운드를 기증받아 이 훈장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30]
1913년, 그의 형제 장교들은 그의 어머니 캐롤라인이 남은 생애 동안 매주 정성스럽게 닦았던, 에세스주 게스팅토프의 성모 마리아 교회에 그의 청동 기념 명판을 세웠다. 이 교회는 그의 가족 집인 게스팅토프 홀 맞은편에 있다.
오츠가 죽음으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존 찰스 돌먼의 그림 ''아주 용감한 신사''가 런던의 기병 클럽에 걸려 있다.[31][32] 이 그림은 1913년 인니스킬링 드래군 장교들이 의뢰했다.[31] 이 그림은 1914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전시되었다.[33] 준비 스케치는 스콧 극지 연구소에 있으며,[34] 크리스티 경매소를 통해 개인 소유주를 대신하여 2014년 4만파운드에 판매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있다.[35]
1914년 5월, 오츠를 기리는 기념비가 이튼 칼리지의 신축 도서관 회랑에 세워졌으며, 이는 보어 전쟁 기념관의 일부였다. 이 기념비는 탐험대 대장의 미망인 캐슬린 스콧이 제작했다.[6]
리즈 Meanwood에 있는 로렌스 오츠 학교(1992년 폐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의 사망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리즈, Meanwood 공원에 그를 기리는 블루 플라크가 공개되었다.[36]
2007년 3월 17일, 퍼트니 협회는 오츠의 어린 시절 집이 있던 런던, 퍼트니, 어퍼 리치몬드 로드 263번지(현재 주소는 어퍼 리치몬드 로드 307번지)에 블루 플라크를 공개했다.[37]
5. 대중 문화
- 1948년 영화 ''남극의 스콧''에서는 데릭 본드가 오츠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탐험대의 대인 관계 어려움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는 관련된 인물들의 영웅적인 면모에 초점을 맞추었다.
- 1985년 센트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7부작 시리즈 ''지구의 마지막 장소''는 아문센과 스콧의 남극점 탐험을 다루었으며, 리처드 모란트가 오츠 역을 맡았다.
- 마이클 스미스의 전기 ''나는 잠시 나갈 뿐입니다: 오츠 대위 - 남극 비극''(I Am Just Going Outside: Captain Oates – Antarctic Tragedyeng, 2002)에서는 오츠가 20세 때 11세 소녀 에티 맥켄드릭을 임신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38][39]
- 브렌다 클라우의 2001년 SF 소설 ''잠시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A Change of Timeeng)는 오츠가 시간 이동을 통해 2045년으로 가서 첨단 의학으로 치료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이후 오츠를 중심으로 한 그녀의 다른 소설 ''세계를 수정하다''(Revise the Worldeng)의 기반이 되었다.[40]
- 제럴딘 맥커프리언의 2005년 소설 ''하얀 어둠''(The White Darknesseng)에서는 십 대 소녀 사이먼 웨이츠가 오츠 대위에게 강하게 집착하며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1931년 영화 ''비행선''(Dirigibleeng)은 1930년대 미국의 남극 탐험을 배경으로 하며, 로스코 카른스가 연기한 가상의 인물이 오츠와 비슷한 부상을 입고 그의 죽음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을 희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데릭 마혼의 1985년 시 빌라넬 "남극"(Antarcticaeng)은 오츠의 마지막 순간과 희생을 상세히 묘사한다. 시는 "나는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I am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 timeeng)라는 유명한 말을 반복구로 사용하며, "그는 잠시 나갔다 올 것입니다"(He is just going outside and may be some timeeng)로 변주한다.
- 테리 프래쳇은 그의 디스크월드 시리즈에서 오츠의 마지막 말을 비슷한 상황에서 여러 차례 사용했다. 예를 들어, ''사신''(Reaper Maneng)에서 윈들 푼스는 "나는 잠시 나갈 것입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작은 신들''(Small Godseng)에서 브루타도 같은 말을 하며, ''소울 뮤직''(Soul Musiceng)에서는 죽음 캐릭터가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41][42]
- 톰 스토파드의 1972년 연극 ''점퍼스''(Jumperseng)에서는 달 착륙선이 손상되어 한 명만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 두 명의 가상 영국 우주 비행사 "오츠"와 "스콧 대위"가 등장한다. 스콧은 싸움에서 이긴 후 "이제 올라갈 것입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해치를 닫는다.[43]
- 베릴 베인브리지의 1991년 소설 ''생일 소년들''(The Birthday Boyseng)에서는 오츠가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나오며, 스콧 탐험대의 비극적인 여정을 대원들의 시점에서 그린다.
- 마거릿 애트우드의 2009년 소설 ''홍수의 해''(The Year of the Floodeng)에서 아담 원은 '신의 정원사'라는 생태 종교 단체 추종자들에게 한 연설에서 "스콧 탐험대의 성 로렌스 '타이투스' 오츠"를 언급한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의 이름도 오츠에서 따왔다.
- 스페인 헤비메탈 밴드 WarCry의 앨범 ''엘 세요 데 로스 티엠포스''(El Sello de los Tiemposspa)에 수록된 곡 "Capitán Lawrence"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한 그의 희생을 노래한다.
- 차이나 미에빌의 2011년 SF 소설 ''엠버시타운''(Embassytowneng)에서는 여러 인간 캐릭터가 외계 도시에서 걸어 나가 죽음을 맞이하려는 행동을 '오츠 로드'(Oates's Road)를 탄다고 표현한다. 소설 초반부에는 오츠와 같은 용감한 극지 탐험가들이 언급되기도 한다.
- 1991년 방영된 영국 시트콤 ''레드 드워프''의 에피소드 "화이트 홀"(White Holeeng)과 롭 그랜트의 동명 소설 ''백워즈''(Backwardseng)에서는 크라이튼이 리머에게 오츠처럼 희생하라고 설득하려 한다. 리머는 홀로그램인 자신을 꺼서 우주선에 전력을 공급하라는 제안에 "오츠 대위는 얼간이였어! 나라면 천막에 남아서 얼어붙은 시베리안 허스키로 스콧의 머리를 때리고 그를 먹었을 거야."라고 응수하며, 스콧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오츠의 죽음을 미화했을 것이라고 비꼰다.[44]
- 리 앤 헤링의 코미디 시리즈 ''피스트 오브 펀''(Fist of Funeng)에서는 오츠의 희생을 영웅적 행위가 아닌 수동 공격성의 예로 묘사하는 반복적인 스케치를 선보였다. 이러한 행동은 오츠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남극 탐험 복장을 완전히 갖추고) 동정을 유발하도록 의도된 방식으로 마지막 로스트 포테이토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다른 상황에서도 계속되었다.
- 1999년 BBC에서 방영된 로비 더 순록 스페셜 ''불의 발굽''(Hooves of Fireeng)의 원판에서는 로비가 산타의 썰매 팀을 떠나면서 오츠의 마지막 말을 인용한다. 이 대사는 미국 CBS 더빙판에서는 변경되었다.
- 스페인 팝 그룹 Mecano의 앨범 ''데스칸소 도미니칼''(Descanso Dominicalspa)에 수록된 노래 "Héroes de la Antártida"에서도 오츠가 언급된다.
- 호주 포스트 록 밴드 우리는 바다를 잃었다(We Lost the Sea)는 2015년 앨범 ''Departure Songs''에 오츠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는 "A Gallant Gentleman"이라는 곡을 수록했다.[45]
- 영국 시트콤 ''피프 쇼''(Peep Showeng) 시즌 7의 에피소드 "아름다운 정신"(A Beautiful Mindeng)에서는 마크가 제레미가 발코니에서 ''폭풍의 언덕''을 읽는 것을 보고 "상대적으로 짧은 책을 읽어야 하는 오츠 대위가 저기 가네."라고 비유한다. 다른 에피소드 "러브 벙커"(Love Bunkereng)에서는 슈퍼 한스가 페인트볼 전쟁에 나서는 마크와 제레미를 "홀 앤 오츠"라고 부르며 "너는 그냥 산책을 나가는 거야.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그들은 거의 즉시 페인트볼에 여러 번 맞는 소리를 듣는다.
- ''몬티 파이튼의 플라잉 서커스'' 시즌 2, 에피소드 10에서는 테리 존스가 ''사하라의 스콧''(Scott of the Saharaeng)이라는 저예산 영화 속에서 오츠를 연기하며 거대한 전기 펭귄으로부터 탐험대를 구출하는 패러디 장면이 나온다.
- 라디오 버전의 코미디 시리즈 ''마이티 부쉬'' 에피소드 "툰드라"(Tundraeng)에서는 하워드가 눈보라 속으로 걸어 나가며 오츠를 흉내 내지만, 다리 길이 차이 때문에 계속 원을 그리며 걷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조
[1]
웹사이트
"Oates, Lawrence Edward Grace - Captain (1880-1912) - Biographical notes"
https://www.coolanta[...]
[2]
간행물
Oates, Lawrence Edward Grace
[3]
웹사이트
"Oates, Lawrence Edward Grace - Captain (1880-1912) - Biographical notes"
https://www.coolanta[...]
[4]
서적
Encyclopaedia of the Antarctic, vol. I: A-K
Routledge
2007
[5]
서적
Burke's Landed Gentry, 17th edition
1952
[6]
문서
Article by Andrew Robinson in Eton College News and Events Lent 2012
[7]
웹사이트
1881 British Census Household Record
http://www.familysea[...]
Familysearch.org
2011-10-0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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