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바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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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 바르투는 프랑스의 정치인이자 변호사로, 1862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하원 의원과 노동조합 및 법률 전문가로 활동했으며, 1913년 총리를 역임했다. 또한 13차례 장관직을 수행하며 외무부 장관을 두 차례 역임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영웅이자 작가로도 활동했다. 바르투는 동부 조약 체결을 시도하고, 소련의 국제 연맹 가입을 성공시켰으며, 해군과 공군의 재무장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예술을 후원하며 파리의 예술적 리더십을 강조했으나, 1934년 마르세유에서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드르 1세와 함께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국제 연맹의 테러 방지 협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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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바르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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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원어 이름 | Jean Louis Barthou |
로마자 표기 | Jean Louis Barthou |
IPA | ʒɑ̃ lwi baʁtu |
직위 | |
외무부 장관 | 재임 시작: 1934년 2월 9일 재임 종료: 1934년 10월 9일 이전: 에두아르 달라디에 이후: 피에르 라발 |
프랑스 총리 | 재임 시작: 1913년 3월 22일 재임 종료: 1913년 12월 9일 이전: 아리스티드 브리앙 이후: 가스통 두메르그 |
개인 정보 | |
출생 이름 | Jean Louis Barthou |
출생일 | 1862년 8월 25일 |
출생지 | 올로롱생트마리, 프랑스 |
사망일 | 1934년 10월 9일 |
사망지 | 마르세유, 프랑스 |
사망 원인 | 총상 |
소속 정당 | 민주 공화 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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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프랑스 피레네-아틀랑티크주 올로론-생트마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고향 지역구의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노동조합 관련 법률 전문가로 인정받았으며, 1913년에는 잠시 프랑스 총리직을 맡기도 했다.[2]
이후 여러 정부에서 13차례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과 전간기에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프랑스 외교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3] 외무장관 시절에는 나치 독일의 부상에 맞서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했고,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소련의 국제 연맹 가입을 이끌었다.[4] 또한 독일의 재무장에 대응하여 프랑스의 군비 증강에도 힘썼다.[5]
정치 활동 외에도 작가이자 예술 애호가로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고[3], 예술 진흥에 기여하여 "시인들의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6]
1934년 10월 9일, 외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 마르세유에서 유고슬라비아 국왕 알렉산드르 1세와 함께 있다가 암살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7]
2. 1. 초기 생애
루이 바르투는 1862년 8월 25일 프랑스 피레네-아틀랑티크주 올로론-생트마리에서 태어났다.2. 2. 정치 경력
루이 바르투는 정계에 입문하여 고향 지역구에서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노동조합의 역사와 법률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다.1913년에는 잠시 프랑스 총리직을 맡아 내각을 이끌었다.[2] 이후 여러 정부에서 총 13차례에 걸쳐 장관직을 수행했으며,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과 전간기인 1934년에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며 프랑스 외교 정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무장관으로서 그는 나치 독일의 부상에 대응하여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며 동부 조약 체결을 시도하고 소련의 국제 연맹 가입을 이끌었으며, 이는 훗날 프랑스-소련 상호 원조 조약 체결의 기반이 되었다.[4][3] 또한 독일의 재무장에 맞서 프랑스의 해군 및 공군력 증강을 추진하기도 했다.[5]
정치 활동 외에도 그는 저명한 작가이자 예술 애호가로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3], 예술 진흥에도 힘써 "시인들의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6]
2. 2. 1. 총리 재임 (1913)
루이 바르투는 1913년 3월 22일부터 1913년 12월 9일까지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사회 정책 측면에서는 출산 전후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1913년 6월에 통과되는 성과가 있었다.[2]바르투 내각의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직책 | 이름 |
---|---|
총리 및 공공 교육 및 미술부 장관 | 루이 바르투 |
외무부 장관 | 스테판 피숑 |
육군부 장관 | 외젠 에티엔 |
내무부 장관 | 루이 뤼시앵 클로츠 |
재무부 장관 | 샤를 뒤몽 |
노동 및 사회 보장부 장관 | 앙리 셰롱 |
법무부 장관 | 앙토니 라티에 |
해군부 장관 | 피에르 보댕 |
농업부 장관 | 에티엔 클레망텔 |
식민지부 장관 | 장 모렐 |
공공사업부 장관 | 조제프 티에리 |
상공부, 우체국 및 전신부 장관 | 알프레드 마세 |
2. 2. 2. 장관 경력
루이 바르투는 고향 지역구에서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노동조합 역사와 법에 대한 권위자였다.그는 1913년 3월 22일부터 1913년 12월 9일까지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 총리 재임 기간 중 사회 정책 측면에서는 출산 전후 여성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 1913년 6월에 통과되었다.[2]
바르투는 총리직 외에도 13차례나 장관직을 역임했으며, 특히 1917년과 1934년에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국가적 영웅이자 저명한 작가로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3]
1934년 외무장관 재임 시절, 그는 나치 독일의 위협에 맞서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를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동부 조약 체결을 시도했는데, 이는 독일, 소련,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발트 국가들이 참여하여 프랑스가 소련의 유럽 국경을, 소련이 독일의 동부 국경을 상호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구상이었다. 비록 동부 조약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같은 해 9월 소련의 국제 연맹 가입을 성공시키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4] 또한 그는 1935년 체결된 프랑스-소련 상호 원조 조약의 초석을 다졌으나, 실제 조약 서명은 그의 후임자인 피에르 라발에 의해 이루어졌다.[3]
바르투는 1933년 나치 독일의 국제 연맹 탈퇴에 대응하여 프랑스 해군과 프랑스 공군력 증강에 초점을 맞춘 재무장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도 했다.[5]
예술 애호가였던 바르투는 권력을 잡았을 때 예술 분야를 장려하기 위해 예술 지도자들과 협력했다. 그는 예술 분야에서의 세계적인 리더십이 파리를 관광객과 수집가들의 중심지로 만들고, 진실과 아름다움의 상징으로서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예술계는 그를 "시인들의 장관"이라 칭하며 기렸다.[6]
2. 3. 예술 후원
바르투는 예술 애호가였으며, 권력을 잡았을 때 예술 분야를 홍보하기 위해 예술 지도자들과 협력했다. 그는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이 파리를 관광객과 수집가들의 메카로 만들고, 진실과 아름다움의 전형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높인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예술계는 바르투를 "시인들의 장관"이라고 칭하며 그를 기렸다.[6]2. 4. 암살
외무부 장관 시절이던 1934년 10월 9일, 마르세유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드르 1세 국왕과 함께 있던 중 암살 사건에 휘말렸다. 알렉산드르 1세는 불가리아 출신 암살범 블라도 체르노젬스키의 총격으로 사망했으며[7], 바르투 역시 이 과정에서 팔에 총상을 입고 동맥이 절단되어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2. 4. 1. 암살 배후와 논란
외무부 장관이었던 바르투는 1934년 10월 마르세유를 국빈 방문 중이던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드르 1세 국왕을 만났다. 10월 9일, 알렉산드르 1세는 불가리아 출신 암살범 블라도 체르노젬스키가 쏜 권총에 맞아 암살당했다.[7] 이 과정에서 다른 총알이 바르투의 팔을 관통하여 동맥을 절단했고, 그는 사건 발생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이 암살은 1934년 8월,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단체 우스타샤의 지도자 안테 파벨리치가 로마에서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파벨리치는 전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장교였던 게오르크 페르체비치의 도움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탈리아에 페르체비치와 파벨리치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8] 이 암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부슈-뒤-론의 지사 피에르 주아노와 국가 경찰 국장 장 베르토앵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9]
한편, 사건 당시 자동차에서 발견된 총알에 대한 탄도 보고서가 1935년에 작성되었으나, 그 결과는 1974년에야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바르투를 맞춘 총알은 8mm 모델 1892 리볼버 탄환으로, 당시 프랑스 경찰이 사용하던 종류였다.[10] 이는 바르투가 암살범 체르노젬스키가 아닌, 현장에서 격렬하게 대응하던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논란을 낳았다.
3. 유산
바르투와 국왕의 죽음은 1937년 11월 16일 국제 연맹에 의해 제네바에서 체결된 테러 예방 및 처벌에 관한 협약으로 이어졌다.[11] 이 협약은 25개국이 서명했지만, 인도만이 비준했다.[12] 바르투는 사망 4일 후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참조
[1]
웹사이트
Land Policy Review
https://books.google[...]
[2]
서적
The Encyclopædia Britannica: a dictionary of arts, sciences, literature and general information, Volume 31
Hugh Chisholm
[3]
서적
Power and Pleasure: Louis Barthou and the Third French Republic
McGill-Queens
[4]
서적
The Gathering Storm
RosettaBooks
[5]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2019-12-13
[6]
논문
Cultural Politics and the Politics of Culture in the Third French Republic: The Case of Louis Barthou
https://www.jstor.or[...]
[7]
간행물
Memory and Forgetting on the National Periphery: Marseille and the Regicide of 1934
http://epress.lib.ut[...]
2010-01
[8]
서적
The Principle of Complementarity in International Criminal Law: Origin, Development and Practice
Brill
2008
[9]
서적
The Boundaries of the Republic: Migrant Rights and the Limits of Universalism in France, 1918–1940
Stanford University Press
[10]
서적
Les grandes controverses de l'histoire contemporaine 1914–1945
Edito-Service Histoire Secrete de Notre Temps
1974
[11]
서적
The United Nations and the Control of International Violence: A Legal and Political Analysis
Manchester University Press ND
[12]
서적
Terrorism: A History
Polit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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